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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76화 (76/300)

76화

화랑을 운영하는 부모님 덕분에 도윤은 어렸을 때부터 부족함이 없는 생활을 누려왔다. 그랬던 그가 한국의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어릴 때 아머지 이세준에게서 들은 말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예술로 돈을 버는 건 화가가 아니야. 눈썰미 좋은 부자 수집가들이지. 좋은 작품을 사서 오래 묵혀두면 언젠가는 값이 오르기 마련이야. 반면에 뛰어난 천재들일수록 당대에는 대우를 못 받는 경우가 많고, 작품 값이 오를 때쯤이면 화가는 이미 죽고 없어.”

그때 들은 말 때문인지, 이세준은 하버드에서 미술사를 공부할 때 ‘메세나(Mecenat)’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그 전에도 그런 게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이가 들고 머리가 크자 그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던 것이다.

메세나는 문화 예술을 후원하는 기업 활동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 말은 본래 로마 시대에 문인과 예술가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유명했던 ‘마에케나스’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이집트에 사두었던 땅값이 크게 오르면서 거부가 되었는데, 나중에 그 돈을 모두 문화예술을 후원하는 일에 써달라는 유언을 남기도 죽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메디치 가문이나 20세기의 록펠러 가문 같은 곳이 당대의 대표적인 마에케나스라고 할 수 있다. 현대에 이르러 기업이 재단을 설립하거나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의 방법으로 문인이나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일련의 활동들을 모두 메세나라고 부른다.

여러 메세나 활동 중에서도 유독 도윤의 관심을 끈 것은 프랑스의 리카르(Ricard) 재단이 채택하고 있는 몇 가지 정책이었다. 리카르 재단은 주로 현대미술 작가들을 후원하는데, 각종 전시회를 개최하는 것 외에도 매년 그 해의 가장 대표적인 신인 작가를 한 명 선발해서 ‘리카르 재단 예술대상’을 수여한다.

그해 ‘리카르 상’을 받은 작가는 1만 유로의 상금을 받는 것 외에도 프랑스 국립 현대미술관인 ‘퐁피두 미술관’에 자신의 작품이 전시되는 명예를 누리게 된다. 리카르 재단에서 해당 화가의 작품을 구입해서 퐁피두 미술관에 영구 기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카르 상의 핵심은 역시 수상한 작가에 대한 평생 후원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리카르 상을 수상한 작가는 죽을 때까지 재단으로부터 매년 일정 액수의 금전적 지원을 받는다. 덕분에 생계를 위해 작가의 길을 포기하고 다른 일에 종사할 필요가 없다. 뿐만 아니라 작품을 전시하고자 할 때에도 재단으로부터 우선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낙찰가가 1억 5천만 달러니까 세금을 제하고도 1억 천만 달러 정도가 수중에 들어오겠구나. 그럼 대충 천삼백 억 원인가? 천만 달러 투자해서 열한 배로 늘린 셈이네.”

도윤은 자신이 얻은 결과가 쉽게 믿기지 않았다. 실감도 나지 않을 정도의 거액을 벌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리카르 상이었다.

가령 그가 리카르 재단처럼 매년 한 명씩 화가를 선정해서 다달이 2백만 원, 일 년에 2400만 원을 지원한다고 치자. 그렇게 평균 50년 동안 지원할 경우 한 사람에게 12억 원을 쓰게 된다. 그럼 이번에 번 돈으로 대충 백 명이 넘는 작가들을 지원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것도 이번에 번 돈을 고스란히 은행에 집어넣고 이자도 안 받는다고 칠 때의 얘기지. 재단을 세워서 기금을 잘 운영하고 후원금까지 받으면 더 많이 지원할 수 있을 거야.”

물론 재단을 설립해서 운영하려면 직원들 임금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부가 비용이 많이 들 것이다. 리카르 재단처럼 특정 화가들의 작품을 구입해서 국립 현대 미술관 같은 곳에 기증하려면 실제로 지원할 수 있는 화가들의 수는 더욱 줄어들 테고.

“그래도 일단 꿈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게 어디야.”

아무리 많은 돈이 생겼어도 당장 재단을 만드는 건 무리다. 그런 일은 돈이 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사회적 지위나 인맥을 비롯한 여러 가지 다른 토대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오윤수를 돕다가 다른 재능 있는 화가들이 발견되면 그때마다 조금씩 후원하는 화가들을 늘리는 게 적절했다. 그래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한껏 좋아지는 건 사실이었다.

