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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70화 (70/300)

70화

소더비는 1744년에, 그리고 크리스티는 1766년에 각각 런던에서 설립되었다. 미국인이 대주주가 되면서 뉴욕으로 본사를 옮긴 소더비와는 달리 크리스티 본사는 여전히 런던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 소유주는 프랑스 사업가인 프랑수아 르보로 바뀐 지 오래다. 르보가 크리스티 주식을 전량 매입하면서 유서 깊은 경매 회사를 개인 소유로 만든 것이다.

“도깨비장난도 아니고,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사람을 오라 가라 하는 거지?”

호텔 로비에 들어서면서도 드레스너 사장은 불길한 느낌을 떨치지 못했다. 불과 두 시간 전에 크리스티의 실소유주인 프랑수아 르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런던 외곽에 있는 한 건물로 급히 오라는 연락이었다. 자가용을 이용하지 말라는 이상한 주문이 덧붙여졌다.

급히 그곳으로 달려간 드레스너는 도착하자마자 다시 전화를 받았다. 계획이 바뀌었으니 이번에는 런던 중심가에 있는 최고급 호텔의 스위트룸으로 오라는 말이었다. 무슨 똥개 훈련을 시키는 것도 아니고 은근히 기분이 나빴지만 다시 방향을 돌려 조금 전 이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막상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 짜증보다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설마 본사를 느닷없이 파리로 옮기겠다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미치광이 르보라도…….”

불안했다. 프랑스에 있어야 할 르보 회장이 사전 연락도 없이 갑자기 런던에 왔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기행을 일삼는 미치광이 갑부라는 별명이 붙어 있기는 해도, 그는 프랑스에서 내로라하는 사업가였다. 겉으로는 충동적인 것처럼 보이는 그의 결정들이 사실은 면밀한 조사와 치밀한 계산 끝에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을 드레스너는 잘 알고 있었다.

“어디서 큰 경매 건이라도 물어온 건가?”

그건 아닐 것이다. 사업에 관한 얘기라면 자신을 호텔로 부르지 않고 르보가 직접 크리스티 본사로 찾아왔을 테니까.

“혹시 날 자르려고?”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럴 거면 왜 이렇게 사람을 왔다 갔다 하게 만들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상대가 다른 사람도 아닌 르보 회장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였다. 그는 상대를 놀리면서 뺨을 때리는 걸 좋아하는 변태였다.

하지만 노크를 하자마자 열린 스위트룸의 내부가 눈에 보이는 순간, 드레스너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내내 했던 수많은 예측이 모두 빗나갔음을 직감했다. 방 안의 거실 소파에 다니엘 로스차일드가 앉아 있었다. 더구나 거실 주변으로 건장한 체격의 경호원들이 무려 다섯 명이나 보였다. 이건 또 뭐지? 로스차일드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들어와서 앉게.”

문 앞에서 멍하니 서 있던 드레스너는 르보의 말을 듣고서야 엉거주춤 방안에 발을 디뎠다. 그는 르보에게 악수를 청하기 위해 손을 내밀다가 중간에 멈췄다. 차갑게 내려앉은 눈빛. 상대는 인사나 주고받기 위해 자신을 부른 게 아니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습니다, 회장님. 연락도 없이 런던에는 어쩐 일…….”

르보가 권하는 대로 자리에 앉으면서도 드레스너는 억지로 태연한 척 하려 애썼다. 그러나 그는 결국 중간에 말을 삼키고 말았다. 그가 엉덩이를 소파에 붙이자마자 방 안에 있던 경호원들이 다가오더니 순식간에 주위를 에워쌌기 때문이다.

“이게 뭐죠? 설마 제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이러시는 겁니까?”

드레스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자 르보가 상석에 앉으면서 씩 웃었다.

“맞아. 지금부터 몇 가지 물으려고 하는데, 중간에 자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라도 하면 내가 좀 민망하거든. 미리 일러두지만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심문이라도 하겠다는 뜻입니까? 궁금한 게 있으면 그냥 편하게 물으십시오. 설마 제가 회사 돈을 착복하거나 경매 물품을 가지고 장난이라도 쳤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그 말에 대답한 사람은 르보가 아니라 드레스너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다니엘이었다.

