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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3화 (3/300)

3화

2. 신안을 가진 아이

“얘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걸 왜 김군이 그려?”

오광춘이 얼른 족자를 집어 들면서 도윤이에게 눈을 부라렸다. 김하선 역시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고, 그것을 본 이세준의 얼굴은 더욱 딱딱하게 굳었다.

“어? 저 아저씨가 그린 게 맞는데…?”

오광춘의 사나운 눈빛에 겁을 먹었는지 도윤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을 흐렸다. 그러자 흥 하는 콧소리와 함께 족자를 말아 통에 집어넣은 오광춘이 이세준에게 고개를 까닥했다.

“이대표. 오늘은 이만 가겠소. 다음에 또 연락합시다.”

그는 냉랭한 표정으로 디시 한 번 아이를 흘기더니 거칠게 문을 열고 사무실을 나갔다. 잠시 멍한 표정으로 아이를 쳐다보고 섰던 김군은 밖에서 자신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는 오광춘의 재촉을 받고서야 허둥지둥 그를 쫓아나갔다. 두 사람이 사라진 사무실에 잠시 적막이 흘렀다.

“흠흠, 도윤아.”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당황한 서연희가 조심스럽게 아들을 불렀다.

“네, 엄마.”

“조금 전에 네가 봤던 그림말이야, 왜 아까 그 아저씨가 그렸다고 생각했어?”

“그 아저씨가 그린 거 맞는데….”

“그러니까 엄마는 우리 도윤이가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서 그래.”

“봤어요.”

“봤다고? 뭘?”

“그림을 만지니까 그 아저씨가 그걸 쓱쓱 그리고 있는 게 보였어요.”

듣고 있던 이세준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서연희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던 세준이 아들에게 다가가 사무실에 걸려있는 한국화를 손으로 가리켰다. 도윤이 조금 전에 빛이 난다고 했던 그 그림이었다.

“도윤아, 너 아까 저 그림에서 빛이 난다고 했었지?”

“네.”

“지금도 그래? 지금도 저 그림에서 빛이 나는 게 보이냐고.”

“아니오."

“아니야?”

“네. 아까는 빛이 났었는데 지금은 안…, 어? 다시 빛이 나요.”

“다시? 꺼졌던 빛이 다시 난다는 말이냐?”

“네. 처음 봤을 때는 빛이 나다가 꺼졌는데, 아빠 말 듣고 보니까 또 나요.”

세준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때 서연희가 남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난데없이 이상한 소리를 하는 아들에 대한 염려가 잔뜩 서려 있었다.

“여보. 도윤이가 몹시 앓더니 아무래도 눈이나 뇌에 무슨 이상이 생긴 게….”

“나도 그게 걱정이긴 한데, 그런 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잠깐만 기다려 봐.”

세준은 아내의 손을 도닥여주고는 다시 아들에게로 눈을 돌렸다.

“도윤아. 그 빛이 어떤 느낌인지 아빠한테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해줄 수 있어?”

“자세히요?”

“그래. 빛이 무슨 색인지, 또 얼마나 밝은지 하는 것들 말이야.”

“어, 색은 없고요, 눈이 부실 정도는 아닌데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기분이 좋아져?”

“네. 되게 좋아요.”

“그렇구나. 그럼 혹시 저거 말고 또 빛이 나는 그림은 없어?”

“있어요!”

도윤이 손을 들더니 이번에는 두 사람이 보고 있던 한국화의 반대편에 걸려 있는 서양화를 가리켰다. 현소 갤러리의 실장이자 작품 전시를 총괄하는 큐레이터로도 일하고 있는 서연희가 구매해서 걸어둔 작품이었다.

“저 그림에서도 빛이 난다고?”

“네.”

“다른 건? 다른 그림들에서는 빛이 안 나니?”

그의 사무실에는 도윤이 가리킨 것 말고도 몇 점의 그림과 글씨가 더 걸려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에 지적되었던 두 점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진품이 아니라 모작이거나 인쇄된 것들이었다. 아빠의 말에 사무실을 한 바퀴 죽 돌아본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다른 그림들은 빛이 안 나요.”

“확실해? 다시 한 번 잘 봐봐. 정말 안 나?”

“정말 안 나요.”

아빠를 보며 헤 웃는 도윤의 해맑은 표정과는 달리 세준의 얼굴은 오히려 더욱 심각해졌다. 그 바람에 도윤은 자신이 뭔가 잘못했나 싶어 풀이 죽었다. 그러자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서연희가 발끈했다.

“여보! 당신 지금 애 데리고 뭐하는 거예요?”

세준의 얼굴이 지나치게 심각해지자 서연희가 그의 팔을 잡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은근히 겁이 나면서 걱정이 됐던 것이다. 그제야 자신이 아들을 너무 몰아세우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세준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수막염 때문에 열흘 넘게 병원에 입원했다가 이제 막 퇴원한 아이였다. 갑자기 흥분한 덕에 아빠답지 못한 행동을 한 것이다.

