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72화 (72/300)

72화

<11. 피의 사원>

오윤수의 기획 전시회가 무사히 끝났다. 성황리에 막을 내린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 만큼 성공적인 전시회였다.

전시회가 끝나던 날, 주인공인 오윤수는 물론이고 도윤과 김하선, 이세준과 서연희 부부를 비롯한 현소 화랑 직원들 전부가 술집 하나를 통째로 빌려 늦게까지 쫑파티를 했다. 다들 기분이 유쾌했고, 분위기도 끝까지 화기애애했다. 다만 술에 취한 오윤수가 끝내 대성통곡을 하는 바람에 여러 사람들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좋은 전시회였고, 멋진 결과였다.

이번 전시회에 오윤수는 총 37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무려 서른 두 점이 팔렸다. 팔리지 않은 다섯 점 가운데 세 점은 천을 꼬아서 늘어뜨리거나 기둥 주위에 두른 설치 미술에 가까운 작품들이었다. 결국 광목천에 그려 표구를 한 작품들은 대부분 팔렸다는 뜻이다. 매출액만 1억 원이 넘었으니 데뷔전 치고는 말 그대로 대박이 난 셈이었다.

초대전의 경우, 화가와 화랑이 매출액을 절반씩 나누어 가진다. 현소 화랑은 정산이 끝나자마자 오윤수에게 오천만 원이 약간 넘는 돈을 일시불로 지급했다. 도윤이 미리 준 천만 원까지 합하면 오윤수는 전시회 한 번에 육천만 원 이상을 번 것이다.

그는 자신이 받은 돈 가운데 오백만원을 다시 도윤에게 돌려주려고 했다. 그가 전시회 전에 자신의 작품 두 점을 구입하면서 주었던 천만 원의 반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화랑이 제 작품을 구입한 거니까 반값만 줘야지요. 처음 돈을 받을 때는 경험이 없어서 미처 그 생각을 못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도로 드리는 게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도윤은 그 돈을 받지 않았다.

“그건 현소 화랑이 아니라 내가 개인적으로 산 거야. 그리고 그때는 아직 전시회가 시작하기도 전이었으니까 화랑 몫을 따질 필요가 없어.”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고마우면 나중에 좋은 그림 많이 그려서 우리 화랑에서 전시해. 그리고 목돈 생겼다고 함부로 쓰지 말고 잘 가지고 있어. 곧 쓸 일이 생길 테니까.”

두 주 후면 뉴욕에서 고흐의 다섯 송이 해바라기가 경매에 붙여진다. 도윤은 그 일로 뉴욕에 갔을 때 오윤수가 그림을 그리면서 생활할 만한 곳을 물색할 생각이었다. 뉴욕의 살인적인 물가를 생각하면 지금 오윤수가 가진 돈은 절대 많다고 할 수 없었다.

오윤수의 뉴욕 행은 이미 본인과 의논해서 얘기가 끝난 상태였다. 그는 런던이나 파리보다는 뉴욕을 택했다. 현대 미술의 중심지가 바로 그곳이라는 게 이유였다.

전시회가 끝나자마자 도윤은 곧바로 알렉세이 황태자의 방을 재현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오윤수의 전시회가 끝난 빈 전시실이 그 일을 하기에는 딱 적합한 장소였다.

그는 먼저 인터넷을 뒤져 아크릴로 만든 플라스틱 거울을 잔뜩 주문했다. 아이들 과학 실험이나 여러 가지 장식물을 만드는데 쓰이는 도구였는데, 얇고 잘 휘기 때문에 진짜 거울을 제작하기 전의 연습 도구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사진에서 보았던 알렉세이 황태자의 방에는 기묘한 위치에 여러 가지 모양의 거울들이 잔뜩 장식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도저히 풀 수 없지만 황태자는 아주 쉽고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비밀. 황제는 분명 그걸 위해서 황태자의 방에 거울을 잔뜩 달아둔 걸 거야.”

사진 속의 황태자 방에는 거울의 방을 연상케 할 정도로 많은 거울이 장식되어 있었다. 책상 머리맡에는 세 개의 커다란 거울이 둔각으로 맞붙어 있었고, 맞은편 끝에 자리 잡은 침대에도 역시 비슷한 형태의 거울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침대와 책상 사이의 벽과 천장에는 원통을 반으로 자른 형태의 길고 둥근 거울들이 여러 개 달렸다.

