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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102화 (102/300)

102화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패철이 붉은 빛을 발하는 순간, 도윤은 최서라와 함께 전시회를 구경하며 오붓하게 데이트를 즐기려던 생각을 바로 접었다. 당장은 눈앞에 나타난 패철의 주인, 고정혁이 어떤 인물인지를 파악하는 게 더 중요했다. 아무리 유물의 주인이라고 해도 상대가 제대로 된 인간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덜컥 능력을 전해줄 수는 없었다.

‘민폐만 끼질 사람이라면 차라리 유물을 파괴하는 게 낫지. 아직은 능력을 전해줘야 하는 시간도 많이 남았으니까 서두를 필요 없어.’

자신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라스푸친의 목걸이에 담겼던 치료의 능력을 전해 받은 게 불과 몇 달 전이었다. 새로운 주인에게 유물의 능력을 전해주기까지는 아직 반년이상 여유가 있는 셈이었다.

“아저씨. 모처럼 뵀는데 오늘은 제가 손님이 있어서 먼저 실례할게요. 좋은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었으니까 천천히 둘러보면서 구경하세요.”

최서라가 고정혁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을 본 도윤이 재빨리 고개를 저으며 나섰다.

“그러지 말고 저희랑 함께 둘러보시죠? 모처럼 만난 친척 분인데 이렇게 금방 헤어지면 제가 미안해서요. 괜찮으시다면 오늘은 제가 기꺼이 도슨트 역을 맡겠습니다.”

기획부터 시작해서 전시에 관한 전반적인 일을 담당하는 큐레이터와는 달리, 도슨트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작품을 해설하는 일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뜻밖에도 미술사 박사인 도윤이 도슨트를 자처하고 나서자 최서라는 물론이고 고정혁마저 당황했다.

“아니, 나는 사실 불교 미술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서…….”

급히 두 손을 내저으며 사양하려는 고정혁에게 다가간 도윤이 그의 등을 슬쩍 떠밀었다.

“사양하지 마세요. 서라 씨의 아저씨면 곧 제 아저씨도 됩니다.”

엉겁결에 앞장을 서게 된 고정혁이 최서라를 힐끗 보더니 도윤의 귀에 속삭였다.

“자네, 혹시 서라한테 마음이 있나?”

초면에 말을 놨다는 건 예의가 없어서가 아니라 도윤이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다. 도윤 역시 그 사실을 깨닫고 씩 웃었다.

“저렇게 아름답고 지적인데다가 성격까지 좋은 아가씨를 누가 싫어하겠습니까? 당연히 마음이 있죠. 외국에 오래 계시느라 모르셨겠지만 진지하게 사귀는 중입니다.”

그 말에 고정혁이 풀썩 웃음을 터트렸다.

“오늘 처음 보는 친구이기는 하지만 박력 하나는 젊은 사람다워서 마음에 드는군. 하지만 자네가 알아야 할 게 있어. 난 최씨 집안에 영향력이 거의 없어.”

“아까 보니까 서라 씨가 몹시 반가워하던데요? 서라 씨가 좋아하는 분이 제게는 가장 영향력 있는 집안 어른입니다.”

그 말에 고정혁이 기어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약간 뒤에 처져 있던 최서라가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을 듣고는 싱긋 웃으며 다가왔다. 그녀는 양 손으로 두 사람의 팔짱을 하나씩 꼈다.

“잘 됐네요. 저도 아저씨하고 만나마마자 금세 헤어지는 게 좀 그랬는데, 이왕 이렇게 됐으니까 함께 구경해요. 아저씨는 모르겠지만 이 박사님은 동서양의 미술품에 대해 굉장히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요. 오늘 최고의 도슨트를 구하신 거라고요.”

“그래? 근데 관객이 워낙 저질이니 미안해서 어떡하냐?”

“미안하면 아저씨가 이따가 점심 사세요.”

“그러자 그럼. 하하하.”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도윤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유상종이라고 일단 최서라의 반응으로 보아서는 고정혁의 인간성에 대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근데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이기에 하필 지관의 패철 주인으로 낙점된 거지?

