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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6화 (6/300)

6화

2. 신안을 가진 아이

6. 신안을 가진 아이 (5)

이세준이 아무런 대답도 없이 가만히 있자 조태석이 계속 말을 이었다.

“역사를 통틀어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던 인물들이 적지 않지만 그래도 다산을 능가하는 사람은 드물 거야. 율곡 이이나 매월당 김시습 같은 천재들도 다산에게는 견주기 힘들 걸?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이세준도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었다. 다산은 진짜 천재였으니까.

조선 시대에 지방 향시부터 중앙 조정에서 실시하는 대과에 이르기까지 개인이 볼 수 있는 시험은 모두 아홉 가지였다. 그 아홉 번의 시험에서 모두 1등을 차지해 이른바 구과장원의 전설을 쓴 유일한 인물이 바로 이율곡이었다. 김시습 역시 다섯 살의 나이로 세종 앞에 불려가 시를 읊었을 정도로 당대의 영재였던 인물이었다.

그런 두 사람조차 다산에게는 미치지 못할 거라는 게 조태석의 생각이었다. 다산에 관해서는 어린 시절 불과 열흘 만에 무려 59권이나 되는 자치통감 강목을 모조리 외워서 암송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사진기 같은 기억력을 지녔다는 뜻이다.

“다 좋은데요, 형님. 도윤이가 다산 선생의 기억력을 물려받았을지도 모른다는 건 도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이세준의 말에 조태석은 도윤이가 보았다는 붉은 빛을 언급했다. 마침 자신이 전화를 건 이유도 거기에 있었기 때문에 세준은 속으로 움찔했다.

“나는 도윤이가 그때 그 붉은 빛을 통해 다산의 기억력을 물려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자네 아들이 ‘주역사전’ 수고에 손을 대는 바람에 거기에 남아 있던 다산 선생의 능력을 전해 받은 건 아닐까?”

“에이, 그건 너무 허황된 짐작 같은데요? 말이 되는 소립니까?”

“그거야 책에 귀신이 씌운 게 아니냐고 물은 자네가 할 소리는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어차피 자네나 나나 지금 상황에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없어. 다만 자네 말이 맞는다면 도윤이가 갑자기 천재적인 기억력을 갖게 됐다는 건 분명하지. 걔가 똘똘하긴 했지만 천재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잖아?”

“도윤이가 원래 갓난아기 때부터 영리했어요.”

“됐고. 아무튼 지금은 아이의 상태를 예의 주시하면서 기다려보자고. 정확한 건 알 수 없지만 도윤이가 다산 수고와 자기 몸에서 봤다는 그 붉은 빛이 이번 일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거야. 걔가 환상을 본 게 아니라면 말이야.”

세준의 목소리가 무거워졌다.

“솔직히 저는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걱정도 되고요.”

“걱정스러운 마음은 이해가 돼. 어차피 지금 도윤이한테 일어난 일 가운데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사실 빛을 보고 진품과 위작을 가려낸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되잖아. 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학 선생님이 생전에 신안을 지녔었다는 이야기도 완전히 믿지 않았다고.”

“그건 저도 그랬죠.”

“그러니 내 말대로 지금은 일단 기다려보자고. 적어도 도윤이가 고학 선생님처럼 신안을 지녔다는 것만은 분명하잖아. 그것만 해도 세상을 놀라게 할 일이야.”

전화를 끊은 이세준은 깊은 탄식을 토해냈다. 아들에게 일어난 일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앞으로 저 아이를 도대체 어떻게 키워야 하나….

*   *   *

이세준과 서연희 부부는 아들을 다시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이 건강해 보였고, 또 다시 정신을 잃고 기절하는 일도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병원에 데리고 간들 의사에게 뭐라고 애기해야 할지가 애매했다.

두 부부는 그 뒤로도 아들에게 여러 가지 진품과 위작을 보여주었다. 나중에는 갤러리에 들어오는 물건들은 물론이고 지하 수장고에 있는 작품들까지 모두 보여주었지만, 그때마다 도윤이는 무엇이 진품이고 어떤 게 위작인지를 척척 가려냈다.

“여기서는 빛이 안 나요.”

심지어 지금까지 진품으로 알고 있던 것이 도윤이의 지적을 바탕으로 한 정밀 조사 끝에 위작으로 판명나기도 했다.

“자네 아이가 신안을 지녔다는 건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군.”

도윤이가 진품과 위작을 가려내는 장면을 여러 차례 직접 목격한 조태석의 결론이었다. 기억력에 대한 테스트도 반복되었다. 다산의 능력을 물려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도윤이가 사진기 같은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조태석은 오히려 도윤이가 가진 신안의 능력보다 뛰어난 기억력에 대해 더 관심을 갖는 듯했다.

