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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33화 (33/300)

33화

게릭 올슨은 대기실을 나갈 때와 특별히 다르지 않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살짝 힘이 들어간 입술을 통해 그 역시 좋은 소리만 듣다 온 건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세 번째로 심사위원들 앞에 선 폴리니는 초상화를 위작으로 감정한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저 그림에서는 진작에서만 느껴지는 특유의 예술적 깊이가 없습니다. 르네상스의 거장들을 흉내 내기는 했지만, 역시 위조범의 미학적 천박함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한 거죠.”

시카고 예술 대학의 그렉 브렌트가 폴리니의 말에 반응했다.

“진작에서만 느껴지는 예술적 깊이라…, 아우라 같은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진정한 감정가는 작품을 대할 때 화가의 능란한 붓놀림에 현혹되지 않고 그 예술적 정신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작이 내뿜는 황홀한 아우라를 말이죠.”

“그 말에는 저도 원칙적으로 동의합니다. 아우라를 눈으로 볼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으니까요.”

약간 멈칫하던 폴리니가 작심한 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한테는 보입니다. 아우라가요. 덕분에 정확한 감정에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심사위원들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 까미유 마르텔은 ‘저 사람 미친 거 아냐?’ 하는 눈빛으로 폴리니를 쳐다보다 얼른 표정을 수습했다. 짐짓 헛기침을 내뱉은 하이든 박사가 불편함이 깃든 목소리로 물었다.

“아우라가 보인다니, 대단한 자신감이군요. 하지만 저로서는 그런 추상적인 얘기보다는 조금 더 구체적인 판단 근거를 듣고 싶습니다. 저 그림을 위작으로 감정한 다른 이유는 없습니까? 제가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폴리니도 자신이 너무 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얼른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저 초상화의 화풍은 우리가 알고 있는 르네상스의 거장들과 비슷합니다. 아마 미켈란젤로와 마사초를 흉내 냈겠지요. 하지만 너무 곱게만 그리려고 애쓴 탓에 명암의 조절이 어중간하게 됐습니다. 피부의 톤이나 턱 선의 처리 역시 애매하죠. 무엇보다 …….”

그의 얘기는 장황하게 이어졌다. 심사위원들의 얼굴이 갈수록 심드렁했다. 앞서 면접을 치른 두 사람이 말한 내용과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들이 기대했던 대답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결국 까미유가 중간에 나서서 폴리니의 말을 끊었다.

“좋습니다. 왜 위작으로 판단했는지는 충분히 알았어요. 그럼 이번에는 그림의 가격을 추정해보시죠. 폴리니 씨가 저 초상화를 산다면 얼마까지 내실 생각입니까?”

“저라면 당연히 사지 않을 겁니다. 가짜니까요.”

“아니, 제 말은 가정을 해 보라는…, 됐습니다. 그냥 시장 가격을 예상해 보세요. 위작이라고 해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니까요. 저 그림이 진작이 아니라 위작이라는 걸 밝히고 판다면 얼마를 받는 게 적당할까요?”

“50달러면 충분합니다. 액자 값으로요.”

까미유의 입에서 기어코 한숨이 새어나왔다.

“수고하셨습니다. 대기실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폴리니가 대기실로 사라지자 까미유가 옆에 앉은 브렌트 교수에게 속삭였다.

“저 사람 설마 자기가 진짜 아우라를 본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모르죠. 어쨌든 자신감이 너무 과한 사람인 건 틀림없어요.”

잠시 후, 오늘의 마지막 면접자인 도윤이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그러자 다소 지쳐있던 심사위원들의 눈빛에 활기가 돌아왔다. 사회자는 자세하게 밝히지 않았지만 그가 적어낸 답안지에는 조금 더 복잡한 내용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호기심을 갖게 하는 참가자였다.

* * *

도윤에게 첫 질문을 던진 사람은 시카고 예술 대학의 그렉 브렌트였다.