“자기 입으로 선수를 치니까 묻기가 편해지는군. 드레스너 사장도 짐작하고 있었나봐? 맞아. 우리는 자네가 파베르제의 달걀에 장난을 쳤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파베르제의 달걀이요? 그건 로스차일드 씨가 구입하지 않았습니까? 이미 당신 소유가 된 물건에 제가 무슨 장난을 어떻게 친단 말입니까?”

다니엘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맺혔다.

“달걀 안에 있던 물건은 어떻게 했지?”

“안에 있던 물건이라니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자네가 파베르제의 달걀을 열고 그 안에 있던 원통을 꺼냈잖아. 원통 안에 있던 물건은 어디에 빼돌렸어? 아직 가지고 있나?”

“원통이요? 무슨 원통 말입니까? 그리고 파베르제의 달걀을 열다니요?”

황당한 표정으로 말을 하던 드레스너가 순간적으로 흠칫했다. 그제야 일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설마, 그걸 여는데 성공한 겁니까? 누가요?”

다니엘은 드레스너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녀석의 얼굴 표정이나 말투만 봐서는 달걀이 열렸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일까? 아니면 능숙한 거짓말? 그때 잠자코 있던 르보 회장이 입을 열었다.

“역시 내가 사람을 잘 뽑았군. 거짓말이 아주 능숙해. 경매 회사 사장이면 당연히 그 정도는 돼야지. 하지만 말이야, 그런 건 고객들을 상대로 써야지. 주인한테까지 그러면 되나?”

“거짓말이 아닙니다, 회장님. 정말 파베르제의 달걀이 열렸습니까? 저는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르보 회장이 코웃음을 쳤다.

“나는 사람을 설득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필요하면 굴복을 시키지. 자네한테 마지막 기회를 주겠어. 파베르제의 달걀에서 꺼낸 물건은 어떻게 했지?”

이 미친 변태 새끼가! 드레스너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르보가 정말로 독한 마음을 먹었다는 사실을 직감한 것이다. 그는 다급한 마음에 르보에게 가까이가려 했지만,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경호원이 그를 저지했다.

“저는 파베르제의 달걀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걸 여는 방법도 몰라요. 정말입니다. 제 말을 믿어주십시오.”

드레스너는 목소리에 간절함을 담아 소리쳤다. 그때 르보 회장의 품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여유 있는 표정으로 전화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전화를 끊은 그가 다니엘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다니엘의 얼굴도 함께 일그러졌다.

“없답니까?”

“못 찾았다는군요. 드레스너의 사무실과 집을 샅샅이 뒤졌지만 어느 곳에서도 금속 원통이나 목걸이는 발견되지 않았답니다.”

두 사람의 얘기를 듣던 드레스너는 그제야 르보 회장이 왜 자신을 런던 외곽까지 나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오라고 시켰는지 알아차렸다. 그 사이에 자신의 사무실과 집을 뒤진 게 분명했다. 아마 양쪽을 뒤진 사람들은 크리스티의 직원 신분, 가령 감찰반 소속임을 내세웠을 것이다. 르보 회장이 크리스티의 실소유주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회장님. 파베르제의 달걀을 연 사람을 찾고 싶으시면 저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크리스티로 물건이 넘어오기 전에 그걸 소유하고 있던 사람들을 샅샅이 뒤지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달걀을 연 적이 없고 여는 방법도 몰라요. 믿어주십시오.”

그때까지만 해도 드레스너는 침착함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상대를 설득하려고 했다. 하지만 르보는 차갑게 고갯짓을 했고, 그와 동시에 경호원들이 달려들어 양쪽에서 드레스너의 두 팔을 제압했다. 또 다른 경호원이 품에서 주사기를 꺼냈다.

“회장님! 회장님, 제발.”

주사기를 발견한 드레스너의 표정이 완전히 무너졌다. 그는 다급하게 회장을 불렀지만 경호원은 그의 호소를 아랑곳하지 않고 제압당한 팔에 주사기를 꽂았다. 정맥을 단번에 찾아낸 것으로 보아 사람 몸에 주사를 많이 놓아본 자가 분명했다.

잠시 후, 발버둥 치던 드레스너의 몸에서 힘이 빠지면서 동공이 풀어졌다. 그러자 경호원들이 그의 몸을 끌어서 다시 소파에 앉혔다. 그런 그의 앞으로 르보 회장이 성큼 다가왔다.

