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도윤은 천에 그려진 문양을 다시 조립해서 얻은 문구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부활한 나자로에서 예수에게로.
흰색 나이트를 왼쪽 앞으로.
검은 색 폰은 두 칸 전진.
흰색 비숍은 다섯 걸음을 달린다.
검은 룩이 세 걸음 전진하면
체크메이트.
첫 구절은 눈앞의 벽화를 가리키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아치형 출입구 양 옆으로 새겨진 체크무늬는 둘로 나뉜 체스 판을 의미할 것이다.
‘흰색 나이트를 왼쪽 앞으로.’
도윤은 아치 왼쪽의 체크무늬로 다가갔다. 암호 첫줄에 의하면 그쪽이 백색 진영이 되어야 한다. 체스에는 각 진영마다 나이트가 두 개씩 있다. 그는 두 개의 흰색 나이트가 왼쪽 앞으로 움직일 경우 서게 될 자리를 하나씩 꾹 눌렀다. 전혀 반응이 없었다.
‘이상한데?’
당황스러웠다. 타일로 이루어진 반쪽짜리 체스 판 두 개를 처음 발견했을 때, 도윤은 암호가 가리키는 타일들을 손으로 누르면 당연히 무슨 반응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안으로 쑥 들어가거나 아니면 한쪽으로 밀리기라도 하겠지. 그런데 그런 도윤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타일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친 김에 세 번째부터 다섯 번째 구절에 해당하는 자리들도 순서대로 눌러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어떤 타일도 반응하지 않았다. 이게 아니었어? 그럴 리가 없는데? 맥이 탁 풀렸다.
순서를 바꿔가며 체스 판 앞에서 씨름하는 사이에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다. 갑자기 뒤쪽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젊은 남녀 한 쌍이 활짝 웃는 얼굴로 수다를 떨며 걸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한쪽으로 물러나서 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지만, 그때부터 끊어질 듯 이어지며 사람들이 한두 명씩 계속 통로를 지나갔다.
‘돌아버리겠군.’
한동안 초조함을 달래며 아치형 출입구 근처를 서성이던 도윤은 결국 잠시 물러나기로 했다. 실마리를 찾지도 못한 상태에서 이대로 시간만 낭비하는 건 무의미했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 성당을 나와 십여 분 정도 걷자, 따가운 햇살이 물결을 따라 반짝이는 넓은 강이 나왔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네바 강이었다. 도윤은 강변을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암호 문구대로 타일을 누르면 되는 게 아니었어? 그럼 뭐지?
그가 성당을 나왔을 때부터 네 명의 남자들이 멀찌감치 떨어져서 뒤따랐다. 도윤이 탁 트인 강변으로 나오자 거리를 조금 더 떨어트리기는 했지만 눈은 여전히 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평소라면 미행을 눈치 챘을 것이다. 하지만 반응하지 않는 타일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진 도윤은 누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도대체 내가 놓친 게 뭐지?’
고민이 계속됐다. 암호에 뭔가 더 깊은 뜻이 숨어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역시 그건 아닐 것 같았다. 처음부터 어린 황태자를 위해 만든 암호였다. 그걸 명색이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자신조차 풀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게 꼬아놨을까? 그럴 리가 없다. 그럼 도대체 그 타일에 무슨 짓을 해야 되는 거야? 누르는 게 아니라 그냥 부숴버려야 하나?
그는 걸음을 멈추고 강변의 벤치 위에 앉아 휴대폰을 꺼냈다. 혹시 문구를 잘못 기억하고 있나 싶어 예전에 찍어두었던 사진을 띄워 꼼꼼하게 살펴봤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사진 속의 문구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과 똑같았다. 그럼 결국 타일의 위치가 아니라 그걸 조작하는 방법이 틀렸다는 얘긴데…….
폴더를 뒤져서 이런저런 자료를 하나씩 띄워보다 보니 예전에 하버드 동창이 보내준 사진이 나왔다. 황태자의 침실을 찍은 사진이었다. 거울의 위치를 확인하느라 거짓말 조금 보태서 수천 번은 보고 또 봤을 것이다. 이 사진에서 내가 놓친 게 있을 리가 없는데…….
“이건 뭐야?”
문득 눈에 걸리는 게 있었다. 도윤은 세 개의 거울이 설치된 책상 부근을 최대한 확대시켰다. 책상 위에 몇 가지 물건들이 놓여 있는 게 보였다. 펜, 잉크, 책 몇 권, 멋들어진 촛대와 성냥, 돋보기, 그리고 뭔가 길쭉한 것들이 붙어 있는 둥근 원통. 둥근 원통?
