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두 점의 성조기 그림에 대한 발표는 폴리니가 먼저 시작했다. 그가 마이크를 잡자 모니터에 감정 결과가 표시됐다. 첫 번째 그림은 1960년대 작품, 감정가 6천만 달러. 두 번째 그림은 2000년대 작품, 감정가 천오백만 달러. 엄청난 가격에 관중석에서 탄성이 터졌다.
두 그림을 결승전에 내놓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까미유가 먼저 질문을 시작했다.
“폴리니 씨는 첫 번째 그림이 두 번째 그림보다 먼저 그려졌고, 가격도 더 높다고 감정하셨는데요, 그 이유를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두 번째 그림에서 조금 더 원숙한 느낌이 났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같은 그림을 오랜 세월 동안 반복해서 그리다보니까 시간이 갈수록 그 안에 화가의 무르익은 정신세계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얘기는 첫 번째 그림은 느낌이 거칠다는 뜻인가요?”
“저는 그렇게 보았습니다.”
심사위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핏 보기에는 폴리니의 말에 동의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도윤은 그들의 입술과 눈매가 살짝 비틀린 것을 놓치지 않았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다는 의미였다. 메트로폴리탄의 하이든 박사가 마이크를 켰다.
“폴리니 씨의 안목 감정 능력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치렀던 수많은 경연을 통해 이미 증명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가 보니까 그렇더라’는 정도로 설명을 끝내는 건 뭔가 아쉬워요. 조금 더 구체적인 이유는 없습니까? 느낌이 원숙하다거나 거칠다는 식의 추상적인 표현 말고요.”
“두 그림은 같은 사람이 같은 재료를 써서 같은 방식으로 그렸습니다. 깃발이 펄럭이는 그림도 아니고 평평하게 고정된 성조기를 그대로 따라 그렸죠. 물론 그 안에 일반 성조기와는 다른 섬세하고 오묘한 변화가 숨어 있기는 하지만 그건 고도로 훈련된 감정가나 화가가 아니고서는 발견하기도, 또 구분하기도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차이는 있지만 그걸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는 얘긴가요?”
“그렇습니다.”
폴리니의 태도는 늘 그렇듯이 당당했다. 하지만 하이든 박사는 그의 대답에 아쉬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관객들의 반응은 그보다 더 안 좋았다. 뭐야? 지금 잘난 체 하는 거야? 하이든 박사가 입맛을 다시며 마이크를 다시 까미유에게 넘겼다.
“그림 값을 6000만 달러와 1500만 달러로 책정한 것은 실제 거래 가격을 바탕으로 추정한 건가요?”
“그렇습니다. 재스퍼 존스의 성조기 그림이 마지막으로 거래된 것은 벌써 15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 60년대에 그려진 성조기가 4000만 달러에 팔렸죠. 그걸 바탕으로 지금은 가격이 더 올라갔을 것을 감안해서 책정한 가격입니다.”
이번에도 폴리니는 자신 있게 대답했고, 까미유의 질문도 끝났다. 폴리니의 대답이 분명히 성에 차지 않는 눈치였지만 심사위원들 가운데 누구도 다시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관객들이 다소 웅성거리는 가운데 이번에는 도윤이 발표할 차례가 되었다. 그가 마이크를 켜자 모니터에 감정 결과가 표시되었다. 첫 번째 그림은 1960년대 작품, 감정가 일억 천만 달러. 두 번째 그림은 2000년대 작품, 감정가 이천삼백만 달러.
그림의 제작 시기에 대한 견해는 폴리니와 같았지만 가격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났다. 관객석의 탄성 소리가 아까보다 더 커졌다. 폴리니 때와 마찬가지로 하이든 박사가 먼저 질문을 시작했다.
“가격에 관해서는 나중에 까미유 씨가 질문을 할 것 같으니까 저는 먼저 시기를 구분한 이유를 묻지요. 이 박사도 폴리니 씨와 비슷한 이유로 첫 번째 그림이 더 먼저 그려졌다고 판단하신 겁니까?”
“안목 감정에 관한 내용이라면 비슷합니다. 하지만 두 그림은 그것 외에도 제작 시기를 객관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증거가 하나 더 있습니다.”