“방금 자네 몸에 들어간 건 아프카니스탄에서 미군이 쓰던 강력한 자백제야. 위스키를 한 열 병쯤 마셨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죽지는 않지만 이성이 마비되고 파블로프의 개처럼 묻는 말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되지. 자네를 위해서 하는 말이지만 한 방으로 끝내는 게 좋을 거야. 자꾸 맞으면 금단 증상이 심각해지거든.”

이야기를 하는 르보 회장의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한쪽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다니엘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저 사이코패스 자식. 어쩔 수 없이 그에게 협조를 부탁하기는 했지만 르보가 하는 짓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드레스너의 가족을 납치해서 협박하자는 의견을 제시했었다. 하지만 르보는 단번에 그 제안을 거절했다.

“로스차일드는 가문 단위로 일을 해서 그런지 가족에 대한 애정이 꽤 돈독한 모양이군요. 하지만 제가 겪어본 바로는 대부분의 인간이 지닌 가장 약한 고리는 바로 자신의 생명과 안전입니다. 가족이 아니라. 그건 자기 목숨과는 달리 얼마든지 다시 만들 수 있거든요.”

자백제는 외부에 상처를 주지 않고 내부를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수단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미치광이, 변태, 사이코패스. 다니엘은 르보 회장에게 따라다니는 수많은 별명들이 대부분 진실을 포함하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그의 광기를 직접 목도하자 속에서 쓴물이 올라왔다.

‘이번엔 필요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손을 잡지만, 언젠가는 저 손을 잘라버려야겠군.’

다니엘은 정신보다는 육체를 무너뜨리는 걸 더 좋아했다.

* * *

마음 같아서는 당장 천 그림의 비밀을 푸는데 매달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여유가 없었다. 일을 진행하려면 이미 사라진 황태자 침실을 간단하게라도 재현해야 하는데 그것만 해도 시간이 적지 않게 들 게 뻔했다. 도윤은 런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기에 비밀을 푸는 것은 잠시 뒤로 미루기로 했다. 당분간은 전시회 일에 전념해야 했다.

전시회의 틀이 어느 정도 잡히자 그때부터 김하선과 도윤은 더욱 바빠졌다. 팸플릿을 찍고 주요 미술잡지에 광고를 내는 것은 다른 직원들을 시켜도 된다. 하지만 그들에게 맡길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두 사람은 그동안 맺어두었던 인맥을 총동원해서 그림을 사줄 만한 고객들을 초대해야 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럴 때 초대장만 달랑 보내고 사람들이 알아서 오기를 기다리면 안 돼. 되도록 직접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고 참석을 부탁해야지. 그게 어려울 경우에는 최소한 전화라도 해야 돼.”

김하선의 말이 아니더라도 어릴 때부터 현소 화랑에서 뛰놀며 자라온 도윤 역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충 알고 있었다.

그는 제일 먼저 청파 갤러리를 찾아갔다. 그곳 역시 화랑이기는 하지만 미술품 판매가 아니라 상설 전시나 기획 전시를 통한 입장료 수익이 주 수입원이었다. 필요한 작품은 적극적으로 구매하기 때문에 현소 화랑의 입장에서는 주요 고객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화가도 기획자도 이번이 데뷔인 셈이네? 가서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몇 점 구입하도록 할게. 이 박사의 체면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안목을 믿고 말이야.”

최수아 관장은 도윤의 부탁에 따라 말을 놓기로 했다. 그녀는 직접 찾아온 도윤의 어깨를 두드리며 런던에 있는 최서라와 전화 통화라도 자주 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중에 최서라가 청파 갤러리를 물려받으면 도윤이 큰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한강일보의 우재경 문화부장도 도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한성 옥션에서 있었던 황일우 화백의 위작 사건 때만 하더라도 그는 도윤의 존재를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하지만 ‘트루쓰 앤 밸류’ 우승과 나마타 해바라기에 대한 기고문을 계기로 이도윤이라는 석 자가 미술계에서는 누구나 아는 이름이 되자 태도가 달라졌다.

“기꺼이 가야지요. 다른 사람도 아니라 이 박사가 처음으로 발굴한 신인 화가가 아닙니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화가의 인생 스토리도 독자들의 관심을 끌겠더군요. 저희 기자에게 취재를 하라고 지시하겠습니다.”

대신 능구렁이답게 언제 한 번 도윤에게 단독 인터뷰에 응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도윤의 입장에서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일간지 문화면에 전시회가 소개되면 미술 잡지에 광고를 싣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홍보 효과가 있었다.

