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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103화 (103/300)

103화

고정혁을 처음 만난 날, 도윤은 더 이상 대화를 진전시키지 않고 일단 그와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뒤에 인터넷을 통해 그가 사장으로 있는 비에코에 대해 조사했다. 혹시 회사와 관련해서 좋지 않은 기사나 소문이 있나 확인한 것이다.

정말로 투자를 하려면 최소한 회사의 재무제표 정도는 확인해야 하겠지만 일단 그건 뒤로 미뤘다. 비에코가 주식회사이기는 하지만 아직 상장이 되지 않은데다 우선은 투자보다 그가 유물의 능력을 물려받을 만한 사람인지를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아저씨는 적어도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분은 아니에요. 어렸을 때부터 넉넉한 집에서 자랐지만 사치를 일삼거나 거만한 성격도 아니었고요. 공부도 꽤 잘했어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실 정도였으니까요.”

다른 건 몰라도 최서라가 고정혁에게 상당한 호의를 갖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 공부를 잘했다는 건 그 사람의 인간성과는 무관하다. 그러나 적어도 학창시절을 성실하게 보냈다는 증거는 됐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도윤은 일단 고정혁을 다시 한 번 만나보기로 했다.

“서라 씨가 어렸을 때부터 많이 따랐던 집안 어른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전에 얻어먹은 것도 있고 하니까 베트남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식사라도 한 번 대접하고 싶습니다.”

별로 납득할 만한 이유는 아니었지만, 고정혁은 그의 식사 초대를 받아들였다.

그 역시 지난 번 만남을 통해 도윤이 자신의 사업에 은근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지난 며칠 동안 나름대로 이도윤이라는 인간에 대해 조사했다. 그에게 몇 백 억이 넘는 돈이 있다는 증거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지만 요즘 떠오르는 젊은 천재라는 건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최수아와 최인탁에게서도 그를 칭찬하는 얘기를 들었다.

도윤은 최서라와 함께 약속 장소에 나갔다. 식사를 한 뒤에 앉은 자리에서 술까지 마실 수 있는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처음 보는 사람이 고정혁과 함께 나타났다. 비에코의 개발본부장인 권두철이었다.

“권두철이라고 하네. 내 친구의 조카사위 될 사람이라고 들었으니까 말을 편하게 해도 될까? 초면이기는 하지만 친구는 말을 놓는데 나만 높이는 건 어색할 것 같아서 말이야.”

“물론이지요. 이도윤이라고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미리 들은 얘기가 있어서 그런지 권두철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도윤을 살폈다. 그리고 도윤 역시 고정혁의 친구라는 그를 유심히 관찰했다. 흔히 하는 말로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는데, 권두철에 대한 첫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신중하면서 고집스러운 사람. 다소 모험적인 성격의 고정혁과는 비교적 궁합이 잘 맞는 동료로 보였다.

처음에는 네 사람 모두 신변잡기를 중심으로 대화를 풀어나갔다. 이미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고정혁과 권두철은 애인 사이인 도윤과 최서라에게 자신들이 젊었을 때의 연애담을 주로 들려주었다. 대부분 중년 아저씨들의 시대착오적인 모험담에 불과했기 때문에 젊은 도윤과 최서라가 듣기에는 별로 재미도 없고 영양가마저 부족했다.

“저분들 지금 부인들에게 엄청 고마워해야 할 거 같아요.”

최서라가 귀에 대고 슬쩍 속삭인 말 때문에 도윤은 하마터면 입속에 넣었던 술을 뿜을 뻔 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척 했다.

미리 생각하고 나온 게 있기 때문에 식사가 끝나자마자 도윤은 고정혁에게 자꾸 술을 권했다. 와인을 몇 병이나 시키는 그를 권두철이 말렸지만 와인은 술이 아니라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 계속 웨이터를 불러댔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베트남에서 하는 일에 대해 묻자 마침내 고정혁이 입에서 재갈이 벗겨졌다.

