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10. 진흙 속의 진주>
‘트루쓰 앤 밸류’에서 우승하면서 도윤은 미국에서 잠깐 유명인이 된 적이 있다. 그러나 방송이 끝나자마자 그의 이름은 빠르게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혔고, 뉴욕을 벗어나면 거리를 마구 돌아다녀도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그의 이름이 한때나마 검색어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관심을 받은 것은 물론, 방송이 끝난 뒤에도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꾸준히 출연 섭외가 들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트루스 앤 밸류’ 판권을 샀던 KTV와 잠깐 인터뷰를 한 것 이외에는 방송 출연 요구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방송에 나가 사람들을 재미있게 할 자신이 없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정신적 여유가 없다는 게 가장 컸다. 그는 ‘트루쓰 앤 밸류’ 결승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현소 갤러리로 밀려드는 각종 감정 의뢰를 처리해야 했고, 나중에는 청파 갤러리의 의뢰를 받아 일본과 유럽 각지를 바쁘게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조금씩 잊혀가던 그의 이름이 다시 한 번 각종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사건이 터졌다. 2월에 있었던 소더비의 정기 경매 때문이었다.
[마크 로스코의 그림, 소더비 경매에서 2170만 달러에 낙찰. 이도윤 대박의 꿈 실현?]
[‘트루쓰 앤 밸류’ 우승자 이도윤 박사 청년 갑부 되다]
[걸어 다니는 로또 이도윤. 한 방에 200억 당첨]
각종 언론의 문화면은 물론이고 사회면과 경제면까지 도윤의 얼굴과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사람들은 그의 안목을 칭찬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행운을 시기했다. 덕분에 한국에서는 이제 버스나 전철을 타는 게 어려울 정도로 그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도윤은 결국 자가용을 구입했다. 옵션까지 포함해서 3000만 원대 국산 SUV였다.
“그래서 겨우 국산 SUV로 결정한 거예요? 외제 스포츠카가 아니라?”
그가 새로 뽑은 차를 본 석훈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집에서 외제 차 타는 사람은 엄마뿐이야. 아버지 차도 국산 세단인데 내가 외제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면 모양새 참 좋겠다.”
“그래도 형 돈 많이 벌었잖아요. 사람이 부자가 되면 거기에 맞게 사는 맛도 있어야죠.”
“재산은 우리 아버지가 나보다 더 많아. 현소 갤러리가 구멍가게인 줄 알아?”
석훈의 생각과는 달리 도윤이 차를 산 돈은 소더비 경매 수익금과는 무관했다. 그 돈은 따로 쓸 곳이 있어서 아직 미국 계좌에 고스란히 보관 중이었고, 새 차는 ‘트루쓰 앤 밸류’ 우승 상금을 털어서 구입한 것이었다.
“에이, 그래도 청년 갑부가 너무 쪼잔하다. 나 같으면…….”
“나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너야말로 착실히 돈 모을 생각이나 해. 이번에는 상사를 메다꽂거나 하지 말고 얌전히 오래 버텨라. 또 성질부리고 뛰쳐나오면 나도 더 이상 몰라.”
한국으로 돌아온 뒤, 도윤은 최수아 관장에게 넌지시 석훈의 취직을 부탁했다. 청파 갤러리는 상당히 큰 미술관이었고, 당연히 보안 팀이 존재했다. 마침 공채 기간이었기에 석훈은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본 끝에 UDT와 한성 옥션에서 근무했던 경력을 인정받아 채용될 수 있었다. 최종 면접에는 최수아 관장이 직접 참여했다.
차를 구입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도윤은 다시 고베로 향했다.
* * *
도윤이 권춘강을 찾았을 때, 그는 이미 퇴원해서 집에 머물고 있었다. 아직 뛰어다니는 건 곤란했지만 그래도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다시 만난 권춘강은 도윤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재회를 크게 반가워했다.
“한국 정부에서 입국 금지를 풀어주었어. 내가 죽을 때까지 일 년에 두 번씩 서울을 왕복할 수 있는 비행기 표도 제공해 주기로 했고. 이게 다 자네 덕분이야.”
비행기 표는 아마 겸재의 그림에 대한 정부 차원의 보상일 것이다. 10억 원이 넘는 문화재를 돌려받은 것에 비하면 정말 소소한 보상이라고밖에 할 수 없지만 당사자인 권춘강은 그 정도만으로도 크게 만족한 듯했다.