* * *

이세준은 전시된 작품들을 둘러본 후 먼저 전시장을 떠났다. 오프닝 행사가 끝난 뒤 각 화랑 대표들과 미술계 주요 인사들을 위한 연회가 열렸는데, 약한 감기 기운이 있던 그는 일찍 돌아가 쉬기로 한 것이다. 대신 아내인 서연희가 현소 화랑 공동대표 자격으로 연회에 참석했다. 그녀는 얼마 전부터 실장 타이틀을 떼고 공동대표 직함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서 대표님 그동안 잘 지내셨죠?”

서연희가 최수아 관장을 비롯한 몇몇 미술계 인사들과 칵테일 잔을 손에 든 채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 그녀를 부르며 다가왔다. 한성 옥션의 성진아 사장이었다.

“아, 성 사장님. 네. 염려 덕분에요. 한성은 요즘 어때요?”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싶기는 한데, 솔직히 요즘 조금 어려워요. 얼마 전에 상해에서 적지 않은 손해를 입는 바람에 자금 사정이 갑자기 안 좋아졌거든요.”

성진아의 말에 서연희와 최수아 모두 얼굴이 살짝 굳었다. 이 여자가 왜 대놓고 이러지?

두 사람 모두 도윤과 최서라로부터 상해에서 열렸던 비공개 경매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해 들었다. 물론 그들도 도윤이 왕이푸로부터 모종의 제안을 받았다는 사실까지는 몰랐다. 그러나 한대길과 한성 옥션이 우치무라, 왕이푸 등과 은밀한 거래를 시도했다가 결과적으로 거액을 주고 위작을 사들이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의 표정이 변하는 걸 확인한 성진아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서 참 부러워요. 오늘 전시장에 와보니까 저희가 상해에서 노렸던 물건들이 여럿 보이더라고요. 현장에서는 다른 사람이 낙찰 받았다고 들었는데 청파에서 그걸 다시 매입했나 보죠?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가격을 올리지 말고 처음부터 포기할 걸 그랬어요.”

“아시겠지만 청파는 늘 좋은 작품을 소장하려고 애쓰니까요. 특히 우리 문화재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죠. 그런데 오늘 전시된 작품들 가운데 한성에서 노렸던 물건이 있다고요?”

최수아의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딱딱해졌다. 반면에 성진아의 표정은 태연했다.

“그럼요. 특히 금동보살입상은 우리 한 의원님이 국회에서까지 목소리를 높이면서 반드시 사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던 작품이잖아요. 그래서 이왕이면 저희 한성에서 소장하고 싶었거든요. 그래도 다른 나라에 뺏기지 않고 우리나라로 돌아왔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겠죠?”

성진아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상해 경매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 여자가 도대체 왜 이러지? 최수아가 아차 하는 사이에 주변에 있던 손님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미술계에서는 제법 관록이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창하이 옥션이 상해에서 비공개 경매를 열었다는 사실 자체는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전해 들었다.

“한성 옥션도 상해 경매에 참가했었어? 난 초대장을 받은 사람만 참가할 수 있다고 해서 청파 갤러리만 간 줄 알았는데.”

“그럼 설마 금동보살입상을 놓고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경쟁했던 거야? 그건 우치무라라는 자가 15억 엔이나 불렀던 물건이잖아? 설마 그것보다 더 주지는 않았겠지?”

“그야 모르지. 한대길 의원은 국회에서 백억이 아니라 천억을 주더라도 반드시 불상을 사들여야 한다고 주장했었잖아? 그럼 한성에서 최소한 백억은 부르지 않았을까?”

자기들 딴에는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는 척 했지만 사실상 누구나 들을 수 있는 크기였다. 최수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도윤에게 제법 두둑한 웃돈을 얹어서 작품들을 되사기는 했지만 백억은 가당치도 않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사실은 훨씬 싸게 작품들을 사들였다고 밝힐 수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이 여우가 깽판을 치기로 작정을 했네. 저희들이 헐값에 물건을 사들이려고 수작을 부렸던 건 이제 드러날 걱정이 없게 됐다 이거지? 어차피 죄다 우리 손에 넘어왔으니까’

최수아가 속으로 혀를 차는 사이 이번에는 성진아의 화살이 서연희를 겨냥했다.

