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2화 (2/300)

2화

<2. 신안을 가진 아이>

현대화된 인사동에서 과거란 그저 낡은 장식처럼 보인다. 오래된 고서화가 공장에서 찍어낸 기념품들 사이에서 세월에 지친 가쁜 숨을 몰아쉬는 동안, 거리를 오가는 젊은이들은 길가의 화랑을 무심히 지나쳐 새로 생긴 카페와 아이스크림 가게를 기웃거린다.

인사동이 골동품 거리로 유명해진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부터였다. 지금은 이미 골동품 상점의 대다수가 장안동으로 옮겨가기는 했지만, 그 자리를 화랑이나 미술 관련 상점들이 대신하면서 오히려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 거리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됐다.

인사동 문화의 거리에는 십 층 이상의 건물이 흔치 않다. 그 때문에 고만고만한 주변 건물들 사이에 떡 하니 자리 잡은 십오 층짜리 현소 빌딩은 마치 잡목들 사이에 우뚝 솟은 키 큰 소나무처럼 보였다.

이세준은 현소 빌딩의 소유주이자 건물의 네 개 층을 몽땅 차지하고 있는 현소 갤러리의 대표이기도 했다. 길가의 은행나무들이 노랗게 물들던 어느 가을날, 그에게 다소 골치 아픈 손님이 찾아왔다.

“내가 이번에 괜찮은 물건을 하나 구한 것 같아요. 이대표가 잘 좀 감정해주시오.”

오전에 오광춘 회장으로부터 갑작스러운 전화가 왔었다. 강남에 여러 채의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 갑부이자, 몇 년 전부터 현소 갤러리를 통해 꾸준히 고가의 그림들을 구입해 주고 있는 큰 고객이었다. 문제는 그가 그림의 가격에만 관심이 있을 뿐, 예술적 안목은 장님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점심시간이 지나자마자 오광춘이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 하나를 대동하고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는 세준이 권하는 자리에 앉자마자 사내가 들고 있던 길쭉한 통에서 족자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것 보시오. 내가 요즘 그림에 관심을 갖다보니 이런 귀물을 다 얻게 되는 모양이오.”

오광춘이 득의양양한 얼굴로 테이블 위에 족자를 펼쳤다.

‘기가 막히는군.’

한참 동안 족자를 살피던 이세준은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말마따나 기가 막히게 잘 빠진 물건이었다. 어설픈 감정사라면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로 잘 만든 위작.

‘이 영감탱이가 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나저나 이런 건 또 어디서 구한 거야?’

1미터가 조금 넘는 길이의 족자 한가운데에는 기기묘묘하게 비틀리며 뻗어 올라간 길쭉한 바위가 그려져 있었다. 그 바위 위에서 양쪽 날개를 살짝 들어 올린 채 자리 잡은 독수리 한 마리. 오연한 자세로 고개를 살짝 숙인 놈의 눈은 묽은 먹으로 흐릿하게 처리된 먼 산들과 그 사이의 들판을 굽어보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족자 왼편의 서명과 낙관까지 꼼꼼히 살피던 이세준이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속은 편치 않지만 그래도 나름 VIP의 심기를 긁을 필요는 없다.

“잘 그렸군요. 필선에 힘이 넘치고 먹의 농담 처리가 제법 능숙한 것으로 볼 때, 확실히 아마추어의 솜씨는 아닙니다.”

그러자 오광춘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펄쩍 뛰었다.

“아마추어라니? 여기 서명과 낙관을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하는 게요? 장승업의 ‘응시팔황도’요. 이번에 새로 발견된 진품이란 말입니다.”

응시팔황도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세준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원 장승업의 응시팔황도는 모 재벌 총수의 호를 딴 미술관이 소장한 명작이다. 하지만 조선 시대의 화가들은 같은 주제로 여러 장의 그림을 그리는 일이 흔했다. 그러니 새로운 응시팔황도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그래도 그렇지….

“흉내는 잘 냈습니다. 하지만 오원의 진작은 아니에요. 낙관도 처음 보는 거고요.”

“오원의 낙관이야 워낙 종류가 많으니 처음 보는 게 나올 수도 있는 것 아니오?”

“그거야 그렇지만…. 허허허.”

세준은 기가 막힌 심정을 숨기기 위해 짐짓 헛웃음을 터트렸다.