그림이 팔렸다고 해서 곧바로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게 아니다. 경매가 끝난 뒤, 소더비는 앞으로 삼 개월에 걸쳐 그림 값이 분할 지급될 거라고 통보했다. 낙찰가가 거액일 경우에는 흔히 있는 일이라 도윤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다만 궁금한 게 있었다.

“근데 낙찰자가 누군지 혹시 말해줄 수 있나요?”

도윤의 말에 까미유가 난감한 웃음을 지었다.

“그게 안 된다는 건 누구보다 이 박사가 더 잘 알 텐데요? 낙찰자가 신분을 드러내고 싶었으면 굳이 전화로 응찰에 임했겠어요? 1억 달러가 넘는 돈이 오가는 거래인데.”

“어느 나라 사람인지만 가르쳐 주는 것도 안 돼요?”

“저쪽에 출품자가 한국 사람이라는 걸 알려줘도 된다면 한 번 생각해 볼게요.”

도윤의 얼굴이 뜨악하게 변하는 것을 본 까미유가 씩 웃더니 다른 말을 꺼냈다.

“아참. 크리스티 사장이 바뀌었대요. 드레스너 사장이 해고됐어요.”

“드레스너가 해고됐다고요? 스스로 물러난 게 아니고요?”

“아니요. 분명히 해고됐다고 들었어요.”

“해고 사유가 뭔데요?”

“회사에 큰 손해를 끼쳤다는 게 크리스티 쪽의 공식적인 발표이기는 한데, 다들 믿지 않는 눈치에요. 드레스너가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로 크리스티의 매출과 이익은 계속 증가해왔거든요. 더 이상한 건 최근 한 달 이내에 드레스너의 얼굴을 본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가슴이 섬뜩했다.

“설마 불치병을 앓고 있었던 건 아니겠죠? 가족들은 뭐래요?”

“드레스너는 독신이에요. 병을 앓고 있다는 얘기도 없었고요.”

도윤의 머릿속으로 다니엘 로스차일드의 이름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설마 상하이에서 한밤중에 괴한들이 침입했던 건 그냥 가벼운 해프닝 정도로 봐야 하는 거야?

그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뒤 까미유에게 작은 목소리로 부탁했다.

“이건 개인적인 호기심 때문에 그러는 건데요. 런던 크리스티에서 파베르제의 달걀을 몇 번이나 경매에 붙였다가 유찰된 적이 있잖아요. 혹시 그게 아직도 크리스티에 남아 있는지 알아봐 주실 수 있어요? 아직 가지고 있으면 제가 개인적으로 구매할 의사가 있어서요.”

“파베르제의 달걀이요? 이 박사가 귀금속 세공품에도 관심이 있었어요?”

“저야 당연히 모든 종류의 예술품에 다 관심이 있지요. 부탁합니다.”

까미유가 의심스러워하는 눈빛으로 도윤을 쳐다봤다.

“당연히 구매 희망자의 신분은 비밀이겠지요?”

“고흐의 해바라기를 산 사람이 누군지 밝혀주신다면 제 신분을 알려줘도 됩니다.”

까미유가 피식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또 좋은 물건이 생기면 소더비에 경매를 의뢰해야겠군. 적을 만들기는 쉬워도 아군을 만들기는 어려운 법이다. 도윤이 볼 때 까미유는 꽤나 믿음직한 아군이 될 가능성이 다분했다.

도윤은 뉴욕에 며칠 더 머물면서 오윤수가 미국으로 이사하는데 필요한 준비를 했다. 당장 생활할 때 쓸 가전제품과 생활용품들을 구입해서 빈 집에 채워 넣고, 작업실에도 테이블과 이젤을 비롯한 몇 가지 물품들을 들였다. 그런 준비를 다 끝낸 뒤에야 비로소 까미유에게 작별을 고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 행 비행기를 탔다. ‘피의 사원’으로 가는 비행기였다.

* * *

도윤이 뉴욕에서 비행기를 탄 지 얼마 되지 않아 런던의 다니엘 로스차일드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마스터. 그리넘입니다. 이도윤이 조금 전 상트페테르부르크 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상대의 고저 없이 메마른 목소리에 다니엘의 안색이 확 변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서울이 아니라?”

