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101화 (101/300)

101화

<15. 검은 황금>

베트남 다낭에서 자동차로 50분가량 떨어져 있는 작은 도시 호이안. 폭이 넓지 않은 도로가 관통하는 도심 한 가운데에 비에코(VietKo)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5층짜리 건물이 한 채 있었다. 그 건물의 5층 사장실에 두 명의 사십대 남자가 어두운 얼굴로 마주앉았다.

“고 사장. 아무래도 이제 포기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만 하자.”

비에코의 개발본부장이자 대학 동기이기도 한 권두철의 말에 고정혁이 슬며시 눈을 감았다. 그가 아무 말도 없이 계속 침묵을 지키자 권두철이 답답함에 혀를 찼다.

“무엇보다 석유를 품고 있는 레저보어 락(Reservoir Rock : 저류암)의 부피가 너무 작아. 게다가 오일포화도도 낮고. 이건 개발을 해봤자 돈 먹는 하마가 될 게 뻔해.”

고정혁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권두철의 말이 맞다. 맞기는 한데…….

“자리를 옮겨서 시추공을 한 군데만 더 뚫어보면 어떨까?”

여전히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듯한 그의 말에 권두철이 기어코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돈으로? 그거 하나 뚫는데 최소 수백억이야. 더 이상 은행에 걸 담보도 없다는 거 알지? 신용대출로 그 정도 액수를 빌리는 건 어림도 없어.”

“그럼 정말 여기서 포기하자고?”

“지금 포기해도 어차피 회사는 정리해야 돼. 그래도 교소도 가는 건 피해야 할 거 아냐?”

교도소. 그 말에 고정혁이 고개를 푹 숙였다. 여기서 더 고집을 피우다가는 조만간 부정수표단속법 위반이나 임금체불 등 갖가지 문제가 불거질 게 뻔했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가 마치 해서는 안 될 말을 뱉듯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담보를 걸 게 아주 없는 건 아니야. 무리하면 오백 억 정도는 더 끌어올 수 있어.”

권두철의 안색이 홱 변했다.

“미래 그룹 주식? 그건 절대 안 팔 거라면서?”

“안 파는 게 아니라 못 파는 거야. 어머니 유언이니까. 그래도 담보로 걸 수는 있어.”

“그게 그거지! 그러다 기껏 뚫은 시추공에서 석유가 아니라 물만 솟구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럼 갖고 있던 주식은 모조리 은행에 뺏기고 너는 졸지에 불효자 되는 거야.”

“내가 언제는 효자였냐? 어머니 임종도 못 지켜드렸는데.”

“그래서 돌아가신 분이 기어코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나는 꼴까지 보고 싶은 거냐?”

권두철이 매섭게 노려보자 고정혁이 슬쩍 시선을 피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진짜 포기해야 하나? 그동안 투자한 돈과 시간이 얼만데…….

“지금 접으면 회사가 망하는 정도로 끝날 수 있어. 하지만 네 말대로 미래 그룹 주식까지 꼬라박으면 곧바로 재벌 2세 출신의 노숙자가 되는 거야. 모조리 다 잃는다고.”

그가 계속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권두철의 말이 더욱 세졌다. 재벌 2세 출신의 노숙자라……. 그러면 진짜 신문에 나겠네. 고정혁이 메마른 웃음을 터트렸다.

“그나저나 이 회사 정리하면 앞으로 뭐 하고 사냐?”

그의 말에 권두철이 실소를 터트렸다.

“그걸 왜 네가 걱정해? 그런 걱정은 나 같이 친구 잘못 만난 흙수저가 해야지. 나는 한국 돌아가면 당장 뭘 하고 살지가 아니라 뭘 먹고 살지를 걱정해야 돼.”

“야, 인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아무렴 내가 너를 끼니 걱정까지 하고 살게 놔두겠냐?”

“얼씨구? 너 아직도 주제 파악이 안 돼? 너나 나나 이 회사 접으면 그냥 실업자야, 이 자식아. 백수라고. 근데 나더러 백수도 모자라서 거지 노릇까지 하라는 거냐?”

“거지 노릇이라니! 다른 건 몰라도 네 퇴직금은 내가 확실히 챙겨줄게.”

“망한 회사 임원에게 퇴직금 챙겨주는 거, 그것도 범죄다. 헛소리 하지 말고 되도록 빨리 결단해. 여기서 계속 발 담그고 물장구치다가는 그나마 돈 많은 백수는커녕 전과자 백수가 될 수도 있어. 내가 실업자 주제에 네 사식까지 넣어줄 수는 없잖아?”

