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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74화 (74/300)

74화

상하이 전자 시장에서 도윤이 제일 먼저 구입한 것은 중고 휴대폰과 충전기였다. 일주일 동안 무제한으로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유심 칩도 하나 샀다. 중국 유심 칩의 경우 구글과 페이스북을 사용할 수 없는 등 기능에 제한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국 사정을 잘 아는 도윤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콕 집어 골랐다.

추가로 휴대폰용 광각 렌즈까지 구입한 그는 본래의 휴대폰과 새로 산 휴대폰에 각각 미리 생각해두었던 앱을 다운받아 설치했다. 앱 자체에 소프트웨어적으로 저조도 모드와 동작감지 기능까지 구비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약간의 불빛만 있으면 어둠 속에서도 침입자를 감지해서 비교적 선명한 영상으로 녹화하는 게 가능했다.

그는 중고 휴대폰에 광각렌즈를 장착한 뒤 앱을 실행시켰다. 중고 휴대폰의 IP 주소를 확인한 그가 자신의 휴대폰에서 같은 앱을 실행시키고 IP 주소를 입력시키자 잠시 후 깔끔한 영상이 떴다. 중고 휴대폰의 카메라로 찍은 영상이 본래의 휴대폰으로 송출된 것이다.

“됐다.”

두 개의 휴대폰을 이용한 원격 감시용 CCTV가 완성되었다. 휴대폰 통화가 가능한 지역이면 어디서든 저쪽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일종의 최첨단 감시 카메라인 셈이었다.

앱이 문제없이 작동하는 것을 확인한 그는 곧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양윈아만 호텔로 갔다. 프런트 직원에게 자신의 방으로 샴페인 한 병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 그는 예약된 방으로 올라갔다. 도윤은 객실 문을 열자마자 저도 모르게 휘파람을 휙 불었다.

“우와, 역시 하룻밤에 몇 백만 원씩 하는 방은 확실히 다르네.”

호텔에 4개 밖에 없는 스위트룸은 전체 넓이가 백 평이 넘었다. 공간의 낭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널찍한 내부를 둘러보던 도윤은 기가 막혀 입맛을 다셨다.

“이걸 다 감시하려면 휴대폰이 몇 대는 더 있어야 되겠네.”

휴대폰 한 대로는 침대 근처나 간신히 커버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는 광각 렌즈가 달린 중고 휴대폰을 꺼내 충전기와 연결시킨 뒤, 앱을 작동시켜 침대 옆에 있는 조그만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 다음 방안의 불을 끄고 창문의 커튼을 활짝 열어젖히자 도시의 환한 불빛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도윤은 자신의 휴대폰을 켜서 영상이 제대로 전달되는지 확인한 뒤 다시 불을 켜고 조용히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다리던 노크 소리가 들렸다. 샴페인을 배달한 종업원에게 팁을 건넨 그는 문을 닫자마자 마개도 따지 않고 샴페인을 그대로 객실 냉장고에 집어넣었다. 이로써 호텔 측에서는 자신이 방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했을 것이다. 그는 거실에서 약간 시간을 보내다가 불을 끄고 객실을 빠져나왔다.

로비를 통과하지 않고 프런트 반대편에 있는 문으로 빠져나온 그는 정원을 가로질렀다. 거기서 인도와 호텔을 구분 짓는 낮은 펜스를 훌쩍 뛰어넘은 다음 그대로 호텔을 떠났다.

“내가 너무 유난을 떠는 게 아닌지 모르겠네. 차라리 그런 거였으면 좋겠는데.”

택시를 타고 공항 근처에 새로 잡은 호텔로 가면서 도윤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 * *

삑, 삑, 삑, 삑

도윤은 어둠 속에서 들리는 경보음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고개를 돌리자 휴대폰에 영상이 떠올라 있었다. 양윈아만 호텔의 스위트룸에 누군가 들어왔다는 뜻이다. 손을 뻗어 휴대폰을 집어 들자 넥타이 없이 정장을 입은 세 명의 남자가 객실 안으로 들어온 게 보였다.

한 명이 늘었네? 지금 몇 시지? 호텔 방에 설치된 시계는 어느새 새벽 세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 자식들, 내가 완전히 잠들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린 모양이네.

해상도와 낮은 조도 때문에 표정까지 자세히 확인하기는 어려웠지만 남자들은 침대가 텅 빈 것을 보고 적지 않게 당황한 게 분명했다. 손전등을 든 채 거실을 뒤지고 욕실 문까지 열어보며 한동안 부산을 떨던 놈들 가운데 한 명이 마침내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잠시 후 놈의 목소리가 도윤의 휴대폰을 통해 흘러나왔다.

“이도윤이 없습니다. ………. 아닙니다. 분명히 방에 들어온 걸 확인했습니다.”

