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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85화 (85/300)

85화

최 회장이 입원한 곳은 VIP 병실답게 호텔 스위트룸을 연상케 할 정도로 넓고 쾌적했다. 도윤이 최수아 관장과 함께 병실에 들어섰을 때 마침 최 회장은 침대의 반을 비스듬하게 세워 몸을 기대고 있었다. 깨어 있는 상태였다. 도윤과 최 관장을 발견한 그가 막 아는 체를 하려는 찰나,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두 사람 앞을 가로막았다.

“고모, 이 사람은 누굽니까?”

마치 감옥을 지키는 간수가 방문자의 신분을 확인하는 듯한 태도였다. 최 관장의 이마가 살짝 찌푸려지려는 순간, 최 회장이 ‘우우’하며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그냥 들여보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었지만 입술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발음이 완전히 뭉개졌다.

“현소 화랑에서 일하는 이도윤이라고 합니다. 최 회장님 병문안을 왔습니다.”

최 회장의 반응을 일별한 도윤이 얼른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방문 목적을 밝혔다. 그러자 사내의 인상이 확 일그러지면서 언짢은 눈빛으로 최 관장을 쳐다봤다.

“현소 화랑 직원? 고모, 이런 사람을 함부로 데리고 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병실에 아무나 들이면 안 된다는 걸 잘 아시잖습니까?”

뭐, 이런 사람? 도윤은 어이가 없어서 사내를 쳐다봤다. 야, 인마. 그러는 넌 누군데? 최수아가 사내를 한 손으로 밀치면서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현소 화랑 이세준 대표 아드님이다. 너야 말로 함부로 말하지 말고 저리 비켜. 아버님이 데리고 오라시잖아. 매일 병실에 붙어 있다면서 아직 할아버지 의사도 이해하지 못해?”

최수아의 말에 힐끗 뒤를 쳐다 본 남자의 눈에 노기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최 회장의 모습이 잡혔다. 그제야 다시 한 번 도윤을 사납게 째려 본 남자가 길을 비켰다.

“조카분이세요?”

도윤이 최 회장에게 다가가며 속삭이자 최수아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큰오빠 아들이야. 최진석이라고 미래 건설에서 전무를 맡고 있어.”

아하, 최병진 미래 건설 사장의 장남이구나. 마누라와 함께 매일 같이 번갈아가며 병실을 지키고 있다는 친구였다. 도윤은 그에게서 독이 잔뜩 오른 살모사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상한 놈이네. 왜 저렇게 병문안 오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거지?

“아빠, 저예요. 식사는 좀 하셨어요?”

최수아가 침대 옆에 앉아 최 회장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도윤은 딸을 돌아보는 최 회장의 얼굴에서 이빨 빠진 사자의 초라한 모습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게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딸보다 최 회장의 손이 오히려 더 가늘어졌다. 도윤도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는 최 회장 옆으로 다가가 안부를 물었다.

“회장님. 저 이도윤입니다. 아프시다는 소식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누워 계시는 모습을 보니까 안 어울리세요. 얼른 쾌차하셔야죠.”

최 회장의 얼굴이 묘하게 꿈틀거렸다. 자기 딴에는 미소를 지으려는 모양인데 얼굴 근육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표현이 잘 안 되는 게 분명했다. 상태를 보니 시간을 오래 끌다가는 일부러 여기까지 온 목적을 달성하기도 전에 병실에서 내쫓길 것 같았다. 도윤은 최수아로부터 슬그머니 최 회장의 손을 넘겨받았다.

“회장님. 제가 중국에서 공부할 때 안마하는 법을 조금 배웠거든요.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까 팔이라도 조금 주물러드리고 갈게요.”

뜬금없는 얘기에 최수아가 약간 놀란 표정으로 그를 돌아봤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최 회장이 별다른 저항 없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이 옳다 싶어 막 안마를 시작하려는 찰나, 누군가 갑자기 그의 팔을 탁 잡아챘다.

“이봐. 지금 무슨 같잖은 짓을 하려는 거야? 환자 몸에 함부로 손대지 말고 물러서.”

최진석이었다. 도윤이 눈썹을 살짝 찌푸리려는 순간, 최 회장의 입에서 성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냥 듣기에는 ‘이이이이’하는 의미 없는 옹알이에 불과했지만 적어도 그가 화났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보고 있던 최수아가 최진석의 손을 탁 쳐냈다.