고정혁이 머리를 하늘로 치켜들더니 키득대며 웃기 시작했다.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지금까지 믿고 함께해 준 친구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한참 동안 미친놈처럼 킬킬대던 그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그래도 조금만 기다려. 연말에 잠시 한국에 들어가야 해. 최종 결정은 거기서 내릴 테니까, 너도 이번에 같이 가자. 오랜만에 가족들 얼굴이라도 봐야지.”

“한국에는 왜? 설마 네 잘난 친척들한테 돈 빌려달라고 손 빌릴 생각은 아니지?”

“아니야. 설사 내가 그런다고 해도 씨알도 안 먹힐 거다. 돈 문제에 관해서는 타인보다 냉정해지는 게 재벌가야. 그 사람들, 이미 우리 회사에는 장래가 없다고 판단했을 거다.”

“그럼 그냥 마음을 정리하려고 들어가는 거야?”

“겸사겸사. 우리 외사촌 누나가 청파 갤러리 관장인 거 알지? 청파에서 이번 연말에 한국불교 특별전인가 그런 걸 한데. 오프닝에 참석하라고 초대장이 왔어. 딱히 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고 예의상 보낸 거 같은데, 한국에 들르는 김에 그냥 한 번 가보려고.”

“알았다. 이왕 가는 거 전시회 구경 잘 하고, 마음 정해지면 바로 연락해. 서울에서 간만에 소주에 삼겹살이라도 먹자. 베트남 돼지도 괜찮기는 한데, 그래도 제주도 돼지하고는 맛이 달라. 아무튼 시간 끌면 그만큼 너만 손해야. 그건 명심해라.”

“넵. 알겠습니다. 권두철 본부장님.”

장난스럽게 경례까지 척 올려붙였지만 고정혁의 마음은 소태를 입에 문 것처럼 씁쓸했다. 내년에도 저 친구를 본부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 * *

“이 빌어먹을 자식! 집안 말아먹을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밥상까지 다 차려서 숟가락까지 손에 쥐어줬잖아? 근데 그것도 제대로 떠먹지 못하고 아예 속에 든 것까지 토하고 와? 넌 도대체 상해에서 무슨 짓을 한 거냐?”

한성 옥션 사장실. 한대길은 벌써 삼십분 째 길길이 뛰고 있었다. 그의 앞에 앉은 한치호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아버지도 예전처럼 함부로 주먹을 날리거나 발길질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사무실 집기가 몇 개 박살났을 뿐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치호의 비뚤어진 성격을 형성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던 어머니 성진아조차도 오늘 만큼은 한 마디도 역성을 들지 않고 못난 아들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녀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지금까지 몇 번이나 혀를 찼는지 모른다.

“네가 날린 돈이 무려 60억이야. 되도 않는 쓰레기 두 점을 손에 넣느라고 60억을 쏟아 부었다고. 그 돈이면 강남에 아파트가 몇 채인지 알아? 어떻게 할 거야? 그 손해를 어떻게 메울 거냔 말이다, 이 한심한 놈아.”

계속되는 아버지의 분노에 잔뜩 주눅 들어 있던 한치호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전 아버지가 찍어준 물건을 샀을 뿐이라고요. 그게 전부 가짜일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네놈도 명색이 옥션의 기획실장이잖아? 그럼 내가 찍어주었더라도 현장에서 직접 보고 다시 판단했어야지. 눈깔이 시원치 않으면 처음부터 감정사를 데리고 가든가. 한성 옥션에 감정사가 없어? 뭐가 잘났다고 너 혼자 간 거냐? 엉?”

듣고 있던 성진아가 길게 한숨을 토하더니 남편을 가로막았다.

“물건이 가짜인 건 네 아빠 탓도 있다고 치자. 하지만 시세보다 두 배나 주고 낙찰 받은 이유는 뭐냐? 애초에는 시세의 절반에 사기로 했던 거잖아? 그 바람에 원래 사기로 했던 가격의 네 배나 줬어. 왜 그렇게 흥분한 거니?”

“그게, 이도윤 그 자식이 계속 살 것처럼 굴면서 호가를 높이는 바람에…….”

쌩 하는 소리와 함께 한대길 앞에 놓여 있던 찻잔이 한치호의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찻잔이 벽에 부딪쳐서 박살이 나면서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너, 너, 이 자식 그걸 말이라고…….”

아들을 손가락질하며 부들부들 떠는 한대길의 손을 성진아가 붙잡았다. 그녀의 입에서도 어쩔 수 없이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내 아들이지만 이렇게 못날 수가.

