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왕이푸 회장의 제안에 대한 도윤의 첫 번째 대답은 정중한 거절이었다.
“백제 금동보살입상은 꼭 얻고 싶은 물건입니다. 굉장히 뛰어난 예술품이니까요. 하지만 경매 시작가가 무려 6000만 위안이더군요. 솔직히 가격이 너무 셉니다. 양보해주신다는 말씀은 고맙지만 제 입장에서는 그다지 솔깃한 제안이 아니군요.”
6000만 위안은 한국 돈으로 100억에 가까운 액수다. 도윤이 판단한 시세의 두 배 반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도록에서 시작가를 보는 순간, 그는 우치무라와 왕이푸 사이에 모종의 밀약이 오고갔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밀약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이 정도면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은 도전할 생각을 말라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말을 들은 왕이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만약 시작가를 3000만 위안으로 낮추면 어떻게 하겠소?”
“이미 정해진 시작가를 경매 직전에 바꾼단 말입니까? 그게 가능합니까?”
“일반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는 가능합니다.”
도윤은 상대의 입가에 맴도는 미소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믿기 어려운 말씀을 하시는군요. 하지만 설사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시작가가 그렇게 갑자기 내려가면 관심이 없던 사람들마저 달려들 거예요. 호가가 금세 4000만 위안 이상으로 다시 올라가겠지요. 그러면 제 능력으로는 여전히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경쟁은 없을 테니까. 내가 팻말을 들어 올리지 않는 한, 이 박사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3000만 위안에 금동보살입상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요.”
무소불위라는 얘긴가? 도윤은 하마터면 허탈한 웃음을 터트릴 뻔 했다.
“회장님 말씀대로 될 경우 위탁자인 우치무라 씨는 졸지에 3000만 위안 이상을 손해 보겠군요. 제가 우치무라 씨라면 위탁을 취소할 겁니다. 차라리 안 파는 게 나을 테니까요.”
“우치무라는 불상을 팔 겁니다. 물론 속으로는 불만이 조금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걸 드러내지는 못할 거요. 이 경매에서 그는 그 이상의 이익을 보장받았으니까.”
그러니까 모든 건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까 나는 닥치고 제안을 받아 들일지만 결정하면 된다 이거지? 구미가 당겼다. 하지만 당연히 공짜일 리가 없다. 원하는 게 뭐지?
한화로 무려 50억 원에 가까운 이익이 걸린 제안이다. 고흐의 해바라기를 판 덕분에 이미 남부럽지 않은 갑부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50억 원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다. 눈앞의 떡을 날름 집어삼킬 경우 내 위장이 버틸 수 있을까? 도윤은 침을 꿀꺽 삼켰다.
“도대체 저한테 어떤 일을 부탁하려고 수천만 위안의 이익까지 주겠다는 겁니까?”
더구나 그건 원래 당신이 아니라 우치무라나 한대길에게 돌아가기로 되어 있던 이익이잖아? 두 사람에게 그만한 손해를 끼치려면 당신도 그에 해당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할 텐데? 도윤이 슬쩍 관심을 드러내자 왕이푸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 얘기를 하려면 여기 계신 아가씨께서 잠시 자리를 비켜주셔야 합니다. 나중이라면 몰라도 지금으로서는 당사자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오.”
“죄송하지만 그렇다면…….”
도윤이 막 항의를 하려는 순간, 최서라가 중간에 입을 열었다.
“지금은 안 되지만 나중에는 확실히 들을 수 있는 얘기인가요?”
왕이푸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물론입니다. 당신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테니까요.”
“이 박사님께 자칫 해가 될 일이 아닐지 걱정이 되네요.”
“제 명예를 걸고 약속드리지요. 번거로울 수는 있으나 최소한 해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최서라가 가만히 머리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서 기다릴게요. 그리고 도윤 씨. 사업가의 명예 따위는 믿지 마세요. 오로지 그 제안이 쌍방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지만 따지시면 돼요. 특히 도윤 씨에게만 이익이고 저 분에게는 손해가 되는 제안이라는 생각이 들면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오세요. 아셨죠?”
그녀는 일부러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로 이야기 했다. 말을 마친 최서라는 도윤이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미련 없이 휴게실을 떠났다. 왕이푸는 한참 동안 껄껄대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름답고 현명한 아가씨로군. 서로 사귀는 사이입니까? 그렇다면 이 박사는 복 받은 남자가 틀림없소.”
