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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107화 (107/300)

107화

일 년에 한 번씩 유물의 주인을 찾아 능력을 전해준다. 그것이 링커로서의 숙명을 타고난 도윤이 가진 권능이자 제약이었다. 그것이 권능인 이유는 그를 제외한 그 누구도 같은 일을 할 수 없는 특별한 능력이기 때문이고, 제약인 이유는 마지막으로 능력을 전해 준 뒤에 일 년이 지나기 전에 새로운 유물의 주인을 찾지 못하면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물론 주인을 가진 유물이 일 년에 꼭 한 개씩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해에 두세 개의 주인 있는 유물을 본 적이 몇 번 있었고, 어떤 해에는 그런 유물을 하나도 찾지 못한 경우도 존재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 있는 유물을 발견하면 무조건 그것을 손에 넣는 게 중요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이번처럼 반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연거푸 세 개씩이나 보게 되는 건 처음이잖아? 왠지 반가우면서도 찝찝하네.”

데스마스크란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얼굴의 본을 떠서 석고로 모양을 만들어낸 것을 말한다. 즉 시체의 얼굴을 석고를 이용해서 그대로 찍어냈다는 뜻이다. 살아 있을 때 만든 마스크는 라이프마스크라고 한다. 보통 뉴튼, 나폴레옹, 베토벤, 링컨 등 유명인이 사망했을 때 데스마스크를 만들고는 하는데, 당연히 얼굴의 주인이 생전에 소장하던 물건일 수가 없다.

베토벤의 데스마스크가 지닌 능력이 무엇인지는 그걸 주인에게 전해주기 전까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얼핏 음악에 관련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문제는 이게 정작 생전의 베토벤과는 전혀 무관한 물건이라는 점이었다. 데스마스크에 깃든 능력이 베토벤의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일단 리히터 회장이 고른 다섯 점의 응찰 불가 물건에는 속하지 않으니까 내가 살 수도 있다는 뜻이기는 한데…….”

관건은 가격이었다. 2011년에 나폴레옹의 데스마스크가 런던에서 경매에 붙여진 적이 있었다. 전 세계에 단 네 개밖에 존재하지 않는 그 물건은 본래 4~6만 파운드 정도에 낙찰될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런데 실제 경매에서는 뜻밖에도 치열한 응찰 경쟁이 계속되더니 결국 17만 파운드에 가까운 가격에 낙찰되었다.

“베토벤의 데스마스크가 아무리 비싸도 나폴레옹의 것보다 더 비싸지는 않을 거야.”

어느 정도 경쟁이 있을 것을 예상한다고 해도 대충 10만에서 15만 유로 사이에서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것만 해도 원화로 1억이 넘는 가격이니 결코 싸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도윤에게는 그 정도 가격의 물건을 큰 부담 없이 손에 넣을 수 있는 재력이 있었다.

“내년에는 주인이 있는 유물을 하나도 구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일단 가능하면 손에 넣는 게 낫겠지. 그런데 도대체 누가 저걸 찾아낸 거지?”

궁금증은 오래지 않아 풀렸다. 그가 베토벤의 데스마스크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누군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다가온 것이다.

“그 물건에 관심이 있으세요?”

돌아보니 오전에 산책하다가 만났던 함부르크의 미술상, 토니 폴스터였다.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신기해서요. 베토벤의 데스마스크는 전 세계에 세 개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누가 어디서 이걸 찾아냈는지 궁금하네요.”

“아, 그거라면 궁금해 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가져온 거니까요?”

도윤은 황당해서 저도 모르게 폴스터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루벤스의 오카시오도 모자라서 베토벤의 데스마스크까지 발견했다고? 이 사람 도대체 정체가 뭐야? 도윤의 표정을 본 폴스터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집에 가지고 있던 오래된 그림들을 모아서 파는 게 제 일이라고요. 베토벤의 데스마스크가 그림은 아니지만 장사를 하다보면 가끔 저런 물건들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어때요? 진짜인 것 같습니까?”

“글쎄요. 조각이나 소조는 제 전문 분야가 아니라서 그냥 보기만 해서는 잘 모르겠네요. 그런데 이건 시작가를 얼마로 책정하실 겁니까?”

당연한 얘기지만 오늘 저녁에 있을 경매에서는 도록이 제공되지 않는다. 아예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대된 손님들은 저택에 전시된 물건들을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진위를 판단하는 것은 물론 시세까지 짐작해야 했다. 각 의뢰품의 시작가 역시 경매가 시작된 뒤에 작품을 하나하나 소개하면서 공개할 예정이었다.

