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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46화 (46/300)

46화

‘이 사람들 진짜 황당하네. 정답이 없는 문제를 내놓으면 우리더러 뭘 어쩌라고?’

도윤은 세 점의 그림을 보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 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출제된 그림들은 세 점 모두 진작이라고 할 수도 있고, 위작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즉 감정가가 진작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림의 진위가 바뀔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진위 감정의 결과가 바뀌면 그에 따라 시세를 평가하는 가치 감정의 결과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그 뒤엔 감정의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쇼 프로그램이지 학술 대회냐?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야?’

옆을 슬쩍 돌아보니 폴리니와 말레의 얼굴도 심각해졌다. 그에 반해 할리나는 비교적 담담한 모습이었다. 도윤이 보기에는 그게 더 불안했다.

‘가격이 눈에 보여서 그러는 거야, 아니면 상황 파악을 못한 거야?’

오늘 출제된 문제는 시세를 정확하게 짚는 것만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루벤스와 살바도르 달리, 그리고 앤디 워홀은 누가 뭐래도 한 시대를 풍미한 천재적인 화가들이다. 하지만 오늘날 그들의 이름으로 남겨진 작품들 가운데는 진위 논란 때문에 시끄러운 게 한두 점이 아니다. 본인이 직접 그린 게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다.

루벤스의 시대에는 유명 화가들이 공방을 차리고 거기서 그림을 ‘제작’했다. 당시만 해도 그림을 그리는 일은 예술이 아니라 쇠를 두드리고 옷감을 짜는 것처럼 기술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루벤스 이전에 활동했던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 같은 르네상스의 거장들도 의뢰받은 그림을 그릴 때 제자들의 손을 빌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문제는 루벤스의 기준이 다른 거장들에 비해 다소 너그러워 보인다는 점이다. 가령 미켈란젤로는 제자들에게 그림의 특정 부분을 맡길 때 자신이 원하는 수준을 엄격하게 요구했다. 하지만 루벤스는 특별히 까다롭지 않은 고객이 주문한 그림은 다소 미흡하더라도 적당한 선에서 완성시켜 납품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의 공방은 조금 냉정하게 얘기해서 200명이 넘는 직원들이 일하는 일종의 그림 생산 공장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달리의 경우에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그는 평생 많은 돈을 벌었고, 그만큼 많은 돈을 쓰며 살았다. 달리는 자신의 그림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약물 부작용으로 그림을 그리기 힘들어진 뒤에도 계속해서 돈을 벌고 싶어 했다.

그의 집에 드나들었던 사람들의 목격담 중에는 차마 믿기 어려운 것들이 존재한다. 다른 화가들이 그림을 그려 넣을 수 있도록 달리가 서명만 한 빈 캠퍼스가 쌓여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누군가 그림을 그려 가져오면 달리가 서명만 해서 팔아치운 뒤에 이익을 나눠가졌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그렇게 팔린 그림들을 그 누구도 아닌 달리 본인이 자기 작품으로 인정했다는 게 진짜 골치 아픈 점이었다.

앤디 워홀은 앞선 두 사람들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는 화가였다.

그는 실크 스크린 프린트 기법을 자주 사용했는데, 마릴린 먼로나 엘비스 프레슬리, 마오쩌뚱과 체 게바라 같은 사람들의 사진을 단골 소재로 사용했다. 그런 사진들을 반복적으로 인쇄해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비평가들로부터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단순히 재배열하는 것’을 어떻게 창작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워홀에게는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다수의 다른 현대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창작 활동의 본질을 미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화가가 얼마나 작품을 직접, 혹은 잘 ‘제작’하느냐는 것은 예술적 행위의 핵심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 워홀의 작품들 가운데는 그가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작품 제작은 전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손을 빌린 게 적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 그런 사실을 전혀 숨기지 않고 떳떳하게 밝혔다. 그래서 앤디 워홀의 작품을 정말 순수하게 본인의 창작품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문제는 지금까지도 심심찮게 논쟁거리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런 그림들도 시장에서 거래가 되고 시세가 존재한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 결국 오늘은 진위 감정보다 가치 감정 능력을 테스트 해보겠다는 얘긴데…, 눈치로 봐서는 시세를 정확하게 맞히는 것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단 말이야.’