도윤이가 처음 능력을 각성한 때가 가을이었는데, 어느 덧 한 해가 저물고 있었다. 정신을 잃는 사고가 일어난 뒤로 이세준 부부는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집에서 키우기로 했다. 도우미 아주머니도 계시니 그 편이 더 안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즈음부터 도윤이가 온갖 책을 읽어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워낙 책이 흔한 집이기는 했지만 아이들이 읽기 좋은 책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런데 도윤이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손에 닿는 책을 모조리 뽑아서 읽기 시작했다. 분명 이해할 수 없는 책이 대부분일 텐데도 일단 첫 장을 열면 항상 끝까지 읽어치우고는 했다. 아이답지 않은 독서였다.

“애가 너무 집에만 있어서 걱정입니다.”

새해가 밝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조태석을 만난 술자리에서 이세준이 푸념 섞인 걱정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몸이 허약해지는 것 같아? 우울해 하거나 두통이 생기지는 않고?”

“그렇진 않습니다. 다행히 한 번 쓰러진 뒤로 지금까지는 별 탈 없어요. 건강합니다.”

“그럼 뭐가 걱정이야? 다른 부모들은 아이가 책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게임만 한다고 난리인데. 너무 복에 겨운 소리 아냐?”

“애가 애다워야지요. 저 나이 때는 왔다갔다 활발하게 움직여줘야지 정상이지 않습니까? 그래야 키도 잘 크고 튼튼해지죠.”

그 말에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조태석이 목소리를 은근하게 깔았다.

“그래? 그럼 우리 집에 보내는 건 어때? 왔다갔다하게. 서로 집도 그리 멀지 않잖아?”

“형님 집에요? 도윤이가 거기 가서 뭐하게요? 형님 집이 무슨 어린이집입니까?”

“글쎄? 같이 놀아주지는 못해도 공부는 가르칠 수 있지. 한문하고 서예 말이야.”

이세준은 조태석의 말투에서 그가 괜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순간적으로 발끈했다.

“도윤이는 이제 고작 일곱 살입니다. 만으로는 여섯이고요. 그 나이에 무슨 한문을 배웁니까? 그리고 서예라니요? 우리 애는 아직 연필로 글씨 쓰는 것도 서툽니다.”

“왜? 그게 이른 것 같아서? 나도 그 나이 때부터 할아버지 앞에서 무릎 꿇고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했어. 조선 시대 양반 가문에서는 다 그랬다고. 아마 고학 선생님도 그랬을 걸?”

이세준이 들고 있던 술잔을 탁자 위에 탁하고 내려놨다.

“형님, 솔직히 말해보세요.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 겁니까?”

그러자 조태석이 이세준의 눈치를 힐끗 보더니 입맛을 쩝 하고 다셨다.

“내가 자식이 둘이나 있는데 모두 고전에는 관심이 없어. 명색이 남들이 인정해주는 국문학자에 고서 감정가인데 아무래도 자식들이 그 일을 이어받을 것 같지가 않단 말이지.”

“그래서 우리 도윤이한테 조기 교육이라도 시키고 싶다는 겁니까? 나중에 국문학자나 고서감정가가 되도록?”

“누가 꼭 그렇대? 그거야 나중에 걔가 자라면 알아서 선택할 일이지.”

“차라리 저나 애 엄마처럼 그림 감정이라면 모를까, 걔가 왜 고서 감정가가 됩니까? 저희 집도 갤러리를 운영한다고요.”

“꼭 그게 아니더라도 어릴 때부터 한문하고 서예를 배워서 나쁠 게 어디 있어? 혹시 아나? 도윤이도 율곡 선생처럼 열 살 전에 사서를 줄줄 외울지.”

이세준은 기가 차서 헛웃음을 터트렸다.

“다 좋다고 칩시다. 형님, 대학 교수잖아요. 형님이 무슨 시간이 나서 우리 애를 가르친다는 겁니까? 실없는 소리 하시지 말고 술이나 드세요.”

“누가 매일 가르친대? 내가 수요일하고 금요일에는 오후 시간이 비어. 그리고 주말도 있고. 매일이야 힘들겠지만 일주일에 두세 번은 가능해.”

눈치를 보니 진심이었다. 명색이 대학 교수인 사람이 저렇게 나오니 이세준도 면전에서 더 이상 뭐라 하기가 어려워졌다. 결국 그는 아내와 의논해보겠다는 말로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야기를 전해들은 서연희가 적극적으로 찬성을 표시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조교수님이잖아요? 그런 대가한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아무한테나 오는 줄 아세요? 보내요. 그러고 보니 조교수님 사모님이 유아 교육을 전공했다면서요? 그렇잖아도 애가 매일 집에만 있는 게 불안했는데 잘 됐네요.”

그렇게 해서 도윤이는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얼떨결에 조태석의 제자가 되었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아이가 한문을 배우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엄청 재밌어요.”