“그리 높지는 않을 겁니다. 나폴레옹의 데스마스크가 17만 파운드에 팔렸던 건 아시죠? 그때보다는 물가가 올랐으니까 일단 시작가는 5만 유로 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 낮게 부르면 죽은 베토벤에게 미안할 것 같아서요.”

폴스터의 말에 도윤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시작가가 5만 유로면 최소한 10만 유로 이상으로 낙찰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진작이라면 당연히 적당한 가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폴스터가 정말 자기가 발견한 물건을 진작이라고 확신하고 있을까?

겉으로 보기에는 마음씨 좋게 생긴 안경잡이 중년 아저씨. 하지만 그의 본질은 오카시오를 비롯한 몇 점의 진품을 내세워 대량의 위작을 팔아치우려고 하는 사기꾼이었다.

* * *

폴스터와 헤어진 도윤은 파티장을 천천히 배회하며 전시된 작품들을 다시 한 번 살폈다. 감정을 하면서도 이미 몇 번이나 속으로 아쉬움을 삼켰지만, 데스마스크를 제외하면 꼭 손에 넣고 싶은 작품들이 몇 점 눈에 띄지 않았다. 그가 내심 염두에 두었던 것들을 리히터 회장이 마치 속을 들여다보듯이 꼭 집어 응찰 불가 작품으로 점찍었기 때문이다.

다소 심드렁한 표정으로 파티장을 돌아다니던 도윤은 문득 오카시오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 오전, 그림이 도착했을 때 분명히 리히터 회장의 서재에서 작품을 감정하고 진작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그래서 당연히 어딘가에 전시되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눈에 띄지 않았다.

‘설마?’

도윤은 급히 크리스틴을 찾았다. 이미 파티가 시작된 마당에 리히터 회장에게 묻기는 곤란할 게 뻔하니 그녀에게라도 확인을 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크리스틴을 찾아 저택을 돌아다니던 도윤은 뜻밖의 사람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할리나 도비치였다. 트루쓰 앤 밸류에 지명 참가자로 출연했던 독일 감정가. 물건을 보면 바로 시세를 알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했던 바로 그 여자였다.

“이 박사님. 설마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그 동안 잘 지내셨죠?”

“아, 도비치 씨. 정말 오랜만이네요. 전 잘 지냈어요. 도비치 씨도 별 일 없으셨죠?”

할리나 도비치의 옆에는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다. 이마부터 정수리까지 머리가 시원하게 벗겨진 대머리 아저씨였다. 도윤은 대충 인사하고 얼른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할리나가 굳이 그를 붙잡고 남자에게 소개했다.

“두 분 인사하세요. 이쪽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팀의 구단주인 데니스 슈뢰더 회장님. 그리고 여기 있는 멋있는 젊은이는 이도윤 박사님이에요. 슈뢰더 회장님도 기억하시죠? 제가 출연했던 트루쓰 앤 밸류의 첫 시즌 우승자 말이에요.”

프랑크푸르트 구단주? 차범근 감독이 뛰었던 그 축구 팀 말이지? 도윤이 뜻밖의 만남에 놀라고 있는 사이, 슈뢰더 회장이 먼저 환한 웃음과 함께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데니스 슈뢰더라고 합니다. 역시 걸작이 있는 곳에 오니까 이 박사 같은 유명인도 만나게 되는군요. 영광입니다.”

마음이 급했던 도윤은 다소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마지못해 그의 손을 붙잡았다.

“이도윤입니다. 저야말로 명문 구단의 주인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눈치를 보니 할리나는 감정가로서 슈뢰더 회장을 돕기 위해 온 게 분명했다. 하긴 주변을 잠시 둘러보기만 해도 그녀나 도윤처럼 오로지 감정을 위해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물건을 파는 쪽에서 작품의 진위 여부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니 큰돈을 써야 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한 조치였다.

할리나는 도윤을 만난 김에 오늘 전시된 작품들에 대해 묻고 싶은 게 많은 모양이었다. 그가 저택 주변을 자꾸 힐끗거린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계속 붙잡고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던 그녀는 급기야 도윤의 의뢰인에 대해서까지 물었다.

“그런데 이 박사는 오늘 어떤 분을 위해 파티에 참석하신 거예요?”

오늘 이 자리에 구매자로 초대된 손님들은 모두 독일의 수집가나 부자들이었다. 동양인인데다 이제는 미술계에서 감정가로 꽤 이름이 알려진 도윤이 설마 구매자 자격으로 초대를 받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고 던진 질문이었다.