매서운 눈빛으로 남편을 째려본 서연희가 무릎을 굽혀 아들을 안으며 토닥였다.

“우리 도윤이, 배고프지? 이제 그만 엄마하고 집에 가서 밥 먹고 쉬자.”

“네. 근데 아빠는 같이 안 가요?”

아들의 눈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세준이 어색하며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빠는 아직 일이 덜 끝나서 조금만 더 있다가 퇴근할게. 그래도 저녁 전에는 들어갈 테니까 오랜만에 다 같이 밥 먹자.”

“네. 그리고 선물도 사 오실 거죠?”

“선물?”

“퇴원 선물이요. 의사 선생님이 저 죽을 뻔 했대요. 이제 다 나았으니까 선물 받아야 해요. 축하 받아야죠.”

“어어, 그래. 당연히 사 가야지. 우리 아들 퇴원 선물.”

“꼭이요?”

“꼭.”

손가락까지 걸었다. 영악한 구석이 있지만 그래서 더 귀여운 아들이었다.

*   *   *

모자가 손을 잡고 사무실을 나간 뒤 세준은 자신의 책상에 앉아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사실일까? 우리 아들이 정말로 보는 것만으로도 진품과 위작을 구분할 수 있게 된 걸까? 그 괴물 같은 능력이 무려 백 년에 가까운 시간을 지나 다시금 그 양반의 핏줄을 이은 내 아들에게 전해진 게 맞을까?

기대가 되는 한편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역시 조금 더 분명하게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사무실에 걸려 있던 몇 점의 작품을 살펴본 것만으로 결론을 내리기에는 아무래도 증거가 부족했다.

고민을 끝낸 세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지하로 내려갔다. 아들의 능력을 제대로 검증하려면 몇 가지 준비할 게 있었기 때문이다.

현소 빌딩의 지하 1층부터 3층까지는 모두 주차장이었다. 빌딩 안에 있는 네 개의 엘리베이터 가운데 셋은 지하 3층이 끝이었고 비상계단도 거기까지만 존재했다. 그러나 대표 사무실 바로 옆을 통과하는 나머지 하나만은 4층과 5층까지 내려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였다. 이세준은 그걸 타고 4층으로 갔다.

4층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두세 평 정도의 공간 너머로 커다란 강철문이 보였다. 세준이 문 한쪽에 달린 보안 장치에 지문을 인식시킨 뒤 비밀 번호를 누르자 육중한 문이 소리도 없이 열렸다. 열린 문 안은 거대한 창고였는데, 사방이 모두 엄청나게 두껍고 튼튼한 콘크리트로 덮여 있었다. 그 안에 쇠로 만든 선반이 줄지어 서 있었다.

창고 안으로 들어선 세준은 선반 위의 상자들 가운데 몇 개를 꺼내서 한쪽에 비치되어 있던 카트에 담았다. 아울러 포장이 되지 않은 상태로 놓여 있던 서화와 도자기도 몇 점 꺼냈다. 카트를 몰고 지하 1층 주차장까지 올라간 그는 거기 주차되어있던 자신의 차에 가지고 간 물건들을 모두 실었다.

일을 모두 끝낸 그는 다시 대표 사무실로 올라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저쪽에서 ‘여보세요’하는 소리가 들렸다.

“형님. 저 세준입니다.”

“어, 이 대표. 오랜만이네?”

“잘 지내시죠?”

“나야 늘 잘 지내지. 그런데 어쩐 일이야? 갑자기 전화를 주고.”

“저기, 긴히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 그런데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되십니까?”

“오늘? 마침 별다른 약속이 없기는 한데, 왜? 무슨 일 있어?”

“특별한 일은 아니고요. 괜찮으시면 저녁이나 함께 하시죠. 부탁도 드릴 겸.”

“부탁? 뭐 감정해야 할 고서라도 들어왔어?”

“그런 건 아니고요. 아무튼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드릴게요.”

“보증은 안 돼.”

“저 형님보다 돈 많습니다.”

“하긴 그건 그렇지, 하하. 그럼 이따 퇴근 시간에 맞춰서 내가 자네 사무실로 갈까?”

“아뇨. 저희 집으로 오세요. 거기서 식사도 하고 얘기도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집으로 오라는 얘기에 상대방의 목소리가 대뜸 심각해졌다.

“진짜 무슨 일이야? 혹시 위작을 잘못 팔기라도 했어?”

“제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 건 아니고요. 제 아들 문제로 형님 생각을 들어봤으면 해서요.”

“자네 아들? 도윤이? 왜? 도윤이 많이 아프다더니 어디 잘못되기라도 한 거야?”