저쪽에서 뭐라고 얘기하는지 남자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더니 난감한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잠깐만요, 로스차일드 씨. 저희도 프런트에 확인을 했습니다. 놈은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호텔로 돌아온 게 확실합니다. 방안에 있는 이도윤에게 샴페인을 전달한 종업원도 있고요. ………. 아니요. 놈이 호텔을 빠져나가는 걸 본 사람은 없습니다.”

남자의 이야기를 듣던 도윤은 휴대폰을 든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로스차일드? 세상에 로스차일드라는 성을 가진 사람은 많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은 딱 하나였다. 다니엘 로스차일드. 네가 시킨 거였어? 하지만 도대체 왜?

방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총이나 칼을 들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힘이나 약물을 이용해 자신을 제압하려는 속셈이었을 거다. 죽이려는 게 아니라 납치나 심문을 목적으로 침입했다는 뜻이다. 그러니 도윤이 깊은 잠에 빠졌을 시간까지 기다렸겠지.

문제는 다니엘 로스차일드가 왜 자신을 노리느냐 하는 점이었다. 도윤은 그를 직접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다. 서로 원한을 살 기회 자체가 없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뭐지?

설마 영국 로스차일드 가문의 수장쯤 되는 사람이 남의 청부를 받아서 도윤을 노린 건 아닐 것이다. 혹시 그가 꼭 알고 싶어 하는 정보를 내가 가지고 있나? 아니면 나를 납치해서 누군가를 협박하는 데 쓰려고? 소더비 경매를 취소하고 고흐의 해바라기를 자신에게 넘기라고 요구하려는 건 아닐까?

마지막 생각은 떠오르자마자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로스차일드 가문이라면 그런 무식한 방법을 쓰느니 그냥 돈지랄을 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그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에도 남자의 통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아니오. 놈의 가방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침대 옆에 핸드폰이 있는 것으로 봐서 분명히 여기에 있었다는……. 잠깐만요.”

상대방에게 설명을 하면서 침대 옆의 휴대폰을 쳐다보던 남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그제야 중고 휴대폰에 장착된 광각 카메라를 발견한 것이다. 영상 속의 남자 얼굴이 점점 확대되더니 도윤의 휴대폰으로 전송되던 영상이 뚝 끊겨버렸다.

“쳇, 알아차렸네. 하지만 조금 늦었어.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을 내뱉기 전에 발견했어야지.”

아직 새벽이지만 도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를 했다. 머리가 복잡해서 또 다시 잠을 청하는 건 무리였다. 샤워를 마친 그는 휴대폰을 켜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검색했다. 가장 빠른 비행기는 오전 열한 시. 이코노미 석은 매진됐지만 비즈니스 석이 몇 개 남아 있었다. 그는 표를 예매한 뒤 방을 서성이며 다시금 지금의 상황을 정리했다.

지시는 다니엘 로스차일드가 내렸을지 몰라도 호텔 방에 침입한 남자들 가운데 둘은 자신들을 상하이 크리스티 직원이라고 밝혔었다. 그 말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어떤 형태로든 이번 일에 상하이 크리스티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애초에 이곳으로 그를 부른 게 바로 거기였으니까.

다니엘 로스차일드는 미술계에 알려진 거물급 수집가다. 따라서 그가 크리스티나 소더비처럼 큰 경매회사와 친분이 깊다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불법적인 일에까지 적극적으로 가담할 정도로 허리를 숙인다는 건 역시 말이 안 된다. 크리스티는 아무리 로스차일드 가문의 수장이라고 해도 함부로 부릴 만큼 작은 회사가 아니다.

“결국 크리스티도 로스차일드 가문과는 별개로 나한테 관심이 많다는 뜻인데. 양쪽의 연결고리가 도대체 뭘까? 모네의 수련 연작?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다니엘과는 상관이 없어. 그 그림을 경매 의뢰한 건 다른 사람이었으니까. 그럼 남은 건 파베르제와 달걀과 고흐의 해바라기인데…….”

고흐의 해바라기도 제외했다. 크리스티라면 그 작품을 소더비가 경매하게 된 걸 배 아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니엘이라면 그냥 경매에 참여해서 돈질을 하면 된다. 그 돈이 아까워서 자신을 납치하려고 했다고 생각하기에는 평소에 알려진 그의 이미지와 너무나 부합하지 않는다. 크리스티 쪽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사람이라는 게 변할 수는 있지. 내가 모르는 흑막이 존재할지도 모르고.”

하지만 아무래도 파베르제의 달걀이 오늘 겪은 일과 연관성을 가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다니엘 로스차일드가 파베르제의 달걀을 구입한 거 아냐? 그게 경매로 팔렸다는 얘기는 없었으니까 만약 그랬다면 은밀하게 사고팔았다는 얘긴데…….”