“네. 헬싱키를 경유해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가는 비행기입니다. 하지만 그는 헬싱키가 아니라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가는 표를 샀습니다.”

“그 자가 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갔지? 이유가 뭔데?”

“죄송합니다. 그것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본인이 직접 표를 구매한 것 같습니다. 소더비에서는 그가 서울로 돌아간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우리 쪽 직원들이 있지?”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특수요원은 아닙니다. 이 박사가 상하이에서 했던 용의주도한 행동으로 미루어보건대 어설픈 사람을 붙여서는 효과를 보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모스크바에서 몇 명 차출하도록 해. 나도 전화를 해 둘 테니까 지금 당장 보내.”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약물을 이용한 납치입니까? 상대가 반항을 하거나 도주를 시도할 경우에는 생각보다 일이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눈치가 아주 빠른 잡니다.”

다니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상하이까지 헛걸음을 했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분통이 터졌다. 평범한 미술사 박사라고만 생각했던 놈이 설마 그런 식으로까지 약삭빠르게 자신을 물 먹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여차하면 총기를 써도 좋아. 단, 죽이면 안 돼. 알아내고 싶은 게 있으니까 반드시 사로잡아. 팔다리가 떨어져나가도 상관없지만 놈을 내 앞으로 데려왔을 때 최소한 입은 살아있어야 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놈을 잡아서 어디로 데려갑니까?”

“모스크바에 있는 별장이 딱 좋기는 한데 거긴 너무 멀지?”

“그렇습니다. 자동차로 이동해야 하는데 모스크바까지는 8시간 넘게 걸릴 겁니다.”

“방음이 잘 돼야 하는데……. 그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임시로 집을 한 채 빌려. 지하실이 딸려 있는 곳으로. 집을 구하면 나한테 주소를 보내고.”

“알겠습니다. 생포에 성공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다니엘은 지그시 이를 악물었다. 이도윤이 파베르제의 달걀을 열었을까? 아직도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도윤이 다른 곳도 아니고 하필이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갔다는 게 신경에 거슬렸다. 그곳은 파베르제의 달걀이 만들어지고 사용된 도시였다.

“상하이에서 한 짓을 보면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이야. 게다가 미술사 박사니까 그동안 파베르제의 달걀을 열려고 했던 숱한 시도들이 모조리 실패로 돌아갔다는 걸 잘 알고 있었겠지. 그렇다면 나름대로 독특한 방법을 이것저것 시험해 봤을 수도 있어. 그러다 운 좋게 달걀을 열었던 건 아닐까?”

다니엘은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있지? 모든 건 놈을 붙잡아서 직접 심문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설사 놈이 달걀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상하이에서 헛물을 켰던 걸 생각하면 한 번쯤은 반드시 손을 봐주고 싶었다.

* * *

도윤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향해 날아가고 있던 시각, 런던의 최서라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논문 심사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요즘은 듀란 공방에도 나가지 못하고 책과 논문들 사이에 푹 파묻혀 지내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무수한 자료더미들 사이에서 강제로 끄집어낸 사람이 경호원인 조민아였다.

“도윤 씨는 잘 있겠지?”

식탁에 앉아 조민아가 준비한 음식을 묵묵히 입으로 옮기던 최서라가 불쑥 말을 내뱉었다. 조민아가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떠올렸다가 얼른 지웠다.

“당연히 잘 계시겠죠. 석훈 선배 말로는 지금 뉴욕에 있대요. 거기서 경매가 있나 봐요.”

“뉴욕? 설마 이상한 골목 같은데 막 들어가거나 그러진 않겠지? 거긴 아무나 총을 들고 다니는 나라잖아.”

조민아는 실소를 터트리려다가 억지로 참았다. 지금 누가 누구 걱정을 하고 있는 거야? 집이 난장판이 되는 바람에 경호원까지 고용한 사람은 정작 본인이 아니던가?

“총싸움이라면 아마 뉴욕의 갱들도 도윤 씨한테 못 당할 거예요. 물론 양쪽 다 총을 가지고 있을 때의 얘기지만. 도윤 씨, 진짜 명사수라고 하더라고요.”

“도윤 씨가 총을 잘 쏜다고?”

“석훈 선배한테 들었어요. 둘 다 UDT에서 함께 근무했었잖아요. 몸싸움 실력은 다른 대원들하고 비교할 때 그저 그런 수준인데 사격 실력만큼은 아무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뛰어났었대요. 선배 얘기로는 눈이 워낙 좋은데다 쓸 데 없이 간이 커서…, 어머 죄송해요.”

