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12. 치료의 능력>
“이쪽으로 오십시오. 왕세제께서는 서재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정중하지만 고압적인 태도. 리치오 폴리니는 자신을 앞서가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를 따라가며 침을 꿀꺽 삼켰다.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저택까지 직접 부른 거지?’
리야드에 위치한 나일라 아트 갤러리에서 근무한 지도 벌써 몇 달이 지났다. 그동안 적지 않은 미술품들을 감정했지만 왕세제는 물론이고 다른 고관들의 집으로 직접 출장을 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불안하면서도 어쩌면 이게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이리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남자가 노크를 한 뒤 열어주는 문을 따라 서재에 발을 들이는 순간, 길쭉한 회의용 테이블의 상석에 앉아 있는 이브라힘 왕세제가 제일 먼저 보였다. 처음 나일라 아트 갤러리의 감정사로 채용되었을 때, 얼굴만 잠깐 봤던 인물. 이곳에 온 뒤로 그가 현재의 국왕 다음의 실질적인 2인자라는 얘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어서 오시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왕세제의 오른쪽 옆에 앉아 있던 중년의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폴리니에게 맞은편 자리를 권했다. 압둘 바시뜨 알 하쉬르. 이브라힘 왕세제의 비서실장인 그의 얼굴도 처음 사우디아라비아에 왔을 때 봤던 게 전부였다.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라는 얘기였다.
“나일라 아트 갤러리에서 감정사로 일하고 있는 리치오 폴리니입니다. 감정할 물건이 있어서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폴리니는 압둘이 권한 자리에 앉으면서 최대한 정중하게 말했다. 방 전체를 거인이 내리누르고 있는 것처럼 분위기가 답답했다. 왕세제의 서재에 들어온 지 불과 십여 초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물건만 빨리 감정하고 자리를 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우라를 볼 수 있다고 들었소.”
갑작스러운 이브라힘의 말에 폴리니는 잠시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우연히 얻게 된 능력입니다. 덕분에 진작과 위작을 정확하게 가려낼 수 있는 감정사가 되었지요.”
믿을까? 믿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게 사실이니까. 처음부터 자신이 아우라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끼고 접근한 자들이다. 나일라 아트 갤러리에 취직한 이후로도 이미 여러 차례의 감정을 통해 능력을 입증했다. 이제 와서 의심한다면 저들은 어리석은 자들이다.
폴리니가 일부러 고개를 뻣뻣하게 들 때 이브라힘이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졌다.
“아우라 말고 다른 건 볼 수 있는 게 없소?”
“다른 거라면 뭘 말씀하시는 건지…….”
“글쎄, 뭐라고 할까……. 가령 예술품으로부터 사람에게로 이어지는 황홀한 빛 같은 걸 본적은 없소? 사람마다 빛의 색깔이 다르게 보인다고는 하던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폴리니는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몸에서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까? 죄송하지만 그런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이브라힘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지는 듯하더니 입맛을 다셨다. 그가 턱짓을 하자 압둘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동그란 펜던트가 달린 평범한 은제목걸이였다. 압둘이 폴리니의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며 물었다.
“이 물건에서 아우라가 보입니까?”
이 사람들이 지금 뭘 하는 거지? 폴리니는 내심 찜찜한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 눈앞의 목걸이에 집중했다. 앞면에는 개천이 가로지르며 흐르는 벌판 너머로 산봉우리 세 개가 양각되어 있었고, 뒷면에는 영어 대문자 P에 X가 겹쳐진 기호가 음각으로 새겨졌다. ‘크리스토스(ΧΡΙΣΤΟΣ)’. 예수를 뜻하는 가톨릭의 전통적인 기호였다.
‘별로 특별할 게 없는 평범한 목걸인데? 재질도 그냥 은인 것 같고.’
그래도 왕세제씩이나 되는 사람이 특별히 감정을 부탁한 물건이니 혹시 뭔가 있을까 싶어서 세밀하게 들여다봤다. 하지만 한동안 목걸이를 살피던 그는 결국 고개를 저었다.
“이 목걸이에서는 아우라가 보이지 않습니다.”
압둘이 이브라힘을 쳐다봤다. 그러자 그가 쯧 하고 혀를 차더니 입을 열었다.