생전의 장승업은 꽤 유명해진 뒤에도 아무데서나 술을 마시고, 아무데서나 그림을 그렸다. 다 그린 그림 위에 낙관을 찍은 뒤에는 술에 취해 그 자리에 널브러지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는 그림을 그리던 도중에 종이 위에 코를 박고 잠들기도 했다. 그런 뒤 술이 깨면 갑자기 급한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말도 없이 사라지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그가 남긴 미완성 그림만큼이나 잃어버린 낙관 역시 적지 않았다. 오광춘도 그새 제법 공부를 했는지 그 점을 지적한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들키지 않게 혀를 찬 세준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낙관이야 그렇다 쳐도 어쨌든 그림 자체는 진품이어야 할 게 아닙니까? 죄송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오원의 그림이 아닙니다.”

“에이, 그러지 말고 다시 한 번 잘 보시오. 내가 보기에는 딱 오원의 그림인데?”

“암만 봐도 제가 보기에는 아닙니다.”

“정말 가짜란 말이오?”

“네. 평범한 호사가들이 보면 깜빡 속을 정도로 잘 그리기는 했네요. 그래도 아닌 건 아니지요.”

“그 참 이상하네. 여길 보시오. 바위 위에 앉은 독수리가 금세라도 날개를 펼치고 훌쩍 날아오를 것 같지 않소. 어떤 아마추어가 이렇게 잘 그립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어떤 사람이 이걸 그렸는지 궁금해지기는 하네요. 하지만 독수리의 기상이 오원의 기운생동(氣運生動)에는 한참 미치지 못합니다. 말씀 드렸듯이 그저 흉내만 잘 냈을 뿐이지요.”

세준이 거듭 흉내만 잘 냈다는 점을 강조하자 아까부터 오광춘의 옆에 묵묵히 앉아 있던 사내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는 세준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얼른 눈을 내리깔았다. 오래 깎지 않아 더부룩한 그의 앞머리 사이로 입술이 꾹 다물어지는 게 보였다.

“그나저나 이 분은 처음 뵙는 것 같은데, 누구십니까?”

세준이 사내에게 관심을 보이자 오광춘이 약간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아, 김군 말이오? 얼마 전부터 내 일을 돕고 있는 젊은이인데 이대표가 크게 신경 쓸 건 없어요. 아무튼 이 그림말인데….”

“김하선이라고 합니다. 이세준 대표님 성함은 예전부터 많이 들었습니다.”

오광춘이 굳이 세준의 관심을 돌리려는 순간, 갑자기 사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러자 오광춘의 얼굴이 살짝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림 보는 안목이 제법 있어서 옆에 두고 있는 친구요. 자, 우리는 일단 하던 얘기나 계속 합시다. 하선이는 내가 나중에 천천히 인사를 시켜 주리다.”

어색한 웃음을 머금은 오광춘이 다시 족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지 말고 다시 한 번 잘 보시오. 족자나 종이의 상태를 보면 최소한 백년은 지난 물건입니다. 이 대표 말이 맞는다면 설마 이게 백 년 전에 만들어진 가짜란 말이오?”

그는 여전히 포기하기 어려운지 이번에는 종이와 족자의 상태를 들먹였다. 세준은 순간적으로 짜증이 울컥 치밀었지만 애써 웃음을 지었다. 상대는 고객이다. 그것도 제법 큰 손.

“글쎄요. 오원의 제자들이 활동하던 때가 대략 백 년 전이고, 당시 그 양반들이 스승의 이름을 빌어서 그린 그림들이 제법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건 그때 만든 작품도 아니에요. 제 생각에는 그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겁니다.”

“종이가 이렇게 낡고 변색이 되었는데도?”

“새 종이를 낡게 보이도록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찾기 힘들기는 하지만 예전에 만들어진 종이를 어렵게 구했을 수도 있고요. 그것까지 정확하게 확인하려면 시간을 들여 과학적인 검사까지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해 드릴까요?”

“아니오. 그렇게까지 할 필요야…. 됐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대표 말이니 그림에 문제가 있는 게 맞겠지. 아무래도 내가 이번에는 물건을 잘못 구한 모양이요. 에이, 쯧쯧.”

그제야 포기했는지 오광춘이 마침내 발을 뺐다. 그러면서도 끝내 자신이 들고 온 족자가 위작이라는 것을 선뜻 인정하지는 않는다. 세준은 그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듯해서 하마터면 코웃음을 칠 뻔 했다.

“그런데 이걸 어디서 얻으셨습니까? 위작이기는 해도 솜씨가 제법이군요. 저도 이 바닥에서 활동하는 위조범들은 대개 아는데 이건 누가 만든 건지 얼른 떠오르지 않네요.”

“어디서 얻기는? 그냥 이래저래 몇 다리 건너 구했지. 너무 캐묻지는 마시오. 잘 아시잖소? 이 바닥에서 물건의 출처는 비밀이라는 걸.”