아마 그 모든 거울들은 방안의 사물을 복잡하게 반사시켜 새로운 형태의 상으로 맺히게 하려는 목적으로 설치되었을 것이다. 도윤은 거울의 위치와 형태를 정확하게 재현하기만 하면 자신이 얻은 문양의 비밀을 풀 수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관건은 각도와 거리야. 황태자의 휠체어가 방의 어느 지점에, 그리고 어떤 각도로 서 있을 때 책상이나 침대의 거울에 정확하게 상이 맺히는지 확인해야 해.”

도윤은 파베르제의 달걀에서 나온 천을 두 개의 옷걸이 사이에서 왕복시키며 겹친 끝에 하나의 온전한 문양을 얻었다. 당시에는 옷걸이 사이의 거리를 조절하느라 꽤나 고생했는데, 사진을 보니 그건 아무래도 황태자의 휠체어에 있는 두 손잡이 사이의 거리와 일치하는 게 분명했다.

다시 말해 황태자는 달걀에서 천을 꺼낸 뒤 그걸 자기 휠체어의 양 손잡이 사이를 왕복시키며 감기만 하면 문양을 확인할 수 있었을 거라는 얘기였다. 그런 뒤 휠체어를 방의 적당한 위치에 가져다 놓기만 하면 사방의 거울들을 통해 휠체어 위의 문양이 분해되었다가 다시 조립되어 숨겨진 모습이 나타나도록 만들어졌을 것이다.

도윤의 문제는 각 거울들의 크기와 곡률, 각도와 거리 등을 오래된 사진만 보고 정확하게 알아내야 한다는 점이었다. 결국 그로서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루하고 짜증나는 작업이었다.

도윤이 한창 알렉세이 황태자의 방을 재현하는 일에 매달리고 있던 어느 날, 뜬금없이 상해 크리스티 지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메일을 보냈으니 내용을 확인하고 가급적 빨리 답장을 달라는 얘기였다. 그는 전화를 끊자마자 휴대폰으로 이메일을 확인했다.

“출장감정 의뢰? 이 사람들이 웬일이지? 크리스티는 나하고 감정이 별로 안 좋을 텐데? 상해 지점은 런던 본사하고 따로 움직이나?”

6월 초에 상해 크리스티에서 열리는 경매를 위해 출장 감정을 와달라는 내용의 이메일이었다. 조건도 나쁘지 않았다. 왕복 비행기 표와 호텔 숙박비를 지급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당한 액수의 감정료를 따로 지급하겠다는 내용이 첨부되어 있었다.

날짜를 따져보니 상해에 들러서 감정을 마친 뒤, 거기서 곧바로 뉴욕으로 날아가면 될 것 같았다. 이세준에게 의견을 묻자 당분간 특별히 시킬 일이 없으니까 다녀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도윤은 상해 크리스티에 전화를 걸어 의뢰를 받아들이겠다고 알렸다. 그런 뒤, 곧바로 쉬주하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봐, 샤오쉬. 너 저번에 내가 상해에 가면 세상이 거꾸로 뒤집혀 보일 정도로 크게 쏜다고 했지? 그 약속 아직 유효한 거야?”

트루쓰 앤 밸류에 출연할 때 같은 방을 썼던 쉬주하오는 그의 얘기를 듣고 반색했다.

“당연하지. 언제 올 건데?”

“열흘 뒤에 상해로 갈 거야. 크리스티 상해 지점에서 출장 감정 의뢰가 들어왔거든”

“우와~. 출장 감정 의뢰? 역시 국제적으로 노는 사람은 다르네?”

“해외 출장 감정 의뢰는 나도 처음 받는 거니까 호들갑 떨 것 없어. 상해에서 사흘 정도 머물 건데, 공항에 도착하면 전화할게. 그럼 상해에서 보자.”

전화를 끊은 도윤은 그때부터 더욱 황태자의 방을 재현하는 데에 매달렸다. 가능하면 되도록 상해로 출발하기 전에 문양의 비밀을 풀고 싶었다.