자세히 들여다보니 원통처럼 길쭉하지만 허리 부근에 갈라진 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덮개가 있어서 뭔가를 넣고 꺼낼 수 있는 통이 아니라 그냥 머리가 반구 형태로 둥글게 처리된 덩어리라는 뜻이다. 옛날 사진이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표면에서 얼핏 금속광택이 나는 것 같았다. 뭐야? 전체가 하나의 쇳덩어리인 거야?
“근데 머리에 붙어 있는 이 길쭉한 것들은 장식인가?”
그의 관심을 끈 건 원통의 둥근 머리 부분에 붙어 있는 길쭉한 물건들이었다. 하나는 편지 봉투를 개봉할 때 쓰는 레터 오프너, 즉 편지 칼처럼 생겼고, 끝이 두 갈래로 살짝 벌어진 것은 아무래도 핀셋이나 족집게처럼 보였다. 희한한 건 그것들이 반구를 엎어놓은 모양의 원통 머리에 걸쳐진 채 흘러내리지 않고 붙어있다는 점이었다.
“용접이나 땜질을 한 건가? 아니면 어떻게 흘러내리지 않고 버티는 거야? 설마 자석?”
도윤은 저도 모르게 벤치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런 멍청한 자식. 같은 사진을 수도 없이 봤으면서도 시종 일관 방안에 장식된 거울에만 신경을 썼다. 황태자의 책상 위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다.
그는 휴대폰으로 과학 도구를 파는 상점들을 검색했다. 그런 뒤 곧바로 택시를 불러 타고 가장 가까운 곳으로 달려갔다. 그 바람에 그를 쫓던 남자들이 급하게 자신들이 몰고 왔던 차로 뛰어가는 소동이 벌어졌지만 그때까지도 여전히 도윤은 자신이 미행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상점에 도착한 그는 네오디뮴 자석을 샀다. 네오디뮴과 붕소, 철 등을 섞은 합금인데, 값이 저렴함에도 불구하고 아주 강력한 영구자석이었다. 다만 원하는 만큼 큰 것을 구할 수 없어서 작은 것을 여러 개 사서 테이프로 칭칭 동여맸다. 내친김에 몇 개의 표지판과 그걸 담을 가방까지 산 그는 택시를 타고 다시 ‘피의 사원’으로 돌아갔다.
사원을 구경하는 관광객들이 아까보다 더 늘었다. 붐빈다고 하기에는 한참 모자란 수였지만 그만해도 도윤의 입장에서는 무척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민폐를 끼치는 게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는 가방을 열어 ‘내부 수리 중’과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쓰인 팻말들을 꺼내서 아치형 출입구로 들어가는 통로 한복판에 세웠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앞뒤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다시금 나자로 벽화가 그려진 출입구 앞에 가서 섰다.
‘흰색 나이트를 왼쪽 앞으로.’
문구가 의미하는 두 개의 타일 위에 한 번씩 자석을 가져다 대었다. 첫 번째 타일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두 번째 타일에 자석을 대자 뭔가 끌어당기는 느낌과 함께 희미하게 철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됐다!
흰색 나이트와 검은 폰, 다시 흰색 비숍과 검은 룩. 도윤은 아치형 출입구 양쪽을 오가면서 암호 문구가 가리키는 타일들에 순서대로 자석을 가져다 댔다.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희미하게 빗장이 풀리는 듯한 찰칵 소리가 들렸다. 남은 문구는 단 한 줄.
“이젠 체크 메이트지?”
도윤은 백색 킹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자석을 댔다. 열려라 참깨!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뭐야? 마지막에 와서 또 실패인 거야? 속이 타들어갔다.
“이런 빌어먹을 자식이. 너 자꾸 이러면 부셔버리는 수가 있어.”
도윤은 백색 킹이 있는 자리를 손바닥으로 힘껏 쳤다. 그런데 갑자기 타일 전체가 안으로 쑥 밀려들어갔다.
“어?”
깜짝 놀란 그는 손을 앞으로 뻗은 채 난데없이 생긴 구멍 안을 들여다보았다. 구멍 바닥에 조그만 공간이 있는 게 보였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압력으로 보아 손을 놓으면 타일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도록 용수철 장치가 되어 있는 게 분명했다.
