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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61화 (61/300)

61화

런던에 도착한 도윤은 그날 저녁, 최서라와 조민아를 만나 함께 식사했다. 그 자리에서 석훈이 갑자기 생긴 일 때문에 영국에 오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자 조민아는 안타까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렇잖아도 석훈 선배한테서 못 오게 됐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 선배 무지하게 런던 구경하고 싶어 했는데 좀 안 됐어요.”

런던을 구경하고 싶은 게 아니라 댁을 보고 싶어 한 거겠지. 도윤이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조민아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도 사실 백수가 외국으로 놀러 다닌다는 게 좀 그렇긴 하죠? 관광 다니는 것도 좋지만 취직을 빨리 해야 할 텐데.”

그래. 민아 씨 얘기가 맞지. 백수가 어딜 놀러 다녀? 갑자기 석훈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윤으로부터 일본에서 있었던 얘기를 전해들은 최서라는 겸재 정선의 진작이 새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놀라워했다. 하지만 그녀가 진짜로 관심을 보인 것은 역시 고흐의 해바라기였다.

“그럼 나마타 보험이 사천만 달러나 주고 가짜 그림을 샀다는 얘기네요? 오히려 진짜는 고베에 있는 허름한 골동품 점에 있고. 할아버지한테 도쿄는 포기하고 고베에 있는 그림을 사라고 전화해야겠네요.”

글쎄. 그게 그렇게 간단하게 될까?

“회장님이 제 얘기만 믿고 결정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웬만한 회사 하나가 왔다 갔다 할 정도로 큰 금액이 들어가는 일이잖아요. 굉장히 힘들게 구매를 결심하셨을 텐데 그걸 포기하려면 좀 더 객관적인 증거가 필요하겠죠.”

도윤은 최회장이 자신에게 감정을 부탁한 가장 근본적인 목적이 불안감 해소에 있다고 보았다. 겉으로는 나마타 보험의 해바라기에 대해 의구심을 표시했지만, 내심은 도윤이 진작이라는 감정 결과를 내놓아서 마음 편히 베팅할 수 있기를 바랐다는 뜻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애초에 진위가 의심스러운 작품을 사려고 할 이유가 없었다.

나마타 보험이 가지고 있는 해바라기 정도의 작품은 시장에 자주 나오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냥 안 사면 돈이 굳는 거 아니냐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20세기부터 지금까지 고흐의 그림은 값이 떨어진 적이 없었다. 설사 경제적인 측면을 제외하더라도 수집가에게 있어서 고흐의 진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명예였다.

‘결과적으로 내 감정 결과가 최회장의 바람을 저버린 꼴이 된 거지. 난감하게 됐어. 감정 결과가 반대로 나왔으면 시간도 돈도 절약할 수 있었을 텐데.’

의뢰자의 바람과는 다른 감정 결과를 내자니 이래저래 몸만 고달프게 생겼다.

도윤은 청파 갤러리에서 아오키 씨의 다섯 송이 해바라기 구입을 포기할 경우 자신이 살 의사가 있다는 뜻을 아직 밝히지 않았다. 그건 대리인의 신용에 관계된 문제라서 자칫 잘못하다가는 미술계에서 매장이 될 소지가 있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먼저 여러 번 권해보고, 그래도 사지 않겠다고 할 때까지 기다린 뒤에 구입해야 비로소 비난을 피할 수 있다.

다음날, 그는 테이트 브리튼의 장예주 박사를 만났다. 런던 크리스티 본사를 방문하는 문제로 그녀의 도움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모네의 수련 연작과 관련된 사건 때문에 그가 크리스티 측에 직접 협조를 구하기에는 입장이 곤란했다.

“잘못하면 바커 위작 사건 때처럼 엄청난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어. 1억 달러에 가까운 돈이 걸린 일이야. 게다가 나마타 보험의 해바라기가 진작이라고 감정한 전문가들도 적지 않고. 진짜 할 거야?”

장 박사는 도와주겠다고 하면서도 슬쩍 걱정을 내비쳤다. 잘못하면 파장이 만만치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낀 것이다. 하지만 도윤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해야지요. 이미 맡은 일이잖아요. 최종적인 판단은 의뢰인이 할 테지만 저로서도 최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수집해서 제 감정 결과를 설득시킬 의무가 있으니까요.”

