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도윤이 손을 거든 덕에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에 흩어졌던 물건들이 모두 수습됐다. 오윤수는 붓과 물감 그릇을 비롯한 몇 가지 물건들을 백팩에 집어넣었다. 그런 뒤 망가진 캠핑용 테이블과 합판, 접이식 의자 등은 커다란 여행용 캐리어 안에 챙겼다. 그때, 속을 드러낸 캐리어 안의 몇 가지 물건들이 도윤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건 뭐에요? 가방 안에 둘둘 말려 있는 광목천 말이에요.”
도윤이 자리를 정리하는 오윤수에게 지나가듯이 물었다. 그는 잠깐 움찔하더니 별거 아니라는 듯이 태연히 말했다.
“그냥 천이에요.”
“그냥 천이요? 얼핏 보니까 먹 자국이 있던데 혹시 그림 아니에요?”
대답이 없었다. 오윤수가 캐리어 손잡이를 빼더니 그냥 자리를 떠나려고 하자 도윤이 슬쩍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혹시 점심 먹었어요?”
“네?”
“밥 먹었냐고요. 어차피 오늘은 더 이상 그림 그리기 힘들 것 같은데 어디 가서 밥이나 같이 먹죠? 저도 아직 식사 전인데.”
역시 대답이 없다. 하지만 대뜸 거절하지 않는 걸 보니 배가 고프긴 한 모양이었다. 도윤이 씩 웃으며 그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갑시다.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하루 공쳤다고 밥까지 굶을 필요는 없잖아요. 제가 살게요. 대신 나중에 초상화 하나 그려주기. 어때요?”
오윤수가 잠깐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잽싸게 캐리어 손잡이를 낚아챈 도윤이 먼저 앞장섰다. 지난 며칠 동안 대학로를 방황하느라 이 근처 맛집은 대충 꿰고 있었다.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물어봤자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럴 땐 무조건 고기지. 일단 가장 가까운 한식집으로 향했다. 돼지갈비와 된장찌개가 맛있는 집이었다.
도윤은 주인에게 부탁해서 아예 방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음식을 주문하고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다시 한 번 캐리어에 있는 그림 이야기를 슬쩍 꺼냈다.
“아까 그거 그림 맞죠? 아시겠지만 제가 그림 보는 게 직업이잖아요. 궁금해서 그런데 한 번 보여줄 수 있어요?”
신발을 벗고 방바닥에 앉자 아까보다는 긴장이 조금 풀렸나보다. 오윤수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더 이상 말을 씹지는 않았다.
“남에게 보여줄 만한 그림이 아니에요.”
“에이, 너무 겸손하시네. 아까 초상화 그릴 때 보니까 평소에도 굉장히 연습을 많이 하는 것 같던데. 기본기도 아주 탄탄하시고. 그러지 말고 잠깐만 보여주세요.”
도윤이 거듭 부탁했지만 오윤수는 캐리어를 열지 않았다. 대신 뭔가 망설이는 듯하더니 약간은 씁쓸한 느낌이 드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기본기 탄탄하지 않아요. 그림을 제대로 못 배웠거든요.”
“그림 전공한 거 아니었어요? 제가 볼 때는 제대로 배우신 것 같던데.”
“아니에요. 미대에 잠깐 다니기는 했지만 졸업을 못했어요.”
이번에는 도윤이 움찔했다. 내가 공연히 남의 아픈 곳을 찌른 건가? 하지만 붓을 놀리는 솜씨라던가 대상의 특징을 재빨리 잡아내는 눈썰미는 절대로 그냥 아마추어가 아닌데? 그는 밀고 나가기로 했다.
“졸업을 못하셨구나. 하지만 그럼 어때요? 실력이 이미 프로인데. 그림을 그리는데 꼭 학벌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세상에는 김환기 화백만 있는 게 아니라 박수근 화백 같은 분도 계시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박수근 화백의 그림을 더 좋아해요.”
“박수근 화백은 저도 좋아해요. 하지만 그 분은 천재죠. 얘길 들어보면 노력도 엄청 하신 것 같고. 저 같은 게 감히 그런 분하고 비교될 수 있나요.”