도윤이 작품들 앞에서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사회자인 페이건이 마이크를 들었다.

“오늘은 도구가 필요하신 분 없나요? 아시다시피 도구를 사용하면 하나에 십 점씩 감점이 됩니다. 하지만 꼭 필요한 도구라면 감점을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겠죠?”

손을 드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세 점의 작품들은 모두 진품이었다. 적어도 시장에서는 그렇게 인정될 게 분명했다. 그걸 부정하려면 진품의 정의에 대한 감정가의 견해를 거론해야 하는데, 그건 순수하게 관점의 문제지 도구를 이용한 객관적인 증명과는 무관했다.

물론 함정 안에 또 함정을 숨기는 식으로, 화가와는 전혀 무관한 위작을 슬쩍 끼워 넣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도윤이 보기에 방송국에서도 거기까지 장난을 치지는 않았다. 문제를 출제한 LA 카운티 미술관과 심사위원들은 참가자들에게 분명한 요구를 하고 있었다. 오늘은 단순한 감정가가 아니라 명확한 주관을 가진 평가자가 되라고.

사회자가 도구 사용 여부를 물은 뒤, 문제로 출제된 그림들은 곧바로 무대에서 치워져 격리된 전시실로 옮겨졌다. 참가자들도 그림을 따라 전시실로 이동했다.

참가자들이 사라진 무대에서는 미리 찍어놓은 영상이 방영되기 시작했다. 주로 각 화가들의 작품 세계에 대한 짤막한 해설에 덧붙여 무엇을 화가의 순수 창작품으로 볼 것이냐에 대한 여러 전문가들의 인터뷰 영상이었다. 참가자들의 감정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관객과 시청자들에게 오늘 감정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주기 위해서였다.

무대에서 영상이 상영되는 동안, 참가자들은 격리된 전시실에서 열심히 그림들을 살피고 있었다. 각각의 참가자들 옆에는 ENG 카메라가 달라붙어 그들의 행동이나 얼굴 표정들을 계속해서 찍어댔다. 그렇게 감정이 시작된 지 십오 분 가량 지났을 때 도윤이 갑자기 스태프를 불렀다.

“저는 감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면접 전까지 먼저 대기실에 들어가서 쉴 수 있을까요?”

뜻밖의 요구에 알랭 피디가 당황했다. 생방송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오늘은 감정 시간이 평소의 반인 삼십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도윤은 오히려 거기서 반을 더 줄여서 십오 분만에 감정을 끝내겠다고 한 것이다. 알랭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신 건 아닌가요? 아직 시간은 충분합니다.”

도윤이 벽에 걸린 시계를 흘낏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십오 분이 아니라 십오 년을 더 준다고 해도 시간이 충분할 리가 없잖습니까? 무의미하게 그림만 쳐다보고 있는 것보다는 혼자서 생각을 할 시간을 더 가지는 게 좋겠어요.”

알랭이 잠시 고민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십시오. 어차피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건 참가자 마음이니까요.”

도윤이 이동하자 곧바로 그를 담당한 ENG 카메라가 따라붙었다. 다른 참가자들은 그가 일찌감치 대기실로 사라지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시계를 봤다 그림을 봤다 하면서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지만, 결국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카메라들이 두 개의 서로 다른 장소에서 열심히 참가자들을 찍고 있는 사이, 시간이 거침없이 흘러갔다.

* * *

대기실로 돌아온 도윤은 카메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달리의 그림은 일단 값을 낮게 부를 수밖에 없어.’

중간에 있는 두 번째 그림의 오른쪽 하단에는 마치 붓글씨처럼 휘갈겨 쓴 달리의 서명이 뚜렷했다. 하지만 그 그림은 달리의 것이 아니었다. 나름대로 초현실주의를 흉내 내려고 애를 쓴 흔적은 있지만 독창성이 전혀 엿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서명이 진짜인 것을 감안할 때, 남이 그려서 가져온 그림에 달리가 서명만 한 게 분명했다

‘진작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리든, 격 자체가 떨어지는 그림에 높은 값을 매길 수는 없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트 딜러들은 저 그림에 높은 값을 붙여서 팔려고 할 거야. 시장에서도 그게 통할 거고. 결국 왜 그래서는 안 되는지를 잘 설명해야 한다는 건데…….’

