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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50화 (50/300)

50화

‘트루쓰 앤 밸류’ 결승전은 메트로폴리탄과 함께 뉴욕의 양대 미술관으로 손꼽히는 ‘현대 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에서 열린다. 흔히 ‘모마(MoMA)’라고 불리는 이곳은 도윤이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관람하다 게릭 올슨을 처음 만난 미술관이기도 했다.

3강전이 끝나자마자 도윤과 폴리니는 곧바로 뉴욕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숙소로 지정된 호텔에 짐을 푼 지 얼마 되지 않아 알랭 피디의 방문을 받았다. 알랭은 결승전에 진출한 두 사람에게 한 가지 양해를 구하고자 했다.

“그러니까 결승전에 나올 그림들 가운데 판매가 불가능한 것들이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방송국이 지정한 것들은 우승 상품으로 선택하지 말아 달라는 거고요. 맞습니까?”

도윤이 간단하게 얘기를 정리하자 알랭이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깝네. 그의 요구는 도윤의 입장에서 볼 때 적잖게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지금까지 문제로 출제되었던 그림 가운데 가장 고가의 작품은 4강전에서 나왔던 루벤스의 가족 초상화다. 하지만 도윤은 설사 우승을 하더라도 그 그림을 경매에 올리자고 하기가 난감했다. 4강전 당시, 자기 입으로 작품의 시세를 2만 달러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3강전이나 결승전에서는 내심 루벤스의 가족 초상화보다 더 비싼 그림이 문제로 나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3강전에서는 아쉽게도 모두 백만 달러 내외의 작품만 출제되었다. 눈치를 보니 결승전에서는 최소 몇 백만 달러 이상 나가는 그림이 나올 것 같기는 한데, 방송국 측에서 그걸 우승자 상품 대상에서 제외하자고 나온 것이다.

‘이러면 우승했을 때 눈 딱 감고 루벤스의 그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건가?’

도윤이 속으로 입맛을 다실 때, 폴리니가 노골적으로 불만을 털어놓았다.

“저희가 왜 그래야 하지요? 우승자는 쇼에 나왔던 그림들 가운데 한 점을 임의로 지정해서 소유할 수 있기로 약속했잖습니까?? 출연 계약서에도 분명히 그렇게 명시했고요. 그런데 결승전을 코앞에 둔 지금에 와서 그걸 바꾸자고요?”

알랭 피디 자신도 무안했던지 헛기침을 했다.

“험험, 맞는 말씀이기는 한데, 정확히 말하면 그림에 대한 소유권은 아니죠. 그림을 경매에 올려서 낙찰되었을 때 받게 되는 돈을 갖는다는 조건이었습니다. 그것도 세금이나 수수료를 제외한 금액 말이죠.”

“그게 그 이야기지 않습니까? 아무튼 그런데 이제 와서 약속을 바꾸자는 건 뭡니까? 판매가 불가능한 작품이라면 처음부터 문제로 출제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으니까 제가 이렇게 양해를 구하려고 찾아온 것 아닙니까? 작품이 무사히 돌아온다는 전제 하에 자신의 그림을 잠시 빌려주겠다는 분들이 계십니다. INB로서는 그 그림들을 확보해서 결승전 무대를 조금 더 풍요롭게 꾸미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여러분의 동의를 부탁드리는 거예요.”

폴리니가 또 뭐라고 퍼부으려는 찰나, 도윤이 슬쩍 끼어들었다.

“그 그림들이 문제로 나와야만 할 사정이 있다는 뜻입니까? 가령 그래야 쇼가 더 흥미로워진다거나 시청률이 올라갈 거라고 생각하시는가 보군요.”

알랭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겁니다. 명색이 결승전이잖습니까? 저희로서는 일반인들이 박물관에 가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색다른 그림들을 출제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시청자들에게 두 분의 감정 실력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물론 시청률 상승에 도움이 되기도 할 테고요.”

“결승전에 출제될 그림들이 애초부터 경매에 나올 예정이었던 건 아니고요?”

순간 알랭이 움찔하는 모습을 본 도윤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맞네. 원래부터 경매에 내놓을 생각이었던 작품들이었군. 소장자 입장에서는 경매 전에 미리 전국적인 TV 프로그램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럼 그림에 대한 인지도가 올라가서 낙찰가가 뛸 가능성이 높아질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어차피 우리가 우긴다고 해서 출제될 그림을 우승자에게 준다는 얘기가 나올 것 같지는 않으니까.”