“이도윤 박사는 일단 초상화를 위작이라고 감정한 사람으로 분류했습니다. 하지만 이 박사가 실제로 종이에 적어낸 답은 위작이 아니라 모작이었죠. 정확하게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화가가 모사한 젊은 미켈란젤로의 그림’이라고 쓰셨어요. 이게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도윤은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지어준 후 입을 열었다.

“어렵지 않습니다. 일단 저 초상화는 마사초와 무관합니다. 그림에 사용된 기법이나 색상의 처리만 놓고 보면 얼핏 미켈란젤로와 마사초를 반반씩 섞은 느낌이 들기도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상화 자체는 마사초의 그림이거나, 그것을 베낀 모작일 수 없습니다.”

“단호한 주장이네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혹시 초상화를 찍어 놓은 사진이 있습니까? 그게 있으면 확대된 사진을 보여드리면서 좀 더 편하게 설명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도윤의 부탁은 즉각 받아들여졌다. 방송국 스태프들이 재빨리 노트북을 가져와서 초상화 사진을 띄운 뒤, 그것을 대형 모니터에 연결시켰다. 도윤은 마우스를 조작해 초상화의 목 아랫부분을 확대시켰다.

“이 부분에 주목해 주세요. 목 아래에서 가슴으로 내려가는 상의의 옷깃에 하얀색으로 수를 놓은 레이스 장식이 보이죠? 이런 패턴의 레이스 장식은 원래 터키, 즉 당시의 오스만 제국에서 생산되어 이탈리아로 수입된 겁니다. 대략 1450년대 이후, 즉 15세기 후반부터 수입되기 시작했는데, 보기보다 고가품이라 귀족들만 사용할 수 있었죠.”

“이탈리아에서는 자체 생산이 안됐던 물건이란 말씀입니까?”

“적어도 16세기 이전까지는 전량 수입에 의존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마사초는 1428년에 죽었죠. 그래서 그는 이 장식을 보지도, 알지도 못했습니다. 당연히 그가 그린 그림에 이런 레이스 장식이 등장하는 건 불가능하죠.”

실내가 온통 물에 빠진 것처럼 조용해졌다. 까미유가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설명은 잘 이해했습니다. 솔직히 놀랍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군요. 이 박사는 도대체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알았죠? 전공이 후기 인상파 아니었나요? 중세 복식사가 아니라.”

“관련 서적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 공부했죠. 그림을 제대로 감정하기 위해서는 화가의 화풍이나 기법 이외에도 알아야 할 게 많습니다. 갑옷을 입은 기사가 손에 휴대폰을 든 그림이 있다면, 그게 몇 백 년 전에 그려졌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심사위원들은 할 말을 잃었다. 이거 괴물이네? 하이든 박사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알겠습니다. 레이스 장식에 관해서는 저희도 나중에 확인해 보죠. 일단 이 박사의 말이 맞는다고 가정하면 저 그림은 마사초와 무관한 게 분명하겠군요. 그래도 아직 남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 박사는 왜 저 그림이 다른 사람도 아닌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모사한 것이라고 본 거죠? 그것도 젊은 미켈란젤로라고 시기를 좁히기까지 했어요.”

이제부터가 본론이었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전반적인 얘기부터 말씀드리죠. 초상화의 화풍은 누가 봐도 미켈란젤로의 그것과 흡사합니다. 하지만 완전히 똑같다고 하기는 어렵죠. 적지 않은 참가자들이 마사초의 그림으로 감정할 만큼 그의 영향도 뚜렷하게 남아 있으니까요. 아시다시피 미켈란젤로는 젊었을 때 마사초의 그림을 모사하면서 실력을 연마했습니다. 아직 덜 익었을 시기죠. 저 그림에서 마사초의 흔적이 발견되는 건 아마 그 때문일 겁니다.”

“마시초의 영향이 뚜렷하게 보이니까 미켈란젤로의 젊은 시절 작품이라는 겁니까?”