다니엘 로스차일드가 파베르제의 달걀을 사들인 뒤 그것을 연 건 아닐까? 어떻게 방법을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자신이 성공한 일을 다른 사람들은 절대로 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건 어리석은 자만에 불과하다.

“만약 그걸 열었다면 안에서 초콜릿 과자가 나왔겠지. 그럼 누군가 그걸 열어봤다는 걸 알아차렸을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나를 범인으로 지목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도윤이야 달걀에 남아 있던 잔류 기억을 통해 그걸 여는 방법을 알아냈다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평범한 사람이 단 하루 만에 그 방법을 찾아낼 수는 없다. 설사 의심을 한다 치더라도 이렇게 과격한 방법을 쓰면서까지 확인할 일은 아니다.

“그 달걀이 정말 다니엘 같은 부자나 크리스티처럼 큰 회사조차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 만큼 엄청난 비밀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지.”

결국 도윤은 현재로서는 확실히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하루라도 빨리 피의 사원을 찾아가 니콜라이 2세가 남긴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기는 했다. 그걸 알면 오늘 겪었던 일을 조금은 이해하게 될까?

* * *

다음날 아침, 도윤은 호텔에서 공항으로 직행했다. 거기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한 그는 쉬주하오에게 연락해서 공항으로 나올 수 있겠냐고 물었다. 중국을 떠나기 전에 도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말이 진심이었나 보다.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쉬주하오가 약속 장소인 공항 커피숍에 모습을 나타냈다.

“상하이에 온 지 하루 만에 떠날 줄은 몰랐네? 출장 감정은 취소된 거야?”

쉬주하오는 도윤이 자신을 공항으로 불렀다는 얘기를 듣고 이미 중국을 떠나기로 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도윤은 씁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쉬주하오의 뒤를 예리한 눈으로 살폈다. 녀석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눈에 띄는 미행자가 없다는 걸 확인한 그는 그제야 쉬주하오를 위해 커피 한 잔을 더 시켰다.

“자세한 건 알 필요 없고 아무튼 일이 그렇게 됐다. 그건 그렇고 나한테 꼭 전하고 싶다는 소식이 뭐야? 결혼 약속한 여자라도 생겼냐?”

도윤의 말에 쉬주하오가 잠시 어이없다는 듯이 웃더니 금세 표정을 진지하게 고쳤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니까 말을 옮기지는 마. 우리 정부에서 건릉을 발굴하려나봐.”

“건릉? 설마 측천무후의 무덤 말이야?”

“정확히는 당 고종과 측천무후가 함께 합장된 무덤이지. 아무튼 거기가 맞아.”

도윤은 정말로 놀랐다. 최소 50년 이내에는 건릉을 발굴할 계획이 없다는 중국 정부의 발표가 있었던 게 고작 십 년 전이다. 그런데 벌써 생각이 바뀌었다고?

중국에는 고고학자들이라면 누구나 발굴하고 싶어 하는 무덤이 세 개 있다. 그 중 하나인 칭기즈칸의 무덤은 아직 어디 있는지도 모르니 논외로 치더라도, 진시황릉과 건릉은 과연 언제 발굴할 것이냐를 두고 이따금씩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는 했다. 양쪽 모두 엄청난 보물이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하는 곳이었다.

‘진시황릉이야 솔직히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이라면 몰라도 보물 자체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지만…….’

시안에 있는 병마용은 황릉이 아니라 그 부속 시설이다. 진짜 진시황릉은 아직 위치만 대충 확인한 채 발굴을 시도하지 않고 있는데, 도윤은 설사 발굴하더라도 거기서 귀금속류의 보물이 대량 출토될 거라고 보지 않았다. 시황제가 실제로 통치했던 지역의 면적이나 당대의 생산 기술 수준 등을 감안하면 무덤에 청동기 유물이라면 모를까, 금은보석을 잔뜩 쌓아두는 것은 한계가 뚜렷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릉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당나라는 중앙집권제가 확립된 엄청난 대제국이었고, 발달한 생산력을 바탕으로 인도와 페르시아를 거쳐 로마까지 상인들이 오갈 정도로 무역이 활발했다. 그런 시대에 중국 역사상 유일한 부부 황제였던 당 고종과 측천 무후가 함께 묻힌 무덤이 건릉이니 그 안에 잠들어 있을 보물의 양은 상상을 불허했다.

건릉이 학자들의 관심을 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곳이 지금까지 한 번도 도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릉은 맨 땅을 파서 봉분을 세우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는 산에 터널을 깊게 뚫고 그 끝에 지하 궁전과 묘실을 건축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당연히 묘실이 완성된 뒤에는 터널을 모두 메워버렸다. 그게 당나라 때 황릉을 만드는 법도였다.