“그러고 보니 현소 화랑에도 좋은 작품들이 많이 있죠? 나중에 공개할 생각이 드시면 우리 한성을 통해 경매에 올리는 건 어때요? 아주 좋은 값에 팔아드릴 수 있는데.”

서연희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화랑도 전시회를 열지 않고 경매 회사를 통해 작품을 파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뜬금없이 이 자리에서 왜 저런 제안을 하는 거지?

“웬만한 규모 이상의 화랑이라면 다들 괜찮은 작품들을 한두 점 이상 가지고 있는 법이잖아요. 저희 현소도 비슷하기는 한데 그렇다고 많다고 할 정도는 아니에요. 한성 옥션처럼 큰 회사에 맡기기에는 너무 부족할 것 같네요.”

서연희는 적당히 상황을 넘기고 싶었다. 하지만 성진아는 의도적으로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무슨 겸손의 말씀을. 현소 화랑의 지하 수장고에 공개되지 않은 고가의 문화재급 작품들이 잔뜩 있다는 얘기를 귀가 따갑게 들었는데. 그거 계속 감춰두고만 있을 거예요?”

서연희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이 여자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 서연희가 대답을 않자 성진아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현소는 개인 수집가가 아니라 화랑이잖아요. 보물이 있으면 숨기지 말고 공개해야죠. 고가의 미술품은 과세 대상인 거 아시죠? 그렇게 꼭꼭 숨겨뒀다가 나중에 탈세로 크게 얻어맞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더 커졌다. 그에 따라 서연희의 표정도 더욱더 얼어붙었다.

미술품에 붙는 세금은 주로 그걸 팔아서 이익을 보았을 때 발생한다. 따라서 단순히 작품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탈세를 걱정해야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다. 하지만 명색이 옥션 사장인 성진아가 그걸 모르고 떠들어대는 건 분명 아닐 것이다.

‘국회의원인 남편을 이용해서 세무조사라도 하겠다고 협박하는 거야?’

주변의 반응을 확인한 성진아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했는지 슬쩍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어머,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 그럼 저는 약속이 있어서 이만 실례할 게요.”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를 하더니 바람처럼 사라졌다. 성진아가 떠난 자리에는 최수아와 서연희가 사람들의 이목을 받으며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 * *

전시회 관람을 마친 고정혁은 도윤과 최서라를 데리고 청파 갤러리 건물 밖으로 나갔다. 갤러리 내에도 간단한 스낵바가 있기는 했지만, 고정혁이 오랜만에 최서라를 만난데다 도윤에게 안내까지 받았으니 제대로 된 점심을 사겠다고 주장한 것이다. 속셈이 있었던 도윤은 당연히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최서라는 별 생각 없이 두 사람을 따라나섰다.

“근데 아저씨 베트남에서 석유를 탐사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건 잘 되고 있어요?”

최서라는 고정혁의 근황을 묻는다고 질문을 던졌다가 그의 얼굴이 단박에 흐려지는 것을 보고 아차 싶었다. 잘 안 되고 있구나! 그녀는 얼른 화제를 돌리려고 했지만 그보다 먼저 고정혁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후우~. 솔직히 말하면 그게 좀 사정이 안 좋아. 석유가 매장된 곳을 한 군데 찾기는 했는데 매장량이 너무 적어서 그냥 구멍을 덮고 철수할 생각이거든.”

“어머, 그럼 사업을 접으시는 거예요?”

“아직 고민 중이다. 지질 검사 결과로만 보면 분명히 근처에 석유가 매장된 곳이 더 있을 것 같거든. 근데 시추공 하나 뚫는데 워낙 돈이 많이 들어. 한두 군데 더 파서 석유가 터지면 승부수에 성공하는 거고, 그게 아닐 경우 미련을 부리다 완전히 망하는 거야.”

“고민이시겠네요. 그쪽 일은 잘 모르지만 도박이나 다름없는 사업이라고 들었어요.”

“자원 탐사라는 게 다 그렇지. 모 아니면 도. 로또랑 비슷해. 게다가 시추공 하나 뚫는데 기본적으로 몇 백억에서 몇 천억이 필요하니까 엄청 큰 도박판이라고 할 수 있지. 확신만 있다면 주식이라도 팔아서 자금을 마련할 텐데 그게 쉽지가 않다.”

