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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5화 (5/300)

5화

2. 신안을 가진 아이

서연희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아들을 품에 안은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이세준이 재빨리 119에 연락해 구급차를 불렀다. 다행히 병원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도윤이는 잠시 정신을 차렸다. 쓰러진 지 삼십 분 가량 지났을 때였다.

“도윤아, 괜찮니? 어디가 아픈 거야? 많이 아파?”

“머리가 아파요.”

간신히 그 말을 내뱉은 도윤이는 다시금 정신을 잃었다. 기겁한 서연희가 아들의 몸을 붙잡고 흔드는 것을 간호사들이 간신히 떼어냈다. 곧바로 달려온 의사가 먼저 간단하게 도윤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체온과 혈압이 약간 높고 맥박도 다소 빠릅니다. 외상은 보이지 않네요.”

“애가 머리가 아프대요.”

그 말을 들은 의사가 도윤이의 몸에 몇 가지 장치를 연결했다. 잠시 후 의료용 모니터를 확인한 의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뇌파가 약간 불안정하긴 하네요.”

“그럼 어떡해요? 우리 애 큰일 나는 건가요?”

“글쎄요. 정확한 건 정밀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다행히 지금은 그렇게까지 위험한 상태가 아닙니다. 체온과 혈압, 맥박 등이 모두 정상 수치를 크게 웃돌지는 않거든요. 정신을 잃기는 했어도 동공 반응도 정상이고 폐나 배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지도 않습니다. 혈액을 채취했으니 피검사 결과를 기다려보죠.”

“필요한 검사는 다 해 주세요. 비용 걱정은 하지 마시고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차분하게 하루 정도 경과를 지켜보는 게 낫겠습니다.”

서연희와 이세준은 담당 의사처럼 차분하지 못했다. 그들의 극성으로 인해 결국 도윤은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CT와 MRI를 포함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그런 난리법석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음날 오전 아이는 멀쩡하게 깨어났다.

“배고파요.”

깨어난 도윤이는 먹을 것부터 찾았다. 그리고 소화 기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엄청난 양을 먹어치웠다.

“엄마. 나 집에 갈래요.”

배가 부른 도윤이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였다. 열흘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게 바로 어제였다. 병원이 지겨울 만 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며칠 더 입원한 채로 경과를 지켜봤지만 재검 결과가 모두 정상으로 나왔다.

“체온과 맥박 모두 정상입니다. 뇌파도 안정적이고 MRI 상에 나타난 뇌 사진도 깨끗하네요. 현재로서는 달리 이상한 징후가 발견된 게 없습니다.”

결국 도윤이는 담당의의 허락을 받아 건강한 몸으로 퇴원했다.

“그래도 정신을 잃은 경험이 있는 아이니까 부모님이 잘 지켜보세요. 조금이라도 이상한 징후가 발견되면 곧장 병원으로 데리고 와야 합니다.”

의사의 당부가 아니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아이가 자꾸 집에 가자고 보채지만 않았어도 마음 같아서는 계속 병원에 두고 싶은 심정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도윤이는 잘 먹고 잘 놀고 잘 잤다. 식사량이 평소보다 약간 늘기는 했지만 그 밖에는 평소와 다른 점이 없었다. 아니, 있기는 있었다. 아주 크게 다른 점이. 그걸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집안일을 도와주는 도우미 아주머니였다.

도윤이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온 다음날, 이세준과 서연희는 눈에 밟히는 아들을 놔두고 갤러리로 출근해야 했다. 여전히 아들의 상태가 걱정되기는 했지만, 도윤이가 입원해 있던 며칠 동안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잔뜩 쌓였기 때문이다. 특히 서연희는 갤러리에서 준비 중인 새 전시회로 인해 당장 지시하고 결제해야 할 일이 많았다.

“도윤아. 조금 갑갑하더라도 엄마 회사에 다녀올 동안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서 놀고 있어. 엄마가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

“어린이집도 안 가요?”

“그래. 거긴 당분간 쉰다고 전화했어. 혹시 배고프면 아주머니한테 먹을 거 달라고 해.”

“네. 알았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아들이 못내 눈에 밟혔지만 부부는 할 수없이 출근했다. 도우미 아주머니에게는 혹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즉각 연락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두 사람이 집을 나서자 도윤이는 일단 이층에 있는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잠시 후 커다란 상자 하나를 가지고 다시 거실로 내려왔다. 며칠 전, 이세준이 퇴원 기념으로 사준 레고 박스였다. 박스 자체의 높이가 아이의 허리까지 올라올 정도로 컸다.