목소리에서 걱정이 진하게 묻어나왔다. 순간 세준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이왕 도움을 부탁했으니 최소한 상대에게는 어느 정도 이유를 설명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다른 사람한테는 얘기하지 마시고요. 도윤이가 오늘 제 사무실에 왔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림 두 점에서 빛이 나는 게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전화기 저편에서 다급하게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나더니 침묵이 이어졌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상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두 점이라고? 그게 어떤 그림인데? 그리고 어떤 빛을 봤다는 거냐?”

“두 점 모두 진품이었습니다. 도윤이 말에 의하면 그 그림들에서 눈이 부시지 않는 은은하고 기분 좋은 빛이 난다더군요. 다른 모작이나 인쇄된 그림들에서는 빛이 안 나고요.”

“그거 마치 고학 선생님 얘기 같은데?”

“네. 제 증조부하고 비슷한 경우죠.”

다시 약간의 침묵이 이어지더니 목소리가 들렸다.

“도윤이가 이번에 크게 앓았지?”

“의사 말로는 자칫 목숨이 위험할 뻔 했다더라고요. 면목없는 말이기는 하지만 우리 부부가 둘 다 바쁘다보니까 치료시기를 놓쳤었거든요.”

“한 일주일 입원했었나?”

“정확히는 열흘입니다.”

“그럼 그것도 고학 선생님하고 똑같군.”

“그렇죠.”

“알겠네. 일단 내가 이따가 자네 사무실에 들르지. 거기서 자세한 애기를 들은 뒤에 함께 자네 집으로 가는 게 낫겠어.”

“알겠습니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아참, 잠깐만요.”

세준은 막 전화를 끊으려는 상대를 다급하게 불렀다.

“오실 때 혹시 진품 고서하고 위작 몇 점만 가져오실 수 있겠습니까? 이왕이면 누가 만들었는지 출처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위작이면 더 좋고요. 저한테도 고서가 몇 점 있기는 하지만 잘 만들어진 위작은 없어서요.”

“위작도? 도윤이 검사하는데 쓰려고?”

“네. 부담스러우시겠지만 가능하면 부탁드립니다.”

“부담스러울 것까지야 있나? 알았어. 그렇게 하지.”

전화가 끊어지자 세준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의 증조부인 고학 이인하는 비록 간송 전형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한 시대를 풍미하던 수집가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이 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귀신도 속일 수 없다는 소문이 날 만큼 뛰어난 감정 솜씨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감정 솜씨가 증조부가 가졌던 특별한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지.”

증조부는 자신이 가진 특별한 능력에 대해 평생 동안 단 두 사람에게만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본인의 아들이자 세준의 할아버지인 이치현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이 바로 조금 전 통화를 했던 조태석의 증조부인 의암 조동훈이었다. 고학과 의암은 평생 동안 피를 나눈 형제보다 가까운 친구이자 동지로 지냈다.

“물론 현재도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은 두 사람뿐이고.”

그게 바로 세준 자신과 조금 전 통화를 했던 조태석이었다. 그 때문에 일부러 그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퇴근 시간에 맞춰 오겠다던 조태석은 그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세준을 찾아왔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의 얼굴이 자못 심각했다.

“아까 전화로 했던 그 이야기 말이야, 농담이 아니지?”

조태석은 소파에 앉자마자 도윤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대학 교수로 있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뛰어난 고서 감정가이기도 한 그로서는 세준의 말이 지닌 의미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네 모두 사실입니다. 그리고 아까 전화로는 말씀드리지 않은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게 뭔데?”

“오늘 오광춘 회장이 제 사무실로 위작을 하나 들고 왔습니다.”

“오회장이? 그 영감탱이가 이젠 그런 짓까지 하나?”

“네. 아무래도 어디서 위조에 재능이 있는 젊은 친구를 하나 구한 모양입니다.”

“관운장 앞에서 수염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그 인간이 자네를 속이려고 했다는 거야?”

“네. 그런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도윤이가 오회장이 가져온 그림을 손으로 잡더니 대뜸 누가 그걸 그렸는지 짚어내더라고요.”

조태석의 입이 떡 벌어졌다.

“어떻게?”

“저도 모르겠습니다. 도윤이 말에 의하면 오광춘이 데리고 온 젊은 친구가 그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을 봤다더라고요.”

“무슨 소리야? 그게 어떻게 가능해?”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때문에 애가 병을 앓더니 머리에 이상이 생긴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고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빨리 확인을 하고 싶어서 급하게 형님에게 와 달라고 부탁드린 겁니다.”

“그러니까 이왕이면 출처를 확실히 알고 있는 위작을 가져와달라고 한 게….”

“네. 도윤이 말이 사실인지 알고 싶어서요.”

한참 동안 세준의 얼굴을 쳐다보던 조태석이 갑자기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세준은 가벼운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이 다른 이도 아니고 자기 아들을 놓고 실없는 거짓말을 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믿기에는 너무나 황당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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