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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81화 (81/300)

81화

짧은 휴가를 끝내고 업무에 복귀한 뒤에도 도윤은 이따금씩 들어오는 감정 의뢰를 처리하는 것 말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목걸이의 정체를 파악하는데 쏟았다. 아버지에게 하기로 했던 문서 보고도 뒤로 미뤘다. 지금은 아직 다 들어오지도 않은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목숨을 위협했던 물건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게 더 급했다.

문제의 목걸이가 니콜라이 2세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목걸이 자체는 당대에 만들어지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펜던트의 앞뒤로 새겨진 문양의 세공 방식이 19세기 후반, 혹은 20세기 초반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투박하고 낡아보였기 때문이다. 황제에게 바쳐질 물건을 그렇게 검소하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 했다.

“애초에 황제나 황실의 물건이 아닐 가능성이 많아. 그렇다면 니콜라이 2세도 원래 남의 물건이었던 것을 얻었다는 얘긴데, 그렇게 외관상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물건을 갖은 애를 쓰면서까지 황태자에게 비밀스럽게 전해주려 했다는 게 의미심장해. 황제도 목걸이에 신비한 능력이 담겼다는 걸 알았다는 뜻이야.”

유물의 능력을 전해 받은 사람은 새로운 능력에 대해 완전하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능력을 얻은 뒤로 몸이 전보다 좋아진 것은 물론이고 총에 맞은 상처조차 놀랄 정도로 빠르게 아물었다. 새로 받은 능력이 신체능력을 강화시켜주고 회복을 도와준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목걸이가 전해 준 능력은 아마 과거의 소유자와 연관이 있을 거야. 사람의 몸을 튼튼하게 해 주고 상처를 치료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누구였지?”

도윤은 처음에 당시 황제나 황실 가족의 건강을 돌보았던 주치의들에 대해 조사했다. 그러나 그들에 관한 기록과 사진을 최대한 모아서 살펴도 자신이 보았던 목걸이와 연관된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혹시나 싶어 당대의 세공 명인들에 대해서도 알아봤지만 비슷한 양식의 물건조차 만든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도윤이 라스푸친의 이름을 떠올린 것은 조사를 시작한지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어떤 면에서는 그의 이름이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조사 대상에서 빠트린 측면이 있었다.

라스푸친은 공식적인 의사나 치료사가 아니었고, 오히려 괴승, 혹은 요승으로 더 잘 알려졌다. 정사보다는 야사에서 더 빈번하게 거론되는 인물이다 보니 도윤도 처음에는 무의식적으로 그를 조사 대상에서 배제했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생각하니 그보다 이 목걸이에 더 잘 어울리는 인물이 없었다.

“청산가리가 든 과자를 먹고도 멀쩡했다거나 총을 여러 발 맞고도 죽지 않았다는 얘기에는 과장이나 왜곡이 가미되었을 수 있어. 그러나 라스푸친이 황태자의 혈우병을 완치시키지는 못했어도 그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게 사실일 거야. 그러니 그 성과를 바탕으로 황실 가족과 친분을 다지는데 성공했겠지.”

만약 목걸이가 라스푸친과 연관이 있다면 도윤이 받은 능력은 자신의 몸을 튼튼하게 해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데에도 효과가 있을 게 분명했다.

도윤은 당장 라스푸친에 관한 자료를 조사했다. 그가 문제의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는 사진이 남아 있다면 제일 좋을 것이다. 그게 없다면 최소한 라스푸친과 목걸이의 연관성에 관한 기록이라도 찾고 싶었다. 하지만 간신히 찾은 몇 장의 사진 중에는 그가 목걸이를 매고 있는 게 없었다. 또한 어떤 문서 자료에도 라스푸친의 목걸이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여기저기에 공개적으로 자료를 찾아달라고 요청하는 건 곤란해. 황태자의 침실 사진을 구할 때야 몰라서 그랬다 쳐도, 잘못하면 엉뚱한 사람들마저 위험하게 만들 수 있어.”