관객석에서 ‘오오’ 하는 탄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이든 박사도 자세를 똑바로 했다.
“객관적인 증거라고요? 그게 뭐죠?”
“카메라로 두 개의 그림을 나란히 잡아주시겠습니까? 전체 모양을 잡지 말고 아무 곳이나 좋으니까 그림의 일부를 크게 확대해서 비춰주세요. 두 그림 모두 다요.”
그의 요구에 따라 카메라가 두 점의 그림을 각각 줌인해서 최대한 확대시켰다. 모니터에 떠오른 영상을 확인한 도윤이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재스퍼 존스는 성조기를 그릴 때 왁스와 물감을 혼합해서 사용했습니다. ‘납화법’이라는 기법인데, 그렇게 그리면 그림의 질감이 더 견고해집니다. 아까 폴리니 씨가 첫 번째 그림에서 거친 느낌이 난다고 했던 건 아마 그 때문일 거라고 짐작합니다.”
“첫 번째 그림은 그렇다 치고, 그럼 두 번째 그림에서 원숙한 느낌이 나는 이유는 뭐죠?”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브렌트 교수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왁스의 차이 때문입니다.”
“왁스의 차이라고요? 재스퍼 존스가 두 번째 그림을 그릴 때는 첫 번째 그림과 다른 종류의 왁스를 사용했다는 말입니까?”
“맞습니다. 물감의 일부를 떼어내서 정확하게 성분 조사를 하면 더 좋겠지만, 오늘은 생방송이니까 그냥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만 설명하겠습니다. 존스는 첫 번째 그림을 그릴 때 벌집을 녹여 만든 밀랍을 주성분으로 한 왁스를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에 두 번째 그림에는 콩기름을 원료로 한 소이왁스를 썼죠. 둘 다 천연 왁스의 일종입니다.”
“그 왁스들을 썼을 때 눈으로 구분할 수 있는 차이가 발생한다는 건가요?”
“차이가 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미세하게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죠. 일단 순수한 밀랍 왁스는 색깔이 약간 노랗습니다. 반면에 소이 왁스는 순백색이죠. 물감과 섞어 발랐을 때의 느낌을 비교하면 , 밀랍 왁스는 견고한 한 반면에 소이 왁스는 부드럽습니다. 물감이 말랐을 때의 광택은 밀랍 왁스 쪽이 조금 더 반짝거리고요.”
도윤이 말하는 동안 카메라가 계속해서 두 개의 그림을 동시에 잡고 있었다. 그의 설명을 들은 관객의 일부가 ‘아하’ 하고 탄성을 내뱉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스스로 말했듯이 누구나 쉽게 구분할 수 있는 차이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하이든 교수가 빙그레 웃으면서 다시 질문을 던졌다.
“말씀대로 어지간한 사람의 눈으로는 쉽게 구분할 수 있는 차이가 아닌 것 같군요. 하지만 성분 분석을 하면 결과를 확실히 알 수 있겠죠.”
그는 그 말을 한 뒤 관객석을 잠시 돌아보았다. 당신들이 구분하지 못했다고 해서 이상한 건 아니라는 걸 납득시키려는 몸짓이었다. 다시 몸을 바로 한 그가 질문을 이어갔다.
“그런데 말입니다. 일단 두 그림의 왁스가 서로 다르다고 합시다. 하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재스퍼 존스가 1960년대에 소이 왁스를 썼을 수도 있지 않나요? 아니면 나이 들어서 밀랍 왁스를 썼다든가. 제 말은 왁스의 차이만으로는 어느 그림이 더 먼저 그려진 것인지를 알 수 없지 않느냐는 겁니다.”
이 양반, 확인사살 참 좋아하네. 도윤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신 대로 나이 든 존스 씨가 밀랍 왁스를 쓰는 건 가능합니다. 그건 요즘도 시중에서 판매되니까요. 하지만 1960년대에 소이 왁스를 사용하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그건 장식용 초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1980년대 이후에 개발된 거니까요. 콩기름의 새로운 용도였죠.”