아오키 씨는 도윤을 보자마자 한시름 덜었다는 표정부터 지었다. 그동안 고가의 보물로 둔갑한 그림을 옆에 두고 사느라 이래저래 걱정이 많았던 모양이다.
“자네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네. 소문 들었어. 이번에 큰돈을 벌게 됐다면서? 그럼 이 그림은 자네가 사는 건가?”
도윤의 경매 소식은 일본에서도 잠깐 화제가 되었다. 그 때문에 아오키 씨는 당연히 도윤이 자신의 그림을 사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네. 결국 마땅한 구매자를 찾지 못해 그냥 제가 구입하기로 했어요. 전에 말씀드린 대로 10억 엔에 사겠습니다. 정확히는 천만 달러예요.”
“자네가 돈을 많이 벌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정말 그 돈을 줘도 괜찮겠어?”
“더 달라고 하시면 곤란하겠지만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습니다.”
“정말 고맙네. 그럼 얼른 이 그림 가지고 가게. 그래야 나도 좀 마음 편히 살지.”
미안하지만 천만 달러짜리 그림을 사고파는 게 백화점에서 가방 하나 사는 것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도윤은 아오키 씨에게 그 점에 관해서 한국에 있을 때부터 미리 전화로 양해를 구했다. 이제는 그걸 실천에 옮길 때였다.
고베에 도착한 다음날, 아오키 씨는 도윤과 함께 미리 예약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림은 단단히 포장한 뒤, 미리 준비한 케이스에 넣어서 아오키 씨가 직접 들고 갔다. 일단 그림을 뉴욕까지 들고 간 뒤 거기서 거래를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돈을 일본에서 지불하면 아오키 씨의 그림은 졸지에 천만 달러짜리 미술품이 된다. 미국에서 일본으로 그만한 거액을 송금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지만, 무엇보다 그럴 경우 고가의 미술품으로 돌변한 그림을 다시 해외로 반출하는 게 굉장히 까다로운 일이 된다.
반면에 아직 거래를 하지 않은 그림을 본인이 직접 미국으로 들고 갈 경우, 그건 평범한 기념품이나 장식물에 지나지 않는다. 아오키 씨의 해바라기는 아직 입증된 고가의 미술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히 복잡한 신고 절차를 피할 수 있다.
이처럼 경매 회사나 미술관과 거래하는 경우와는 달리, 개인 대 개인이 고가의 미술품을 거래하는 건 굉장히 복잡한 일이다. 도윤은 그 복잡한 일을 간단하게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머리를 짜냈다. 그 과정에서 소더비 측의 도움도 요청했다.
뉴욕 공항에는 까미유 씨가 변호사를 대동하고 미리 마중 나와 있었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그녀가 몰고 온 차에 올라탄 도윤과 아오키 씨는 곧바로 예약한 호텔로 직행했다. 진짜 거래는 그곳 객실에서 이루어졌다.
뉴욕과 고베에 모두 지점을 두고 있는 큰 일본계 은행에 이미 아오키 씨의 계좌가 개설되어 있었다. 도윤은 아오키 씨와 고흐의 해바라기를 사고파는 매매 계약서에 사인을 한 뒤 곧바로 미국에 있던 자신의 돈 천만 달러를 아오키 씨의 뉴욕 계좌로 송금했다. 그리고 그 돈은 입금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아오키 씨의 고베 계좌로 송금됐다.
“자, 이제 거래는 완료됐어요. 그럼 이 그림은 제가 가지고 가도 되는 거죠?”
카미유는 케이스에서 나온 고흐의 다섯 송이 해바라기를 처음 본 순간부터 조금이라도 빨리 그것을 소더비로 가져가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사진으로만 남아 있던 고흐의 그림과 똑같았다. 그 자신도 한 명의 전문적인 감정가인 까미유는 이미 자기 앞에 놓인 그림이 고흐의 진품이라는 걸 확신하는 눈치였다.
“아직이요. 이제 저와 소더비 사이에 계약을 체결해야지요. 그래야 저도 안심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 아니에요.”
도윤은 소더비 변호사가 제시한 계약서를 꼼꼼하게 확인한 뒤 즉석에서 몇 가지 조항을 수정해서 사인했다. 그제야 까미유는 고흐의 해바라기를 챙길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외부 인사까지 동원한 정밀한 감정과, 진작임이 확인될 경우에 실시할 특별 경매였다.