가장 왼쪽에 있는 것도 일단 루벤스의 공방에서 만들어진 그림은 맞았다. 캔버스가 아닌 나무판을 썼다는 점, 액자, 물감의 종류가 똑같은 것은 물론이고 어설프기는 하지만 화풍 역시 당대의 루벤스 공방에서 나온 그림들이 지닌 특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림의 수준으로 볼 때 루벤스가 직접 그림에 손을 댔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왼쪽 그림은 한 쌍의 젊은 부부가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서 있는 가족 초상화였는데, 피부의 톤이라든가 옷의 주름 등에서 루벤스 특유의 녹아내릴 듯한 느낌과 굴곡진 역동성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흉내만 낸 그림이라는 뜻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루벤스가 아닌 공방 제자들의 손으로 완성된 작품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사회인 야구를 보는 느낌이야. 문제는 입장료가 프로야구 경기하고 똑같다는 거지. 저것도 경매에 내놓으면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갈 게 뻔한데…….’

도윤 자신이라면 절대로 사지 않을 그림이었다. 하지만 시장에 내놓기만 하면 수집가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그림이라는 것도 확실했다. 루벤스의 그림은 시장에 자주 나오는 뮬건이 아니다. 가격은? 몇 백만 달러를 우습게 넘을 것이다.

세 번째 그림에는 오늘 참가자들을 괴롭히고 있는 모든 문제가 총체적으로 구현되어 있었다. 마릴린 먼로의 사진을 바둑판 모양으로 열두 번 인쇄해서 만든 판화였는데, 그림 밑에 A.P.라는 글씨와 함께 제작연도가 표기되어 있었다. 그게 골칫덩어리였다.

현대에 들어와서 제작된 모든 판화에는 보통 몇 분의 몇이라는 넘버링이 붙는다. 모두 합해서 몇 개를 찍을 예정인데, 이건 그 가운데 몇 번째 작품인지를 나타내는 번호다. 가령 23/50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으면 해당 작품은 전부 50개를 만들 예정이고, 이건 그 가운데 23번째로 찍은 판화라는 뜻이다.

A.P.는 Artist Proofs라고 해서 정해진 수의 판화를 모두 찍은 뒤에, 작가가 특별한 의도나 사정으로 인해 추가로 더 찍은 판화임을 나타내는 기호다. 그런데 오늘 나온 작품은 표기된 연도가 워홀이 죽은 뒤였다. 다시 말해 화가가 죽은 뒤 그의 가족이나 판권을 소유한 사람이 추가로 더 찍어낸 작품이라는 뜻이다.

‘저건 원판 자체에도 논란이 있어. 정말 앤디 워홀이 만든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거지. 그런데 하물며 그 사람이 죽은 뒤에 찍어냈으니 말 그대로 화가는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제작에는 손도 대지 않은 그림이라는 얘기도 가능해.’

도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스태프를 흘낏 쳐다봤다.

‘지금쯤 심사위원들은 우리가 뭐라고 할지 내기라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무의미하게 그림만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느니, 차라리 면접이 시작되면 뭐라고 얘기할지를 고민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대기실로 들어와 버린 건데, 막상 카메라가 졸졸 따라다니니까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지금쯤 심사위원들도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겠지? 무대 위에서 확 질러버려?

“3분 남았습니다. 카드 제출하시고 무대로 이동할 준비해 주세요.”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 스태프가 문을 두드리더니 감정 시간이 끝나가고 있음을 알렸다. 무대에 오르기 전, 참가자들은 그림에 대한 진위 여부와 감정가를 적은 카드를 제출하도록 요구받았다. 도윤은 카메라를 잠시 째려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스태프들에게 미리 적어놓은 카드를 제출했다. 가자! 쇼 타임이다.