도윤은 왕이푸의 너스레에 대꾸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저에게 부탁하실 일이 어떤 겁니까? 궁금하네요. 삼천만 위안짜리 제안이 뭔지.”
왕이푸의 얼굴에서도 순식간에 장난기 섞인 표정이 사라졌다.
“혹시 건릉 발굴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문을 들어보셨소?”
도윤은 흠칫했다. 당연히 들어봤다. 쉬주하오가 상해 공항까지 쫓아와서 털어놓았던 사실이 아닌가? 하지만 여기서 갑자기 그 얘기를 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건릉이라면 당 고종과 측천무후의 합장묘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지금 정부에서 그 무덤을 발굴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소. 아직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아마 늦어도 내년 안에는 발굴이 시작될 거요.”
“의외로군요. 제가 죽기 전까지는 발굴이 시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그 일이 저에게 하실 부탁과 연관이 있습니까?”
“그 발굴에 이 박사께서 참가해 주시오. 내 대리인 자격으로.”
도윤은 앞으로 살짝 굽히고 있던 등을 똑바로 폈다.
“건릉에 매장된 물건 중에서 회장님이 특별히 관심을 갖고 계신 게 있나 보군요?”
왕이푸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 안에 왕희지의 난정서(蘭亭書) 원본이 있다고 믿고 있소.”
도윤은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젠장. 혹시나 했더니 정말 그것 때문이었어? 이 양반도 생각보다 낭만적이네? 갑자기 삼천만 위안이 껌 값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진남북조 시대에서 당나라 초기까지 활동했던 서예가 왕희지는 중국에서 서성(書聖)으로까지 추앙받는 희대의 명필이다. 그는 오늘날 서예 6서라고 하는 여섯 가지 글씨체 가운데 해서와 행서, 초서의 형태를 완성시킨 사람이기도 하다. 다만 워낙 오래 전 사람이라 지금까지 명성만 자자할 뿐 남아 있는 글씨가 거의 없다는 게 문제였다.
2010년에는 그의 원본도 아닌 복제본이 경매를 통해 무려 3억 위안이라는 거액에 낙찰된 적이 있다. 왕희지의 ‘평안첩’이라는 초서체 작품을 복제한 이 서첩은 본래 청나라 황실에서 소장하고 있던 것이었다. 물건이 황실에서 나왔다고는 하나, 글과 글씨가 왕희지의 것을 그대로 베꼈다는 인정을 받지 못했더라면 절대로 그 정도 가격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난정서는 황정경, 초월첩, 평안첩 등과 함께 왕희지의 대표적인 걸작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그가 여러 문인들과 함께 ‘난정’이라는 정자에서 봄맞이 잔치를 연 뒤, 당시의 정황과 함께 그때 쓰인 여러 시들을 직접 적은 글이 바로 난정서였다. 비록 원본은 오래 전에 사라졌지만 수많은 필사본을 통해 그 내용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건릉에서 진짜로 난정서 원본이 나올 경우 시세를 얼마로 평가해야 될까?’
아마 루브르에 걸려 있는 모나리자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을 거라는 게 도윤의 짐작이었다. 그저 비싸다는 얘기를 하는 것 말고는 함부로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작품. 그게 바로 왕희지의 난정서였다.
“건릉에 왕희지의 난정서가 묻혀 있을 거라는 얘기는 그저 전설에 불과합니다.”
도윤의 말에 왕이푸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사업가지 몽상가가 아니오. 건릉에 난정서가 있을 확률이 높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소. 그렇다고 그 얘기가 단순히 허무맹랑한 전설이기만 한 건 아니지. 그 점에 대해서는 이 박사도 어느 정도 짐작하는 게 있을 거요.”
이럴 때 상대의 말을 무조건 부정할 수 없다는 게 참으로 속 쓰렸다.
“그래서 건릉에 그 난정서가 정말로 있는지 안에 들어가서 확인해달라는 말씀입니까? 그걸 제가 확인하면 왕 회장님께 어떤 이득이 있죠? 설마 훔치기라도 할 생각이세요?”
“훔치다니? 그럴 리가 있겠소? 당연히 정당한 방법을 통해 내 것으로 만들 거요. 이 박사는 단지 물건의 유무만 확인해 주면 됩니다. 그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순간 도윤은 왕이푸가 건릉 발굴 작업에 처음부터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대 자본과 권력의 유착. 어느 나라에서나 흔히 있는 일이다. 어쩐지 국가문물국장씩이나 되는 자가 느닷없이 그걸 파헤치겠다고 나서더라니.