“너야말로 무슨 짓이야? 할아버지가 허락하신 거 못 봤어? 몸은 불편해도 정신은 멀쩡하신 분이야. 할아버지가 안마를 받겠다고 하셨으니까 너나 물러나 있어.”

최수아의 목소리는 자못 매서웠다. 하지만 최진석도 기가 죽지 않았다.

“말씀도 제대로 못하실 정도로 건강이 안 좋은 분입니다. 그런데 안마라뇨? 돌팔이도 못 되는 갤러리 직원이잖아요? 그런 자가 할아버지를 함부로 주무르다가 병세가 악화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잘못되면 고모가 책임지실 거예요?”

“책임? 네 놈이 뭔데 시건방지게 나한테 책임을 묻는 거야? 너야말로 아프신 분 앞에서 목소리 높이지 말고 당장 입 닥치지 못해? 다시는 병실에 발도 들이지 못하게 해줄까? 엉?”

최수아의 기세가 자못 살벌해지자 최진석도 이를 악 물더니 결국 한 걸음 물러섰다. 그 사이에 도윤이 재빨리 최 회장의 팔을 다시 손에 잡았다.

“이왕 왔으니까 오늘은 가볍게 팔만 주물러드리고 갈게요. 아프면 소리를 내세요.”

최 회장의 고개가 살짝 끄덕여지는 것을 확인한 도윤은 얼른 치료 능력을 끌어올렸다.

도윤이 안마를 하는 건 서로의 신체를 접촉시킨 상태에서만 상대에게 치료 능력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능력이 발전하면서 최근에는 보통 10분 이상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안마를 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환자에게 무리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강력하게 능력을 사용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간 능력이 최 회장의 혈관을 타고 움직이다가 마침내 머리 쪽으로 치고 올라갔다. 그는 정신을 극도로 집중시켜 조심스럽게 막힌 뇌혈관을 뚫고 혈전을 용해시키려고 애썼다. 몇 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휴우~ 됐습니다. 회장님, 이제 몸이 노곤해지면서 잠이 올 거예요. 버티려하지 말고 그냥 푹 주무세요. 일어나면 지금보다 기분이 훨씬 개운해지실 거예요.”

도윤의 말에 옆에서 지켜보던 최진석이 코웃음을 쳤다. 그에게 사나운 눈길을 보낸 최수아는 도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잠깐 사이에 그의 이마에 땀이 흥건히 배어 있었던 것이다.

“이 박사, 너무 긴장했었나 보네? 웬 땀을 이렇게 흘려?”

“별거 아니에요. 힘을 살살 주느라 신경을 써서 그래요.”

도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최 회장의 눈이 가물거리는가 싶더니 침대에 기댄 채로 금세 잠이 들었다. 그러자 도윤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만 돌아가겠다는 뜻을 표시했다. 최수아가 잠시 잠이 든 최 회장을 내려 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미안하지만 이 박사 먼저 갈래? 나는 아버지가 깨는 것까지 보고 갈게.”

“그럼요. 걱정 말고 여기 계세요. 그럼 저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도윤은 최수아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 그가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병원 복도를 걸어가는데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야, 너! 거기 잠깐 서봐.”

야, 너? 도윤이 헛웃음을 삼키며 돌아보자 최진석이 씨근벌떡하며 다가오는 게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한 대 쥐어 패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병원에서 시끄러운 일이 생길 게 분명했다. 도윤이 속으로 혀를 차면서 그냥 가려는데 마침 엘리베이터가 열리면서 젊은 남자 하나가 내렸다.

“호석아! 그놈 잡아.”

이름과 얼굴이 모두 비슷한 걸로 봐서 최진석의 동생이거나 친척인 것 같았다. 몸에 걸친 양복부터 구두, 손목시계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샐러리맨 월급으로는 절대로 살 수 없는 물건들만 걸친 청년이었다.

“형, 왜 그래? 이놈이 누군데?”

그놈에 이놈이라. 도윤은 호석이라는 녀석이 앞을 가로막기 전에 이미 걸음을 멈췄다. 그가 몸을 돌리자 최진석이 다가오더니 대뜸 삿대질부터 했다.

“너 이 자식, 내가 분명히 안마하지 말라고 하는 얘기 들었어, 못 들었어? 귀머거리야? 아니면 머리가 나빠서 한국말도 이해 못해? 왜 말을 안 들어 처먹는 거야?”