상자를 연 도윤이가 안에 든 여러 개의 플라스틱 포장을 하나씩 꺼내 뜯자 거실 바닥이 순식간에 무수히 많은 레고 조각들로 뒤덮였다. 설거지를 하러 부엌에 들어가던 도우미 아주머니가 그걸 보고 깜짝 놀랐다.

“도윤이 레고하면서 놀려고? 어머, 그런데 무슨 레고 조각이 그렇게 많니?”

“아빠가 사줬어요. 이걸 다 조립하면 이런 모양이 된대요.”

도윤이가 상자 위에 인쇄된 커다란 사진을 가리켰다. 척 봐도 굉장히 클 뿐만 아니라 복잡하게 생긴 모양이었다. 여러 개의 캐릭터와 탈 것, 그리고 건물들까지 섞여 있어 전체가 하나의 마을처럼 보였다.

“엄청 크고 복잡하네? 근데 그걸 도윤이 혼자서 다 조립할 수 있어?”

“이것대로 하면 돼요.”

도윤이가 바닥에서 크고 두꺼운 책을 들어보였다. 각각의 부분을 조립하는 방법이 그림과 함께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는 매뉴얼이었다. 매뉴얼을 받아 내용을 살펴본 아주머니는 무심코 마음속에 있는 말을 중얼거렸다.

“대학생이 해도 며칠은 걸리겠네. 애한테 뭘 이런 걸 사줬지?”

아주머니의 말이 틀린 게 아니었다. 레고 유니버스는 도윤이 또래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걸 산 이세준은 같은 이름의 시리즈가 연령별로 여러 종류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선물을 사던 날, 이세준은 아들의 일 때문에 마음이 심란한 상태였다. 그 때문에 장난감 가게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 그걸 누가 쓸 것인지 미처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게 직원은 아무 말 없이 같은 시리즈 가운데 가장 비싼 것을 내주었다. 그 결과 도윤이는 같은 레고 시리즈 중에서 가장 조각 수가 많고 복잡한 것을 선물로 받게 된 것이다.

설거지를 마친 아주머니는 빨래를 돌린 뒤에 이층에 올라가 그곳을 청소했다. 이층 정리를 마치고 내려왔을 때, 그녀는 거실 바닥에 완성된 마을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레고 상자 겉면에 인쇄된 사진과 똑같은 마을이었다. 고작 두 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도, 도윤아. 너 이걸 벌써 다 조립한 거야?”

자신이 이루어낸 결과물을 흡족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던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 했죠?”

“응? 그, 그래. 정말 잘 했네? 근데 이걸 어떻게 혼자 조립한 거야?”

그러자 도윤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옆에 놓여 있던 매뉴얼을 들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거기 있는 대로 조립했다는 뜻이었다. 아주머니는 기가 막혔다.

‘아무리 매뉴얼이 있어도 그렇지,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가….’

어른도 그 시간에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도윤이가 참조한 매뉴얼에는 아이가 이해하기에는 힘들 정도로 글자와 그림이 빽빽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너 이걸 보고 혼자 다 이해한 거니?”

“네. 쉬워요. 옆에 그림도 있잖아요.”

“하지만 여기 적힌 설명만 해도 내용이 너무 많은데….”

“안 많아요.”

그 말과 함께 도윤이가 뭔가를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얘가 뭔 소리를 하나 싶던 아주머니는 곧 그게 자신이 펴든 매뉴얼에 적힌 내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매뉴얼을 보던 그녀가 저도 모르게 그걸 툭 떨어트렸다.

“너, 너, 이걸 다 외운 거야?”

“외워요?”

“여기 적힌 내용을 다 기억하냐고.”

“아까 읽었잖아요.”

“아까 읽었다고? 그래서 한 번 읽었기 때문에 안에 뭐가 적혔는지 다 안다는 거니?”

“음…, 네.”

도우미 아주머니는 할 말을 잃었다. 아무리 머리가 좋기로서니 그게 가능해?

*   *   *

도윤이는 나중에 아빠가 오면 자랑하겠다며 완성된 레고 시리즈를 거실에 둔 채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혼자 거실에 우두커니 서 있던 아주머니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걸 사모님에게 알려야 하나?”

서연희는 출근하기 전,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이상한 일이 생기면 곧바로 연락해 달라고 신신당부했었다. 문제는 도윤이의 머리가 천재라고 할 정도로 좋아졌다는 사실이 과연 엄마에게 연락해야 할 정도 이상한 일이냐는 점이었다.

“애가 원래 똘똘하기는 했지만….”

아주머니는 이 집에서 일한 지 벌써 삼년 째다. 도윤이가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부터 보아왔기 때문에 아이가 영특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도윤이는 말 그대로 영특한 정도였지 조금 전에 목격한 것처럼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천재는 아니었다.