“왜 하필 저를 선택하셨죠? 솔직히 중국에도 뛰어난 감정가들이 많지 않습니까? 게다가 중국인이 아닌 제가 그런 중요한 일에 나서면 싫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왕이푸가 고소를 입에 머금었다.
“이 박사가 중국인이 아니기 때문에 부탁하는 거요. 국가주의나 민족주의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지 않은 사람. 그러면서도 중국 고대 미술품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학자. 예술품에 대해 뛰어난 안목을 지닌 감정가. 의뢰인을 속이지 않을 양심적인 인간. 그런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을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 박사는 모를 거요.”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의 과찬이시군요. 하지만 트루쓰 앤 밸류를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저는 동양이 아니라 서양 미술품 전문가입니다. 왕희지의 난정서를 감정하기에는 경험도 실력도 모두 모자랍니다.”
“이 박사는 중앙미술학원의 장웨이닝 교수에게 유물 복원학을 배웠지요? 장 교수에게 이 박사에 대해 이미 물어봤어요. 그 점잖은 양반이 칭찬하느라 입에 침이 마르더군. 한국에서도 어렸을 때부터 고문과 서예를 함께 배웠다는 얘기도 이미 들었소. 난 보기보다 신중한 사람이오. 그러니 자꾸 뒤로 빼지 말고 결정을 해 주시오. 할 겁니까, 말 겁니까?”
빌어먹을. 건릉은 아직 발굴되지 않는 게 맞다. 하지만 그게 어차피 파헤쳐질 운명이라면? 그 역사적인 현장에 참여한다는 건 감정가 이전에 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냥 뿌리치기에는 너무나 강한 유혹이었다.
“알겠습니다. 건릉 발굴이 진짜로 성사된다면 왕 회장님의 제안을 받아들이죠.”
결국 도윤은 왕이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지금까지 그가 받은 것들 가운데 가장 비싼 의뢰가 성사된 것이다.
* * *
최서라는 경매장으로 돌아온 도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배려였다. 건릉 발굴은 어차피 일이 확정되기만 하면 세상에 공표될 수밖에 없는 큰 국가적 사업이었다. 왕이푸의 말마따나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알게 될 일이라는 뜻이다.
“나중에 자세하게 말씀드릴게요. 정말로 위험한 일은 아니에요.”
도윤으로서는 그렇게 말하는 것 외에는 당장 다른 방법이 없었다. 최서라는 그 말에 그냥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그의 손등을 토닥거리기만 했다.
휴식 시간이 끝난 뒤 재개된 경매에서 한치호는 말 그대로 광분했다. 앞서 미리 점찍어 두었던 작품 네 점을 하나도 낙찰 받지 못한 탓에 자금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
“11번에서 1100만 나왔습니다. 1150만 없습니까?”
후반 경매의 세 번째 물건이자 한성 옥션에서 염두에 두었던 첫 작품이 등장하자마자 한치호의 팻말이 바쁘게 올라갔다. 도윤은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면서 은근히 호가를 높였다.
“네. 7번 손님 1150만 감사합니다. 아, 11번에서 다시 1200만을 부르셨네요.”
적정 시세가 500만에서 600만 위안인 탱화. 하지만 이번 경매에서는 그 절반에 가까운 300만 위안으로 입찰이 시작된 그림이었다. 하지만 도윤이 계속 팻말을 들어올리고, 그에 뒤질세라 한치호가 이를 악물며 가격을 높이는 바람에 어느새 호가가 시세의 두 배인 1200만 위안까지 올라갔다. 그 시점에서 도윤은 응찰을 포기했다.
“1200만 한 번, 1200만 두 번, 1200만 세 번. 네. 7번 손님이 1200만 위안에 낙찰 받으셨습니다. 축하합니다.”
결국 휴식 시간 이후에 등장한 세 번째 작품은 한치호의 수중에 떨어졌다. 오늘 처음으로 낙찰을 받는데 성공한 그가 도윤을 쳐다보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도윤 역시 보란 듯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입맛을 다셨다.
“왜 포기하셨어요? 끝까지 가지 않고? 자금이 모자라면 제가 도와드릴 수도 있었는데.”
