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도윤이 청파 갤러리에서 최 회장과 최 관장을 만나고 돌아온 날 오후, 조태석 교수의 아들인 조명근 검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미국에 있을 때는 물론이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통 연락이 없더니 갑자기 웬 일인가 싶었다.
“여보세요?”
“이야, 이 박사. 우승 축하한다. 역시 눈깔에 귀신이 붙은 놈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니까? 내가 국가의 정의와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와중에도 ‘트루쓰 앤 밸류’ 본방을 꼬박꼬박 사수했다는 거 아니냐. 역시 형밖에 없지?”
그럼. 형 같은 사람은 역시 형밖에 없지.
“하는 거 보니까 곧 검찰 옷 벗고 변호사 개업하겠네. 용건이 뭐야?”
“아, 그 자식 참 섭섭하게. 용건은 무슨? 너 우승한 거 축하하려고 전화했다니까?”
“방송 끝난 지가 언젠데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축하야?”
“내가 얼마나 바빴으면 그랬겠냐. 전화 한 통화 제대로 할 시간이 없었다니까?”
“그래? 그럼 축하받았으니까 바쁜 사람 방해 안 되게 이만 끊는다?”
“야야, 잠깐만. 넌 인마 다 좋은데 그 성질 급한 게 유일한 흠이야.”
“용건만 간단히.”
전화기 저쪽에서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아니나 다를까. 조명근의 입에서 진짜 용건이 나왔다.
“너 오늘 미래그룹 최 회장님 만났었다며?”
“요즘도 검찰에서 민간인 사찰해? 그건 어떻게 알았어?”
“야, 민간인 사찰은 우리가 아니라 국정원……. 아니, 그건 됐고. 아무튼 미래그룹 비서실에서 아버지한테 연락을 했다더라. 너에 대해서 이것저것 캐물었나 봐. 그래서 아버지가 무슨 일인가 싶어 최수아 관장님하고 통화했어. 그게 내 귀에 딱 하고 들어온 거지.”
“정보원이 조교수님이었다고?”
“야 인마. 정보원이라니! 아무튼 그래서 너 내일 일본 가게 됐다면서?”
“일본은 왜? 거기서도 볼 일이 있어? 요즘 한국 검찰이 국제적으로 노네?”
“그러지 말고 일본 가는 길에 고베에 잠깐만 들러줘라.”
“싫어.”
“나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입도 뻥끗 안 했는데?”
“안 들어봐도 뻔해. 보나마나 돈 안 되고 귀찮기만 한 일이겠지.”
“야, 귀찮은 일 아냐. 이번 일엔 돈도 줄 거고. 우리 차장님이 정식으로 협조 의뢰하고 비용 지불하라고 지시하셨어.”
“얼마나 줄 건데?”
“내용은 안 물어보고 돈만 궁금하냐?”
“나 요즘 비싼 몸 됐어. 일단 기준 이하의 액수를 제시하면 내용은 들어볼 필요도 없잖아. 돈이 적당해도 일이 또 그 돈에 맞아야 하고.”
“우리 도윤이 외국물 먹더니 아주 무서워졌네?”
“형이 몰라서 그렇지 나 서울물만 먹고 살 때도 원래 무서웠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작 조명근의 얘기를 들은 도윤은 돈보다 내용에 더 호기심이 갔다.
고베는 원래 일본 제일의 폭력조직인 야마구치 구미의 본산지로, 지금도 야마구치 구미의 본사가 그곳에 있었다. 1960년대에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야마구치 구미는 80년대 이후로 점점 쇠퇴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젊은 조직원들이 멜론 농장을 서리하거나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다 체포될 정도로 조직의 규모와 위상이 쪼그라들었다.
“젊었을 때 야마구치 구미의 중간 간부까지 올라갔던 재일교포가 아직도 고베에 살고 있어. 그런데 이 양반이 나이가 들어 은퇴하더니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어졌나 봐. 일본에서는 사고무친인데, 한국에는 아직 친척들이 살아있거든. 네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일본도 현직이 아닌 전직 야쿠자가 정상인처럼 살기에는 많이 불편한 게 현실이야.”