관객석에서 허탈한 웃음소리가 몇 차례 들리더니 갑자가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도윤이 그런 세부적인 사항까지 알고 있다는 게 놀라웠던 것이다. 까미유가 관객들의 박수소리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이번에는 그림 가격에 대해 질문하죠. 이 박사는 두 그림의 가격을 폴리니 씨보다 높게 잡았어요. 첫 번째 그림의 경우에는 무려 1억 달러가 넘는 금액을 책정했는데, 그렇게 높은 가격을 매긴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재스퍼 존스의 성조기가 마지막으로 거래된 것은 폴리니 씨가 말했듯이 15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와 지금은 물가를 비롯한 경제 지표가 많이 달라졌으니 그림 값을 계산할 때도 그 점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나도 그걸 감안해서 육천만 달러를 부른 거라고!”
잠자코 있던 폴리니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불쑥 끼어들었다. 도윤의 설명을 들으면서 자신이 이번 발표에서 밀렸다는 사실을 깨닫자 마음이 조급해진 모양이었다.
깜짝 놀란 사회자 페이건이 그에게 진정하라고 손짓을 보냈다. 모니터를 보고 있던 알랭 피디도 인이어를 통해 그를 말리려고 애를 썼다. 폴리니는 여전히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었지만 마지못해 입을 다물었다. 상황이 진정되자 도윤이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폴리니 씨도 그 점을 감안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재스퍼 존스 씨가 너무 연로하다는 점이에요. 그 분은 지난 십오 년간 새로운 그림을 한 점도 내놓지 못하셨습니다. 보통 화가가 사망하면 그림 값이 오르기 마련이지만 이 경우에는 이미 가격 상승 요인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을 가격 산출에 반영했습니다.”
“누군가 이 방송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 같군요. 감사합니다.”
까미유의 말을 끝으로 처음 두 점의 그림에 대한 감정이 끝났다. 잠시 광고를 위한 휴식 시간이 진행되는 동안, 알랭의 지시를 받은 두 사회자가 폴리니에게 다가가 그를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생방송에서 출연자가 이성을 잃으면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었다.
“알았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흥분했어요.”
다행히 폴리니는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사과했고, 광고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방송은 무사히 재개되었다. 세 번째 그림에 대한 발표는 도윤이 먼저 시작했다.
그가 마이크를 잡자 모니터에 감정 결과가 떴다. 그런데 내용이 다소 장황했다. ‘티치아노의 작품 ’신비스러운 대화‘를 영국의 윌리엄 홀먼 헌트가 오마쥬한 그림. 12만 달러.’
발표를 시작하려던 도윤은 옆에서 전해지는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슬쩍 돌렸다. 그러자 폴리니의 얼굴이 하얗게 얼어붙은 게 보였다. 감정에 실패했구나.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번에도 또 발작하면 곤란한데……. 그가 잠깐 그런 걱정을 하는 사이, 브렌트 교수가 질문을 시작했다.
“저 그림의 원형이 티치아노의 ‘신비스러운 대화’라는 건 미술사에 조예가 깊은 분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눈치 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궁금한 건 어떻게 저 그림이 헌트의 오마쥬라는 걸 알아봤느냐는 겁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 그림은 오늘 이 자리에서 처음 대중에게 공개되는 것이거든요.”
브렌트 교수의 말에 관중석에서 다시 한 번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오늘따라 관객들의 반응이 상당히 적극적이자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던 알랭 피디의 입에서 웃음이 번졌다.
“역시 주제를 바꾸고 그림들을 교체한 효과가 있지? 관객들의 반응이 지난 두 번과는 확실히 다르지 않아?”
존 카론도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까미유 씨의 공이 크네. 그 양반 제안을 받아들이기를 잘 했어.”
“그러게 말이야 하지만 이 박사가 없었으면 함부로 시도하기 어려웠을 거야. 저 사람 봐봐. 보통 사람들은 눈으로 보고도 알 수 없는 것들을 귀신같이 잡아내잖아. 아는 건 또 얼마나 많고? 혹시나 하고 걱정했던 게 민망할 정도야.”
알랭이 도윤을 칭찬하는 사이 무대 위에서는 그의 대답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윌리엄 헌트는 대단히 종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원래부터 종교와 관련된 그림을 많이 그렸죠. 반면에 그와 함께 라파엘 전파에 속했던 다른 화가들은 그리스 신화나 영국의 문학 작품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즐겨 다루었습니다. 아니면 아예 당대의 사실적 풍경을 묘사하려고 애썼지요.”