그랬다가 그 사실이 다니엘 로스차일드나 이브라힘 왕세제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자신은 물론이고 자료를 구해준 사람조차 곤경에 처할 위험이 있었다. 난감했다.

“내가 찾기 어려우면 알고 있는 놈들이 스스로 입을 열게 하는 수밖에.”

하지만 그 전에 자신과 가족의 안전 문제부터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마음 편히 목걸이의 정체를 확인하고 다니엘에 대한 복수를 계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윤은 며칠 동안 사전 작업을 한 뒤에 석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나보고 청파 갤러리에서 나오라고요?”

오랜만에 밥이나 같이 먹자는 전화를 받고 별 생각 없이 나온 자리였다. 그런데 느닷없는 도윤의 제안을 받고 석훈은 뜨악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형. 형이 힘을 써줘서 거기 들어가게 된 건 저도 알아요. 그건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들어간 지 몇 달도 되지 않아서 도로 나오라는 건 좀 그렇잖아요? 거기가 제 두 번째 직장인데 들어가는 곳마다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나오면 경력에도 문제가…….”

“지금 받고 있는 월급의 1.5배를 줄게. 현소 갤러리에서 정직원으로 채용하는 거고, 당연히 4대 보험도 다 될 거야. 경호원이 아니라 내가 맡고 있는 팀의 팀원으로 들어오는 거니까 평생 경호원 할 생각이 아니라면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월급을 지금보다 50%나 올려준다고요?”

“그래.”

“경호원이 아니면 나보고 책상에 앉아서 서류 작업을 하라는 거예요?”

“딱히 네가 처리해야 할 서류는 많지 않을 거야. 뭘 하든 그냥 내가 하는 일을 돕는다고 생각하면 돼. 그렇다고 너한테 그림 감정을 맡기지는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럼 구체적으로 나한테 무슨 일을 시킬 건데요.”

“아직 계획을 다 짜지는 않았지만 내가 화가들을 후원하는 재단 같은 걸 하나 만들 생각이야. 거기서 화가들에게 필요한 일들을 헌신적으로 맡아서 처리해줄 사람이 필요해. 그 밖에 너만 할 수 있고, 또 너를 믿기 때문에 부탁할 일도 있어.”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요?”

“그건 네가 제안을 수락하면 말해줄게. 지금 이야기하기는 곤란해.”

석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녀석이 뭔가를 한참 고민하는가 싶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형. 솔직히 말해 봐요. 도대체 요즘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거 위험한 일이에요? 누구한테 협박이라도 받았어요?”

도윤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 자식 봐라? 사람이 좀 가벼워도 눈치가 좋은 놈이기는 했다. 그렇더라도 이렇게 곧바로 핵심을 찌르고 들어올 줄은 몰랐다.

“지금 협박을 받는 건 없어. 하지만 솔직히 위험한 일이 있기는 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위험할지도 몰라. 한 번 들으면 절대로 지켜야 할 비밀도 있고.”

석훈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도윤을 쳐다봤다.

“형, 며칠 전에 병원에 갔었다고 했죠? 거긴 왜 갔던 거예요?”

도윤은 잠시 망설였다. 어차피 할 얘기이기는 했지만 막상 총에 맞았다는 소리를 하려니까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석훈이 확 달려들더니 그의 몸을 여기저기 만졌다.

“야, 인마. 너 뭐하는 거야?”

도윤이 석훈의 손을 뿌리치려는 순간, 녀석이 그의 상의를 위로 확 젖혀 올렸다. 한여름이라서 반팔 티 하나만 걸치고 있던 터라 졸지에 상체가 그대로 드러나고 말았다. 도윤의 등 뒤를 확인한 석훈의 얼굴이 무섭도록 딱딱해졌다.