조민아가 실수를 깨닫고 얼른 말을 삼키자 최서라가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 바람에 입에 있던 음식이 사방으로 튀었다. 얼굴이 빨개져서 서로를 쳐다보던 두 여자가 결국 참지 못하고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한 달 넘게 잔뜩 굳어 있던 최서라의 어깨가 모처럼 느슨하게 풀어졌다.

* * *

도윤이 상트페테르부르크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0시가 가까웠다. 그는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곧바로 미리 예약해 둔 호텔로 직행해서 짐을 풀었다. 샤워를 마치고 룸서비스로 간단한 음식을 시킨 뒤에 창문 커튼을 열자 멀리 ‘피 흘리신 구세주 사원’, 약칭 ‘피의 사원’의 둥근 첨탑들이 보였다. 일부러 그곳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호텔을 잡은 덕이었다.

“이름이 조금 살벌하긴 해도 설마 저기서 진짜 피를 볼 일은 없겠지?”

피의 사원의 다른 이름은 ‘그리스도 부활 사원’이었다. 도윤은 니콜라이 2세가 저곳에 남긴 비밀이 오랜 잠을 깨고 다시 부활하기를 바랐다. 피를 보는 건 정말 사양이었다.

다음 날 아침, 도윤은 사원이 일반 관광객들에게 문을 여는 시각에 맞춰 그곳을 찾았다. 평일인데다 비교적 이른 시각이어서 그런지 성당을 구경하는 다른 관광객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유럽 어디를 가도 관광객이 그리 많지 않은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며칠만 지나면 방학을 맞은 대학생들이 유럽 전역을 발로 밟으며 돌아다닐 것이다.

도윤은 휴대폰을 손에 든 채 성당 이곳저곳을 배회하듯 돌아다녔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잠깐 멈춰 사진을 찍고는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영락없이 할 일 없는 관광객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새로운 장소에 도착할 때마다 예리하게 성당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모자이크 벽화들을 훑고 지나갔다.

‘분명히 어딘가에 나자로의 부활과 관계있는 벽화가 있을 거야.’

남들에게는 어려워도 황태자에게는 쉬워야 한다. 도윤은 니콜라이 2세가 남긴 암호의 핵심을 그렇게 이해했다. 따라서 문구 자체가 또 다시 복잡한 단계를 거쳐서 해석해야 될 만큼 꼬여있을 리는 없다고 보았다. 성당 안에 성경 구절을 직접 새긴 곳이 있지 않은 한, 암호의 첫 구절은 이곳에 있는 벽화를 가리키는 것일 가능성이 많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십 분가량 이곳저곳을 살피며 걷던 그의 발걸음이 어느 순간 한 자리에 딱 멈춰 섰다.

‘빙고!’

도윤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걸렸다. 그의 눈앞에는 그리 넓지 않은 복도와 복도 사이를 연결하는 아치형 출입구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그 아치 위에 미이라처럼 전신을 붕대로 칭칭 동여맨 사람이 무덤의 돌문을 열고 걸어 나오는 모자이크화가 그려진 게 보였다. 미이라 남자의 앞에는 익숙한 턱수염의 사내가 근엄한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부활한 나자로가 예수를 향해 걸어가는 장면이야.’

모자이크화는 색깔이 있는 작은 타일들을 벽에 붙여서 만들었다. 저렇게 만들면 타일이 부서지기 전까지는 웬만큼 세월이 지나도 변색이 되거나 흐려지지 않는다.

도윤의 시선이 아치를 따라 밑으로 내려왔다. 그러자 아치의 양 옆 허리 높이에 정사각형의 흰색과 검은색이 번갈아 교차된 체크무늬가 보였다. 세로 여덟 줄, 가로 네 줄씩으로 구성된 체크무늬는 체스 판을 절반으로 나눠 아치 양 옆으로 밀어놓은 것 같은 모양이었는데, 무늬 하나하나가 각각 하나의 검고 흰 타일을 붙여 만든 것이었다.

‘나자로에서 예수에게로. 왼쪽이 나자로니까 아치의 왼쪽이 백색 진영, 오른쪽이 흑색 진영이라는 뜻이겠지?’

그림 천에서 나온 암호 문구의 첫 구절이 풀렸다. 이제 남은 다섯줄을 풀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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