【397회. 전쟁의 끝】
슬슬 파티가 끌나갈 무렵이었다. 루크는 한창 자신의 여인들과 지친 몸을 풀러 와인을 홀짝이고 있을 때였다.
"루크 아스란."
또다시 루크를 불러세우는 여성의 목소리 이내 여인들의 표정이 다시 구겨지며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틀었으나 이번에는 불쾌하고 불만이 가득한 표정 대신 놀란 표정을 지어 보여야 했다. 동시에 황급히 고개를 숙여 보이는 모습에 루크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틀었다.
"어.."
어디선가 봤던 아직 어린 티가 가득한 여인, 릴리와 세리스의 나이정도 되었을 법한 그녀가 천천히 루크에게 다가오자 그제야 루크도 그녀가 누군지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이크!.. 세이실 공주님 신 루크 아스란이 공주님에게 인사드립니다."
"괜찮아요 모두 일어나요. 괜한 허례허식은 필요치 않아요. 대신 물어볼 게 있어서 왔어요."
"아.. 예 말씀하세요. 무엇이든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루크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보이며 의아한 얼굴로 묻자 세이실이 무언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 의아함을 가진 루크가 다른 여인들을 한차례 훑어 보다 다시 세이실을 바라봤다.
"일단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니니까 저를 좀 따라와요."
"예?"
세이실이 무작정 루크의 팔을 잡는다. 그럼에 흠칫 몸을 떠는 주변의 루크의 여인들, 동시에 세이실과 루크를 따라오려 하자 세이실이 그녀들을 막아섰다.
"미안하지만 단둘이 얘기하고 싶어요."
"두, 둘이서요?"
무언가 불안함이 있는 레이니가 되묻자 세이실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여나 세이실마저 루크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걱정이 드나보다. 동시에 다른 이들의 표정도 그리 좋지만은 않자 세이실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대답했다.
"그대들이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전 이리도 바람둥이 같은 사내는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그저 기다리고 있어요! 몸성히 돌려 보낼테니까요."
냉랭한 세이실의 말에 레이니가 멋쩍게 웃어 보이고 다른 이들도 얼굴을 붉힌다. 한편, 루크는 그녀가 자신을 향해 바람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괜스레 겸연쩍어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자 어서요!"
그렇게 무턱대고 세이실을 따라간 루크는 이내 복도를 지나 황궁 내부에 있는 작은 화원에 이를 수 있었다. 이곳 역시 마흐무드에서 본 화원처럼 잘 꾸며진 화원으로 슬슬 봄이 다가옴에 여기저기 봉우리가 진 꽃들이 보이고 있었다. 확실히 날씨를 비롯해 이러한 모습마저 겨울에 끝을 느꼈다.
"여기라면 괜찮겠네요."
세이실이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에 의아함을 가진 루크가 세이실을 바라보자 세이실이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루크를 위아래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흠.."
마치 품평회라도 하듯 유심히 루크를 쳐다보던 세이실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확실히 얼굴도 나쁘지 않고 능력도 있고 말이야.. 게다가 이젠 공작의 자리까지 앉았으니.. 배경도 나쁘지 않은데.. 하지만 여자가 많은 게 문제라면 문젠대..."
세이실이 이내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루크를 바라보자 루크가 멋쩍게 웃어 보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루크가 이내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침묵을 유지하자 세이실이 다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도대체 이런 바람둥이가 뭐가 좋다고 어머니는 이리도 난리를 피우는지? 거참.. 어머니 취향이 이랬나? 자기보다 어린..사내에게..설마.. 어머니가? 흠.."
무언가 알 수 없는 말로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세이실의 모습에 루크가 난감한 듯 볼을 긁적이며 세이실을 바라보자 세이실이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루크에게 물었다.
"흠...이봐요."
"예.. 말, 말씀하세요 세이실 공주님."
"당신 한 번 제대로 보고 싶었어요."
"저를요?"
당돌한 세이실의 말에 루크가 난감한 기색을 보이며 대답하자 세이실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주위를 돌아 다시 한 번 루크를 훑어 보다 말을 이었다.
"우리 어머니가 푹 빠진 남자가 어떤지 말이지요. 그리고 그대에게 감사할 것도 있고요."
"하하... 그런데 감사할 것이라니요?"
어머니는 아무래도 루미에르를 말한 듯싶었다. 그럼에 루크는 루미에르가 곧 자신과의 관계를 세이실에게 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 황성에 다른 이들도 알게 된 것이 아닌가 걱정이 들었으나 그것보다는 세이실이 마지막에 한 말에 더 흥미가 돋았다.
"그래요. 저와 어머니를 구해주었잖아요. 그때 감사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은데. 지금에라도 하려고요."
"하..하하.. 굳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공주님 당연히 아즈문의 녹을 먹고 있는 귀족이라면 누구라도 할 행동이지요."
"흥! 입에 발린 말은 됐어요! 혹시나 그때부터 어머니에게 관심 있어서 그런 건 아니죠?"
"하하.. 그때는 그저 정말 공주님과 황후님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을 뿐입니다."
"흠.."
짧은 감사 인사가 끝나고 세이실이 다시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늘 연회장에서 보니 다른 이들과 사이도 좋아 보이던데.. 그나저나 어머니에게 편지라도 한 통 쓰시지 그랬어요? 그거 아세요? 어머니가 얼마나 그대 소식을 기다렸는지 말이에요."
"화, 황후님께서요?"
"그래요! 무심한 사람! 도대체 이런 바람둥이에다가 무심한 사람이 어디가 좋다는 건지... 쯧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