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도윤은 미련이 남았는지 관중석을 자꾸 힐끔거리는 석훈을 억지로 잡아끌고 경기장을 나왔다. 핸드폰으로 뭔가를 검색하던 그가 대뜸 택시를 잡아타자 석훈이 답답한 듯 물었다.
“어디로 가시려고요?”
“마르케스 집. 놈이 경기를 보고 돌아오기 전에 먼저 집을 살펴보려고.”
“소매치기도 모자라서 이젠 남의 집까지 털겠다고요?”
“그놈이 바로 도둑놈이야. 내가 아니라. 우린 지금부터 도둑을 잡으러 가는 거야.”
도윤은 석훈에게 파울로 마르케스가 누구인지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는 다른 공범 한 명과 함께 20년 전 가드너 미술관을 턴 범인이며, 그 사건이 역대 미술관 절도사건 중에서 피해 액수가 가장 크다는 것까지 밝혔다. 얘기를 들은 석훈이 혀를 내둘렀다.
“형은 그런 사실을 어떻게 다 알았어요?”
“트루쓰 앤 밸류에 참가했을 때 내 담당자 오빠가 경찰이었거든. 덕분에 서류를 봤어.”
거짓말을 한 건 아니지만 말 하지 않은 진실이 더 많았다. 다행히 석훈은 그 문제에 대해 더 따지지 않았다. 어쩌다보니 정말 비밀이 많은 인생을 살고 있었다.
마르케스의 집은 뮌헨 외곽의 고급 주택가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일부러 한 블록 떨어진 곳에서 택시를 내린 두 사람은 마르케스의 집까지 산책을 하듯 걸어갔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하자 석훈이 놈의 집을 보고 휘파람을 휙 불었다.
“이야, 이십 년 전에 한 몫 단단히 잡았나 보네요. 뮌헨처럼 물가가 비싼 곳에서 콜롬비아 출신 이민자가 저렇게 좋은 집을 가지고 있기는 힘들 텐데.”
도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집의 크기가 애매했던 것이다. 이곳이 부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비싼 집이라는 건 분명했다. 그렇더라도 몇 억 달러나 되는 미술품들을 훔친 녀석의 거처라고 하기에는 다소 부족했다. 남미 사람들은 허세가 심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마르케스의 집은 기껏해야 중산층 독일 가정의 주택 이상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진짜 문제는 녀석이 전직 도둑답게 방범 시설에 신경을 꽤 많이 썼다는 점이었다.
“민간 경호 업체하고 방범 계약을 맺은 모양이네.”
마르케스의 집 여기저기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엄청나다고까지 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원과 현관문, 그리고 동서남북을 돌아가면서 하나씩 자리 잡은 감시 카메라는 도윤의 입장에서 볼 때 확실히 성가신 물건들이었다. 보나마나 창문이나 현관문에도 함부로 열면 경보가 울리게끔 시스템이 설치되었을 것이다.
“보안 장치를 해제하지 않고 무턱 대고 들어갔다가는 마르케스라는 그 친구보다 경찰 얼굴을 먼저 볼 것 같은데요?”
석훈 역시 보안 팀에서 근무했던 경력이 있기 때문에 상황이 생각보다 녹록치 않다는 걸 한눈에 알아차렸다. 도윤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보안 장치를 해제하는 건 고사하고 저 감시 카메라들부터가 문제야. 아무리 봐도 사각이 없을 것 같은데?”
“그렇긴 한데, 설치 상태가 그다지 좋다고 하기는 어려워요. 카메라들이 너무 고개를 숙이고 있잖아요. 저렇게 하면 집 근처 땅만 시야에 들어올 겁니다.”
“규정 때문일 거야. 카메라가 다른 사람들 집을 비추면 사생활 침해가 되니까.”
하지만 그 점이 결국 파고들 틈을 만들어주었다. 도윤과 석훈은 일단 집주인이 돌아와서 경보 장치를 해제한 이후에 침투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두 사람은 사람들 눈을 의식하면서 조심스럽게 마르케스의 집 주변 사진을 여러 장 찍은 뒤 물러났다.
“총기도 가지고 있겠지?”
택시를 타면서 도윤이 묻자 석훈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라면 당연히 그럴 거예요. 허가를 받기가 까다롭기는 하지만 독일도 총기 소지가 법적으로 허용된 나라니까요. 한두 자루 정도는 가지고 있을 걸요?”