김환기는 해방 전에 일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한국 전쟁이 끝난 뒤에는 부인과 함께 파리에 가서 4년 동안 그림을 그렸고, 돌아온 뒤에는 홍익대학교 교수를 하다 다시 뉴욕으로 훌쩍 떠났다. 그는 그곳에서 무려 십 년을 절치부심하다 결국 돌아오지 못하고 사망했다. 오늘날 그의 이름을 대표하는 걸작들의 상당수가 뉴욕에 있는 동안 완성된 것들이다.
반면에 박수근은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다. 일본 강점기 때 조선 미술 전람회에 입선할 정도로 솜씨를 인정받았지만 정작 해방 후에는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면서 생계를 이어야 할 정도로 가난에 시달렸다. 그의 그림은 김환기와 함께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명작에 속하지만 정작 가족들은 그 혜택을 보지 못했다. 생계를 위해 생전에 다 팔아치웠기 때문이다.
“그거야 모르죠. 아무튼 오윤수 씨도 혼자만 보려고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을 거 아니에요. 자꾸 숨기려고만 하지 말고 한 번 꺼내보세요. 친구한테 자랑한다고 생각하시고. 네?”
도윤은 고기를 굽고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해서 그림을 보여 달라고 졸랐다. 사람을 상대로 영업할 때는 가급적 식사를 대접하며 설득하는 게 좋다. 몸이 편하고 배가 부르면 대부분 마음이 너그러워지기 때문이다. 완강히 버티던 오윤수도 식사가 끝날 때쯤 되자 결국 마음이 흔들렸다.
“정말 제 그림을 보고 싶으세요?”
“물론이죠. 제가 누군지 잊으셨어요? 감정사 앞에서 그림을 숨기는 건 범죄라고요.”
도윤이 너스레를 떨자 오윤수가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루 종일 색깔 없던 표정이 처음으로 깨지는 순간이었다.
음식 그릇들이 나가고 깨끗하게 치워진 상 위로 수정과 두 개와 간단한 과일 몇 조각이 올라왔다. 도윤이 그것들을 한쪽으로 치우자 오윤수가 비로소 캐리어를 열었다. 잠시 후 표구나 배접이 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광목천이 텅 빈 식탁 위를 덮었다.
사진에서 봤던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여전히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듯한 문양, 이른 새벽 짙은 안개가 허공에 군데군데 뭉쳐져 있는 듯한 느낌, 분명히 무언가를 보고 있는데 사실은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듯한 망연함이 도윤을 사로잡았다.
“이건 뭘 그린 것…, 아니 뭘 표현한 건가요?”
그림이 주는 느낌 그대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광목천을 쳐다보던 도윤이 간신히 입을 열어 물었다. 오윤수는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참 동안 뭔가를 망설이며 사람 속을 답답하게 만들던 그가 중얼거리듯 내뱉은 말이 도윤을 더욱 황당하게 만들었다.
“아직 다 그린 게 아니에요. 이건 밑 작업만 한 거예요.”
“이게 밑 작업이라고요?”
“네. 엷은 먹을 묻힌 솜방망이로 광목천을 군데군데 두드린 다음에 한 번 물에 빨아낸 거예요. 천이 마른 뒤에 같은 작업을 여러 번 되풀이하다보면 원하는 모양이 나와요.”
“그럼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항상 그렇게 먹물을 들이고 천을 빠는 작업을 반복해요?”
“꼭 그런 건 아니에요. 뭘 그릴 것이냐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을 쓰거든요. 어떨 때는 천을 구겨서 먹물을 푼 물에 담갔다가 꺼내 말린 뒤 다시 표백제로 색을 빼내기도 해요. 천을 말아서 먹물이 든 대야에 담근 다음에 위로 빨아올려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리기도 하고요. 크로마토그래피 기법을 활용한 거예요.”
“그런 게 다 밑 작업이면 나중에 그 위에 다시 그림을 그린다는 뜻인가요?”
“그림을 그린다는 게 붓으로 뭔가를 그리는 걸 말씀하시는 거면 그럴 때도 있고 안 그럴 때도 있어요. 가끔은 밑 작업을 안 하고 붓으로만 그림을 그리기도 하거든요. 어떤 때는 천을 펼치지 않고 빨래를 쥐어짜듯 꼬아놓고서 그릴 때도 있어요.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을 쓰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그린다고 한 가지만 꼭 집어서 말하기가 어려워요.”