종로 경찰서의 윤다솔 수사 과장은 도윤이 건넨 초대장을 보고는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특수 수사과가 미술품과 연관이 있는 부서라고 해도, 이런데 가서 그림 구경이나 할 정도로 팔자가 좋지는 않아요. 초대는 고맙지만 꼭 간다고 약속은 못하겠는데요?”

도윤은 씩 웃었다. 그 정도는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명근이 형, 아니 조 검사님은 온다던데요? 둘이서 그림 구경도 하고 인사동에서 공연도 보면 데이트 코스로도 나쁘지 않을 텐데. 아참. 그리고 이 화가 그림말이에요.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하고 사두세요. 적어도 주식보다는 나을 걸요?”

화가를 초대한 화랑의 말이니 백퍼센트 신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명근과 윤다솔은 작품을 보는 도윤의 안목이 보통 감정가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투자라는 말에 윤다솔의 눈빛이 변하는 것을 확인한 도윤은 웃으면서 경찰서를 나섰다.

그가 그렇게 한창 전시 준비를 위해 여기저기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을 때, 바다 건너에서는 전 세계 미술계의 관심을 끄는 빅뉴스가 터졌다. 소더비에서 기자들을 불러 모아 고흐의 다섯 송이 해바라기가 발견되었다는 발표를 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불타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던 바로 그 그림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미술계는 물론이고 언론까지 술렁거렸다.

소더비의 발표가 나자마자 한강 일보의 우재경 부장이 도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박사가 보기에는 어떻습니까? 소더비에서 공개한 다섯 송이 해바라기가 사라졌던 고흐의 진품이 확실하다고 생각하세요? 예상 낙찰가가 거의 1억 달러라던데 박사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 그림이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그걸 내 입으로 말하기는 곤란하지. 우 부장은 미술계 전문가의 발언이라고 하고 신분을 밝히지 않을 테니 한 마디만 해달라고 부탁했다. 도윤은 신분 은폐가 아니라 자신의 발언을 아예 기사화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간단한 의견을 표시했다.

“소더비는 세계적인 경매 회사잖아요. 철저한 검증을 통해 확신을 가졌으니 그림을 공개한 게 아닐까요? 하지만 감정가가 실물을 보지도 않고 진위 여부를 말하기는 곤란합니다. 다만 그 그림이 정말로 진작이라면 1억 달러 이상의 낙찰가도 가능할 것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독일의 크리스틴 리히터로부터 전화를 받았을 때는 조금 더 강하게 얘기했다.

“저라면 사겠습니다. 고흐의 그림 가운데 그만한 걸작이 시장에 나오는 경우는 흔하지 않으니까요. 1억 달러라면 충분히 지를 만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경우에도 그림이 진작이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에게도 소더비를 믿는다는 얘기를 했을 뿐이었다. 도윤은 크리스틴의 반응으로부터 드라이바인 그룹이 경매에 참가할 거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오윤수의 기획 전시가 5월 중순부터 시작이었고, 고흐의 해바라기 경매는 그로부터 두 주 뒤였다. 그림의 소유주로서 경매가 열리는 날에는 도윤도 현장을 지킬 생각이었다. 아무리 온라인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세상이라고는 해도, 그만한 고가의 물품이 낙찰되는 현장에 출품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기자회견을 한 날 저녁, 까미유는 곧바로 도윤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일주일가량 지났을 때, 그녀는 잔뜩 흥분된 목소리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문의 전화가 엄청나게 걸려 와요. 이름 있는 수집가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주요 박물관들도 경매에 참가할 생각인가 봐요. 제일 웃기는 게 뭔지 아세요? 고흐 미술관에서도 우리 그림을 탐낸다는 거예요. 그럴 거면 말이나 곱게 하든지. 웃기는 사람들이지 않아요?”

웃기는 사람? 그냥 웃기는 놈들이지. 하지만 그래도 좋으니까 세게 지르기만 해라.

전화를 끊기 전에 까미유가 한 말이 도윤을 살짝 움찔하게 만들었다.

“중국의 큰손들이 이번 경매에 참가할 게 거의 확실해요. 그리고 일본에서도 필사적으로 달려들 건가 봐요. 그쪽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요.”

전 세계에서 고흐를 가장 사랑하는 나라는 어떤 면에서는 프랑스나 네덜란드가 아니라 일본일 것이다. 더구나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고흐의 다섯 송이 해바라기는 본래 자신들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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