그렇다면 준비해야 하는 물건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마르케스의 집을 떠난 두 사람은 각각 한 대씩 차를 렌트했다. 두 대의 렌트카 가운데 하나는 마르케스의 집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공용주차장에 세워둔 뒤, 다른 차를 타고 대형 쇼핑몰로 갔다.
그들은 쇼핑몰에서 커다란 가방으로 두 개 분량의 물건들을 샀다. 방탄복과 비니, 삼단봉과 전기 충격기 등은 물론이고 군용 대검도 한 자루 씩 구매했다. 그 밖에도 필요한 물품들이 여럿 추가되었는데, 석훈은 특이하게 쇠로 된 베어링을 잔뜩 샀다.
사전 준비를 위해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꼼꼼하게 계획을 점검했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갖춰지자 다시 렌트한 차를 타고 마르케스의 집으로 향했다. 놈이 돌아올 때까지 근처에서 잠복을 할 생각이었지만 그전에 먼저 시험해 볼 게 있었다. 마르케스의 집에서 길 하나를 건너면 주민들을 위한 야외 농구장이 있는 걸 봐두었던 것이다.
도윤이 망을 보는 가운데, 석훈이 짚 옆의 감시 카메라 시야가 미치는 곳 바로 밖까지 접근했다. 적당한 거리를 잡은 녀석이 힘껏 농구공을 던지자 길 쪽으로 향한 감시 카메라 한 대가 박살이 났다. 목이 부러져 덜렁거리는 감시 카메라의 전선이 끊긴 것을 확인한 석훈이 잽싸게 뛰어서 근처에 주차시켜 놓은 차로 돌아왔다.
5분가량 지났을까, 민간 경호 업체 차량 한 대가 마르케스의 집 앞에 멈춰 섰다. 잠시 후, 유니폼을 입은 경호 업체 직원들이 차에서 내리더니 손상된 감시 카메라를 살폈다. 근처에 뒹굴고 있는 농구공을 확인한 그들이 집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아무도 나오지 않자 전화기를 들어 어디론가 통화를 하더니 다시 차를 타고 사라졌다.
“다른 식구가 없는 모양이군. 저 사람들 오늘 내로는 고치러 오지 않을 것 같지?”
도윤의 물음에 석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메라 교체는 출동 경호원이 아니라 보통 정비 담당 기사들이 하니까요. 이미 퇴근 시간이 지났으니까 기사들도 가능하면 내일 고치려고 할 거예요.”
본인 이외의 다른 식구들이 함께 살지 않는다는 게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석훈은 조금 전의 경호원들이 수리가 지연되는 것에 대해 마르케스에게 양해를 구하려고 전화했을 것으로 짐작했다. 그 말이 맞는지, 날이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경호업체 차량은 돌아오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첫 번째 작전은 일단 성공이었다.
* * *
마르케스가 집으로 돌아온 것은 밤 아홉시가 훨씬 넘은 시각이었다. 축구 경기는 진즉에 끝났을 테니 아마 다른 일을 보거나 지인들과 어울리다 온 게 분명했다.
“저 자식, 아무래도 음주운전인 거 같은데요?”
마르케스의 차가 거칠게 주차하는 모습을 본 석훈이 혀를 찼다. 도윤은 차를 주차시킨 뒤에 문을 열고 내리는 마르케스의 얼굴이 약간 불그스름한 것을 망원경으로 확인했다.
“독일은 우리나라보다 음주운전 처벌이 더 엄격하지 않아?”
“콜롬비아에서 배운 버릇인가 보죠.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잖아요.”
마르케스가 보안장치를 해제하고 집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두 사람은 곧바로 각자 가방 하나씩을 짊어지고 차에서 내렸다. 이미 장갑을 낀 채 방탄복으로 갈아입고 머리에는 비니를, 그리고 얼굴에는 고글과 마스크까지 착용한 상태였다. 두 사람은 잰 걸음으로 감시 카메라가 고장 난 쪽의 창문을 향해 접근했다.
창문 너머는 거실이었다. 하지만 희미한 실내 등 하나만 켜져 있는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석훈이 유리창에 귀를 대자 희미하게 물소리가 들렸다.
“마르케스라는 놈, 샤워를 하고 있는 모양인데요?”
고개를 끄덕인 도윤이 창문에 압축 빨판을 붙인 뒤 유리칼로 창 한쪽을 동그랗게 오려냈다. 간단하게 유리를 제거한 두 사람은 손을 집어넣어 고리를 푼 뒤 순식간에 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석훈이 재빨리 보안 장치가 작동했는지를 확인하고는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았다. 괜찮다는 뜻이었다.