“가짜란 말이오?”
“글쎄요. 아우라는 진작인 예술품에서만 흘러나옵니다. 아우라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이 목걸이가 가짜든가 아니면 아예 예술품으로 간주될 만한 수준의 물건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제 견해를 말씀드리자면…….”
“됐소. 수고했어요. 그만 돌아가도 좋습니다.”
이런 평범한 은제 목걸이를 예술품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폴리니는 그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이브라힘 왕세제가 먼저 손을 들어 나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뭐 이런 더러운 경우가! 폴리는 순간적으로 울컥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이 목걸이가 어떤 물건인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감정가로서의 순수한 호기심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이브라힘과 압둘의 얼굴이 동시에 굳는 것을 보고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폴리니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등을 돌렸다. 그가 서재의 문을 열려는 순간, 뒤에서 이브라힘 왕세제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링커는 아닌 것 같군.”
“그런 모양입니다.”
링커? 무슨 소리지? 목걸이를 말하는 거야, 아니면 나를 두고 하는 소리야? 폴리니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압둘 비서실장의 목소리가 비수처럼 날아와 귀에 꽂혔다.
“오늘 여기서 이 목걸이를 봤다는 얘기는 누구에게도 하지 마시오.”
“알겠습니다.”
대답을 하자마자 바로 서재의 문을 열고 나갔다. 등 뒤로 문을 닫자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마치 서재가 아니라 거인의 동굴에서 빠져나온 듯한 느낌이었다. 도대체 저 평범한 목걸이가 뭐기에 저렇게 무게를 잡는 거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니까 더욱 더 목걸이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미술품이 아니면 깊은 비밀이라도 숨겨진 물건이라는 거야?
* * *
서울에 도착한 도윤은 현소 화랑, 정확히는 아버지에게 며칠 휴가를 부탁했다. 몸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멀쩡했지만 정신적으로 탈진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납치를 당해서 죽을 뻔했다는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알았다. 갑자기 거액이 생겼으니 앞으로 뭘 할지 며칠 쉬면서 생각을 정리해보는 것도 괜찮겠지. 그래도 오 화백 문제는 제대로 처리해야 한다. 떠나기 전에 한 번 만나 봐.”
이세준은 자신의 아들보다 나이가 어린 오윤수를 꼬박꼬박 오 화백이라고 불렀다.
“네. 그래야죠. 뉴욕 행을 추천한 사람이 저니까 떠나기 전에 만나서 그쪽 상황이 어떤지 얘기를 해 줄 거예요. 그리고 이번에 번 돈을 어떻게 쓸지는 미리 생각해 둔 게 있어요. 당장 시작할 건 아니지만 계획이 정리되면 문서로 보고 드릴게요.”
되도록 숨겼지만, 부모님께는 사전에 다섯 송이 해바라기의 주인이 자신임을 밝혔다. 그게 예의고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뉴욕 소더비의 경매 결과는 워낙 전 세계적으로 떠들썩하게 화제가 됐기 때문에 이세준과 서연희도 결과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세준은 아들이 천억이 넘는 돈을 어떻게 쓸지에 대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네 돈이니 네가 원하는 곳에 써라. 남한테 욕먹을 짓만 하지 않으면 돼.”
“그래도 나중에 보고 드리면 충고는 해 주실 거죠?”
“네가 잔소리로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하지만 화랑 사업에 관한 거라면 모를까, 다른 사업이나 투자에 대해서는 나도 아는 게 없어.”
그걸로 충분했다. 돈이 모두 계좌에 입금되려면 앞으로 석 달 정도 기다려야 한다. 그 시간이면 계획을 정리해서 아버지께 의견을 묻기에는 넉넉한 시간이었다.
도윤은 서울에 도착한 다음날 곧바로 병원에 가서 종합 검진을 받았다. 그가 막 집을 나서려는데 전화가 왔다. 석훈이었다.
“상하이는 잘 갔다 왔어요? 형 본지도 오래 됐는데 밥이나 같이 먹읍시다.”
“미안하다. 나 지금 급히 다녀와야 하는 데가 있어서 그런데 밥은 나중에 먹자.”