“알았다. 그만 나가 봐라.”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한치호가 벌떡 일어나 도망치듯이 사장실을 빠져나갔다. 그가 사라지자 성진아가 남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속이 뒤집힐 것 같은 기분은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아들을 쥐 잡듯이 몰아세운다고 해서 사라진 60억이 돌아올 것도 아니었다.

“가짜를 산 것도 문제지만 나머지 물건들을 하나도 손에 넣지 못한 게 더 큰일이에요. 기껏 일을 꾸몄다가 남 좋은 일만 시켜준 꼴이잖아요. 우치무라는 뭐라고 해요?”

한대길이 답답한 듯 넥타이를 살짝 끌렀다.

“그 자식은 입을 꽉 다문 채 별 얘기가 없어. 금동보살입상 때문에 3000만 위안이나 손해를 봤는데도 가만있는 걸 보면 왕이푸 회장이 손을 쓴 게 분명해.”

“왕 회장이 손해를 보전해줬다는 뜻인가요?”

“그랬겠지. 아니면 최소한 앞으로 그만한 이익을 보장해주겠다는 약속이라도 했을 거야. 그러지 않았다면 그 탐욕스럽고 음흉한 놈이 입 다물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잖아.”

“이도윤이 한 짓도 괘씸하긴 하지만 결국 왕 회장이 우리를 물 먹인 셈이네요. 그 양반이 아무 이유 없이 그럴 리가 없는데……. 아무튼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할 거예요?”

한대길은 아무런 대답 없이 한숨만 계속 내쉬었다. 내년에 총선이 있다. 그때를 대비해서 미리 선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벌인 일이었는데, 아들 녀석이 상해에서 거창하게 헛발질을 하는 바람에 선거자금은커녕 오히려 손해만 잔뜩 봤다. 한성 옥션이 아무리 큰 경매 회사라고 해도 그만한 비자금을 단기간에 마련하는 건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도윤이라고 했지? 그 젊은 녀석을 가만히 두면 안 되겠어. 알고 그랬든 모르고 그랬든 한대길이 노린 물건을 가로채면 어떻게 되는지 쓴 맛을 보여줘야지.”

그의 말에 성진아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가만히 계세요. 이번 일은 이 박사가 단독으로 벌인 게 아니라 청파 갤러리가 뒷배를 봐 준 거나 다름없어요. 청파 뒤에는 또 미래 그룹이 있으니까 자칫 당신까지 엮이면 문제가 더 골치 아프게 될 소지가 커요. 이 박사는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당신이? 당신이 어떻게?”

“이 박사 부모가 현소 화랑 주인이에요. 이 박사도 명색이 전문 감정가고요. 미술계에서 벌어진 일이니까 당신보다는 내가 나서는 게 모양새가 좋아요. 적당한 손을 쓸 기회도 더 많을 테고. 당장은 두고 보겠지만 제대로 걸리기만 하면 이 바닥에서 아예 매장 시켜야죠.”

아내의 눈이 파랗게 빛나는 것을 확인한 한대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한 일이 있으면 말해. 젊은 놈이 재주만 믿고 까불다간 어떻게 되는지 똑똑하게 가르쳐줄 테니까.”

이도윤이라는 젊은 놈이 미술 시장에서 떠오르는 신성이라는 얘기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감히 한국 최대의 경매 회사인 한성 옥션을 상대로 장난을 쳐? 더구나 여당 실세인 자신이 뒤에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놈들은 확실히 밟아줘야 한다. 그럴 게 아니라면 도대체 뭐 하러 권력을 잡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겠는가?

* * *

청파 갤러리에서 주최한 ‘한국불교미술 특별전’ 오프닝 행사장. 12월 10일에 시작해서 이듬해 구정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회에는 ‘특별’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작품들이 대거 전시되었다. 자체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국보급 작품만 세 점인데다 청파 갤러리의 이름을 앞세워 여러 수집가들로부터 보물급 미술품들을 적지 않게 대여한 덕이었다.

평소에는 쉽게 볼 수 없는 걸작들이 한꺼번에 전시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미술계의 거물급 인사들은 물론이고 불교계에서 명망 높은 스님들까지 전시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도윤 역시 오랜만에 부모님을 모시고 전시장을 찾았다. 그런 세 사람을 가장 먼저 반긴 건 역시 청파 갤러리 관장 최수아와 실장 최서라였다.

“참석해주셔서 감사해요. 훌륭한 아드님을 두신 덕분에 요즘 현소 화랑의 이름이 전보다 훨씬 자주 들리더라고요. 자랑스러우시겠어요.”