거실을 가로지르자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욕실에서 물소리와 함께 스페인어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마르케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삼단봉을 빼어든 두 사람은 먼저 문과 창에 있는 커튼을 모조리 내렸다. 그런 뒤에 다시 한 번 보안 장치를 확인한 뒤 소리를 죽여 가며 거실과 주방의 서랍들을 뒤졌다. 어느 곳에서도 총은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각자 필요한 도구를 나누어 들고 욕실 문 옆에 섰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물소리가 잦아드는가 싶더니 목욕 가운을 걸친 마르케스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 순간 석훈이 한 손으로 놈의 목을 감싸 안으며 순식간에 바닥에 쓰러트렸다. 마르케스는 거칠게 버둥거렸지만 이미 입안으로 손수건이 틀어박혔기 때문에 소리를 지를 수도 없는 상태였다.
대기하고 있던 도윤이 재빨리 놈의 다리와 팔을 테이프로 칭칭 동여매었다. 잠시 후, 마르케스는 팔다리가 모두 제압되고 입마저 테이프에 막힌 상태로 거실 한가운데에 나뒹구는 신세가 되었다. 놈을 완전히 제압한 두 사람은 일단 집안부터 수색했다.
“총기가 있는지부터 찾아봐. 비밀 장소가 있는지도 확인하고. 집안 어딘가에 그림이나 미술품을 숨겨놨을지도 몰라.”
마르케스의 집은 2층이었다. 도윤이 마르케스를 지키고 있는 동안 그의 지시를 받은 석훈이 먼저 2층을 수색했다. 별다른 성과 없이 내려온 그는 다시 1층을 뒤지기 시작했다. 장갑 낀 손으로 여기저기를 두들기며 주방과 거실을 오가던 그가 갑자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멈춰 섰다. 발을 들어 양탄자가 깔린 바닥을 내려찍자 쿵쿵 울리는 소리가 났다.
“형. 아무래도 이 밑이 비어있는 것 같은데요?”
마르케스가 당황했다는 것은 녀석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석훈이 양탄자를 들어내자 바닥에 네모난 문이 나타났다. 문을 들어 올려 손전등으로 밑을 확인한 석훈이 손가락을 딱 튕겼다.
“여기 지하실이에요. 계단도 있고, 엄청 넓은데요?”
석훈이 내려가는 계단 입구를 손으로 더듬더니 스위치를 켰다. 순식간에 불이 켜지면서 지하실의 전경이 드러났다. 지하실에는 몇 개의 나무 박스들과 함께 철제 캐비닛 한 개가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일단 마르케스의 몸을 들어 밑으로 운반했다. 그렇잖아도 녀석을 심문할 때 소리가 나는 게 걱정이었는데 안성맞춤의 장소가 생겼다.
* * *
“이놈 여차하면 여기서 전쟁이라도 할 생각이었나 보네요?”
캐비닛을 연 석훈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윤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철제 캐비닛 안에는 여러 정의 권총과 소총, 수류탄 등과 함께 실탄 박스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특히 두 사람을 반갑게 만든 건 HK416 돌격 소총이었다. 독일제 돌격 소총인 HK416은 K2와 함께 UDT의 제식 화기나 다름없는 것이어서 도윤과 석훈에게는 가장 익숙한 총이었다.
아쉽게도 그림이나 골동품 같은 예술품들은 지하실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마르케스를 잡으면 가드너 미술관에서 도난당한 그림들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도윤에게는 실망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이 캐비닛에서 소총을 꺼내 능숙하게 장전하는 것을 본 마르케스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놈은 묶인 채로 의자에 앉아 몸을 꿈틀거렸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지하실에 있던 나무 상자 안에서는 황당하게도 바이에른 뮌헨과 관련된 여러 가지 기념품들만 잔뜩 나왔다. 그 중 몇 가지가 석훈을 기쁘게 했지만 도윤에게는 모조리 잡동사니에 불과했다. 다만 딱 한 가지가 그의 관심을 끌었다. 지도였다.
“어디서 왔지?”
입을 가로막았던 테이프와 손수건을 제거하자 마르케스가 제일 먼저 물은 질문이었다. 도윤이 씩 웃더니 다짜고짜 전기 충격기를 꺼내 놈의 허벅지에 댔다. 마르케스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도윤이 그의 앞에 의자 하나를 가져다 놓고 앉았다. 그의 손에는 주둥이에 끈이 달린 비닐봉지 하나가 들려 있었다.