“자원 탐사와 관련된 산업은 본래 자원을 캐내는 상류부문(Upstream)과 그걸 가공해서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하류부문(Downstream)이 조화를 이루어야 해. 그런데 우리나라는 석유든 철강이든 원자재를 가공하는 하류부문만 너무 크게 발달했어. 산업 전체가 지속성을 갖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으로 원료를 공급하는 상류부문이 더 발전해야 돼. 우리나라는 원래부터 부존자원이 부족하니까 어쩔 수 없이 남의 땅이라도 파헤쳐야 한다는 얘기야.”

한 번 입이 터지자 비에코에 관한 이야기가 줄줄이 새어나왔다. 그 와중에도 기업 비밀에 관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는 자제력을 보였다는 사실이이 기특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사업에 대한 그의 견해가 옳든 그르든 고정혁이 나름대로 소신을 가지고 자원개발 사업에 뛰어든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 자신은 비에코가 하는 사업을 도박이라고 폄하했지만 적어도 물려받은 재산만 믿고 턱도 없는 돈 잔치를 벌이려 했던 건 아니라는 뜻이다.

“아저씨. 오늘은 이제 그만 하세요. 너무 많이 취하셨어요."

웨이터가 테이블 위에 놓인 빈 와인 병을 대여섯 병 넘게 치웠을 때, 최서라가 걱정스럽게 고정혁을 말렸다. 그의 눈이 풀어지고 혀가 꼬이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비록 얼굴이 붉어졌기는 하지만 권두철이 여전히 어느 정도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오늘은 나이 든 사람들이 주책없이 과한 대접을 받았군. 젊은 친구가 분위기를 너무 잘 맞춰준 덕분에 모처럼 기분 좋게 취할 수 있었어. 베트남에 다시 들어가기 전에 시간이 되면 한 번 더 보는 게 어떻겠나? 다음에는 내가 어른 노릇을 하도록 하지.”

권두철이 그만 자리를 파하자는 뜻을 표하며 고정혁을 부축했다. 그때, 지금까지 기회를 노리고 있던 도윤이 재빨리 바지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패철을 꺼내서 손에 쥐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서라 씨. 콜택시 좀 불러주세요.”

그는 말을 하면서 손바닥으로 패철을 가린 채 고정혁의 등에 대고 눌렀다. 그가 정신을 집중시키자 패철에서 흘러나오던 붉은 빛이 순간적으로 강해지더니 이내 상대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고정혁이 정신을 잃고 축 늘어졌다. 바닥으로 쓰러지려는 그를 맞은편에 서 있던 권두철이 깜짝 놀라 받아드는 사이 패철은 다시 도윤의 주머니 속으로 사라졌다.

“어이쿠, 이 친구. 안 하던 과음을 하더니 이게 무슨 꼴이야.”

권두철이 민망함을 숨기지 못하며 친구를 탓했지만, 그때는 이미 권두철이 완전히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였다. 도윤은 아예 그를 등에 업어서 레스토랑 입구까지 데리고 간 뒤 대기하고 있던 택시에 태웠다. 권두철이 집에 데려다주겠다며 함께 택시를 타고 사라지자 그제야 도윤의 입에서 긴 한숨이 나왔다. 매번 겪는 일이지만 이 짓도 참 쉽지가 않네.

* * *

중국 북경의 한 고급 중식당. VIP들이 주변의 이목을 신경 쓰지 않고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밀실에서 두 명의 남자가 마주앉았다. 한 사람은 아리쓰 온라인의 회장인 왕이푸였고, 그의 맞은편에 앉은 인물은 한국의 국회의원 한대길이었다.

“이번엔 꽤 당황했습니다. 덕분에 못난 아들놈이 회사에 큰 손실을 입혔지요.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하셨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의아함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대길은 되도록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도 자신의 뜻을 분명히 전했다. 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따위 일을 벌인 거야? 왕이푸가 슬며시 웃음을 머금었다.

“사업가라는 게 원래 이익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입니다. 더 큰 이익이 생길 경우 기존의 작은 이익은 미련 없이 포기하는 법이지요. 약속을 어긴 건 미안하게 됐지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랬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그럴 만한 사정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왕이푸가 한대길의 눈을 지그시 쳐다봤다. 상대는 시종일관 점잖은 태도를 유지했지만 불만이 적지 않다는 뜻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한성 옥션과 아리쓰 온라인이 합작해서 베이징에 경매 회사를 세우기로 했죠? 그 건은 그대로 진행될 겁니다. 이번에 입은 손해가 대략 4000만 위안에 조금 못 미치는 걸로 압니다. 합작 회사가 세워지면 그 정도 손해는 금세 복구될 테니 너무 노여워하지 마세요.”