“요즘은 제 아들보다 최서라 실장의 이름이 더 화제던데요? 미술계에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새로운 인재가 나타났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최수아 관장과 도윤의 어머니인 서연희는 마치 오랜 지기를 만난 사람들처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미술계에는 다른 분야에 비해 여성들의 활동이 비교적 활발한 편이었고, 그 때문에 두 사람 역시 이런저런 행사나 전시회를 통해 여러 차례 안면을 익혀왔었다.

“귀한 손님이시니 두 분은 제가 직접 안내를 해드리고 싶은데 어떠세요?”

최수아의 말에 도윤이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려는 찰나 옆에 있던 최서라가 그의 손을 슬쩍 잡아당겼다. 두 사람을 힐끗 돌아본 서연희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관장님이 직접 안내를 해 주신다면 저희로서야 영광이지요. 그럼 신세를 지겠습니다.”

서연희는 남편의 손을 살짝 잡아끌며 앞서가는 최수아의 뒤를 따랐다. 그러면서 고개를 살짝 돌려 도윤에게 윙크했다. 우린 알아서 구경할 테니까 젊은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끼리 어울리라는 뜻이었다.

“금동보살입상부터 보러 가요.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 가운데 그게 가장 화제에요. 벌써 신문에도 여러 차례 기사로 소개됐기 때문에 아마 사람들이 몰릴 거예요.”

이미 낙찰을 받은 뒤에 마르고 닳도록 본 작품이기는 하지만 도윤은 군소리 없이 최서라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실제로 두 사람이 상해에서 낙찰 받아 가져온 백제 금동보살입상은 이번 특별전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정부에서 거액을 지불하면서까지 되찾아오려다 실패한 국보급 문화재를 사설 미술관인 청파 갤러리에서 과감한 투자를 통해 입수했다는 소식이 사람들을 환호하게 했다. 실제로는 사람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낙찰 받았지만 일반인들의 머릿속에는 우치무라가 불렀던 15억 엔이라는 액수가 여전히 낙인 된 상태였다.

도윤은 자신의 이름으로 낙찰 받은 작품들 가운데 패철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을 청파 갤러리에 다시 매각했다. 현소 화랑은 불교 미술 작품을 주로 취급하는 곳이 아니기도 했거니와, 원래부터 그러기로 하고 최서라와 상해까지 동행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그걸 모두 처음부터 청파 갤러리가 낙찰 받은 것으로 보도했다. 그로 인해 자칫하면 이름도 모르는 외국인의 손에 들어갈 뻔한 ‘백제의 미소’를 비롯한 다수의 불교 문화재가 무사히 한국의 품에 안겼다는 기사가 연일 터져 나왔다. 그러자 평소에는 불교미술에 별로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불상을 보겠다며 전시회장을 찾았다.

최서라의 짐작대로 백제 금동보살입상 앞에는 다른 어떤 작품들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두 사람이 흐뭇한 표정으로 그 장면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최서라의 이름을 불렀다.

“서라야. 너 못 보는 사이에 굉장히 예뻐졌구나.”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던 최서라가 눈을 크게 뜨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정혁 아저씨. 이게 얼마만이에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최서라가 손을 붙잡고 팔짝팔짝 뛰며 반가워하는 인물인 고정혁. 그는 베트남에서 석유를 탐사 중인 비에코의 사장이자 미래그룹 최인탁 회장의 하나 뿐인 여동생의 아들이었다. 즉 최서라의 오촌 아저씨라는 얘기였다.

그녀는 한동안 고정혁에게 폭풍 같은 질문을 퍼부으며 안부를 묻더니 뒤늦게 옆에 도윤이 서 있다는 것을 깨닫고 미안한 표정으로 얼른 인사를 시켰다.

“아참. 아저씨. 인사하세요. 이쪽은 현소 화랑의 이도윤 박사님이세요. 요즘 가장 핫한 미술계의 젊은 천재 감정가예요.”

“처음 뵙겠습니다. 이도윤입니다.”

“반가워요. 난 서라 오촌 아저씨예요. 고정혁입니다.”

미소 띤 얼굴로 스스럼없이 도윤의 손을 붙잡는 고정혁의 얼굴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어디 더운 나라에 있다 왔나? 도윤이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갑자기 그의 주머니에서 붉은 빛이 흘러나오는 게 보였다. 깜짝 놀란 도윤은 그 빛이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움찔했다. 어라? 이게 왜 여기서 반응해?

그의 주머니에는 상해에서 싼 값에 낙찰 받은 패철이 들어 있었다. 본래부터가 휴대용으로 제작된 물건이기 때문에 혹시나 싶어 항상 가지고 다니던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사람들이 가득한 전시장에서 주인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려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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