“주식이라면 고모할머니가 물려주신 거 말이에요?”

“그래. 돌아가신 어머니가 미래 전자, 미래 건설 등등 해서 미래 그룹 관련 주식을 제법 가지고 계셨잖아. 청파 갤러리 주식도 조금 있어. 웬만하면 팔지 말라고 유언을 남기셔서 지금까지는 손을 대지 않았는데, 그거라도 팔지 않으면 사업을 접어야 할 것 같아.”

별로 즐거운 얘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하지만 도윤은 두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서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래서 이 사람이 유물의 주인으로 선정되었구나.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유물의 주인들은 대개 유물과 연관된 길을 운명적으로 걷게 된다. 미술사 박사를 받은 자신이 어렸을 때 다산의 지적 능력을 물려받은 거나, 청파 갤러리 차기 관장을 노리는 최서라가 파베르제의 안목을 물려받은 게 대표적인 예다.

물론 도윤이 라스푸친의 치료 능력을 전해 받은 것처럼 때로는 유물과 주인 사이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연결이 성립할 때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대개는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라스푸친의 인생을 생각할 때 도윤 자신도 앞으로 남을 치료해야 할 일이 더 생기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었다.

‘물론 라스푸친처럼 독약을 먹고 총을 맞는 일이 생기는 건 절대 사양이지만.’

지관은 본래 땅을 살피는 직업이다. 그리고 고정혁이라는 인물은 땅속에 묻힌 지하자원을 탐사하는 회사의 사장이었다. 게다가 오늘 처음 만나기는 했지만 인간성도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죄송하지만 사업을 더 진행시키라면 어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한지 여쭤 봐도 될까요?”

그게 도윤으로 하여금 조금은 생뚱맞게 들릴지도 모를 질문을 던지게 만든 이유였다.

“왜? 자네도 도박을 좋아하나? 못해도 오륙백 억은 필요해. 어때 관심 있어?”

대답을 하면서도 고정혁은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최서라로부터 눈앞의 젊은이가 꽤 규모 있는 화랑을 물려받을 사람이라는 얘기는 조금 전에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에게 필요한 돈을 투자할 수 있을 정도의 재력가일리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귀여워했던 오촌 조카의 애인이 아니었으면 웃기는커녕 인상부터 찌푸렸을 것이다.

“젊은 놈이 건방진 질문을 한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도 예전부터 자원탐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추공을 뚫었던 곳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하셨는데 그럼 지질조사부터 다시 하실 건가요, 아니면 이미 점찍어둔 자리가 있으신 건가요.”

고정혁의 얼굴이 굳었다. 상대가 그냥 농담을 하거나 가볍게 남의 일에 참견하려는 게 아니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의 시선이 도윤의 옆에 앉은 최서라에게 향했다.

도윤은 최서라와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하면서 자신에게 천억이 넘는 자금이 있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혹시라도 청파 갤러리를 물려받는 과정에서 자금 지원이 필요할 경우 망설이지 말고 얘기하라는 뜻이었다. 고정혁의 시선을 받은 최서라가 약간 망설이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저씨가 필요한 돈이 정말 오륙백 억이라면 도윤 씨가 투자할 수 있는 액수이기는 해요. 하지만 그러려면 아저씨도 담보를 거셔야 하는데, 가능하시겠어요? 아까 미래그룹 주식밖에 남은 게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건 돌아가신 고모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함부로 처분할 수 없는 게 아니냐는 뜻을 담은 질문이었다. 고정혁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잠시 후, 그가 고민 끝에 한숨을 토했다.

“이건 우리 회사 개발본부장에게도 하지 않은 얘긴데, 사실은 지질조사부터 다시 해 볼 생각이야. 지금까지는 대륙붕에 시추선을 띄워서 작업을 했는데, 아무래도 석유가 포함된 배사구조가 육지까지 연결된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 그래서 이왕 다시 하려면 바다가 아니라 육지에서 시도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도윤은 아직 고정혁에게 돈을 투자하기는커녕 능력을 전해줄지의 여부조차 결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능력을 전해줄 경우, 이미 조사한 곳이 아니라 새롭게 조사한 곳에서 시추를 해야 성공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야 새로 받은 능력이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투자는 그 이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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