“지금부터 질문은 내가 한다. 너는 대답만 하면 돼. 그걸 잊을 때마다 이 비닐봉지를 네 머리에 씌울 거야.”
“고문을 하겠다는 거냐?”
마르케스가 독살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도윤은 피식 웃었다.
“난 2분까지 숨을 참을 수 있는데 넌 어떨지 모르겠네. 처음 씌울 때는 1분부터 시작하지. 하지만 마음에 드는 대답이 나오지 않을 때마다 10초씩 시간이 늘어날 거야. 네가 몇 번이나 고집을 피울 수 있는지 아주 궁금해. 보통은 다섯 번을 넘기지 못하던데.”
“그러다 내가 죽으면 넌 아무것도 얻지 못할 텐데?”
도윤이 마르케스의 얼굴 앞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좌우로 흔들었다.
“질문이 잘못 됐어, 파울로 마르케스. 네가 죽으면 내가 뭘 잃게 될지를 물어야지. 대답은 아.무.것.도. 없다는 거야. 그러니 알아서 최선을 다해 보라고.”
도윤이 마르케스에게 제일 먼저 한 질문은 가드너 미술관에서 훔쳐간 그림들을 어떻게 했느냐는 것이었다. 마르케스는 상대가 자신의 이름을 아는 것은 물론이고 가드너 미술관 도난 사건의 주범이라는 것까지 훤하게 꿰고 있자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것이 심문 초부터 그의 기를 꺾었다. 상대가 자신에 대해 상세히 알고 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심문을 하는 과정에서 도윤은 마르케스의 머리 위에 딱 한 번 비닐봉지를 씌웠다. 실제로 비닐봉지를 씌울 때는 놈이 죽는 게 아닐까 싶어서 그도 적지 않게 긴장했다. 사람이 눈앞에서 버둥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고문하는 입장에서도 속에서 신물이 올라오는 일이었다. 다행히 마르케스는 이러다 결국 자신이 죽을 거라는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머리 위에 씌워졌던 비닐봉지가 제거되자 마르케스의 입이 고장 난 수도꼭지로 변했다. 거의 한 시간에 걸쳐 놈으로부터 필요한 진술을 얻어낸 도윤은 일단 잔혹극을 연출하지 않고 무사히 심문을 끝냈다는 사실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황당한 진술 내용으로 인해 맥이 풀렸다.
“정말 네가 에스코바르를 위해서 일했다는 게 확실해?”
도윤의 물음에 마르케스가 시계추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가드너 미술관을 턴 건 처음부터 그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독일에 온 것도 에스코바르의 가족을 이곳으로 이민시키기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고요. 준비를 모두 마치고 기다리고 있는데 독일 정부가 그의 가족을 입국 금지시켰어요. 그래서 저 혼자 독일에 남게 된 겁니다.”
그리고 그때 가족들의 생활 기반을 마련하라고 받은 돈으로 지금까지 호의호식 하면서 살 수 있었다는 얘기였다. 에스코바르는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죽어버렸으니 마르케스만 졸지에 대박을 맞은 셈이었다.
“그나저나, 왜 일이 해결은커녕 갈수록 점점 크고 복잡해지냐.”
지금은 이미 죽은 지 오래 됐지만 에스코바르는 한때 콜롬비아를 실질적으로 지배한다는 소리까지 들었던 마약 왕이다. 그가 마지막에 자기 가족을 콜롬비아에서 독일로 이민시키려고 했던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문제는 그가 독일로 보내려고 했던 게 단지 가족뿐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마르케스를 통해 지하실에서 발견한 지도가 뭘 의미하는지 알게 된 도윤과 석훈은 암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그게 단순한 보물지도 같은 거였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형. 일단 이곳을 떠납시다. 고민은 나중에 해요.”
석훈의 재촉을 받은 도윤은 일단 자신들의 흔적을 지운 뒤 그곳을 떠났다. 그들이 마르케스의 집을 떠난 지 십 분도 채 되지 않아서 경찰차가 들이닥쳤다.
경찰들은 지하실 의자에 묶여 있는 마르케스를 구출했지만, 그와 동시에 그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지하실 캐비닛에 가득한 무기들 때문이었다. 마르케스가 독일에서 무기 소지 허가증을 획득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도윤은 놈의 처분을 경찰에게 맡기기로 했다.
“반자동이면 모를까, 독일에서는 민간인들이 자동 소총을 소지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지. 마르케스는 최소 몇 년 동안은 감옥에서 나오지 못할 거야.”
그리고 그 몇 년 사이에 도윤은 지도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