“애가 정신을 잃고 입원하더니 혹시 머리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서연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괜찮겠지 하고 넘어갔다가 나중에 홍역을 치르느니 차라리 일단 얘기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녀의 연락을 받은 서연희는 남편인 이세준과 함께 득달같이 집으로 달려왔다. 두 사람은 거실에 완성된 채 놓여 있는 레고 시리즈를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이층으로 뛰어올라간 서연희가 아들을 데리고 내려왔다.

“도윤이 오늘 어땠어? 혹시 머리가 아프다거나 몸에 힘이 빠지지는 않았니?”

걱정의 잔뜩 섞인 엄마의 말에 아이는 태연하게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안 아팠어요. 힘도 팔팔해요.”

“정말?”

“네. 밥도 잘 먹고 아프지도 않았어요.”

이세준이 거실에 놓인 레고 완성품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거 정말 도윤이가 만든 거니?”

“네. 잘 했죠?”

“그래. 아주 잘 했어. 근데 저거 도윤이 혼자서 했어? 누가 도와준 건 아니고?”

“아뇨. 저 혼자 했어요.”

아이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세준은 선뜻 아들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가 사줬던 게 저렇게 조각이 많고 복잡한 레고 시리즈라는 걸 전혀 몰랐다. 그런데 조립된 상태를 보니 어른도 완성하려면 며칠이 걸릴 일이다. 그걸 고작 만 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혼자 해냈다고? 그것도 불과 몇 시간 만에?

“애가 기억력이 엄청 좋아졌어요. 여기 이 매뉴얼에 있는 글을 좔좔 외우더라고요."

도우미 아주머니가 챙겨두었던 매뉴얼을 건넸다. 그것을 받아 펼쳐 본 이세준은 저도 모르게 끙 하는 신음소리를 내고 말았다. 비록 그림이 많기는 했지만 매뉴얼에는 상당히 많은 글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이걸 다 외웠다고?

“여보. 도윤이 다시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서연희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물었다. 이세준도 당장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병원에 데리고 간들 의사에게 뭐라고 말할까? 우리가 아이가 갑자기 천재가 된 것 같으니 살펴봐 달라고? 자칫하면 미친놈 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컸다.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고 애 상태를 좀 확인해 봅시다.”

세준은 도윤이를 거실 소파에 앉혔다. 그는 아이가 놀라지 않게 조심하면서 아내와 함께 번갈아 가며 여러 가지 책을 보여주었다. 외워보라는 뜻이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책이 너무 두꺼울 경우에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내용이 적은 간단한 책은 한 번 읽는 것만으로도 거의 대부분의 내용을 줄줄 암송했다. 그림책이나 사진집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윤이는 그것들을 대충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세부적인 내용을 죄다 설명했다.

“여보….”

지켜보던 서연희의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애한테 무슨 귀신이 씌운 것 같아요.”

순간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도윤이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은 조태석이 가져왔던 다산의 ‘역주 주역사전’ 수고본을 만진 뒤였다. 그 직전, 아이는 다른 물건들과는 달리 거기서 붉은 빛이 흘러나온다고 말했다. 게다가 같은 색의 빛이 자신의 몸에도 맺혔다고 했고….

세준은 곧바로 조태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전에 가져오셨던 그 ‘주역사전’ 수고본 말입니다. 혹시 거기에 얽힌 특별한 이야기가 있습니까? 가령 귀신이 씌었다거나…”

세준의 말을 들은 조태석은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귀신? 무슨 귀신?”

“가령 그 책에 다산의 혼령이 붙었다던가 하는….”

“예끼 이사람. 그런 흉한 얘기가 얽힌 물건이었다면 내가 가져갔을 리가 없잖아?”

“그렇죠? 그런 얘기는 없죠?”

“당연하지. 근데 갑자기 무슨 얘기야? 왜 그런 걸 물어?”

펄쩍 뛰는 조태석에게 세준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그가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윤이가 갑자기 그렇게 변했다고 하니 생각나는 게 있긴 하네만….”

“뭡니까, 그게?”

“아마 자네도 아는 이야기일 거야. 다산 선생이 생전에 소문난 천재였잖아. 특히 사진기 같은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던 걸로 유명하지.”

“네. 그 양반의 천재적인 머리에 관한 일화가 여럿 있기는 하죠.”

“도윤이가 혹시 다산의 기억력을 물려받은 건 아닐까?”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정약용은 이미 죽은 지 이백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렇게 오래 전 사람의 능력을 물려받는 게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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