“급한 일? 어제 귀국했다면서요? 근데 벌써 바쁜 일이 있어요?”
“병원 가야 해. 진료 예약 시간 다 돼서 그러니까 다음에 얘기하자.”
전화를 끊고 병원에 가서 하루 종일 검진을 받았다. 총을 맞은 지 불과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등의 상처는 흉터만 남기고 완전히 아물었다. 옆구리에 총알이 스쳤던 자리가 약간의 흔적만 남기고 깔끔해진 것으로 보아 등 뒤의 흉터 역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게 분명했다.
“특별히 이상한 곳은 없는데요? 부러울 정도로 건강한 상태예요.”
종합 검진 수준으로 검사를 받았지만 의사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 운동선수들이 하는 것처럼 체력 지수를 측정했다면 상당히 놀라운 결과가 나왔겠지만, 도윤도 거기까지 나가지는 않았다. 굳이 그런 검사를 하지 않아도 몸이 좋아졌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본인 스스로가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근육량도 며칠 사이에 약간 늘은 것 같았다.
뉴욕으로 떠나기 전날 만난 오윤수는 도윤에게 거듭 감사를 표시했다.
“뉴욕에 가서 그린 첫 번째 그림은 형한테 드릴게요.”
“첫 번째 그림 말고 가장 잘 그린 걸로 줘.”
“하하. 네 그럴게요. 기다리세요. 멋진 작품을 완성할 테니까.”
도윤은 오윤수를 만난 자리에서 계약서를 제시했고, 그는 단번에 사인했다. 향후 3년 이내에 최소한 한 번 이상의 개인전을 열어야 하고, 그 사이에 개최되는 모든 전시회는 장소 불문하고 현소화랑이 독점적으로 주관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대신 다음 달부터 3년 동안 도윤은 그에게 매년 삼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건 너무 저한테만 유리한 조건인 거 같아요.”
오윤수는 계약서에 사인하면서도 은근히 미안해했다. 도윤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투자야. 네가 우리 화랑에 그 이상의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본 거지. 대신 3년 동안 별다른 발전이나 성과가 없을 경우 재계약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성과도 없이 혜택을 바란다면 제가 도둑놈이겠죠.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사는 게 꿈이었어요. 여기서 더 발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3년 동안 그림만 그리며 살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더 이상 행복할 수가 없어요. 제가 누군가에게 뭔가를 보답할 수 있게 된다면 첫 번째로 그걸 받을 사람은 분명히 형이 될 거예요.”
그 정도면 됐다. 연주자는 연습을 좋아해야 하고 화가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야 한다. 발전이나 성과는 그 결과로 오는 것이지 억지로 노력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오윤수를 공항까지 배웅하고 돌아온 날, 뜬금없이 폴리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박사. 혹시 앞면에는 벌판하고 산이 양각되어 있고 뒷면에는 PX 표시가 음각된 은제 목걸이에 대해 들어봤어? 누가 감정을 부탁했는데 암만 봐도 정체를 모르겠어서 말이야.”
하마터면 휴대폰을 떨어트릴 뻔 했다. 피의 사원에서 얻었던 목걸이! 도윤은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잠시 동안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려야 했다.
“글쎄? 말만 들어서는 뭔지 잘 모르겠는데? 혹시 사진 같은 거 없어?”
“사진은 없어. 물건 주인이 자기 집으로 나를 불러서 감정시켰는데, 사진을 찍는 건 고사하고 목걸이를 봤다는 얘기도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이 박사도 어디 가서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는 소리를 하면 안 돼.”
“알았어. 아무튼 얘기만 들어서는 나도 무슨 목걸인지 떠오르는 게 없는데?”
“이 박사도 모르는 게 있기는 하네. 조금 기대를 했었는데.”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당연한 얘기지만 나도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게 더 많아.”
“알았어. 언제 한 번 시간 나면 리야드에 놀러와. 특별히 재미있게 놀만 한 게 없는 곳이기는 하지만 미술관하고 사막 구경은 시켜줄 수 있으니까.”
“그러지. 덕분에 이슬람 예술품도 구경할 수 있겠네. 시간이 나면 가기 전에 전화할게.”
대충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 폴리니가 다급하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참. 혹시 링커라는 말 들어봤어?”