* * *

무대 위에는 마이크가 달린 네 개의 강의대가 마련되었고, 그 뒤로 관객들이 볼 수 있도록 커다란 액정 모니터가 설치되었다. 참가자들이 각자의 자리에 가서 서자, 남자 사회자인 페이건이 오늘 쇼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오늘은 각각의 그림에 대해 한 분씩 돌아가면서 설명을 들어보는 방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설명 순서는 추첨에 의해 결정될 거예요. 그림에 대한 진위 감정 결과와 추정 가격은 각자의 순서가 되었을 때 뒤에 있는 모니터에 표시됩니다.”

생방송에서는 모든 참가자들을 한꺼번에 무대 위에 모아놓고 각자의 감정 이유를 설명하게 만드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렇게 할 경우 미리 제출한 감정 결과는 바꿀 수 없지만, 뒤 차례의 참가자는 자기보다 앞선 참가자의 설명에 동의하거나 비판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하는 게 쇼 프로그램으로서의 재미를 끌어올리는데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 하지만 순서가 뒤라고 해서 점수를 받는데 유리할까?’

경우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꼭 유리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게 도윤의 생각이었다. 그가 속으로 고개를 저을 때 리키가 추첨용 기계에서 공 하나를 꺼내들었다.

“첫 번째 그림의 첫 번째 발표자는 파비앵 말레 씨입니다. 발표 제한 시간은 5분입니다. 좋은 설명 부탁해요.”

말레가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마이크를 켰다. 모니터에는 그의 감정 결과가 표시되었다. 루벤스의 진작. 그림 가격은 650만 달러.

“여러분이 보시는 루벤스의 가족 초상화는 진품이 맞습니다. 일단 루벤스는 당시 캔버스가 활발히 사용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작품을 나무판 위에 그릴 것을 고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 시대와는 달리 밑칠을 템페라 물감으로 하지 않고 처음부터 유성 물감을 썼죠. 그래서 명암의 조절이 훨씬 과감해질 수 있었습니다.”

말레는 그림에서 드러난 루벤스 화풍의 특징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너무 기본적인 설명을 하는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쓰는 실수를 범했다. 그 때문에 설명 도중에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급하게 가격에 관한 언급으로 넘어가야 했다.

“지금까지 거래된 루벤스의 그림 가운데 가장 가격이 높았던 것은 2002년 7월에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낙찰된 ‘유아 대학살’이었습니다. 7,600만 달러가 약간 넘었죠. 하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초상화의 경우에는 그와 같은 대작이 아닙니다. 그림의 완성도도 조금 부족한 게 사실이고요.”

“그럼 가격이 조금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뜻인가요?”

리키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말레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렇죠. 오늘 나온 초상화와 비슷한 크기와 완성도의 그림들을 중심으로 말씀드리면 2007년 뉴욕 크리스티에서 ‘인간에 대한 두 가지 연구, 머리와 어깨’는 774만 달러에 낙찰됐습니다. ‘베니스 귀족의 초상’ 은 2018년 런던 소더비에서 717만 달러, 그리고 ‘포도 바구니를 들고 있는 새티’는 2018년 뉴욕 크리스티에서 571만 달러에 각각 팔렸지요.”

말레는 그 대목에서 잠시 말을 멈추고 심사위원석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특별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약간 힘이 빠졌다.

“저는 루벤스 그림들의 최근 거래 가격과 초상화의 완성도를 종합적으로 감안해서 저 그림의 가격을 650만 달러로 책정했습니다.”

그는 나름대로 기대감을 갖고 심사위원석을 쳐다봤지만 아무런 질문도 나오지 않았다. 그가 들을 수 있었던 유일한 말은 ‘수고했습니다’라는 것뿐이었다. 말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다음 발표자는 독일의 할리나 도비치 씨입니다. 마찬가지로 발표 시간은 5분입니다.”

할리나에게 마이크가 돌아가자 모니터에 그녀의 감정 결과가 표시되었다. 루벤스의 제자가 그린 위작. 700만 달러.

관중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오면서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말레와는 달리 초상화를 위작이라고 보았다. 그런데도 작품의 가격은 말레보다 높은 700만 달러로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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