도윤이 승낙하자 폴리니 역시 불만이 잔뜩 어린 표정으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알랭의 얼굴이 환해졌다.

“감사합니다. 이번 결승전이 끝나면 누가 우승자가 되든 상관없이 두 분의 이름이 전 세계에 알려질 겁니다. 꼭 그렇게 될 거예요.”

알랭은 그 말을 남기고 총총히 사라졌다. 폴리니 역시 도윤을 매섭게 노려보더니 고개를 휙 돌리고 자리를 떴다. 근데 저 자식은 뭘 잘못 먹었나? 왜 자꾸 저래?

* * *

뉴욕 현대 미술관은 2019년에 전시관을 대대적으로 리빌딩하면서 기존의 극장을 더욱 확장시켰다. 1월 마지막 주, 관객들이 빼곡히 들어찬 새 극장에서 ‘트루쓰 앤 밸류’의 결승전이 열렸다. 이제 남은 참가자는 단 둘. 지명 참가자로 초대된 이도윤과 예선전부터 경쟁자들을 차례로 물리친 끝에 이 자리까지 올라온 폴리니가 그 주인공이었다.

“그래도 좌석이 다 차서 다행이네. 생방송이 시작된 이후로 시청률이 그리 높지 않았잖아. 혹시 빈자리가 있을까봐 조마조마했어.”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을 보며 존 카론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알랭도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초조함이 채 가시지 않은 웃음을 지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 박사를 보러 왔을 걸? 지금까지 한 번도 일등을 놓치지 않았던 사람이 과연 마지막까지 우승을 차지할 수 있을지 궁금해서 말이야.”

“이 박사가 우승을 놓치면 그건 그것대로 또 화제가 될 거야. 막판 역전에 성공한 폴리니는 한 방에 스타가 되는 거고. 그것도 딱히 나쁜 그림은 아니잖아?”

“그렇지. 지금까지 시청률을 이끌어오다시피 한 이 박사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 어떤 결과가 나와도 우리한테는 나쁠 게 없어.”

피디와 메인 작가가 그렇게 재수 없을 정도로 냉정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무대에서는 사회자인 페이건이 경연 시작에 앞서 공지 사항을 전하고 있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오늘 경연의 최종 우승자는 지금까지 출제되었던 그림들 가운데 한 점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선택한 그림을 경매에 내놓아 그 수익금을 가질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는 거죠. 하지만 여러분이 오늘 보시게 될 작품들 중에는 우승자가 경매에 내놓을 수 있는 대상에서 제외된 것들이 있습니다.”

관객석에서 한숨 섞인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나중에 어떤 작품이 경매에 나올지를 알아맞히는 것도 ‘트루쓰 앤 밸류’를 보는 재미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오늘은 출제될 작품들 가운데 일부가 처음부터 경매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하니까 김이 빠지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러자 리키가 재빨리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관객들을 진정시켰다.

“저희도 그 점이 안타깝기는 한데요, 그 작품들은 오늘 경연을 위해 소장자들께서 특별히 대여를 허락하신 것들이에요. 참가자들도 이미 동의해주셨고요. 덕분에 무대를 더욱 빛내게 되었으니까 관객 여러분과 시청자들께서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리키의 말이 끝나자 곧바로 무대 뒤의 장막이 올라가면서 오늘 출제된 그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때와는 달리, 결승전에 출품된 작품은 무려 다섯 점이었다. 다섯 개의 이젤 위에 나란히 놓인 그림들을 본 도윤은 저도 모르게 고소를 머금었다.

‘이 사람들이 진짜. 이건 좀 너무하잖아?’

처음 두 개의 이젤에는 미국 국기인 성조기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정확히는 캔버스 위에 왁스와 물감을 혼합한 안료를 이용해 실제 성조기의 모습을 그대로 베껴 그린 것이다. 두 작품 모두 굉장한 고령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살아 있는 미국 화가 재스퍼 존스의 그림이었다. 도윤이 두 개의 성조기 그림을 보며 혀를 찰 때 사회자 페이건이 멘트를 시작했다.

“자, 오늘은 결승전이니 만큼 다른 때와는 달리 힌트를 조금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보기엔 어떻습니까? 두 개의 그림이 많이 달라보이나요? 글쎄요. 제 눈에는 둘 다 그냥 똑같은 성조기로만 보이네요. 하지만 놀라지 마십시오. 두 그림이 그려진 시기는 무려 40년이나 차이가 납니다. 게다가 둘 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재스퍼 존스의 진작이죠.”