문제는 이 양반이 입국금지 대상자라는 점이었다. 일본에서 저지른 여러 차례의 전과 때문이었다. 아무리 동포라고 해도 전과가 있는 전직 야쿠자를 그냥 받아주기에는 한국도 입장이 난처했다. 그때 이 양반이 일본 주재 한국 영사관과 법무부에 거래를 제안했다.
“겸재 정선의 그림이라고?”
“그래. 화제가 목멱북망지도(木覓北望之圖)라고 하더라. 이름이 정확하다면 아마 목멱산, 그러니까 남산에서 북쪽을 바라보면서 그린 풍경이겠지. 아무튼 이 양반이 그 정선의 그림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자신이 그걸 한국 정부에 기증할 테니까 입국할 수 있도록 선처해 달라고 부탁했어.”
“진짜?”
“진짜라니, 뭐가?”
“진짜 정선의 그림이 맞느냐고.”
“그거야 모르지. 그러니까 그걸 확인하기 위해 너더러 고베로 가보라는 거 아냐.”
“그 사람은 겸재의 그림을 어떻게 갖게 됐대?”
“몰라. 난 그걸 몰라도 상관없을 거 같은데 너는 꼭 알고 싶냐?”
아니. 그 사람이 그림을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 그림이 정선의 진작인지가 중요할 뿐이지. 그리고 만약 그림이 진짜로 겸재의 ‘목멱북망지도’가 확실하다면 그걸 어떻게 한국으로 옮길지는 그림 주인과 한국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그래서 출장비는 얼마나 줄 거야?”
“너 어차피 일본 왕복 항공비는 청파 갤러리에서 줄 거라며? 그러면 도쿄에서 고베…….”
“에이. 그건 이 일하고는 별개지. 따로 계산해. 교통비, 숙식비. 그리고 수고비까지.”
“독한 놈. 삼백만원이면 되겠냐?”
“형이야 말로 독하다는 거 알아? 말했잖아. 나 요즘 몸값 비싸졌다고. 하지만 그동안 알고 지낸 인연도 있고, 조교수님 얼굴을 봐서 염가봉사 해줄게. 오백만원만 내.”
“야! 오백만원이 뉘 집 개…….”
“그림 감정비는 계산에 넣지도 않은 건데?”
“오백만원 콜. 더 부르고 싶거든 우리 차장님하고 직접 얘기하든가.”
그렇게 해서 도윤은 조명근의 의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 의뢰 내용에 마음이 끌렸기 때문이다.
겸재 정선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진경산수화로 유명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가다. 사실 도윤은 겸재가 말년에 그린 ‘인왕제색도’를 비롯한 몇몇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그의 그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화가로서의 실력보다는 미술사적 의미가 지나치게 강조된 경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문인 화가들보다는 도화원 출신의 이른바 프로 화가들의 그림을 더 좋아했다.
하지만 개인의 호오나 취향과는 상관없이 일본 땅에 있는 겸재의 그림을 한국으로 가져올 수 있다면 놓치기 어려운 기회임이 분명했다. 이런 일에는 대개 정부의 고위 관료가 개입되어 있기 마련이고, 전화를 건 사람은 조명근이지만 검찰이 아닌 다른 계통으로부터 지시가 내려왔을 가능성이 컸다. 그 차장 검사라는 양반, 발이 넓은가 보네.
“그나저나 그림 주인이 전직 야쿠자라고 했지? 잘못하면 칼부림 나는 거 아냐?”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만, 정말 일이 꼬이기라도 하면 골치 아픈 건 사실이었다.
* * *
“갑자기 일본이라니? 거긴 왜요?”
석훈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원래 이틀 전부터 저녁을 겸해 술이나 한 잔 마시자는 약속이 잡혀 있었다. 그런데 정작 만나자마자 도윤이 내일 아침 비행기로 일본에 가야 하니까 오늘은 밥이나 먹고 얌전히 들어가자는 바람에 김이 샜다.