“감정은 아마 길어야 한 달 안으로 끝날 거예요. 이 박사 부탁대로 엑스레이와 성분 검사까지 포함해서 철저한 검증이 이루어질 거예요. 이 그림이 그 모든 검증을 통과할 경우, 전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폭탄이 쾅 하고 터지는 거죠. 저는 벌써부터 그 날이 기대돼요.”
흥분 때문에 얼굴이 발갛게 변한 까미유를 쳐다보며 도윤이 빙그레 웃었다.
“저 그림이 만약 진작으로 판명되면 예상 낙찰가가 얼마 정도 될까요?”
그 말에 까미유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 박사는 뭐랄까, 세상에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재주가 있어요. 나마타 해바라기가 일본 내에서 팔리기는 했지만 수집가나 미술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그 그림이 위작이라는 견해가 팽배해요. 그런 상황에서 불타 없어진 줄 알았던 또 다른 해바라기가 짠하고 등장했다고 생각해 봐요. 나마타 해바라기 때문에 헛물을 켰던 수집가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 걸요? 저는 최소한 8천만 달러 이상까지는 충분히 올라갈 거라고 봐요.”
그러면 소더비가 가져가는 중개 수수료만 천만 달러가 넘게 된다. 일이 잘 성사될 경우 이 일을 처음부터 주도했던 까미유의 소더비 내 위상이 엄청나게 올라가는 것은 물론이고, 회사로부터 적지 않은 보너스까지 챙길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흥분할 만한 일이었다.
“그림 판매자가 누구인지는 절대 비밀입니다. 그건 확실히 지켜주세요.”
“그야 물론이죠. 무덤까지 가지고 가겠습니다.”
까미유는 자신의 입에 손으로 지퍼를 채웠다. 경매에서 판매자나 매입자의 신분을 밝히지 않는 것은 흔한 일이니까 경험 많은 소더비가 알아서 잘 처리할 것이다.
도윤은 아오키 씨에 대한 마지막 선물로 미국의 주요 명소를 돌아볼 수 있는 초호화 개인 관광 상품을 예약해 주었다. 그 때문에 또 몇 만 달러가 깨지기는 했지만, 그게 도윤으로서는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였다. 그는 여전히 그림을 너무 싼값에 매입했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 * *
도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며칠 후, 부모님과 함께 오랜만에 외식을 했다. 식사가 끝나고 디저트가 나오자 아버지인 이세준이 조용히 물었다.
“아직도 외국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으냐?”
도윤은 순간적으로 움찔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뇨. 미래그룹 최 회장님 의뢰는 다 끝났어요. 당분간은 개인적인 볼일도 없고요.”
말을 하면서도 내심 미안했다. 그동안 밖으로 싸돌아다니기만 하면서 현소 화랑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다. 노느라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 달 가까이 부모님 일을 돕지 못한 건 사실이다. 이세준은 민망한 표정을 짓는 아들을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구나. 그럼 너한테 화랑 일을 좀 맡겨도 되겠냐?”
“물론이죠. 뭐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세요?”
“5월 중순쯤 기획전을 하나 열 계획이다. 이름이 알려진 중견 화가들 말고 신인들을 대상으로 한 기획전이야. 네가 거기에 어울리는 화가와 작품들을 선정해줬으면 좋겠다.”
“어떤 성격의 기획전인데요? 장르는요?”
“현대 한국화로 할 생각이다. 김 실장한테도 얘기해 놨으니까 둘이서 잘 의논해 봐. 후보들을 추려놓기는 했는데 네가 화가와 작품을 선정하면 섭외는 김 실장이 도와줄 거야.”
이세준이 언급한 김 실장은 김하선 실장을 가리킨다. 오래 전 오광춘과 함께 자신이 만든 위작을 들고 현소 화랑을 방문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김하선은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오광춘과 결별했다. 그러자 소식을 들은 이세준이 그의 재주를 아깝게 여겨 현소 화랑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그는 그 뒤로 지금까지 현소에서 한국화의 감정과 전시 기획을 맡고 있었다.
김하선은 현소 화랑에서 부모님 다음으로 도윤과 가까운 사람이었다. 도윤이 신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눈치 채지 못했지만 그의 안목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잘 알고 있었다. 도윤은 말이 많지 않은 대신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그를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다음날, 도윤은 김하선의 책상으로 찾아갔다. 그는 환한 웃음으로 도윤을 맞았다.