처음 조태석에서 천자문을 배우고 돌아온 날 도윤이가 한 말이었다. 이세준과 서연희 부부는 자신들이 참으로 희한한 아들을 두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   *   *

해가 바뀌어 도윤이가 드디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애가 학교에 가서 잘 적응할까요? 요즘 애들이 워낙 유난스럽다는데….”

입학 전부터 엄마인 서연희는 걱정이 한 가득이었다. 송곳은 주머니에 넣어도 저절로 튀어나는 법인 반면에 모난 돌은 정을 맞는 게 세상인심이다.

“요즘 애들은 튀는 아이를 싫어한다잖아요. 우리 애가 왕따라도 당하면 어떻게 해요? 도윤이는 몸이 큰 편도 아니잖아요.”

“걱정하지 마. 어릴 때는 사내아이들끼리 서로 싸우기도 하면서 크는 거지. 도윤이는 성격도 명랑한 편이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

작은 문제는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이세준이 보기에도 자신의 아들은 워낙 유별났다.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내 앞에서까지 그걸 내색할 수는 없었다.

초등학생이 된 도윤이는 적어도 겉으로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늘 시간에 늦지 않게 스쿨버스에 올라탔고, 학교가 끝난 뒤에도 제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뭔가를 배우는 걸 좋아하는 아들에게 이것저것 가르치기는 했지만, 따로 학원을 보내지는 않고 선생님들을 집으로 모셨다. 그 정도 여유는 되는 집이었다.

문제가 터진 것은 도윤이가 삼학년 일 학기를 마칠 무렵이었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다급한 목소리로 서연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기 사모님. 도윤이가 다쳤어요. 죄송하지만 병원에 데리고 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깜짝 놀라 집으로 달려온 서연희의 눈에 아들의 등에 번져 있는 핏물이 보였다.

“도윤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도윤이는 침울한 얼굴로 별 말이 없었다. 급히 데리고 간 병원에서 아이를 치료한 의사가 걱정스러운 낯빛으로 서연희를 불렀다.

“날카로운 물건에 찔린 흔적이 있습니다. 상처의 모양이나 깊이로 봐서는 칼이나 유리 조각은 아니고, 아무래도 연필이나 샤프에 찔린 것 같아요. 다행히 큰 상처는 아니지만 아이가 꽤 놀랐을 거예요. 학교에서 입은 상처라고 하셨으니 담임선생님을 한 번 찾아가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튿날, 서연희는 도윤이의 손을 잡고 직접 학교로 찾아갔다. 거기서 그녀는 담임선생님이 도윤이가 다쳤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는 걸 확인했다. 더구나 아이의 상처를 살펴본 담임은 말로는 미안하다면서도 크게 대수롭지 않아 하는 듯한 반응을 보여 그녀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애들끼리 서로 장난치다 다친 거 같네요. 누가 그랬는지 알아보고 단단히 주의를 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장난이라고요? 살이 파일 정도로 연필로 찌른 게 어떻게 장난입니까?”

“어머니. 그런 일이 드물지는 않아요. 아직 어리고 아이들이잖아요. 걱정이 크시겠지만 그래도 눈 같은 델 찔린 게 아니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그걸 말이라고! 여기가 학교지 사파리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올 뻔 했다.

물론 아이들끼리 서로 장난치다 다칠 수도 있다. 하지만 흉기나 다름없는 물건을 사용했다는 건 그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게 서연희의 생각이었다. 더구나 자꾸 별 일 아니라는 식으로 무마하려는 담임선생님의 태도가 그녀를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아들을 다치게 했을 누군가보다 담임이 더 무서웠다.

다음날 오후, 집으로 돌아온 도윤이의 팔에서 또 다시 무언가에 할퀸 흔적을 발견한 서연희는 아들을 붙잡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제야 도윤이가 마지못한 듯 고백했다.

“아이들이 저를 싫어해요. 자꾸 잘난 체를 한다고….”

“이 팔의 상처는 왜 생긴 거야?”

“어제 그 애가 담임선생님한테 고자질했다고….”

“담임선생님은 뭐라셔?”

“몰라요. 담임선생님은.”

서연희는 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담임선생님과도 통화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남편을 앉혀 놓은 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우리 애는 아무래도 제가 직접 가르쳐야 할 것 같아요.”

“당신이 가르쳐? 학교는 어쩌고?”

“여보. 이제는 우리 애가 특별하다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이대로 계속 애를 학교에 보내는 건 그만 둬요. 다른 아이들에게도 어떤 의미에서는 민폐에요.”

그날부터 도윤이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연희는 여러 전문가들과 의논한 끝에 철저한 재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교육지원청에 제출했고, 몇 년 뒤에는 불법적인 사유 자체를 원천적으로 소멸시키는데 성공했다.

세월이 거침없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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