세준이 짐짓 위조범의 솜씨를 칭찬하자 김하선이라는 사내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잠깐 들었다가 숙였다. 그의 얼굴을 흘낏 쳐다본 오광춘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바쁘실 텐데 공연히 시간을 뺏은 꼴이 되어서 서로 민망하게 됐구먼. 오늘은 이만 가고, 다음에 또 좋은 물건을 구하면 다시 들리리다. 그럼 수고하시오.”

“잠깐만요.”

두 사람이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이세준이 품에 손을 집어넣더니 명함을 한 장 꺼내들었다. 그는 그것을 김하선에게 건넸다.

“왠지 나중에라도 다시 한 번 얼굴을 뵐 분인 것 같네요. 혹시 연락하실 일 있으면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주세요.”

“아, 예.”

세준의 행동이 뜻밖이었는지 잠시 얼떨떨한 표정을 짓던 김하선이 뒤늦게 명함을 받아들었다. 그런 그의 행동이 다소 불만이었던 모양이다. 오광춘의 목소리가 약간 높아졌다.

“김군, 뭐하냐? 얼른 그림 챙겨라. 이만 가자.”

그의 고갯짓을 받은 김하선이 테이블 위에 펼쳐두었던 족자를 막 손으로 잡으려는 순간, 똑똑 하는 소리와 함께 사무실 문이 열렸다.

“아빠!”

예닐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아이였다. 아이는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인의 손을 꼭 쥐고 있었는데, 두 사람의 얼굴선과 커다란 눈이 비슷한 것으로 보아 대충 봐도 모자지간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의 모습을 발견한 세준이 깜작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도윤아! 너 병원에서 바로 집에 안 갔어?”

그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엄마의 손을 놓은 도윤이라는 아이가 도도도 달려오더니 세준의 품에 덥석 안겼다. 그 모습을 본 아이의 엄마 서연희가 허탈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집에 가기 전에 아빠 먼저 보고 싶다고 떼를 써서 할 수 없이 여기로 데려왔어요.”

“그래도 우선 집으로 데려가지 그랬어. 아직 쏘다니기에는 위험할 텐데.”

“의사 선생님 말로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래요. 보다시피 애도 팔팔하고.”

“정말 다 나은 거야?”

“그런 것 같아요. 처음엔 저도 애가 죽는 줄 알고 조마조마…. 아, 안녕하세요, 오회장님.”

서연희가 그제야 세준의 맞은 편에 서 있는 오광춘을 발견하고 얼른 허리를 숙였다. 세준의 아내인 그녀는 현소 갤러리의 실장이기도 한 터라 오광춘과 몇 번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난데없는 상황 덕에 약간 뻘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오광춘도 그제야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에요, 서실장. 그나저나 아이가 어디 아팠었나 봅니다.”

“예. 수막염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 있었거든요.”

“수막염?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구먼. 그래서 이젠 다 나았고요?”

“덕분에요.”

“다행이오. 귀한 아들일 텐데.”

서연희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는 동안, 세윤은 두 손으로 아들의 얼굴을 받쳐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 아빠의 품에서 떨어진 아이의 눈길이 테이블 위에 펼쳐두었던 그림에 머물렀다.

“와! 예쁜 그림이다.”

아이가 그림을 칭찬하자 굳어있던 오광춘의 얼굴에 슬쩍 미소가 피어올랐다.

“감정사 아들내미라서 그런가? 애가 그림 볼 줄을 아는구먼. 네가 보기에도 잘 그린 것 같으냐?”

“네. 그림에서 빛이 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예뻐요.”

“그림에서 빛이 나? 그런 그림도 있어?”

“그럼요. 저기 있는 그림에서는 막 빛이 나잖아요.”

아이의 손끝이 향한 곳에는 사무실을 치장하기 위해 걸어놓은 한국화 한 점이 걸려 있었다. 아주 고가는 아니지만 널리 알려진 화백의 진품이었다.

오광춘이 아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살짝 눈살을 찌푸리는 사이, 역시 무슨 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세준이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도윤아, 거기 손대면 안 돼.”

미처 말릴 틈이 없었다. 그가 뭘 어쩌기도 전에 테이블 위의 그림에 달려든 아이가 두 손으로 그것을 덥석 쥐었다. 급히 다가간 세준이 아들의 두 팔을 잡고 뒤로 잡아끄는데 아이가 건너편에 엉거주춤 서 있던 김하선을 쳐다봤다.

“이거 아저씨가 그린 거죠? 아저씨 댑따 잘 그린다.”

뭐? 순간 오광춘과 김하선, 그리고 이세준의 얼굴이 일제히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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