미치겠네. 최병준 사장이라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아들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건 분명했다. 도윤이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자 최진석이 도끼눈을 떴다.

“웃어? 이 자식이 진짜 눈에 뵈는 게…….”

“야!”

더 듣다가는 그냥 주먹이 나갈 것 같아서 상대방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척 봐도 철 들 나이는 지난 것 같은데 거기까지 하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 할아버지한테 안마해 준 게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 그게 그렇게 싫었으면 네 손으로 직접 주물러 드리지 그랬냐? 그런 게 효도 아냐?”

“너 이 자식. 나이도 어린 게 어따 대고 반말을…….”

“처음 보는 젊은 놈한테 대뜸 반말을 들을 나이는 십년 전에 지났다. 너도 그렇고 지금 내 뒤를 막고 있는 나보다 어린 자식은 보자마자 이놈 저놈 하더라. 나한테 반말 듣는 게 싫어? 그럼 너희들부터 말투를 고쳐. 재벌가 자식들은 나이를 일 년에 열 살씩 먹니?”

최진석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자 뒤에서 거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이런 개새끼가 내가 누군지 알고!”

뒤에 선 어린 놈 이름이 호석이라고 했던가? 아마 놈이 달려들려고 했던 모양이다. 최진석이 손을 들어 상대의 행동을 제지하더니 넥타이를 다시 고쳐 맸다. 그 사이에 달아올랐던 얼굴색이 가라앉으면서 놈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맺혔다. 이놈 봐라? 보기보다 체제 전환이 빠르네?

“현소 화랑이라고 했지?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걸 보니 어디 구석진 곳에 있는 작은 화랑인 모양인데, 도대체 뭘 믿고 그렇게 배짱을 부리는 거냐? 함부로 선을 넘지 마라. 자꾸 까불면 업계에서 매장시켜 버릴 테니까.”

도윤도 씩 웃었다.

“이야, 무섭네? 눈 부라리고 말 험악하게 하면 사람들이 모두 쩔쩔매는데 익숙해졌나 보구나? 내가 충고 하나 해 줄까? 지금 네가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모든 건 사실은 네 게 아니야. 사람들이 뭣 때문에 너한테 고개를 숙이는지 머리가 있으면 생각 좀 하고 살아라.”

말을 마치고 뒤로 돌아서자 호석이라는 녀석이 눈을 부라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도윤은 한쪽 팔을 들어 녀석을 가볍게 옆으로 밀쳐 버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매장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자식이. 확 파묻어버릴까 보다.

집으로 돌아온 도윤은 그대로 골아 떨어졌다. 아까는 괜찮은 척 버텼지만 사실 최 회장을 치료하고 난 뒤에는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지친 상태였다.

“다음부터는 치료할 때 꼭 석훈이를 데리고 다녀야겠네. 하도 오랜만에 전력으로 치료했더니 하마터면 쓰러질 뻔 했잖아. 진짜로 시비가 붙었으면 망신당할 뻔 했어.”

도윤은 그날 하루 종일 몸을 추스르면서 집에서 쉬었다. 최 회장을 완치시키려면 앞으로도 최소한 열 번 이상 안마를 더 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굳이 다시 방문할 만한 구실을 찾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틀 뒤, 예상했던 대로 최수아 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박사. 내가 우리 회장님 병문안을 가려고 하는데 혹시 시간 있어? 괜찮으면 같이 찾아뵀으면 해서 말이야. 이 박사가 다녀간 뒤로 아버지 상태가 많이 좋아지셨어. 역시 젊은 사람 손길이 노인들한테 좋은가 봐, 호호호.”

노골적으로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최수아는 도윤이 다시 한 번 최 회장을 안마해줬으면 하는 뜻을 은근히 내비쳤다. 그녀가 민간요법의 신봉자일 리는 없을 테니 확신을 가지고 동행을 요구하는 건 아닐 거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심정이 있는 건 분명했다.

“오늘은 좀 그렇고, 내일 모레 서라 씨하고 약속이 있는데 그럼 만나서 같이 갈까요? 서라 씨도 할아버지를 조금 더 자주 뵀으면 하는 눈치던데.”

“그야 당연히 괜찮지. 그럼 모레 병실로 올래? 내가 미리 말씀드려 놓을게.”

“네. 그럼 모레 뵐게요.”