* * *

아크릴 거울은 가볍고 잘 휘어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거울과의 거리가 멀어지면 상이 흐려진다는 치명적인 약점도 가지고 있었다. 도윤은 사흘에 걸쳐 사진 속에 있는 거울의 크기와 곡률을 알아내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그 작업이 어느 정도 끝나자 곧바로 유리 거울을 만드는 공방을 찾아갔다.

“주문 제작용 거울이라면 그곳 사장님 솜씨가 제일 뛰어날 거야.”

그는 김하선의 도움을 받아 부천에 있는 동명 유리라는 유리 거울 전문 공장을 직접 찾아가야 했다. 도윤의 설명을 들은 사장님은 사흘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모양과 크기만 대충 맞추는 거라면 당장 내일까지라도 해줄 수 있는데 정밀 제작을 원할 경우에는 최소 사흘은 시간을 줘야 해요. 넉넉잡고 닷새 정도면 정확하게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줄 수 있을 텐데.”

도윤은 꽤 큰 액수의 추가 금액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사흘 뒤까지 물건을 받기로 했다. 사흘 뒤, 전시실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거울들이 잔뜩 들어섰다. 동명 사장님은 직원과 함께 직접 방문해서 도윤이 원하는 대로 거울들을 직접 설치해주기까지 했다.

“저쪽 거울은 크기가 이것보다 조금 더 커야 할 것 같은데? 이쪽 천장의 거울은 곡면 반경을 약간 더 줄이는 게 맞는 것 같고.”

막상 실제 설치 작업에 들어가자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원하는 대로 상이 맺히지 않았다. 동명 사장님은 전문가답게 도윤이 보여주는 사진과 실물을 비교하더니 거울들의 크기에 대해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진즉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순간이었다.

첫 번째 거울을 제작한 이후, 도윤은 부천의 동명 유리 공장을 두 번이나 더 왕복한 끝에야 간신히 사진 속의 거울들을 정확히 재현할 수 있었다. 상해로 떠나기 바로 전날이었다.

“후우~.”

도윤은 전시실에 혼자 들어가 아예 문까지 걸어 잠근 뒤에야 크게 심호흡을 했다. 작년에 처음 파베르제의 달걀을 연 뒤로부터 어느새 열 달 가까이 지났다. 그간 여러 가지 일들이 계속 벌어지기는 했지만 어느새 시간이 꽤 지났다.

그는 전시실 중앙에 의자를 가져다놓고 앉았다. 일부러 휠체어 크기에 맞춰서 준비한 의자의 양쪽 손잡이 사이에는 새로 나무틀을 대서 조립한 천 그림이 놓여 있었다.

그는 사진 속의 책상 거울에 해당하는 전면의 세 거울들을 주시하면서 의자의 위치를 조금씩 이동시켰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천장과 벽에 설치한 여러 겨울들에 반사된 문양이 이리저리 나뉘었다가 다시 합쳐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정면 중앙의 거울 위에 도윤이 들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게 뭐지? 궁전인가? 아니면 사원?”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첨탑이 딸린 건물의 실루엣이 정면의 거울에 맺혀 있었다. 각 첨탑 끝마다 송이버섯 머리처럼 생긴 동그란 돔이 매달려 있었는데 그 모양이 얼핏 보면 이슬람의 모스크 사원과 비슷했다. 하지만 실루엣을 유심히 살펴보던 도윤은 오래지 않아 그게 이슬람 사원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정교회 성당 같은데? 그리스는 아니고, 역시 러시아 성당이겠지?”

성당의 실루엣 옆으로 키릴 문자로 쓰인 여섯줄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부활한 나자로에서 예수에게로.

흰색 나이트를 왼쪽 앞으로.

검은 색 폰은 두 칸 전진.

흰색 비숍은 다섯 걸음을 달린다.

검은 룩이 세 걸음 전진하면

체크메이트.

첫줄은 성경과 관계가 있을 테고, 나머지는 체스 용어가 분명했다. 체스라고? 여기서 왜 그게 나와? 더구나 이렇게 해서 어떻게 체크메이트가 된다는 거야?

도윤은 어렸을 때부터 여러 나라의 언어를 익혔다. 그런데 눈앞의 문자는 해석만 될 뿐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일단 그 문자들도 휴대폰으로 찍은 뒤 다시 의자를 여기저기로 옮겨봤다. 하지만 아무리 위치를 바꿔도 더 이상 새로운 모양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니콜라이 2세가 남긴 비밀은 건물 모양의 실루엣과 암호 같은 문자 몇 개가 전부인 듯했다.