악력만 충분했으면 휴대폰이 손 안에서 박살났을 거다. 도윤은 대답을 하기 전에 잠시 고개를 들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링커? 그게 뭐야?”
“나도 모르니까 물어봤지. 물건 주인이 감정을 끝낸 다음에 링커가 아닌 것 같다고 중얼거렸거든. 그게 목걸이를 가리키는 건지, 아니면 뛰어난 감정사를 부르는 호칭인지 모르겠어. 몇 가지 책을 찾아봤는데도 그런 말은 없더라고.”
“링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유물이나 미술품이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감정사를 부르는 호칭 가운데 그런 게 있다는 소리도 처음이고.”
“몸에서 아우라가 나오는 사람 얘기는?”
“외계인을 말하는 거야?”
도윤의 대답에 폴리니가 낄낄대고 웃었다.
“알았어. 물어보는 것마다 모른다니까 그것도 새로운 느낌이긴 하네. 이제야 네가 인간처럼 보인다. 그럼 다음에 보자.”
전화를 끊자 등 뒤에서 식은땀이 쫙 흘렀다. 뭐야? 그 목걸이가 어떻게 사우디아라비아에 가 있는 거야? 뺏긴 지 고작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다니엘이 그 사이에 설마 그걸 팔았을 리는 없잖아? 더구나 링커라고? 그런 말이 정말로 있었어? 입술이 바짝 말랐다.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폴리니를 집으로 부른 사람은 이브라힘 왕세제일 가능성이 컸다. 나일라 아트 갤러리 사람들이 도윤을 스카웃하러 왔을 때, 배후에 이브라힘이 있다는 얘기를 슬쩍 흘렸었던 것이다. 그 정도 권세가 있지 않고서는 국립 미술관의 외국인 감정사를 그렇게 마음대로 자기 집으로 불러들여서 출장 감정을 시키기는 힘들다.
“다니엘 로스차일드가 그렇게 고생해서 얻은 목걸이를 벌써 팔았을 리는 없으니 도난당하거나 뺏겼다는 얘긴데……. 그 인간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흔하진 않겠지.”
영국의 갑부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제가 모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얻고 싶어 하는 목걸이. 도윤은 자신이 진짜 골치 아픈 일에 말려들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더 심각한 것은 목걸이를 가지고 있는 자가 ‘링커’라는 말을 입 밖에 냈다는 점이다. 그 목걸이에는 특별한 능력이 깃들어 있었다. 지금은 그 능력이 자신에게로 옮겨와 버렸지만 그걸 아는 사람조차 도윤 한 사람뿐이다. 게다가 몸에서 아우라가 나오는 사람이라고?
“놈들은 그 목걸이에 특별한 능력이 담겨 있을 뿐 아니라 그걸 사람에게 옮기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아마 그런 물건이나 사람을 링커라고 부르는 게 확실해.”
확실하지는 않지만 능력이 담긴 물건이 아니라 자신처럼 그 능력을 사람에게 옮겨줄 수 있는 자를 링커라고 부를 가능성이 더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가 막힌 것은 그런 용어가 이미 예전부터 존재했고, 그걸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미술사를 전공한 자신조차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면 아마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은밀히 전해지는 명칭일 것이다.
만약 모든 짐작이 사실이라면 다니엘이 왜 그토록 자신의 목걸이를 뺏으려고 했는지, 이브라힘 왕세제로 짐작되는 그 저택의 주인이 왜 폴리니가 링커인지를 확인하려 했는지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다. 아마 그들은 파베르제의 달걀을 열고 그 안에 있던 물건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자신을 추적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죽은 척 하고 살 수도 없고, 앞으로 문제가 끊이지 않겠군. 놈들은 목걸이의 능력이 이미 사라졌다는 걸 알지 못하니까 당분간은 그걸 되찾거나 링커를 찾아내는데 집중할 거야. 도대체 그 목걸이의 정체가 뭐지? 어디서 그런 게 튀어나온 거야?”
그날부터 도윤은 두 가지 일에 매달렸다. 하나는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자신이 얻었던 목걸이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 뒤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다니엘에게는 쓴맛을 보여줄 작정이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