“하아, 쉽지 않을 텐데. 알겠어. 어쨌든 일 자체는 재미있을 거 같으니까 같이 해 보자.”

장 박사는 후폭풍을 염려하면서도 결국 그를 돕겠다고 나서주었다. 고마운 사람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영국까지 오면서 도윤도 그녀가 언급한 바커 위작 사건을 머릿속에 떠올렸었다. 그건 20세기 초반에 터진 최초의 대규모 고흐 위작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고흐는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 밖에 팔지 못했지만, 죽은 뒤에는 오히려 빠르게 유럽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사후 2년 뒤인 1892년에 파리에서 처음으로 ‘고흐 회고전’이 열렸고, 시간이 갈수록 그의 그림을 중심으로 한 전시회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고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자연스럽게 그의 그림 값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위작이 나돌기 시작했다.

1927년, 베를린의 카시러 화랑에서 대규모의 ‘반 고흐 회고전’이 열렸는데, 여기에서 위작으로 의심되는 그림들이 여러 점 발견됐다. 오토 바커라는 사람이 내놓은 그림들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이 위작 가능성을 주장한 것이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그가 팔아 치운 고흐의 그림 서른세 점이 모조리 위작이라는 의심을 받게 됐고 결국 경찰의 조사 끝에 1932년, 바커가 주로 활동했던 독일에서 정식으로 재판이 열렸다.

바커는 경찰 조사가 시작되자 고흐의 고향인 네덜란드로 도망갔는데, 여기서 엉뚱한 일이 벌어진다. 당시 고흐의 유작은 테오의 아들, 즉 고흐의 조카가 관리하고 있었는데 그는 재판정에 출석해서 바커가 내놓은 그림들이 모두 가짜라고 증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의 고흐 전문가들은 도리어 바커의 그림이 진작이라며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똑같은 일이 다시 벌어질 수도 있어. 당시 바커의 그림을 감정했던 다른 전문가들도 대부분 재판정에서 말을 바꿨으니까. 런던 크리스티만 해도 자신들이 거액에 팔아치운 그림이 위작이라는 걸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거야.”

장예주의 말에 도윤도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재판에서 처음에는 바커의 그림 서른세 점이 모두 위작이라고 증언했던 전문가들이 나중에는 일부 진작이라는 쪽으로 말을 바꿨다. 자신들이 진작이라고 감정서를 써주었던 그림들 중에도 바커에게서 흘러나온 것들이 있음을 나중에 알았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감정서가 붙은 그림들은 수집가들에게 비싸게 팔렸다.

“어차피 제가 설득해야 될 사람들은 미래 그룹의 최인탁 회장님이나 청파 갤러리 관계자들뿐이에요. 저도 이번 일을 가지고 온 세상 사람들하고 싸울 생각은 없어요.”

도윤의 말을 들은 장예주 박사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못하면서도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글쎄. 그게 과연 그렇게 될까?

* * *

이튿날, 두 사람은 런던 크리스티 본사를 찾아갔다. 장예주 박사가 미리 전화로 협조를 구했고, 도윤은 정장을 입고 갔던 전과는 달리 일부러 스포티한 옷차림에 도수 없는 안경을 쓰고 그녀를 따랐다.

테이트 브리튼의 큐레이터라는 직함은 런던 크리스티 문서 보관실 직원의 협조를 얻어내는데 큰 도움이 됐다. 장 박사는 문서를 찍은 사진이 아니라 서류 원본을 제공받았고, 덕분에 두 사람은 크리스티 직원이 입회한 가운데 한 시간에 걸쳐 나마타 보험이 사들인 해바라기의 거래 이력이 담긴 서류들을 꼼꼼하게 검토할 수 있었다.

검토가 거의 끝나갈 무렵, 장박사가 크리스티 직원에게 서류 하나를 보여주었다.

“여기 좀 보세요. 크리스티는 나마타 보험의 해바라기가 1889년, 그러니까 고흐가 죽기 1년 전에 그린 것으로 생각하는 거죠? 서류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네요.”

장박사가 서류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물었다. 직원은 그녀가 내민 서류를 힐끗 보더니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고흐는 1888년에 고갱을 위해 네 점의 해바라기를 그렸죠. 그 가운데 열다섯 송이 해바라기를 원본으로 해서 만든 두 점의 레플리카, 그러니까 화가 자신이 만든 복사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나마타 보험의 해바라기입니다. 그게 저희 회사의 판단이에요.”