여러분이 잘 알기는. 어지간한 미술 애호가들이 아니면 외국 사람들은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을 걸?

재스퍼 존스는 한국 전쟁 때 일본에서 근무한 적이 있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자유의 메달을 수여받은 경력까지 있다. 팝 아트 계열의 그림을 주로 그리는 그는 미국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화가였고, 그림 값도 엄청나게 비쌌다.

하지만 도윤이 보기에 그는 세계적인 강대국의 힘으로 키워낸 전형적인 미국 화가였다. 만약 재스퍼 존스가 미국 화가가 아니었고, 미국의 아트 딜러와 주요 박물관들이 미친 듯이 그의 그림을 사들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과연 한 점에 몇 천만 달러를 호가하는 시세가 형성될 수 있었을까?

‘재스퍼 존스도 좋은 화가이기는 하지. 하지만 그가 고흐나 르노와르와 동급이라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도윤은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그가 속으로 혀를 찰 때 리키가 페이건의 마이크를 받아 오늘의 감정 방식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말씀드렸듯이 두 개의 성조기는 모두 진작입니다. 따라서 참가자들은 굳이 진위 감정을 하실 필요가 없어요. 단, 둘 중에 어떤 그림이 먼저 그려진 것인지를 밝혀내야 합니다. 그려진 시기에 따라서 그림 값의 차이가 무려 다섯 배나 나거든요. 굉장하죠?”

굉장하네. 그러니까 똑같은 성조기 그림이 40년의 시차를 두고 그려졌으니까, 그 차이를 구분해 내란 얘기지? 그림에서 주름살이라도 찾아낼까? 도윤은 속으로 혀를 찼다.

사실 재스퍼 존스의 그림은 그가 그다지 좋아하는 작품도 아니었다. 만약 이게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미국 TV 쇼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도윤은 두 그림의 값을 시세의 십분의 일 이하로 후려쳤을 것이다. 새삼 자신이 미국의 심장부에 와 있다는 게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저런 그림을 문제로 출제했으니 당연히 우승자 상품으로 줄 수가 없지. 둘 중에 싼 것만 해도 이천만 달러는 족히 넘을 테니까.’

다시 말해 비싼 쪽은 1억 달러를 호가한다는 얘기였다. 두 그림 모두 서로 다른 개인의 소장품이어서 도윤도 직접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도윤이 미리 짐작했듯이 사실 오늘 나온 성조기 그림들은 조만간 소더비 경매에 나올 예정이었다. INB 측에서 어차피 팔 그림이라면 차라리 TV 쇼에 내보내 관심을 끄는 게 좋지 않겠냐고 소장자들을 설득한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소더비의 까미유가 제공한 정보가 큰 몫을 했다.

세 번째 그림에는 네 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었다. 어린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여자는 아기 예수와 성모 마리아가 분명했다. 두 사람의 맞은편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자신에게 손을 뻗치는 아기 예수의 팔을 살짝 받쳐 들고 있는 여자는 성 캐서린으로 짐작됐다. 그녀의 손에 반지가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서기 3세기 경,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캐서린은 당시의 로마 황제 막센티우스와 종교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논쟁에서 패하면 자신과 결혼해야 한다는 황제의 압력을 받은 그녀는 ‘나의 배우자가 될 수 있는 분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고 선언했다. 그 뒤로 캐서린은 그림 속에서 아기 예수에게 줄 반지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자주 묘사되었다.

성 캐서린의 뒤에 책을 들고 서 있는 사제는 아마 복음서의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일 것이다. 보통 성화에서 복음서 저자들은 책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캐서린과의 시대적 연관성을 생각하면 누가 복음의 저자인 누가일 가능성이 컸다.

세 번째 그림 역시 도윤으로서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림의 구도나 색상에서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티치아노의 그림인가?’

하지만 눈앞에 있는 그림은 그의 기억 속에 있는 티치아노의 그것과는 분명히 달랐다. 그가 잠깐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페이건이 두 번째 그림의 감정 목표를 설명했다.

“세 번째 그림은 평소처럼 감정하시면 됩니다. 진위 여부를 먼저 가려내시고, 위작이면 그렇게 보는 이유를, 그리고 진작이면 누가 언제 그린 것인지를 밝히셔야 합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그림 역시 한 쌍으로 출제되었다. 그 그림들을 보는 순간 도윤과 폴리니의 안색이 동시에 굳었다.