그 덕분인지 건릉은 처음부터 그 위치가 명확하게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천사백 년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수백 번의 도굴 시도를 무사히 피해 묘실을 지켜냈다. 남은 흔적에 의하면 도굴꾼들이 판 터널 가운데 몇 개는 아슬아슬하게 지하궁전을 피해간 것도 있었다.

20세기 들어 중국 정부는 광물 탐사용 천공 기계를 이용해서 지표면에서 지하 궁전에 이르는 수직 구멍을 파는 데 성공했다. 탐사 팀은 그 구멍으로 카메라를 들여보내 안에 있는 묘실이 무사히 보존된 것을 확인한 뒤 다시 구멍을 메워버렸다. 그러고는 유물을 완벽하게 보존할 수 있는 기술이 확보되기 전까지는 무덤을 발굴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거 당분간은 발굴하지 않기로 한 거 아니었어? 그런데 왜 갑자기 정책이 바뀐 거야?”

도윤의 말에 쉬주하오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나도 몰라. 아마 나뿐만 아니라 이유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걸? 전문가들의 반대도 극심해. 학자들이 거의 다 들고 일어났지.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중이야.”

“애초에 누가 아이디어를 낸 거야? 그래도 주동자가 있을 거 아냐?”

“작년 초에 장린펑이라는 사람이 신임 국가문물국 국장으로 취임했어. 그때부터 그 사람이 정부 각처에 로비를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얼마 전에 갑자기 건릉 발굴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얘기가 나오더라고. 아직 언론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가면 곧 발굴을 시작한다는 공식적인 발표가 나올 거야.”

중국의 국가문물국은 한국의 문화재청에 해당하는 기관이었다. 새로운 무덤의 발굴에는 굉장히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던 곳이었는데, 쉬주하오의 말에 의하면 장린펑 국장이 취임하면서 분위기가 바뀐 모양이었다.

도윤이 고개를 갸웃하는데 쉬주하오가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 북경 중앙미술학원에 다닐 때 장웨이닝 교수가 지도교수였다고 했지? 우리 회사에 중앙미술학원 나온 친구가 하나 있는데 네가 거기 다닐 때 장 교수님한테 무척 총애를 받았다며?”

“총애라고 할 것까지야……. 근데 그 분은 왜?”

“장린펑 국장이 바로 장웨이닝 교수의 사촌 동생이야. 그래서 건릉 발굴단장을 맡아달라고 계속 조르는 모양이야. 이왕이면 가깝고 믿을만한 사람한테 맡기고 싶다는 거겠지.”

“글쎄? 그 분이 그렇게 무모한 발굴을 맡을까? 그럴 분이 아닌데?”

“세상일이라는 건 모르지. 솔직히 유물 보전 기술만 확보되면 누구나 파헤치고 싶어 하는 곳이 거기니까. 앞으로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너도 궁금해 할 것 같아서 얘기해 두는 거야. 나야 서양화 감정이 주 전공이지만 너는 그래도 북경에서 공부할 때는 유물 복원학을 공부했잖아.”

쉬주하오와는 그 뒤에도 몇 가지 얘기를 나누었지만, 결국 그가 도윤에게 꼭 전해주고 싶다고 한 것은 건릉 발굴 소식이었다. 자기 딴에는 도윤이 관심을 가질만한 빅뉴스라고 생각한 듯 했고, 실제로도 도윤은 그가 전한 얘기에 큰 관심이 있었다. 비행기 시간이 가까워지자 쉬주하오는 출국 게이트까지 도윤을 배웅하고 돌아갔다.

비행기 출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도윤은 상하이 크리스티에 전화를 걸었다. 그는 몇 단계를 거친 뒤에야 지사장인 리우샨샨과 통화할 수 있었다.

“출장 감정은 포기하고 그냥 돌아가겠습니다. 이유는 잘 아실 테니 굳이 설명 드릴 필요 없겠죠? 아직 계약서에 사인한 건 아니니 위약금 같은 걸 청구할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제공했던 비행기 표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으면 저도 조용히 사라지겠습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제가 가지고 있는 동영상이 상하이 공안에게 전달될 거예요.”

상하이 공안이 크리스티와 연결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안에 영상을 보내는 사람이 언론이나 인터넷에는 아무 짓도 안 할까? 리우샨샨은 기분이 잔뜩 상한 게 분명했지만 별다른 토를 달지 않고 그냥 잘 가시라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결국 크리스티와는 평생 사이좋게 지내긴 틀렸군.”

이번에는 단순한 악감정이 아니라 실질적인 위협에 직면했다. 석훈이 녀석을 청파 갤러리에서 도로 빼와서 개인 경호원으로 데리고 다녀야 하나? 비행기에 올라타는 도윤의 마음이 영 개운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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