“이거 총상이잖아? 도대체 상하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도윤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총상은 거의 다 아물었다. 하지만 아직 흉터는 남아 있었는데 석훈이 녀석이 그걸 본 거다. 총상과 칼에 찔린 상처는 다르다. 같은 UDT 팀에 근무하던 부사관들 중에 총상을 입었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었다. 녀석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한 것을 본 도윤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흥분하지 말고 일단 앉아. 상하이에서 총 맞은 거 아니야. 나중에 천천히 얘기하려고 했는데 이왕 이렇게 됐으니까 지금 다 설명해줄게.”

“난 그냥 어디 맞아서 부러지거나 멍이 들었을 줄 알았잖아요? 하지만 총에 맞은 거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무슨 범죄조직하고 연루된 거요?”

“범죄조직이라……. 그래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아무튼 굉장히 힘센 놈들인 건 맞아.”

“피해야 하는 거요, 아니면 복수하려는 거요?”

“총으로 맞았으면 대포로 갈겨줘야지. 한 방 맞았다고 기죽어 살 수는 없잖아?”

석훈이 피식 실소를 흘렸다.

“형다운 소리이기는 하네. 합법적이기는 한 거요? 복수 방법이?”

“글쎄다. 조금 아슬아슬할 수도 있어. 하지만 최대한 세련되게 해야지. 어때? 할 거야?”

석훈이 입맛을 다시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군대 선임 잘못 만나는 바람에 옴팡 뒤집어쓰게 생겼네. 뭔지는 모르겠지만 합시다.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요?”

“고맙다.”

“고맙기는 무슨? 그럼 이제 자초지종이나 털어놔 봐요.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요?”

석훈이 결심을 굳힌 듯 했기 때문에 도윤도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가 파베르제의 달걀을 연 뒤에 어떻게 문양의 비밀을 풀었고, 피의 사원에서 목걸이를 꺼냈다가 납치당한 뒤에 탈출하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이야기했다.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자신이 유물의 능력을 주인에게 옮겨줄 수 있다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의 핵심과도 연관된 부분이었기 때문에 어차피 끝까지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총구 앞에 서야 될지도 모르는 일로 내모는 마당에 석훈에게까지 거짓말을 하는 건 옳은 일이 아니기도 했다.

다만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뒤에 석훈이 보여준 반응은 역시 예상했던 대로였다.

“지금 내가 들은 말, 그냥 웃자고 한 얘기는 설마 아니겠죠?”

“나도 그냥 웃자고 한 얘기였으면 좋겠다.”

“근데 난 왜 자꾸 실소가 나오고 맥이 빠질까? 그러니까 어떤 물건에는 특별한 능력이 잠재되어 있는데, 그걸 형이 사람에게 옮겨줄 수 있다는 거죠? 이 시대의 숨은 초능력자였다니! 나 지금 깜짝 놀라면서 형을 새로운 눈으로 쳐다봐야 되는 거 맞죠?”

한숨이 푹 나왔다. 이럴까봐 시간을 두고 천천히 얘기하려고 했던 건데.

“너도 아까 내 등에 난 총상 봤잖아. 나 총 맞은 지 일주일도 안 지났어. 지금은 아직 흉터가 남아 있지만 며칠 지나면 그것도 없어질 거야.”

“그러니까 그 능력이라는 게 상처를 빨리 낫게 해주고 병을 치료해준다는 거예요?”

“그래. 그게 아까 말한 그 목걸이로부터 내가 받은 능력이야.”

석훈이 입을 다문 채 한참동안 도윤을 쳐다봤다. 저 자식이 왜 안 어울리게 무게를 잡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녀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능력, 남에게도 적용돼요?”

“남에게도 적용 되냐고? 다른 사람도 치료해줄 수 있냐고 묻는 거냐?”

“네. 혹시 암이나 치매 같은 불치의 병도 고쳐줄 수 있어요?”

이 녀석이 왜 이러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는 몰라. 나도 이 능력을 받은 지 며칠 되지 않았으니까. 아마 가능할 것 같기는 한데, 치료 속도나 한계 같은 건 앞으로 차차 경험해야 자세히 알 수 있을 거야.”