“잠깐만요. 천을 꼬아놓고도 그린다고요?”
“네. 그림을 꼭 평평한 화면에다가만 그려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요.”
물론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너무 특이하잖아? 도윤은 자신이 사진으로 보았던 구름 문양이 설마 완성된 그림이 아니라 단지 밑 작업에 불과한 것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괜찮으면 다른 것들도 좀 볼 수 있을까요?”
오윤수의 캐리어에는 아직도 둘둘 말린 광목천이 여러 개 더 있었다. 하나를 보여줘서 그럴까? 오윤수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선선히 다른 천들을 꺼내서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이거 두 개는 전봇대나 쇠기둥 같은 데 말아야 모양이 제대로 나오니까 지금 보지 마세요. 다른 것들은 지금 보셔도 될 거예요.”
“그림을 전봇대에 말아요? 왜요?”
“그림을 꼭 벽에 걸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기둥을 감싸는 그림도 있을 수 있고, 깃발처럼 펄럭여야 제멋이 나는 그림도 있잖아요. 전시장에서 그림들이 죄다 벽에 붙어 있는 걸 보면 왠지 관객이 주인공이고 그림은 그냥 장식 같은 느낌이 들어요. 가끔은 그림이 관객들을 밀어내고 공간의 중심에 당당하게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회화라기보다는 거의 설치 미술에 가깝잖아? 도윤은 오윤수의 미적 세계가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넓고 다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오윤수가 제외한 것들을 빼고 서너 점의 작품, 아니 밑그림을 더 보았다. 두 점에서는 처음 봤던 것처럼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다른 것들은 주장하는 바의 종류가 완전히 달랐다.
하나의 천에는 복잡한 기호나 도형이 화면 가득히 빼곡하게 맞물려 있었다. 다른 천에는 쐐기나 날카로운 칼 조각처럼 생긴 문양들이 마치 가시덤불처럼 복잡하게 얽힌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하나같이 형체와 여백의 경계가 흐릿하게 짓뭉개져 있거나 뿌옇게 번져나가는 형태로 묘사되어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꽤 긴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그림을 감상한 도윤이 다시 한 번 물었다.
“아까도 물었지만 이 그림들로 표현하려는 게 뭐예요?”
오윤수는 또다시 머뭇거리면서 한참 뜸을 들인 뒤에야 대답을 내놓았다.
“제가 고민하는 건 뭘 표현할 것이냐가 아니라 뭘 표현하지 않을 것이냐는 거예요.”
“뭘 표현하지 않을 지를 고민한다고요?”
“네. 처음 그림을 배울 때는 뭐든지 대상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데만 신경을 썼어요. 선생님들한테도 잘 그린다고 칭찬을 많이 받았고요. 근데 시간이 갈수록 그게 싫어지더라고요.”
“대상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건 좋은 거 아닌가요? 드로잉 스킬이 뛰어나다는 뜻이니까.”
도윤의 말에 오윤수가 마른 웃음을 웃었다.
“화가가 아니라 환쟁이한테 좋은 거겠지요. 대상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싶으면 붓이 아니라 사진기를 손에 들면 돼요. 제가 이런 말 하면 건방지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대상의 형체에 집착하면 오히려 본질을 놓치게 돼요. 저는 본질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상으로부터 다가오는 느낌 그 자체를 표현하고 싶어요.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요.”
“대상의 본질은 외형에 있지 않다, 뭐 그런 건가요?”
“글쎄요.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분명한 건 정확한 묘사에만 신경을 쓰다 보면 그림을 그리는 게 재미가 없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눈에 빤히 보이는 것들의 형체를 일부러 짓뭉개는 중이에요. 그럴 때 오히려 느낌이 살아나거든요. 이러다 또 나중에는 다시 형체를 그리는 게 재밌어질지도 모르죠. 한 번 변했으니까 나중에 다시 변할 수도 있잖아요.”
처음에는 약간 어눌해 보이기까지 하던 오윤수의 말이 뒤로 갈수록 점점 빨라졌다. 이 친구 재밌네. 도윤은 그가 말을 다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 슬쩍 화제를 바꿨다.
“미대에 입학했었다고 했죠? 몇 학년까지 다녔어요?”
“2학년이요. 처음부터 욕심이었죠.”