“하지만 그 사람들도 기독교와 관련된 그림을 전혀 그리지 않은 건 아닐 텐데요?”
브렌트 교수의 말에 도윤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윌리엄 헌트의 그림들이 가진 또 하나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완고한 검소함이지요.”
“완고한 검소함이라고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헌트가 르네상스 전성기를 통해 발달했던 풍부한 색채나 과장된 명암, 엄밀하게 계산된 원근법을 거부한 것은 다른 라파엘 전파 화가들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그는 상상의 산물인 성경 속의 인물들에게 사실성을 부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거룩하지 않고 이웃집 사람들처럼 느껴지는 인물들, 바로 저 그림 속에 있는 성 모자와 누가, 그리고 캐서린처럼 말이죠.”
브렌트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하이든 박사가 질문을 던졌다.
“좋습니다. 하지만 방금 설명하신 그런 점들을 감안하더라도 저 그림에는 입체감이 부족해요. 사람들이 화면에 눌러 붙어 있는 느낌이랄까? 그건 사실주의적인 화풍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것 아닙니까? 그저 화가의 미숙함으로 봐도 될 것 같은데요.”
“그건 헌트가 자신이 오마쥬한 티치아노의 그림을 직접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저 그림을 그릴 때 아마 티치아노의 그림을 소개한 판화를 참조했을 겁니다.”
“판화라고요?”
“네. 당시의 유럽 화가들은 거장의 그림을 직접 보고 배우기 위해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헌트는 그러지 못했죠. 대신 르네상스 거장들의 그림을 삽화 형태로 소개하는 책들을 많이 참조했습니다. 그 삽화들이 바로 동판화로 인쇄된 것이었는데, 당연히 원작의 입체적인 느낌을 살려내지 못했습니다. 저 그림에서 입체감이 부족한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석은 물론이고 심사위원 석도 조용해졌다. 진짜 대단하군. 하이든 박사가 그런 생각을 할 때, 까미유가 나섰다.
“그림 값을 12만 달러로 책정한 것은 저 그림이 순수한 창작품이 아니라 티치아노의 그림에 대한 오마쥬이기 때문인가요?”
“그렇습니다. 당시에는 대가의 그림을 베껴 그리면서 연습하는 것을 범죄로 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저 그림을 위작으로 보는 건 무리입니다. 오마쥬가 맞는 표현이겠죠. 실제로 저 그림을 티치아노의 진작이라고 착각할 수집가는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헌트의 그림들 가운데 비교적 낮은 가격에 팔린 것들을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했습니다.”
도윤에 대한 질문은 그것으로 모두 끝났다. 이제 폴리니가 대답할 차례였다. 그에게 마이크가 넘어가자마자 모니터에 떠오른 감정 결과를 본 관객석에서 ‘아아’ 하고 아쉬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19세기에 그려진 티치아노의 위작. 감정가 천 달러.’
감정가를 확인한 까미유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폴리니 씨는 저 그림을 단순히 오래된 위작이라고 감정하신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림이 그려진 시기는 비록 오래 되었지만 원작이 엄연히 존재하는 그림이기 때문에 위작이라고 감정했습니다.”
“화가가 누구인지 몰랐다는 뜻이네요?”
폴리니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까미유가 질문을 바꿨다.
“위작임에도 불구하고 그림의 가격을 천 달러로 책정한 이유는 뭐죠?”
폴리니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간신히 입을 열었다.
“위작이라고 하더라도 오래된 그림은 어느 정도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더구나 저 그림 자체는 아마추어의 솜씨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묘사가 뛰어나기 때문에 그 정도 가격이 적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의 질문은 없었다. 차라리 순서를 바꿔서 폴리니가 먼저 발표했더라면 조금은 더 장황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폴리니는 이미 도윤의 설명을 수긍해 버린 상태였고, 그런 그에게 감정 이유를 꼬치꼬치 캐묻는 건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두 번의 발표가 끝나자 관객석에서는 이미 오늘의 승부가 끝났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관객석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할 무렵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그림이 무대 위에 등장했다. 상황은 그때부터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