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409화 (409/412)

【409회. 사람들】

"힘들어.."

작은 저택 안, 지크문드는 자신의 앞에서 힘들다며 투정부리는 어린아이를 미소를 그리며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전혀 닮지 않은 두 사람의 모습 속에 보이는 모습은 마치 할아버지와 손녀와도 같아 보일 정도로 따듯함이 물씬 풍겼다.

"이제 좀 알겠느냐?"

"굳이 이래야 해? 그냥 강한 마법으로 싹 밀어버리면 되는 거 아니야?"

여자아이의 투정에 지크문드는 재밌다는 듯이 너털웃음을 지어 보이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또 나에게 당하지 않았더냐?"

얼굴을 찡긋 찌푸리며 말하는 지크문드의 모습에 아이가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렇지만... 후.. 마법의 세계는 너무 어려운 것 같아. 예전엔 이런 하급 마법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는데."

"끌끌. 정말 의외구나 고위급 마법은 손쉽게 펼치면서 이런 초급 마법 하나 사용하지 못하는 마법사라니 나도 처음이야. 그러니 더 재밌어."

"힝.."

여자아이가 여전히 투정을 부리면서 다시 자신의 앞, 마법에 필요한 룬어가 적힌 책을 펼쳐 보인다. 동시에 한 손으론 책을 보며 다른 손으로 주문을 외우자 곧 그녀의 손안에 그려지는 마법진 사이로 작은 빛이 미세하게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끌끌 힘내거라. 그래야 좋은 마법사가 될 수 있을 것이야."

"좋은 마법사가 된 다면 마계인인데도 사람들이 날 좋아해 줄까?"

여자아이가 마법을 펼치면서 물어오자 지크문드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연하지. 마계인이든 인간이든 엘프든 어차피 똑같은 사람들이지 않겠느냐? 게다가 여긴 자유도시 메세츠데고 말이야. 자 더 열심히 해보아라 카시오."

"응 알겠어! 할아버지.!"

"그래.. 끌끌 그나저나 아이들을 보러 간다던 그 노인네는 또 언제 돌아오려는지 적적하구먼."

"저희도 언제 한 번 놀러 가요!"

분명 마법 연습이 귀찮아서 하는 말이 겠으나 카시오의 말에 지크문드가 잠시 고민을 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엘레니아가 낳은 자식이 얼마나 자랐는지 궁금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래 좋지. 언제 한 번 같이 놀러 가자꾸나 아스란가로."

"좋아요!"

"대신, 기초 마법은 충분히 마스터하고 난 뒤 말이지."

익살스런 지크문드의 말에 밝은 미소를 그리던 카시오의 표정이 다시금 찌푸려졌다. 아무래도 기초 마법을 배우는 것이 참으로 싫은가 보다.

그럼에 지크문드가 재밌다는 듯이 크게 너털 웃음을 지어 보였다.

"힝..."

☆ ☆ ☆

"어이쿠! 이놈아 할애비 수염 다 빠진다.!"

이미 관리하지 않아 길대로 긴 수염을 만지작거리는 작은 아이를 보며 데미아스가 전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자애롭고 따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손에 들려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재롱을 펼쳐 보이기도 하자 라이아가 신기한 듯 웃어 보였다.

"호호홋! 아버님이 그런 표정도 지을 줄 아시는군요?"

라이아의 말에 데미아스가 잠시 라이아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나이도 먹을대로 먹었고 지크문드는 카시오라는 아이만 놀고 얼마나 적적한지 아느냐? 나에게도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지 않겠어? 그렇지 않느냐?"

데미아스가 자신의 품에 안긴 아이들을 보며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묻자 아이가 재밌다는 듯이 꺄르르 거렸다.

"그랬습니까? 그래서 저택으로 이만 돌아오시라고 하지 않았나요?"

"끌끌 그럼 지크문드 그놈이 심심해하는데 어떻게 하겠어? 아직 메세츠데를 제외하곤 마계인이 활보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 그리 반기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나라도 있어야지 끌끌!"

"하긴 그렇죠."