그러자 지금껏 입을 꼭 다물고 있던 도윤이 슬쩍 반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당시 고흐가 동생인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는 분명히 한 점의 레플리카만 언급되어 있을 텐데요? 테오가 죽은 뒤에 그의 부인이 작성한 이른바 요한나 리스트에도 두 번째 레플리카는 없고요. 그런 그림은 물려받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직원이 약간 놀란 눈빛으로 도윤을 쳐다봤다.

“실례지만 누구신지…….”

직원은 도윤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옷차림을 바꾸기까지 한 도윤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그는 모네의 수련 연작 사건 때 현장에 없었다. 옆에 있던 장 박사가 얼른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고흐가 열다섯 송이 해바라기의 두 번째 레플리카를 만들었다는 증거가 없다는 거예요.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말이죠.”

고흐가 고갱을 위해 그렸던 열다섯 송이 해바라기 원본은 현재 런던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다. 그것의 첫 번째 레플리카는 미국 필라델피아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 앞의 두 그림은 소장자와 거래 이력이 워낙 명확하기 때문에 진작임을 의심할 수 없었다. 그에 반해 나마타 보험의 해바라기는 출처가 불분명하지 않느냐는 점을 짚은 것이다.

장박사의 지적에 약간 멈칫하던 직원은 예상했던 대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나마타 해바라기는 두 번째 레플리카잖아요. 원작이나 첫 번째 레플리카라면 몰라도 고흐가 두 번째 것까지 굳이 편지에서 언급할 필요를 느꼈을까요?”

도윤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게 세계적인 경매회사에서 할 소리냐?

“고흐는 ‘아를의 침실’을 그린 뒤, 이듬해에 그 작품의 레플리카를 두 점 더 만들었지요. 그리고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것들을 모두 언급했어요. 그런데 유독 열다섯 송이 해바라기에 대해서는 두 번째 레플리카를 그리고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요?”

직원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당신이 생각하기에도 대답이 좀 궁색하지? 그때 장예주 박사가 도윤의 옷깃을 표 나지 않게 잡아당기며 고개를 저었다.

“덕분에 연구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그럼 이만 실례할게요. 감사했습니다.”

더 이상 불쌍한 직원을 괴롭히는 건 무의미했다. 두 사람은 일단 크리스티를 빠져나왔다. 장박사는 도윤과 헤어지기 전, 크리스티에서 보았던 서류 가운데 직원에게는 차마 묻지 못했던 찜찜한 항목 하나를 언급했다.

“서류상으로 볼 때 나마타 해바라기의 존재가 처음 확인된 것은 1901년, ‘베른하임 죈’ 화랑이 파리에서 열었던 전시회야. 그때 작품을 내놓은 사람이 아메데 슈페네커라는 화상이고. 이 박사, 그 사람 이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아?”

장 박사의 말에 도윤이 고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1901년은 아니지만 나중에 고흐 그림의 위작 사건에 연루된 적이 있는 사람이에요. 예전에 박사 논문 준비할 때 이름을 본 기억이 있어요.”

“그럼 슈페네커가 처음부터 고흐의 위작을 전시회에 출품했을 수도 있겠네?”

“아마도요. 하지만 그게 의심의 계기는 될 수 있어도 위작의 증거라고 주장하기는 어려워요. 일단 그 부분은 내일 내셔널 갤러리에 가보고 나서 다시 검토하죠.”

두 사람은 다음날 내셔널 갤러리를 함께 방문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곳에 있는 열다섯 송이 해바라기가 바로 다른 두 레플리카의 원본이었다.

이튿날, 장박사와 도윤은 내셔널 갤러리 직원의 협조를 받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열다섯 송이 해바라기에 관련된 서류를 열람했다. 그곳의 큐레이터 중에 장 박사의 대학원 동창이 있었기 때문에 크리스티보다는 편한 분위기 속에서 작업할 수 있었다.

사실 도윤은 그곳에서 레플리카의 원본을 확인하는 것 외에는 큰 의미가 있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결국 진위 여부를 가름하는 관건이 되는 서류는 암스테르담의 고흐 박물관에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류를 검토하던 장 박사가 뜻밖의 문서를 꺼내들었다.