“왜기는? 일이 있으니까 가는 거지. 도쿄하고 고베에서 그림을 감정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왔어. 겸사겸사 오랜만에 일본 바람이나 쐬고 오려고.”
“이야, 이젠 막 국제적으로 잘 나가시네. 하긴 형은 원래부터 그랬지.”
“원래부터 그러다니?”
“형 군대 전역하고 나서 한국에 붙어 있는 때가 별로 없었잖아요. 부럽다, 부러워.”
“부러우면 너도 나가든지. 요즘 영어 공부는 잘 되냐? 더러워서 십 개 국어쯤 뗀다며?”
석훈이 입을 딱 닫으면서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그럼 그렇지. 도윤이 속으로 혀를 차는데 석훈이 갑자기 숙였던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형. 나도 형하고 같이 일본 가면 안 될까요?”
“너도? 너는 왜?”
“아이 참 왜는? 빈대 좀 붙자고요. 신체 건강한 놈이 매일같이 방바닥만 긁고 있으려니까 답답해서 미치겠어요. 나도 이번에 형 덕분에 일본 바람 좀 쐽시다.”
“나 놀러가는 거 아니다. 일 때문에 간다고 했잖아.”
“에이, 사람 참 무정하기는. 비행기 표는 내가 살 테니까 재워만 주세요. 어차피 1인용 방 잡으나 2인용 방 잡으나 거기서 거기잖아요. 형은 돈 받아서 가는 거라면서요?”
“내가 원래 청결함을 좋아해서 빈대는 안 키워. 그냥 긁던 방바닥이나 계속 긁어라.”
“청결하기는 개뿔. 아니 그런 뜻이 아니고……. 고베 간다면서요? 거기가 원래 일본 야쿠자 본산 아니요? 괜히 그런데 얼쩡거리다가 무슨 일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내가 딱 붙어서 보디가드 해 줄게요.”
“일본도 우리나라 못지않게 치안 좋기로 유명한 나라야. 보디가드 필요 없어.”
“그럼 보디가드 말고 수행원……. 아니지. 그냥 하인 할게요. 나리. 이번 기회에 몸 건강한 종놈 하나 키우시죠? 쇤네 청소도 잘 하고 장작도 잘 팹니다요. 그저 재워주고 먹여주기만 해주세요. 네?”
이 자식. 백수 생활이 지겹긴 지겨운가 보구나. 그때 도윤의 머리로 그림 주인이 전직 야쿠자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혹시 모르니까 그냥 데리고 가 봐?
“정말 재워주고 먹여주기만 하면 되냐?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하고?”
석훈의 얼굴이 급격히 환해졌다.
“당연하지. 형 하는 일에 절대 방해되지 않도록 할 테니까 걱정 말아요.”
“그럼 당장 비행기 표부터 알아 봐. 내일 오전 10시 정각에 김포공항에서 나리타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야. 표 끊으면 데리고 갈 게.”
석훈이 스마트폰을 꺼내서 눈부신 속도로 항공회사 앱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 * *
하늘이 도왔는지 비행기 좌석이 있었다. 게다가 공항에서 부탁하자 항공사 직원이 두 사람의 좌석을 나란히 붙어있도록 발권해주기까지 했다.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된 결과, 아침 열 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 도윤과 석훈은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근데, 고흐의 그림이 되게 비싸다면서요? 그렇게 비싼 게 왜 일본에 있어요?”
비행기가 무사히 이륙하자, 긴장이 풀렸는지 석훈이 평소에 안 하던 질문을 했다.
“왜 일본에 있기는? 일본 사람이 돈 주고 샀으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걔들은 도대체 왜 그렇게 많은 돈을 주고 그런 그림을 사들이냐고요?”