“이 팀장 어서와. 요즘 많이 바빴지?”
“아저씨가 이 팀장이라고 부르니까 어색해요. 그냥 도윤이라고 불러주시는 게 편한데.”
그러자 김하선이 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릴 때야 그렇게 불렀지만 이제 정식으로 화랑에서 일하게 됐으니까 그래서는 안 되지. 그리고 이 팀장도 여기서는 나한테 아저씨라고 하면 안 돼. 사석에서는 상관없지만.”
“넵. 김 실장님. 아버지가 아저씨, 아니 실장님하고 같이 기획전에 초대할 화가하고 작품을 골라보라고 하시더라고요. 후보자를 선정해 놓으셨다면서요?”
도윤의 말을 들은 김하선이 책상 서랍에서 USB 하나를 꺼내서 건넸다.
“지난 몇 년 동안 화단에 새로 등장한 신인 화가와 작품들을 정리한 파일이야. 각 화가들의 이력과 연락처는 물론이고 이번 달에 열릴 합동 전시회의 일정과 장소를 정리한 리스트도 안에 있어. 일단 그걸 보고 괜찮다 싶은 걸 골라 봐.”
“이번 달에 합동 전시회가 많이 열려요?”
“응. 이제 곧 봄이잖아. 작년 한 해 동안 작업한 결과를 사람들 앞에 내놓는 거지.”
젊은 화가들은 개인 전시회를 열 능력이 안 된다. 그래서 여러 화가들이 모여서 장소 대여와 전시를 함께 하는 합동 전시회를 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식으로 조금씩 자신을 알리고 경력을 쌓는 것이다.
“그럼 그 중에 괜찮은 화가나 작품이 있으면 우리 화랑에 초대해서 개인전을 열어주는 건가요?”
“그래. 대표님은 일 년에 두세 번 이상 꼭 신진 화가를 위한 전시회를 여셔. 그게 화랑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라는 게 대표님하고 사모님, 아니 서 실장님 생각이잖아.”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화랑은 근본적으로 작품을 전시하고 팔아서 돈을 버는 곳이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예술가를 발굴해서 소개하는 기능도 수행한다. 이세준과 서연희 부부는 유난히 그 부분에 신경을 썼는데, 젊은 신진들이 계속 나오지 않으면 화단이 정체될 수밖에 없고, 정체된 화단에서는 창의적인 예술이 숨 쉴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었다.
“알았어요. 그럼 이걸 가져가서 먼저 내용을 살펴볼게요. 그래도 작품을 확인하려면 역시 직접 실물을 봐야 할 테데, 실장님도 나중에 같이 가실 거죠?”
“그러자. 젊은 사람들 작품을 보면 기분도 새로워지고 좋지.”
도윤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 컴퓨터에 USB를 꼽고 거기에 있는 그림들을 하나둘 살펴보기 시작했다. 김하선이 미리 골라놓은 화가는 모두 여섯 명. 다들 이십대 중반에서 삼십대 초반의 젊은 화가들이었다.
현대 한국화란 쉽게 말해 동양화적인 수단이나 기법을 이용해서 그린 현대적 그림을 가리킨다. 그림의 형식이나 내용에 전통적인 제약이 없는 것이 특징인데, 수묵이나 유채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지만 현대 도시의 풍경을 화폭에 담고 명암이나 원근법도 사용한다. 구도나 형식이 완전히 서양화 같은 느낌이 드는 그림이 있는가 하면 먹만 이용해서 자동차를 사진처럼 그려내는 화가도 존재했다. 심지어 유화 물감을 사용하기도 했다.
“문제는 아무리 노력해도 진정으로 창의적인 시도를 한다는 게 너무 어렵다는 거지.”
도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모니터를 주시했다. 후보로 선정된 화가와 작품들은 김하선의 안목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다들 훌륭했다. 기존의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이만큼이라도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사진만 봐서는 이거다 하고 가슴에 탁 와 닿는 게 없었다.
“역시 그림은 사진이 아니라 눈으로 직접 봐야겠지?”
도윤은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열리고 있는 합동 전시회부터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우선 자신이 직접 돌아다니면서 눈으로 확인하고, 후보가 좁혀지면 다시 김하선과 함께 직접 보고 의논해서 초대할 화가를 선택할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