“이 박사, 이것 봐. 고흐의 열다섯 송이 해바라기가 복원을 받은 적이 있는데?”

“복원이요? 아니 그린 지 얼마 되지도 않는 그림을 벌써 복원해요?”

“그러게. 당시 내셔널 갤러리가 가지고 있던 그림이 손상을 입었었던 모양이야. 여기 봐. 복원을 받은 연도가 1900년. 복원한 사람이 ……, 에밀 슈페네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에밀 슈페네커. 한때 고갱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사람이자, 본인 역시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을 비롯한 몇몇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될 정도로 실력 있는 화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에밀 슈페네커는 나중에 고흐의 위작 사건에 연루되었던 화상 아메데 슈페네커의 친형이었다.

“그럼 이거…….”

장 박사가 말끝을 흐리자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셔널 갤러리의 해바라기가 복원을 받은 게 1900년이고, 나마타 해바라기가 처음 세상에 등장한 건 그 다음 해인 1901년이에요. 에밀이 그림을 복원하려면 당연히 그걸 자기 작업실로 가져갔을 테니까…….”

“그때 그림을 베꼈을 수도 있겠군. 하지만 자기 자신도 화가를 꿈꾸는 사람이 왜 이제 막 유명해지고 있는 다른 화가의 그림을 모사했을까? 설마 연습을 위해서?”

“글쎄요? 에밀은 고갱의 추종자였고, 화풍도 그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 사람이 새삼 고흐의 그림으로 연습을 하려고 했을까요?”

“그럼 처음부터 동생하고 공모해서 위작으로 팔아먹으려고 했다는 거야?”

도윤은 그 말에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심 그럴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했다. 에밀 슈페네커는 그림 실력과는 무관하게 다른 의미에서 유명한 화가였고, 자신이 읽은 책이 완전한 허구가 아니라면 당시에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상당히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작가 서머싯 몸은 1919년에 ‘달과 6펜스’라는 소설을 출판했다. 이 책은 고흐가 애증을 가지기도 했던 화가 고갱을 모델로 한 것이었는데, 소설 속의 주인공 ‘스트릭랜드’가 바로 고갱이었다. 소설에서 스트릭랜드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그를 성심껏 도와줬던 ‘스트로브’의 부인과 불륜을 저지르는 배은망덕을 저지르고 결국 상대의 가정을 파괴한다. 그 스트로브의 실제 모델이 문제의 인물 에밀 슈페네커였다.

“1900년 당시의 에밀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았을 거예요. 부인과 이혼하면서 가정은 풍비박산이 난 상태였고, 화가가 되겠다고 그림을 그리고는 있었지만 전시할 수 있는 기회도, 그림을 사주겠다는 사람도 거의 없었을 테니까요.”

도윤의 얘기에 장 박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주 없는 건 아니었겠지. 동생이 화상이었으니까. 마치 고흐의 동생 테오처럼 말이야.”

“하지만 그 동생은 테오처럼 정직한 화상이 아니었죠.”

“에밀도 고흐처럼 독창적인 화가는 아니었고.”

장 박사도 이제는 나마타 해바라기가 위작이라는 쪽으로 심증을 굳힌 게 분명했다.

도윤은 처음 나마타 보험의 해바라기를 봤을 때부터 그것이 위작임을 알아봤다. 문제는 자신의 감정 결과를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들이었는데, 이만하면 정황 증거는 충분히 모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제 남은 문제는 하나였다.

“결국 암스테르담으로 갈 거야?”

장 박사가 약간 걱정 섞인 눈빛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도윤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위작으로 의심되는 정황 증거가 백 가지가 있다고 해도, 그게 진작임을 입증하는 객관적인 증거 하나만 못해요. 여기까지 왔으니까 마저 확인해야죠.”

“이왕 가는 거니까 일이 잘 되기를 바랄게. 고흐 미술관에서 협력을 잘 안 해주면 연락해. 여기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찾아볼 테니까.”

“고맙습니다. 서울에 오시면 제가 한 번 크게 대접할게요.”

그날 오후, 도윤은 최서라와 아쉽게 작별하고 곧바로 암스테르담 비행기를 탔다. 낮게 깔린 구름 너머로 하늘이 벌써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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