“알았어요. 일단 청파 갤러리에는 사직서를 낼게요. 이제부터 내 인생은 형한테 달린 거예요. 잘 부탁합니다, 팀장님.”

그날은 그렇게 헤어졌다. 다음날, 도윤은 아침을 먹자마자 곧바로 차를 몰고 나와 시내를 돌아다녔다. 집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새삼스럽게 독립을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 편이 여러모로 더 안전할 것 같아서였다. 이대로 있다가 놈들이 집으로 쳐들어오기라도 하면 자칫 불똥이 부모님에게로 튈 지도 모른다. 그건 절대 사양이었다.

도윤이 종로구를 중심으로 보안시스템이 잘 갖춰진 아파트나 오피스텔을 알아보러 돌아다니고 있는데 석훈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형, 지금 바빠요? 시간이 괜찮으면 분당 쪽으로 좀 올 수 있나 물어보려고요.”

“분당? 거기는 갑자기 왜?”

“형, 어제 자기가 받은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경험이 필요하다고 했죠? 그 경험 지금 해보는 건 어때요?”

“지금이라니? 너 어디 아파?”

“나야 너무 건강해서 걱정이죠. 자세한 건 만나서 설명할 테니까 올 수 있는지만 말해줘요. 오늘 바쁘면 나중에 가능한 날짜로 약속을 잡아도 되고요.”

도윤은 곧바로 핸들을 틀어 차를 돌렸다. 석훈이 문자로 찍어준 주소는 분당에 있는 종합병원이었다. 그가 병원 로비로 들어서자 석훈이 기다리고 있다가 손을 흔들었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병원은 뭐냐?”

도윤의 물음에 녀석이 착잡한 표정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고등학교 후배인데 지금 이 병원에 입원해 있어요. 백혈병이에요.”

“백혈병?”

“네. 축구로 날리던 유망주였는데, 작년에 프로 팀에 입단해서 시즌 내내 펄펄 날아다녔어요. 그런데 지난봄에 뜬금없이 병에 걸려서 쓰러졌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것 때문에 팀에서도 방출 당했는데, 가족들 말로는 솔직히 가망이 별로 없대요.”

“벌써 방출을 당했다고? 작년에 입단했으면 아직 계약기간이 많이 남아 있을 거 아냐? 계약금도 줬을 테고.”

“우리나라 프로축구 신인 계약금 얼마 안 해요. 그게 아깝다고 계속 데리고 있으면 연봉까지 줘야 하잖아요. 재기할 가능성도 없어 보이는 선수에게 그 돈을 주기는 아까운 거죠.”

“그럼 치료비는 어떻게 하고? 계속 입원해 있으려면 돈이 많이 들 텐데.”

“아직까지는 그동안 모아뒀던 돈으로 버티고 있는데 사실 형편이 어렵죠.”

얘기를 하던 석훈이 갑자기 도윤의 손을 덥석 잡았다.

“형이 이번에 받았다는 그 능력, 남의 병도 치료할 수 있다면서요? 저도 형 말을 완전히 믿는 건 아닌데, 밑져야 본전이니까 한 번 시험이나 해 봅시다. 만약에 형이 정말로 그 녀석을 고쳐주면 내가 형 대신 총을 맞으라고 해도 맞을게요.”

“야, 아무리 그래도 미리 얘기라도 좀 해주…….”

도윤은 석훈의 간절한 표정을 보고는 도중에 입을 다물었다. 굉장히 아끼는 후배였나 보구나. 결국 도윤은 녀석을 앞장세워서 병실로 올라갔다.

사실 나쁘지 않은 기회였다. 그 자신도 새로 얻은 능력에 대해 아직 정확히 알지 못했다. 환자가 백혈병을 앓고 있다면 이번 기회에 능력을 시험해 보는 것도 괜찮은 생각이었다. 치료가 안 되면 할 수 없고, 치료가 되면 그것대로 아주 좋은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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