한대길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노여워하다니요? 다른 분도 아니고 왕 회장님께 제가 감히 불만을 품을 수야 있겠습니까? 다만 상황이 너무 갑자기 변해서 의외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제 아들놈의 말에 의하면 이도윤이라는 젊은 친구와 현장에서 가깝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셨다고 하더군요. 그 친구와 따로 계획하는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왕이푸의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이 친구, 그냥 입을 닫지는 못하겠다는 뜻이군. 잠시 말을 않고 침묵을 지키던 그가 마침내 소리 나게 혀를 차면서 입을 열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세상이 다 알게 될 일이니 한 의원님과의 친분을 생각해서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만 공식적인 발표가 나기 전까지는 오늘 들은 일에 대해 당분간 함구하셔야 합니다. 약속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지요. 제 의원직의 명예를 걸고 약속드리겠습니다.”

걸려면 그냥 의원직을 걸지. 당신 명예에 뭐 남은 게 있다고 그걸 걸어? 왕이푸는 속으로 실소를 삼키면서 말을 이었다.

“당나라 초기까지 활동했던 명필 왕희지를 아실 겁니다. 그 양반이 생전이 ‘난정서’라는 글을 남겼어요. 왕희지가 죽은 뒤 그 글이 절친했던 친구의 아들에게 전해졌는데, 그걸 당시 황제였던 당태종이 술수를 써서 가로챘습니다.”

“황제가 신하의 물건을 뺏었다는 말입니까?”

얘기가 어째 멀리 돌아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한대길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이도윤에 대해 물었더니 갑자기 왕희지는 뭐야? 표정을 통해 그의 내심을 눈치 챈 왕이푸가 고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말하자면 그런 셈이지요. 당 태종은 생전에 왕희지의 글씨를 대단히 아꼈다고 전해집니다. 자신이 죽을 때 난정서를 무덤에 함께 묻으라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니까요.”

“그럼 그 글씨가 지금도 당태종의 무덤에 묻혀 있다는 뜻입니까?”

왕이푸가 고개를 저었다.

“당나라가 망하고 송나라가 세워지기 전까지 중국은 5호16국 시대라는 대 혼란기에 접어들었어요. 각 지역의 패자들이 저마다 왕을 참칭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시대였지요. 그때 온도(溫韜)라는 군벌이자 희대의 도굴꾼이 등장합니다. 그 자는 당 태종뿐만이 아니라 여러 황제들의 능을 닥치는대로 파헤쳤어요.”

“그럼 난정서가 그 온도라는 자의 손에 들어간 겁니까?”

“온도는 자신이 파헤친 무덤에서 나온 부장품들에 대해 일일이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당태종의 무덤에서 나온 부장품 목록에 난정서가 기록되어 있지 않아요. 다른 것도 아니고 가장 귀한 보물 가운데 하나였을 난정서가 목록에 없다는 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난정서가 처음부터 태종의 무덤에 함께 묻히지 않았다는 뜻이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뒤로 학자들이 온갖 역사 서적들을 뒤져가며 난정서의 행방을 찾았지요. 가장 유력한 학설은 그게 그냥 황궁에 남았을 거라는 설입니다. 태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고종이 부왕의 유언을 어기고 난정서를 자기 곁에 두었을 거라는 거죠. 실제로 정사는 아니지만 야사에 고종과 측천무후가 난정서를 매우 아꼈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고종과 측천무후라면…, 난정서가 건릉에 있다는 뜻입니까? 두 사람의 합장묘에?”

“현재로서는 짐작일 뿐입니다. 실제로 측천무후가 죽은 뒤로는 어디에서도 난정서를 봤다는 기록이 없어요. 서안 지방에서는 측천무후가 죽을 때 난정서를 자신의 무덤에 함께 묻으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고종보다는 측천무후가 난정서를 무덤까지 가지고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한대길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마누라가 한국 최대의 경매 회사 사장이기는 하지만 그 자신은 국회의원이지 미술 전문가가 아니다. 그런 그조차도 실제로 건릉에서 왕희지의 난정서가 출토될 경우 얼마나 떠들썩한 사건이 될 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 일에 이도윤을 참가시키려는 겁니까? 아직 새파랗게 젊은 놈을?”