최서라가 불만스럽게 속삭이는 소리에 도윤은 그냥 어깨를 으쓱했다.
“에이, 그럴 필요까지 있어요? 한성 옥션도 상해까지 왔으니 한두 개는 가져가야죠.”
최서라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도윤은 속으로 고소를 삼켰다. 그가 방금 전에 포기한 건 돈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문제의 탱화가 정교하게 위조된 가짜였기 때문이다.
한치호가 지나치게 광분하는 것 같아서 슬쩍 호가를 높여보기는 했지만, 애초에 살 물건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가 신경을 쓴 건 오직 한치호가 어느 선에서 멈출 것인가 하는 사실뿐이었다. 녀석이 저 그림을 의기양양하게 한국으로 가지고 돌아가 봤자 한성 옥션 감정가들에 의해 금세 위작임이 들통날것이다.
‘그러니까 아무에게나 함부로 이빨을 들이대지 말란 말이야. 실력도 없으면서 배경 믿고 경매에 달려들지도 말고. 1200만 위안, 20억 원이면 싸게 교훈을 얻은 거라고 생각해.’
처음 낙찰 받은 작품에 과도한 돈을 투자한 탓인지 그 뒤로는 한치호의 광기도 약간 수그러들었다. 그 틈을 타서 도윤과 최서라는 또 다시 본인들이 원하는 물건 몇 점을 시세까지 경쟁한 끝에 낙찰 받았다. 그러자 녀석의 광기가 다시 폭발했다. 그에게는 너무나 안타깝게도 바로 다음에 또 다시 시작가 1500만 위안짜리 대형 위작이 등장했다.
“네. 11번 손님이 2400만 위안에 낙찰 받으셨습니다. 축하합니다.”
워낙 비싼 물건이었던 탓에 이번에는 도윤도 잠깐 팻말을 들어 올리는 시늉만 몇 번 하다가 슬그머니 입찰을 포기했다. 그것으로 한성 옥션에서 준비했던 자금이 바닥나고 말았다. 원래라면 미리 점찍어 두었던 모든 작품을 살 수 있었던 돈으로 고작 대형 위작 두 점만 낙찰 받고 끝난 것이다.
덕분에 도윤과 최서라는 이후에 등장한 두 점의 작품을 시세보다 훨씬 싼 값에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한치호는 자신이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다는 사실을 끝내 눈치 채지 못했다. 한쪽에서 말없이 지켜보던 왕이푸마저 슬쩍 혀를 찼을 만큼 비참한 결과였다.
한성 옥션에서 노렸던 몇몇 작품들을 제외하면, 후반 경매에서도 스무 점의 작품들이 단상에 올라왔다가 다소 밋밋한 입찰 경쟁을 통해 예정되었던 주인들 손으로 들어갔다. 그런 뒤에야 마지막으로 금동보살입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백제에서 만들어진 금동보살입상입니다. 여러분이 하루 종일 기다리셨던 이 놀라운 작품의 시작가는 3000만 위안입니다. 호가는 한 번에 100만 위안씩 올라갑니다.”
경매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도윤이 왕이푸를 힐끗 쳐다봤다. 그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경매사가 두어 번 응찰자를 기다리는 말을 내뱉은 뒤, 도윤은 조심스럽게 팻말을 들어올렸다.
“네. 7번 손님께서 3000만 위안을 부르셨습니다. 3100만 위안 기다립니다. 3100만 위안 없습니까?”
경매사의 말이 경매장에 울려 퍼졌지만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몇몇 응찰자는 일찌감치 자리를 뜬 탓에 실내가 한산해 보일 정도였다.
진즉에 준비했던 자금이 바닥난 한치호는 이미 주인이 정해진 물건이라고 생각한 탓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단상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도윤이 팻말을 들어 올리자 몸을 바로 세우고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3000만 위안 한 번 갑니다. 3000만 위안 두 번 갑니다. 3000만 위안 세 번 갑니다. 네 축하합니다. 7번 손님께서 백제 금동보살입상을 낙찰 받았습니다.”
한치호가 제대로 반응을 하기도 전에 금동보살입상은 순식간에 도윤의 손에 떨어졌다. 그때 왕이푸가 자리에서 일어나 도윤에게 다가가는 게 보였다. 한치호는 두 사람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로 악수를 하고 자리를 뜰 때까지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멍하니 그들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그는 경매장이 텅 비고 나서야 비로소 오늘 경매가 완전히 끝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