“일본 애들이 원래 서양 거라면 환장을 할 정도로 좋아해. 메이지 유신 전부터 탈아입구(脫亞入毆)니 뭐니 하면서 난리였잖아. 아시아를 벗어나서 유럽의 문물을 배우자. 뭐 그런 거지. 걔들은 아시아인이면서도 서양 사람인 척 하는 거 되게 좋아해. 옛날부터.”
미술계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그런 경향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이 바로 도쿄 우에노 공원에 있는 ‘국립 서양 미술관’이다. 말 그대로 서양 미술 작품들만 모아놓은 국립 미술관인데, 아시아에서 이런 유의 국립 미술관은 이곳이 유일하다.
우에노 공원의 국립 서양 미술관은 원래 마쓰가타 고지로라는 일본의 전설적인 컬렉터가 유럽 일대를 돌아다니며 모은 미술품들을 기반으로 세워졌다. 마쓰가타는 오랫동안 가와사키 조선소(현 가와사키중공업)의 사장을 지내면서 요즘 시세로 환산하면 1조원이 넘는 큰돈을 모았다. 그가 이 돈으로 유럽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수집한 유화와 수채화, 드로잉 등의 작품들이 육천 점이 넘었다고 하니, 한 마디로 말해 미친 듯이 사 모은 것이다.
문제는 그가 유럽 현지에서 사들인 미술품들을 일본으로 완전히 들여오기도 전에 2차 세계대전이 터졌다는 점이다. 그는 팔고 남은 수집품들을 런던과 파리에 있는 창고에 보관했는데, 런던 창고에 있던 작품들이 독일의 공습 때 불에 타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파리에 있던 작품들 역시 전쟁이 끝난 뒤 패전국의 재산이라며 프랑스 정부가 압류해 버렸다.
전쟁이 끝난 후 일본 정부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을 맺으면서 프랑스에 남아 있던 작품이 승전국 프랑스의 재산이라고 인정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마쓰가타의 그림에 대한 반환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당시 일본 총리였던 요시다 시게루도 프랑스 외무장관에게 마쓰가타 컬렉션을 일본에게 돌려달라고 간청했을 정도다.
“그게 뭐야? 지들은 우리나라하고 청구권 협상을 맺었으니까 그걸로 끝이라면서요? 국가 간에 맺은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떠들지 않았어요?”
이야기를 듣던 석훈이 발끈했다. 도윤은 그냥 허탈하게 웃었다.
“열 낼 필요 없어. 원래 사람들이 다 그렇지 뭐. 그리고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하랬다고 우린 약속을 어긴 게 아냐. 너네 거라고 인정한 걸 돌려달라고 한 적이 없잖아.”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의 입장을 표명하던 프랑스 정부는 결국 나중에 마음을 바꾸어 반환을 승낙했다. 다만 그들은 돌려준 작품들을 ‘반환’이 아니라 ‘기증’이라고 규정지었다. 이건 원래 너희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이니 돌려주는 게 아니라 선물하는 것이라는 뜻이었다. 말장난을 하는 프랑스 정부도 웃기지만, 더 웃기는 건 일본에서 이를 ‘기증반환’이라고 불렀다는 점이다. 소위 일본식 명명법이었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작품을 기증하면서 일본이 국립미술관을 만들어 기증 작품을 보관하고 전시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그래서 이 미술관이 ‘마쓰가타 미술관’이 아니라 국립 서양 미술관이 된 것이다. 오늘날 이 미술관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서양 전문 미술관이다.
“그 미술관이 돌려받은 작품들이 요즘 시세로 하면 얼마나 되는데요?”
석훈의 질문에 도윤이 또 다시 허탈하게 웃었다.
“적어도 몇 억 달러는 될 거다. 세잔, 고흐, 고갱, 르노와르. 아무튼 유명한 화가들 작품들이 두루 망라되어 있으니까.”
“우와. 진짜 생각할수록 대단한 놈들이네요.”
대단하지. 중국도 마찬가지고. 우리는 그렇게 대단한 놈들 사이에 끼어 있는 거야. 어느새 비행기가 나리타 공항에 착륙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