“이미 짐작하고 물으셨겠지만 저택의 주인인 리히터 회장님의 부탁을 받고 왔습니다. 죄송하지만 자세한 의뢰 내용은 말씀드리기가 어려워요. 여러분들도 오늘 경매에 대해서는 함구하기로 약속하고 파티에 참석하셨을 테니까 제 입장을 잘 아실 겁니다.”

그가 리히터의 의뢰를 받았다는 것은 이미 폴스터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다만 그 밖의 자세한 내용을 밝히는 건 곤란했다. 도윤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자 옆에 있던 슈뢰더 회장이 불쑥 입을 열었다.

“우린 모두 초대된 손님이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크게 구애받을 필요가 없을 겁니다. 리히터 회장으로부터 의뢰받은 일은 아직 진행 중입니까, 아니면 다 끝난 겁니까?”

“끝났습니다. 제 감정 의견은 모두 의뢰인에게 전달했으니까요.”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아까 오카시오의 감정을 끝내고 감정 보고서가 담긴 USB를 건넸을 때, 리히터 회장이 이제 임무가 다 끝났으니 마음껏 파티를 즐기라고 분명히 말했기 때문이다. 도윤의 말을 들은 슈뢰더 회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잘 됐군요. 그럼 맡은 일을 끝냈으니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건 어떻습니까?”

“오늘 출품된 작품들에 관한 감정 의견을 물으시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이 몇 개 있는데 다른 건 몰라도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확실한 의견을 듣고 싶어서요.”

도윤의 시선이 할리나에게로 향했다. 이미 그녀의 의견을 들었을 텐데 또 다시 자신에게 묻는 건 결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그냥 생긋 웃었다. 상관없으니 원하는 대로 하라는 뜻이었다. 도윤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 경매에 나올 작품들 중에는 리히터 회장님께 구입을 권한 것들이 여러 점 있습니다. 만약 슈뢰더 회장님이 같은 작품에 대한 견해를 물으실 경우 저는 아무것도 대답해드릴 수 없습니다. 적어도 경매가 끝나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도윤의 말에 슈뢰더 회장이 씩 웃으며 양복 안주머니에서 잘 접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도비치 씨의 도움을 받아서 구매하고 싶은 작품들 목록을 작성했습니다. 이 중에 가짜가 확실한 것들만 지적해 주십시오. 저한테는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죄송합니다. 도움을 드릴 수 없을 것 같네요.”

도윤이 사과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할리나가 슬며시 그의 옷소매를 잡았다.

“리히터 회장님이 어떤 작품에 눈독을 들이셨든 저 목록에 있는 것들과 겹치는 게 있으면 어차피 슈뢰더 회장님과 경쟁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목록에 있는 것들 중에서 진위가 의심되는 것들만 골라주세요. 그럼 회장님으로서는 무의미한 작품 때문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리히터 회장님에게도 폐가 되지 않을 거고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도윤은 잠시 망설이다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어서 결국 종이를 받아들었다. 종이를 펼치자 스무 점 가량의 작품 이름이 죽 적혀 있었다.

목록을 확인한 그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역시 그렇군. 슈뢰더 회장의 목록에는 오카시오가 없었다. 할리나 정도 되는 감정가가 그런 명작을 놓쳤을 리는 없으니 결국 처음부터 그 작품은 전시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크리스틴에게 물을 필요도 없었다. 리히터 회장은 경매를 거치지 않고 폴스터에게서 그 작품을 직접 구입하려는 게 분명했다.

‘하긴 이만한 파티를 열면서 그 정도 이익도 없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이겠지.’

아무도 모르게 입맛을 다신 도윤은 슈뢰더 회장을 보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원하신다면 제 의견을 말씀드리기는 하겠습니다. 하지만 본인 입으로 새로운 의뢰라고 하셨으니 저도 한 가지 대가를 요구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감정료를 원하시면 섭섭하지 않게 드리겠습니다.”

“돈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건 프랑크푸르트 구단에서 선수 한 명을 테스트 해주기를 바라는 겁니다. 가능하겠습니까?”

보통 프로 축구 구단의 신인 입단 테스는 6월이나 7월경에 실시한다. 그건 1부 리그부터 8부 리그까지 모두 마찬가지다. 다만 겨울에도 선수를 트레이드 하거나 트라이얼 테스트를 통해 일부 신인을 보강하기도 한다. 도윤은 그 트라이얼 테스트에 자신이 지목하는 선수 하나를 참여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슈뢰더 회장이 난색을 표시했다.