“욕심이요? 그게 왜 욕심이에요?”
“돈이 없었어요. 엄마 혼자 저를 키우다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돌아가셨거든요. 처음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버텼는데 나중에는 도저히 학비며 생활비가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군대에 다녀온 뒤에 그냥 학교 때려 치고 초상화 화가로 나섰어요.”
“거리 화가 말이죠? 그거 하니까 돈이 좀 되기는 해요?”
“사람마다 다르기는 한데, 제 경우에는 편의점이나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것보다는 나아요. 일주일에 오일 정도 일하면 밥 먹고 고시원 월세 낼 돈이 나와요. 아껴 쓰면 화구도 살 수 있고요. 쉬는 날에는 친구 화실에 빌붙어서 그리고 싶은 걸 그려요.”
“그래도 그림을 그만 두지 않은 걸 보면 나름대로 그게 재미있나 봐요?”
“아직까지는요. 잘 하는 게 이것밖에 없기도 하고요. 이거 안 하면 또 편의점 아르바이트나 노가다를 해야 하잖아요. 그러느니 차라리 초상화를 그리는 게 낫죠.”
도윤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어렵게 사는 사람이 어디 오윤수 하나뿐이랴. 중요한 건 그가 어렵게 사는 ‘천재’라는 점이었다. 도윤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 보여줬던 게 전부 밑그림이라고 했는데, 그럼 혹시 완성된 작품들도 있어요?”
“많죠. 고시원 제 방에 잔뜩 있어요. 친구 화실에 맡겨놓은 것도 있고. 사실 그것 때문에 고민 중이에요. 잠잘 자리가 비좁기도 하고, 친구한테도 눈치가 보이고.”
“그거 좀 보여줄 수 있어요?”
“어, 그러려면 제 방에 가야 하는데, 거기 지금 많이 비좁고 지저분해요.”
“모르셨구나. 제가 원래 비좁고 지저분한 거를 아주 좋아해요. 갑시다.”
도윤은 오윤수를 도와 식탁 위에 펼쳐놓았던 그림을 챙겼다. 두 사람은 그길로 식당을 나와 택시를 탔다. 무려 한 시간이 넘게 달려 도착한 오윤수의 고시원 방은 주인의 말마따나 비좁고 지저분했다. 도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곳에서 한 시간이 넘게 머물면서 방안 가득 쌓여 있는 완성작들을 꼼꼼히 살펴봤다.
‘여기가 바로 보물 창고네.’
입 밖으로 저절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는 오윤수와 담판을 졌다.
“괜찮으면 이거 제 사무실로 가져가도 될까요? 화랑 분들한테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사진을 찍어가도 되긴 하지만 이왕이면 실물을 보여드리는 게 낫거든요.”
오윤수는 도윤이 현소 화랑에서 일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덕분에 얘기하기가 편해졌다. 도윤은 현소 화랑에서 신인 작가를 위한 기획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처음에는 무심코 귀를 기울이던 오윤수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몹시 당황했다.
“잠깐만요. 그러니까 제 그림으로 기획전을 하겠다는 건가요? 길거리 초상화 화가의 그림으로 초대전을 한다고요?”
“아직 결정된 거는 아니에요. 저 혼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건의는 해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이 그림들이 필요해요.”
오윤수는 처음에는 놀라다가, 그 다음에는 의심했고, 나중에는 겁에 질렸다. 데뷔도 하지 않은 화가가 대뜸 기획전에 초대된다는 건 사실 일반적인 일이 아니기도 했다. 도윤은 급기야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그를 간신히 설득해서 그림을 옮겨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는 곧바로 김하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저씨, 아니 김 실장님. 제 책상 오른쪽 서랍을 열어보시면 차 키가 있거든요. 문자로 주소를 찍어드릴 테니까 죄송하지만 제 차를 몰고 여기로 좀 와주시겠어요?”
도윤은 김하선에게 자초지종을 간단히 설명하고 전화를 끊었다.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오윤수는 여전히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짙게 배인 눈빛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윤은 확신을 가졌다. 방안에 널려 있는 그림들에서 환하게 쏟아져 나오는 빛들이 그 증거였다. 오윤수는 진흙 속에 파묻혀 있는 진주다. 그렇다면 이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진주에 묻은 진흙들을 닦아내서 사람들 앞에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