그 말에 왕이푸의 눈이 순간적으로 차가워졌다. 어지간한 한대길도 잠시 움찔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서늘한 눈빛이었다.

“한 의원님. 건릉 발굴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드린 건 이번 일에 대한 사과의 뜻이기도 하거니와 그만큼 제가 의원님을 믿는다는 마음을 표시한 겁니다. 노여워하시는 건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서로 의를 상하게 하는 데까지 나가지는 맙시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당나라 때는 이미 위조범들이 활발하게 활동했어요. 그건 황실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건릉에 묻힌 부장품들 중에 이미 당대에 만들어진 위작이 있을 거라는 말씀입니까?”

“프랑스와 영국이 자랑하는 루브르와 대영박물관에도 위작이 있습니다. 당나라 황제의 부장품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건 없지요 모든 건 철저하게 확인을 해야 합니다.”

경제가 활성화 될 경우 귀족들을 중심으로 문화가 꽃피는 건 어느 나라 어느 역사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돈이 흐르는 곳에는 늘 사기꾼들이 창궐한다. 한대길은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더 따지다가는 자칫 베이징에 세우기로 한 합작 회사 건마저 망가질 수도 있겠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것이다.

“상대의 이익을 보장하지 못하는 자는 큰 장사꾼이 될 수 없습니다. 이번에 끼친 손해는 제가 꼭 채워드리지요. 의원님이나 저나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더 많습니다. 자그마한 파도에 쉽게 흔들리지 말았으면 합니다. 저번 일은 다시 한 번 사과드리지요.”

왕이푸가 다시 한 번 못을 박았다. 한대길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술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고정혁은 이튿날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깨어났다. 안부를 묻는 척하고 그가 기절했던 시간을 확인한 도윤은 내심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몸에 전해진 능력이 강할수록 주인이 오래 정신을 잃게 된다. 기절 시간이 제법 길었던 것으로 볼 때 고정혁에게 전달된 지관의 능력이 꽤 쓸 만한 게 분명했다.

독일의 크리스틴 리히터와 약속한 날이 다가오고 있었으므로 도윤은 더 이상 고정혁과 관련된 일을 질질 끌 수 없었다. 그는 한국을 떠나기 전에 최서라 없이 고정혁과 권두철을 다시 한 번 만났다. 이번엔 진짜로 투자와 관련된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서였다.

“처음부터 지질 검사를 다시 한다는 조건으로 먼저 백억을 투자하겠습니다. 검사 결과 시추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 발견될 경우 오백 억을 추가하지요. 담보는 가지고 계신 미래 그룹 관련 주식입니다. 그 조건에 동의하시면 투자 계약을 체결하겠습니다.”

말 그대로 거액의 도박이 시작되었다. 만약 지질 검사 결과 육지에서는 적당한 곳이 발견되지 않을 경우 비에코는 사업을 접고 철수하기로 했다. 그러면 도윤은 투자금 대신 고정혁이 가지고 있는 청파 갤러리 주식을 받기로 했다. 만약 오백억을 더 투자해 시추까지 하고 나서 사업을 접을 경우에는 나머지 주식까지 모두 인수한다는 조건이었다.

“대신 경제성이 있는 유정이 발견될 경우 자네의 투자금은 모두 비에코의 주식으로 전환될 거야. 지분 비율은 전체 비에코 주식의 20퍼센트야.”

투자한 돈에 비하면 지분 비율이 다소 작다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석유가 쏟아져 나오기만 한다면 그 정도 지분만으로도 엄청난 투자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도윤으로서는 어떤 경우든 적어도 큰 손해는 보지 않을 수 있는 계약이었고, 반대로 고정혁은 모든 것을 걸고 일대 승부를 벌이는 셈이었다. 권두철은 끝까지 고정혁을 말렸지만 그가 결심을 굳힌 듯한 모습을 보이자 결국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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