“내가 구단주이기는 하지만 선수의 선발과 훈련은 엄연히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들의 몫이요. 아무리 구단주라도 함부로 개입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렵다는 말씀이군요. 그럼 아쉽지만 할 수 없네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도윤이 미련 없이 인사를 하고 등을 돌리려고 하자 이번에는 슈뢰더 회장이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선수가 재능이 있습니까? 하긴 미술사 박사에게 이런 걸 묻는 제가 우습군요.”

“한국 선수입니다. 청소년 대표로 선발되어 각광을 받던 유망주였는데, 프로 데뷔 첫해에 백혈병에 걸리는 바람에 팀에서 방출되었지요. 다행히 지금은 완쾌되어 열심히 몸을 만들고 있습니다. 다만 선수의 실력은 구단에서 직접 테스트해서 확인하셔야 할 겁니다.”

“백혈병이라고요? 그런데 그게 완쾌되었다는 겁니까?”

“믿지 못하겠다면 메디컬 테스트를 통해 확인해 보시죠. 테스트 결과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될 경우 곧장 한국으로 돌려보내셔도 됩니다.”

슈뢰더 회장은 한참동안 고민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한국에서 청소년 대표까지 지냈다니 단지 테스트를 받게 해달라는 정도라면 차마 거절하기 어렵겠군요. 하지만 1부 리그는 안 됩니다. 2부 리그 팀 프런트에 연락을 해두죠. 다만 그 선수를 쓸 것인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감독과 코치들이 판단할 겁니다.”

“물론이죠. 선수가 크게 기뻐하겠네요.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윤이 생각하고 있는 선수는 당연히 구한샘이었다. 그동안 열심히 훈련한 끝에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몸에 근육이 완전히 올라왔고 스피드도 예전처럼 빨라진 상태였다. 다만 축구를 잘 알지 못하는 도윤으로서는 기술적인 수준에 대해서는 판단할 수가 없었는데, 석훈의 말에 따르면 당장 봄부터 경기를 뛰어도 문제가 없을 거라고 했다.

“2부 리그 프런트의 이메일 주소를 알려 드릴 테니까 테스트 받을 선수의 이름을 비롯한 신상 명세와 경력을 자세히 적은 이력서를 먼저 보내세요. 선수 시설 플레이했던 동영상이 있으면 판단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저도 미리 얘기해 놓겠습니다. 2부 리그 팀의 트라이얼 테스트는 1월 중순에 있으니까 준비를 하려면 조금 서둘러야 할 거예요.”

비록 구두이기는 하지만 약속이 성립되었다. 슈뢰더가 나중에 가서 딴소리를 할 수도 있었지만 명문 구단의 구단주쯤 되는 사람이 고작 2부 리그 선수 하나를 테스트하는 문제를 가지고 말을 바꾸지는 않을 것 같았다.

거래가 성립되었다고 판단한 도윤은 슈뢰더 회장이 건넨 종이에 적힌 목록들을 찬찬히 살펴본 뒤에 손가락으로 두 개를 짚었다.

“스무 개의 목록 가운데 진작이 아닌 것은 두 점입니다. 다만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이걸 꼭 구매 대상에서 제외하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위작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모작에 가까우니까요. 나름대로 미술사적 의미가 있기 때문에 투자해도 손해는 아닐 겁니다.”

도윤은 말을 하면서 할리나 도비치를 흘낏 쳐다봤다. 그녀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할리나는 작품의 진위가 아니라 현재 시세를 판단하는데 특화된 감정사였다. 다만 시세 변동까지 예측하는 건 어려웠는데, 목록에 있는 작품들 가운데 몇 개는 공식적으로 진작임이 인정되면 가격이 크게 오를 것들이었다.

도윤은 종이를 돌려주며 슈뢰더 박사에게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피카소의 춤추는 소녀와 샤갈의 꽃의 제전을 놓치지 마십시오. 오늘 경매에 나올 작품들 가운데 나중에 가장 값이 오를 게 바로 그 두 점입니다.”

투자 가치가 굉장히 큰 작품을 찍어주는 것만으로도 도윤으로서는 구한샘을 테스트 받게 해준 값을 치르는 셈이었다. 아울러 슈뢰더 회장이 적극적으로 응찰에 나서면 값이 오를 테니 오카시오를 빼돌린 리히터 회장에 대한 작은 복수도 되는 셈이었다.

슈뢰더 회장은 크게 기뻐하면서 파티가 끝나는 대로 2부 리그 프런트에 연락해서 트라이얼 테스트 일정을 이메일로 보내라고 지시하겠다고 약속했다. 눈치로 봐서는 기대보다 조금 더 강하게 프런트를 압박할 가능성도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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