“정확히는 그가 젊었을 때 그린 그림을 누군가 나중에 다시 모사한 겁니다. 미켈란젤로는 가족의 반대 때문에 그림 공부를 늦게 시작했습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열다섯 살 때 팔라초 메디치에 들어가면서 부터에요. 메디치 가문에서 만든 공방이자 학교였죠. 거기서 그는 많은 습작을 그렸습니다. 아쉽게도 지금 남아있는 건 없지만.”

“그럼 저 그림, 아니 저 그림의 원본이 그때 만든 습작이었다는 말이군요.”

“습작은 아닙니다. 그림이 그려진 시기는 아마 미켈란젤로가 팔라초 메디치를 나온 뒤일 거예요. 저만한 초상화를 공방의 연습생에게 맡길 귀족은 없을 테니까요. 제 생각에는 그가 공방을 나온 뒤에 피에타를 조각하기 전까지의 어느 시기, 그러니까 미켈란젤로가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던 이십대 초반 때 그렸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사실 초상화에 대한 메트로폴리탄 학예부의 조사 결과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은 도윤의 설명이 계속될수록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좋은 추론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한 가지를 더 물을 수밖에 없군요. 그럼 저 초상화를 그냥 젊은 미켈란젤로가 그린 것이라고 하면 되지 왜 모작이라고 판단한 겁니까?”

도윤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잠깐 맺혔다가 사라졌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초상화 아래에 밑그림이 전혀 없고, 대신 미켈란젤로의 서명이 있더군요. 사실 제가 적외선 카메라를 요구한 것은 원래 밑그림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림 밑에 미켈란젤로의 서명이 숨겨져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하이든 박사의 얼굴이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그는 메트로폴리탄의 초상화 연구를 진두지휘한 장본인이었다.

“저 초상화에는 밑그림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물론입니다. 그게 바로 저 초상화가 원본이 아닌 모작이라는 증거죠. 다른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찍은 적외선 사진을 모니터에 띄워도 되겠습니까?”

스태프들의 움직임이 눈부시게 빨라졌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도윤은 두개의 적외선 사진을 나란히 모니터에 띄웠다. 하나는 초상화를 찍은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그린 어떤 그림을 역시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한 것이었다.

“두 사진을 잘 비교해 보십시오. 초상화는 그림 주변이 깨끗한데 반해, 성모 마리아의 경우에는 인물이나 풍경에 겹쳐 철필로 긁은 듯한 희미한 선들이 보일 겁니다.”

그 말 대로였다. 심사위원들은 잠자코 그의 설명을 기다렸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기 전에 캔버스나 나무판 위에 굉장히 상세한 밑그림을 먼저 그렸습니다. 그런 뒤 그 위에 칠을 해서 그림을 완성하는 거죠.”

“저 희미한 선들이 바로 그 밑그림의 흔적이라는 겁니까? 성모 마리아상 말이에요.”

“그렇습니다. 사실 어떤 화가든 그림을 그리다보면 약간씩 밑그림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는 도중에 생각이 바뀌기 때문이죠. 그래서 적외선 카메라로 원본을 찍으면, 보시는 것처럼 원래의 그림 주변으로 희미한 선들이 겹쳐서 나타납니다. 적외선 카메라는 물감 뒤에 숨은 밑그림 선들이 뿜어내는 적외선까지 잡아내니까요.”

“그런데 초상화에서는 그런 밑그림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저 그림은 원본이 아닌 모작일 거다, 뭐 그런 말씀입니까?”

“맞습니다. 남이 그린 그림을 똑같이 베낄 때는 밑그림이 필요 없죠. 이미 스케치보다 더 상세하고 확실한 원본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모사한 그림들을 적외선 카메라로 찍으면 여기 있는 초상화처럼 밑그림의 흔적이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이든 박사가 헛기침을 하더니 손가락으로 초상화를 찍은 적외선 사진의 하단부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놀랍게도 Michael Angelvs Bonarotvs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적외선 사진을 찍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글씨였다.