전화를 끊은 도윤은 재빨리 최서라에게 연락했다. 사실 그녀와는 아무런 약속도 잡혀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얘기를 들은 최서라는 크게 기뻐하면서 함께 병문안을 가자는 제안에 선뜻 동의했다. 전화를 끊은 도윤은 히죽 웃었다.

“병든 노인네 병실을 무작정 지키기만 하면 저절로 마음이 얻어질 줄 아냐? 최진석 그놈하고 마누라가 청파 갤러리를 노리고 있다고 했지? 너희 마음대로 되나 어디 두고 보자.”

청파 갤러리의 현직 관장은 최수아다. 따라서 남매지간인 최병준 사장이나 최병호 사장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건 곤란했다. 결국 최서라나 최진석을 비롯한 후대 중의 누군가가 최수아 관장의 뒤를 이어야 하는데, 그걸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관건이 바로 최 회장의 청파 갤러리 지분이었다.

본래는 최서라가 미술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으면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갤러리가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그랬던 것이 최 회장이 갑자기 쓰러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최진석과 그 처가 밤낮으로 병실을 지키는 것도 이 기회에 분위기를 반전시키자는 노림수였는데, 도윤은 그들이 군침을 흘리는 밥상에 재를 확 뿌리기로 작정했다.

이틀 뒤, 도윤이 최서라와 함께 최 회장의 병실을 찾았을 때는 예상했던 대로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미리 약속했던 최수아는 물론이고 최진석과 그의 처, 그리고 미래 건설 사장인 최병준과 그의 셋째 아들까지 병실을 지키는 중이었다. 지난번에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던 그 싸가지 없는 젊은 놈이 바로 최병준의 셋째 아들 최호석이었다.

도윤과 최서라가 병실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최수아 관장이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미안해. 내가 아버지한테 오늘 이 박사가 오기로 했다고 얘기하는 걸 듣고 다들 저렇게 모였지 뭐야. 불편하더라도 이 박사가 좀 이해해 줘.”

그렇다는 얘기는 도윤이 지난번에 다녀간 뒤로 최 회장의 병세에 눈에 띌 만한 차도가 있었고, 그걸 최진석이 의식했다는 뜻이었다. 눈치 빠른 자식. 도윤은 씩 웃으며 최병준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최서라와 함께 최 회장의 침대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으스아아(어서 와라).”

눈을 뜨고 있던 최 회장이 도윤을 반겼다. 여전히 발음이 심하게 뭉개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조금 더 알아듣기 쉬웠다.

“회장님. 식사는 잘 하셨어요? 오늘도 저번처럼 안마를 해드릴게요. 그런데 오늘은 팔 말고 머리도 좀 주무를 거예요. 괜찮겠어요?”

최 회장이 머리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도윤이 곧바로 안마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최진석도 그를 막아서지 못하고 매서운 눈초리로 쳐다보기만 했다.

도윤은 전과는 달리 5분이 넘게 충분히 시간을 들이면서 능력을 조금 더 세밀하게 운용했다. 머리를 직접 만지면서 안마해서 그런지 치료가 훨씬 수월해진 것은 물론이고 지난번보다 효과도 빠르고 뚜렷하게 나타났다. 도윤이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손을 떼고 물러나자, 최 회장이 여러 가지 감정이 담긴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고마따(고맙다).”

그는 그 말을 남기고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얼핏 봐서는 달라진 점을 느낄 수 없었지만, 그를 간호했던 가족들은 치료 전보다 최 회장의 발음이 조금 더 또렷해졌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이 박사 수고했어. 아버님이 이 박사 안마를 몹시 좋아하시는 바람에 번번이 시간을 뺏네. 내가 나중에 꼭 보답할게.”

최수아가 가장 먼저 감사를 표시했다.

“보답은요, 무슨. 제 손은 한가하니까 필요하면 언제든지 부르세요.”

도윤은 그녀에게 씩 웃어 보인 뒤 고개를 돌려 최병준 사장과 최진석, 최호석 형제를 쳐다봤다. 그들의 차가운 눈빛을 대한 도윤은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아무리 그래도 자식들인데 너무하네. 자기 아버지하고 할아버지 병세가 나아지는 게 그렇게 못마땅해? 그때 최병준 사장이 입을 열었다.

“이도윤 박사라고 했나? 자네 나하고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겠나?”

곁가지는 물러서고 본체가 나서겠다는 뜻인가?

“그러시죠.”

도윤은 애써 피로를 떨쳐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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