‘결승전이니까 고생 좀 해보라 이거지?’

도윤은 저도 모르게 카메라가 있는 쪽을 힐끔 쳐다봤다. 지금쯤 저 카메라 뒤편 어딘가에서 피디와 메인 작가가 낄낄대며 웃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그림은 외형상 거의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흡사했다. 두 그림 모두 커다란 캔버스 전체를 빨간 색으로 칠했는데, 화면 중간에 가로로 노란색 띠를 휙 그어놓지만 않았다면 그냥 누군가 캔버스에 빨간 밑칠을 해놓았다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마크 로스코군. 이 정도 되면 진짜 해보자는 얘기잖아?’

마크 로스코는 20세기에 활동한 미국의 색면 추상 화가다. 그는 화면 전체를 단색이나 기껏해야 서너 가지 색으로 평평하게 칠해 버린 그림으로 유명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볼 때는 ‘이런 그림을 누가 못 그리나’ 싶을 정도로 단순한 구성이 로스코 작품의 특징이었다.

미대생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따라 그려보았을 법한 그의 그림에는 ‘보면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그림이지만, 보기 전에는 아무도 그릴 수 없는 그림’이라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아주 단순하지만, 제대로 된 조형미를 내기에는 정말 어려운 그림이라는 뜻이다.

‘보기 전에는 아무도 그릴 수 없다는 게 중요한 게 아냐. 보면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그림이라는 게 문제지.’

실제로 마크 로스코의 그림은 지금도 수많은 위조범들의 목표가 되고 있었고, 위작 시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작품들 가운데 하나였다. 도윤과 폴리니의 표정이 굳은 것을 슬쩍 확인한 리키가 미소를 입에 물며 감정 목표를 설명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그 유명한 마크 로스코의 그림입니다. 이쯤 되면 저희가 원하는 게 뭔지 참가자들도 아시겠죠? 하나는 진짜고 다른 하나는 가짜에요. 둘 중에 어느 게 진짜인 가려내주세요. 저는 두 분이 감정 이유를 뭐라고 설명할 지가 제일 궁금하네요.”

저 예쁘고 늘씬한 아가씨가 이렇게 미워 보일 수도 있구나. 그런데 아가씨. 이번에는 댁이 번지수를 완전히 잘못 짚었어.

도윤은 옆에 있는 폴리니를 힐끗 돌아보았다. 만약 로스코의 그림마저 손쉽게 진위를 감정해낸다면, 그가 아우라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의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오늘 출제된 문제들 가운데 로스코 그림의 진위를 가려내는 게 두 사람 모두에게 가장 간단한 일이 될 가능성이 컸다.

잠시 후 다섯 점의 그림들이 무대 뒤의 전시실로 옮겨지고, 도윤과 폴리니 역시 감정을 위해 퇴장했다. 그들이 그림을 감정하는 동안 무대 위에서는 어김없이 오늘 출제된 그림과 화가들에 대한 영상이 상영되기 시작했다.

삼십분이 순식간에 지나고, 감정을 마친 도윤과 폴리니가 다시 무대 위로 등장했다. 페이건이 감정 이유를 발표해 달라는 멘트를 하기 직전, 도윤이 갑자기 손을 들어올렸다.

“감정 이유를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물어볼 게 있습니다. 오늘 저희가 우승 상품으로 선택할 수 없는 그림들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게 정확하게 어떤 작품인지 먼저 밝혀주시겠습니까? 저희는 이미 감정 결과를 카드에 적어 제출했으니까 어차피 이제 와서 말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럼 사실을 말씀해주셔도 상관이 없을 거 같은데요.”

페이건이 심사위원석을 쳐다봤다. 원래는 우승자가 발표된 이후에 경매 대상에서 제외된 그림들을 밝힐 예정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그림들의 경우 어느 것이 진작인지를 미리 말해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소더비의 까미유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페이건이 웃으면서 마이크를 잡았다.

“시청자 여러분들도 궁금하셨을 텐데요, 우승자의 상품이 될 수 없는 그림은 재스퍼 존스의 성조기 그림 두 점과 마크 로스코의 다섯 번째 그림입니다. 궁금증이 풀리셨나요?”

“네. 감사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도윤이 옆에 서 있던 폴리니를 힐끔 쳐다봤다. 그의 얼굴이 침통한 것을 본 도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그림을 제대로 감정했으면 저런 얼굴이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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