“저건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제가 알기로 저 글자들은 미켈란젤로의 서명입니다. 피에타 조각상에 새겨진 것과 똑같지요. 그의 서명이 왜 저기에 있는 거죠?”

그 말에 까미유가 화들짝 놀랐다.

“미켈란젤로의 서명이라고요? 주셨던 자료에는 그런 얘기가 없었는데요? 그 사람은 어떤 그림에도 자신의 서명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지 않나요? 피에타가 유일하게…….”

그렉 브렌트 교수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미켈란젤로가 처음부터 서명을 남기지 않은 건 아닙니다. 전하는 얘기에 의하면 그가 서명을 하지 않기 시작한 것은 시스티나 성당 벽화를 그린 뒤부터라는군요. 조각품이기는 하지만 피에타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원래는 서명을 남겼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벽화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천지창조 그림으로 알려졌다. 오랜 시간 고통을 겪은 끝에 마침내 벽화를 완성한 미켈란젤로는 성당을 나오다가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황홀한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그때 그는 문득 이 모든 것을 창조한 조물주는 어디에도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때의 깨달음으로 인해 그는 그 뒤부터 작품에 서명을 남기지 않게 되었다. 물론 근거를 대기 어려운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그가 자신의 이름을 남긴 작품은 피에타가 유일했다.

심사위원들의 수군거림이 끝나자 잠시 기다리던 도윤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저는 이 초상화의 원본이 된 젊은 미켈란젤로의 그림에는 원래 서명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초상화를 모사한 화가는 처음에 그 서명까지 그려 넣었던 게 분명합니다. 어쩌면 자기가 그린 그림을 미켈란젤로의 이름으로 팔 생각이었을 수도 있겠죠. 아니면 단순히 지나치게 열정적인 모사가였거나. 그러다 나중에 생각이 바뀌어서 서명 위에 물감을 덧칠해서 숨긴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냥 놔두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이든 박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그는 오늘 촬영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얼굴 가득 만족스러운 웃음을 머금었다.

“훌륭합니다. 이 박사의 감정 결과는 우리 큐레이터들이 오랜 시간 연구한 끝에 도달한 결론과 완벽하게 똑같아요. 감점을 감수하면서까지 적외선 사진기를 선택한 것은 확실히 현명한 결정이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이 박사.”

도윤 역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승부수가 성공한 것이다.

사실 그는 초상화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이 그림이 미켈란젤로의 진작이 아닐 거라고 판단했다. 문제는 그걸 심사위원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느냐 하는 점이었다. 그래서 적외선 카메라까지 동원했던 것인데, 그림 밑에 설마 미켈란젤로의 서명이 남아 있을 줄은 그 역시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심사위원석의 분위기가 한껏 좋아졌을 때, 카미유가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마지막 질문이에요. 이 박사는 저 그림의 가격을 얼마로 책정하실 건가요?”

도윤이 살짝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답을 내놓았다.

“저는 저 초상화가 25만 달러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작도 아닌 모작에 그렇게 큰 가격을 매긴다고요?”

“저 초상화가 비록 모작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르네상스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건 분명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일단 역사적 가치가 있는 셈이지요. 더구나 저 그림 덕분에 우리는 젊은 미켈란젤로가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청년 미켈란젤로의 그림은 남아 있는 게 거의 없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 그림은 모작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미술사적 가치를 지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소 길었던 도윤의 설명이 드디어 끝났다.

심사위원들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일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천재 감정사의 출현을 축하하는 박수였다. 그러자 도윤의 면접을 지켜보던 피디와 사회자를 비롯한 다른 스태프들도 일제히 환호하며 그에게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좋았어. 이 박사를 초대한 건 확실히 현명한 결정이었어. 저 친구 스타 기질이 있는데?”

그들 중에서 가장 기뻐한 사람은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던 피디 파비앵 알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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