구멍이 작아 다른 손을 더 넣을 공간은 없었다. 그는 손바닥에 힘을 준 채로 가운데 손가락을 바닥의 공간으로 밀어 넣었다. 끝에 뭔가가 잡혔다.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잡아당기자 둥글고 납작한 금속 통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파베르제의 달걀 안에서 나온 것과 비슷한 모양과 크기였다.
재빨리 금속 통을 잡아채어 손을 빼자 밀려들어갔던 타일이 제자리로 돌아와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구멍을 막았다. 다시 밀어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마도 저걸 밀어 넣으려면 암호 문구에 따라 처음부터 다시 자석을 가져다 대야 하는 게 분명했다.
“이 자식 진짜 사람 여러 번 놀라게 만드네. 이 안에서 또 암호가 그려진 천 조각이 나오면 평생 니콜라이 2세를 저주할 테다.”
다행히 니콜라이 2세는 도윤의 저주를 피했다. 대신 그를 실망시키기는 했다. 금속 통을 열자 안에서 평범해 보이는 목걸이 하나가 덜렁 나왔던 것이다. 다른 건 없었다. 목걸이에는 둥근 펜던트가 하나 달렸을 뿐, 금이나 보석 장식도 전혀 없었다. 도윤은 허탈해서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보물이 아니라 그냥 유물이었어?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물건이기에 이렇게까지 비밀스럽게 숨겨놓은 거야? 황태자가 이걸 가지고 뭘 하라…, 어어어어어?”
홧김에 투덜대던 도윤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목걸이에서 붉은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주인이 있는 유물이라는 뜻이다. 더구나 황당하게도 그 빛이 도윤의 몸에 연결되었다. 기겁을 한 그는 얼른 원통의 뚜껑을 도로 닫아버렸다.
“내가 이 목걸이의 주인이라고? 한 사람이 두 개의 능력을 얻을 수도 있는 거였어?”
예상치 못한 유물의 등장에 따른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지금까지 도윤은 여러 명에게 유물의 능력을 전해주었다. 하지만 한 사람이 두 개의 능력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자신도 처음 다산의 능력을 전해 받은 뒤로는 지금까지 다른 유물과 연결된 적이 없었다. 그 때문에 은연 중 한 사람은 하나의 유물에 대해서만 주인이 될 수 있을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방금 그 짐작이 깨졌다.
“이게 도대체 뭐기에 능력을 품고 있는 거지?”
평범한 은제 펜던트에 불과했다. 그는 전 세계의 온갖 예술품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라스푸친의 목걸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그건 극소수의 인물들에게만 은밀하게 전해지는 이야기였고, 도윤은 그 극소수의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통로 입구에 설치해놨던 팻말들을 거두어 다시 가방에 집어넣고서 서둘러 피의 사원을 빠져나왔다. 지금으로서는 무엇보다 목걸이의 능력을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기상으로는 딱 맞게 나타난 셈이야.”
작년에 최서라에게 능력을 전해 준 뒤로 벌써 열 달이 지났다. 슬슬 다른 유물과 주인을 찾아야 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아무데서나 함부로 능력을 받으면 안 된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그럴 경우 한동안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 때문이다. 그는 성당을 나오자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곧바로 호텔로 직행했다. 그가 탄 택시를 한 대의 검은 색 세단이 뒤따르고 있었다.
* * *
호텔로 돌아온 도윤은 먼저 방문 밖에 ‘방해하지 마시오’ 팻말을 걸어 놨다. 오늘이야 이미 한차례 방 정돈을 마쳤으니까 종업원이 들어올 리 없겠지만 언제까지 정신을 잃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리 대비를 한 것이다.
‘설마 여기까지 괴한들이 침입하지는 않겠지?’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올 때 아무에게도 행선지를 밝히지 않았다. 까미유조차도 그가 서울로 간 줄로만 알 것이다. 불안한 마음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다니엘 로스차일드가 그렇게까지 용의주도하게 자신의 뒤를 쫓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욕실에서 깨끗하게 몸을 씻은 뒤 이까지 꼼꼼하게 닦고 나서야 속옷만 입은 채 침대 위로 올라갔다. 기절할 때를 대비해서 다리를 쭉 펴고 앉은 상태에서 금속 통을 열었다. 안에서 목걸이를 꺼내자 대뜸 붉은 빛이 흘러나와 도윤의 몸에 연결됐다.
“다산 선생이 준 능력은 머리가 좋아지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과연 어떤 걸까? 그러고 보니 이게 누구로부터 전해진 능력인지도 전혀 모르잖아?”