데미아스의 말에 라이아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갈곳을 잃은 카시오를 자신의 양녀로 들인 지크문드는 모든 일에 카시오를 배려해주었고 카시오가 살기 편한 메세츠데에 자리를 옮긴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그럼에 그가 적적해하고 외로워할까 봐 데미아스도 결국 지크문드와 함께 메세츠데에 머물기로 한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데미아스도 참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루크의 아이들의 소식이었다.

얼마나 이 아이들을 보고 싶었는지 그럼에 잠시 저택으로 돌아온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 데미아스의 모습에 루크와 라이아가 동시에 웃어 보인다. 한편 데미아스의 목소리가 좀 컸던 것일까? 한 아이가 놀랐는지 울먹이기 시작하자 데미아스가 난감한 기색을 보이며 소리쳤다.

"아, 아고 미안해요! 이 할아비가 미안해요! 그래, 이 아이가 레이니의 딸인 사라랑 에이리스의 아들인 제리코라 했지?"

"예 아버지."

"그리고 네가 들고 있는 두 명은 루미에르의 아들인 라세르 그리고 엘레니아의 딸인 메르시.."

"그래요! 이제 좀 기억 좀 해주세요 아버님 아이들이 슬퍼하겠어요."

웃음기 섞인 라이아의 질책에 데미아스가 멋쩍게 웃어 보이고는 다른 아이를 턱으로 가리켰다. 아무래도 또 까먹은 듯싶어 라이아가 한숨을 토해내며 대답했다.

"이 셋은 로제스의 아들인 루니 그리고 메드니스의 아들인 로메로 안느란테의 딸인 라미에르에요 "

데미아스난 자꾸만 퇴보하는 자신의 기억력에 어떻게든 이들의 이름을 새겨 넣으려 계속해서 되뇌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요즘 자꾸 깜빡깜빡하는 일이 잦다.

"흠.. 에잇! 이놈이 한 번에 이렇게 많이 낳으면 어떻게 다 외우느냐?! 안 그래도 내 나이가 몇인 줄 알고!"

데미아스가 한창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려다가 울화가 터졌는지 빽 하니 소리치자 루크가 다급히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데며 그를 자제시켰다.

"조, 조용히.. 해요 애들 또 울어요!"

"아, 그, 그렇지.. 어휴.. 그나저나 사무엘 이 녀석도 지 손자가 보고 싶어 죽으려 하던데 말이야. 끌끌."

아직 메세츠데에 남아 업무를 보고 있는 사무엘을 생각하며 데미아스가 키득거린다. 한창 손자랑 놀던 사무엘에게 데미아스의 은퇴는 큰 충격을 다가왔었다. 물론 다른 의미에서 말이다. 바로 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들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럼에 메세츠데로 오는 사무엘을 보며 얼마나 꼬시던가 아직도 그때 사무엘의 울상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고생 좀 할 게다. 끌끌 감히 이 다 늙은 아비에게 일을 시키려 하다니 천벌을 받아도 시원치 않을 녀석이지!"

"호홋!"

메세츠데는 지금 새로 받기 시작한 이주민들과 이 종족들이 매해 늘어나고 있는 추세였다. 이러다간 예전의 메세츠데 만큼 또 수많은 인구가 단번에 몰려 올 것이 분명했기에 치안도 치안이지만 주거를 정하는 일에도 꽤나 많은 일손이 필요했기에 한창 아이를 보고 좋아하고 있어야 할 사무엘이 업무에 시달려 있었다.

그럼에 한창 바쁠 시기임을 아는 데미아스는 사무엘을 생각하며 더욱 고소하게 느껴졌다.

"뭐. 나중에 다 같이 메세츠데로 놀러 가보도록 해요."

"그래 그러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나저나 네 아내들은 다 어디에 있느냐?"

데미아스가 주변을 돌아보며 묻자 루크가 말했다.

"한동안 아이들 때문에 집에만 있었어요. 그래서 좀 쉬라고 했더니 다 같이 오랜만에 쇼핑 나갔나 봐요 릴리랑 세리스도 같이요."

"그랬느냐? 잘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법이야. 라이아도 그렇고 루크, 아내들을 많이 좀 도와주거라. "

"아버님도 정정하잖아요."

"그래! 그래서 지금 이렇게 도와주고 있지 않더냐?"

데미아스가 기쁜 듯 여전히 자신의 긴 수염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을 보며 반달 눈이 되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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