“휴우~. 시간도 별로 없는데 잘못하다가는 밤 새겠군.”

도윤은 일단 나무틀에 감아놨던 천을 풀어서 챙긴 뒤. 전시실의 거울들을 몽땅 해체했다. 거울들의 크기와 위치, 각도 등은 이미 사진과 함께 상세한 기록으로 남겨두었으니 굳이 전시실에 계속 놔둘 필요가 없었다. 그 일이 모두 끝나자 어느새 해가 기울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조금 전에 확인했던 문양과 문자들의 의미를 풀어내야 할 때다.

* * *

상하이 공항 입국장을 나서자마자 도윤의 이름을 종이에 커다랗게 써서 들고 있는 두 명의 남자가 보였다. 상하이 크리스티에서 보낸 사람들이 분명했다. 도윤은 그들에게 손짓을 한 뒤 다가가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뭘 두 명씩이나 나왔지? 그리고 저 사람들 그냥 직원이 맞아? 경호원 같은데?”

이상했다. 양복 정장을 걸친 상하이 크리스티 직원들은 얼핏 봐도 일반적인 사무직원으로 보기 어려웠다. 덩치가 크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몸 전체에서 탄탄한 기운이 느껴지는 게 아무래도 운동으로 단련된 사람들인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이도윤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이 박사님. 상하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서로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악수를 했을 때, 도윤은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상대의 손바닥에서 단단하게 굳은살이 느껴진 것이다. 이 사람들이 노가다를 하며 살았을 리는 없으니 운동으로 단련된 손이라는 뜻이었다.

“제가 묵게 될 호텔이 어디죠?”

“차를 가지고 왔습니다. 저희를 따라오시면 호텔까지 편하게 모시겠습니다.”

도윤의 물음에 직원 한 명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앞장서서 그를 인도하려고 했다. 하지만 도윤은 제자리에 선 채 다시 한 번 그를 불렀다.

“묻는 말에 대답부터 하셔야죠. 제가 묵을 호텔이 어디냐고요.”

도윤이 기분이 상했다는 표시를 얼굴에 드러내자 직원이 약간 당황한 듯 했다.

“양윈아만(養雲安縵) 호텔입니다. 이미 스위트룸을 예약해 두었으니 저희와 함께 가서 체크인만 하시면 됩니다. 그곳에서 사흘 동안 묵게 될 겁니다.”

뭐? 양윈아만 호텔 스위트룸? 이 자식들 봐라?

“그래요? 잠깐만요.”

도윤은 그들을 따라가는 대신 전화기를 꺼내서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몇 번 가지도 않아 쉬주하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박사. 벌써 상하이에 도착한 거야? 지금 어딘데?”

“아직 상하이 공항인데, 이제 양윈아만 호텔로 이동할 거야. 상하이 크리스티에서 직원이 두 명이나 마중 나왔는데, 이 사람들 얘기로는 거기 스위트룸을 예약했대. 너도 지금 그리로 올래? 이왕이면 체크인하기 전에 로비에서 먼저 보자.”

도윤의 말에 쉬주하오가 헙 하고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뭐? 양윈아만이라고? 이봐. 거긴 레조트 형식의 최고급 호텔이야. 일반 객실만 해도 하루 숙박비가 오천 위안이 훨씬 넘을 텐데 심지어 스위트룸이라고?”

“그러게 말이야. 내가 알기로 거기 스위트룸이면 사흘 숙박비만 10만 위안쯤 하지?”

“아마 그럴 거야. 그런데 도대체 뭐야? 상하이 크리스티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대박이라도 쳤나? 무슨 출장 감정사에게 그렇게 호화스러운 대접을 해?”

“그러게. 아무튼 나야 주는 떡이나 받아먹는 입장이니까 한 시간 뒤에 호텔 로비에서 보자. 공항에서 거기까지 차로 이동하면 길 막히는 걸 감안해도 그 정도 걸릴 거야.”

도윤은 전화를 끊으면서 직원들의 얼굴을 힐끗 봤다. 짐작대로 두 사람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이 자식들 봐라? 도대체 무슨 꿍꿍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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