약간 불안하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주인에게 해를 끼친 유물은 없었다. 그는 금속 통을 침대 옆의 작은 테이블에 올려놓은 뒤 펜던트를 손에 꼭 쥐고 정신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붉은 빛이 한 번 꿈틀하는가 싶더니 곧바로 그의 심장으로 빨려 들어왔다.
“으윽.”
가슴 속으로 묵직한 게 밀려들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심장이 점점 크게 뛰는가 싶더니 가슴을 타고 뻗어나간 기이한 힘이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끝내는 목을 타고 위로 밀고 올라온 힘이 머릿속에서 화려하게 폭발했다.
“헉!”
충격을 이기지 못한 도윤이 끝내 짧은 비명과 함께 목걸이를 꼭 쥔 채 뒤로 넘어갔다.
창문을 닫고 커튼까지 쳐놓은 터라 방안에는 오랫동안 침묵만이 감돌았다. 도윤이 정신을 잃고 쓰러진 지 다섯 시간 정도 지났을까? 노크 소리도 없이 호텔 방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네 명의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커다란 가방 두 개를 들고 있었는데, 방에 들어오자마자 두 명의 남자가 소음기가 달린 권총을 꺼내들더니 전등 스위치를 올렸다. 불이 밝혀지자 약간 떨어진 곳의 침대 위에 속옷만 입은 도윤이 누워있는 게 보였다. 그는 정신을 잃은 상태였지만 가슴이 고르게 위 아래로 움직이고 있어서 겉으로는 영락없이 깊이 잠든 것처럼 보였다.
일행의 리더인듯 한 자가 고갯짓을 하자, 남자 한 명이 도윤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그를 살폈다. 그 사이에 권총을 든 두 남자가 침대 양 옆을 지켰다. 이윽고 도윤이 완전히 잠들었다고 생각한 남자가 주머니에서 밀봉한 비닐주머니를 하나 꺼냈다. 그는 안에서 마취제가 적셔진 수건을 꺼내 도윤의 얼굴에 대고 힘껏 눌렀다.
1분 정도 지나자 남자가 손수건을 치웠다. 그는 손수건을 다시 비닐봉지에 넣은 뒤 도윤의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호흡과 맥박을 확인했다.
“완전히 마취된 것 같습니다.”
남자의 보고를 받은 리더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단계를 진행해.”
권총을 들었던 남자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먼저 도윤에게 옷을 입힌 뒤 양 손목과 허벅지를 가지고 온 테이프로 단단히 묶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도윤이 쥐고 있던 목걸이를 떼어냈다. 이상할 정도로 단단히 쥐고 있어서 간신히 손가락을 펼 수 있었다.
“이건 어떻게 할까요?”
도윤의 소지품을 챙기던 부하 하나가 목걸이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리더가 고개를 살짝 찌푸리다가 간단하게 지시를 내렸다.
“녀석의 소지품하고 같이 챙겨.”
남자들은 가방 안에서 접이식 휠체어를 꺼내 도윤을 앉히고 커다란 모포로 목 아래부터 발목까지 완전히 덮었다. 머리에는 모자를 씌우고 입에는 마스크까지 채웠다.
도윤을 데리고 갈 준비가 모두 끝나자 리더가 전화기를 들었다.
“마스터. 그리넘입니다. 이도윤을 무사히 생포했습니다. 지금부터 녀석을 별장으로 옮기려고 합니다. 직접 오셔서 심문하시겠습니까?”
“흐음, 일단 내가 가도록 하지. 그건 그렇고, 녀석이 피의 사원에 들어갔다고 했지? 거기서 뭔가를 가지고 나오는 기색은 없었나?”
다니엘의 질문에 그리넘이 고개를 갸웃했다.
“특별히 짐이 추가된 흔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놈을 제압할 때 은제 목걸이 하나를 꼭 쥐고 있기는 했는데, 그 외에 달리 눈에 띄는 소지품은 없었습니다.”
의자에 앉아 전화를 받던 다니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은제 목걸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혹시 이게 찾으시던 물건입니까?”
“그거 사진 찍어서 당장 나한테 전송해. 물건은 자네가 잘 가지고 있게.”
“알겠습니다.”
“공항에 전용기를 대기시켜놨어. 지금 당장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출발할 테니까 내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 늦어도 여섯 시간 안에는 도착할 거야.”
“그럼 놈을 데리고 별장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다니엘은 전화를 끊자마자 곧바로 차를 대기시켰다. 별것도 아닌 놈 때문에 시간과 돈을 너무 많이 들인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뜻하지 않게 횡재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가슴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