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111화 (111/300)

111화

<주인 없는 역사>

‘슈치쿠(修竹)’는 길게 자란 대나무를 가리킨다. 그러나 강남 일대에서 그것은 최고급 일식집의 이름으로 더 유명했다. 저녁 식사 한 끼에 수십만 원을 아무렇지도 않게 쓸 자신이 없으면 마음 편하게 방을 차지하고 앉아 있기 어려운 곳. 그곳에 단정하게 양복을 빼입은 남자 셋이 마주앉았다. 다들 사십대에서 오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중년이었다.

“그러니까 한 의원님 말씀은 현소 화랑에서 불법 미술품을 거래한다는 거죠? 개중에는 국보급이나 보물급 문화재들도 포함되어 있고요. 사실입니까?”

앞에 놓인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무심한 어투로 말하는 사람은 강일환이었다. 서울중앙지검 제1차장. 그는 조명근이 일하는 툭수부의 제3차장과는 차기 검사장 자리를 놓고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한대길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설마 없는 말을 지어내겠습니까? 이미 그런지가 꽤 오래 됐을 거예요. 돌아가신 장인어른에게 들은 얘기입니다. 현소 화랑이 전국의 도굴꾼들로부터 닥치는 대로 문화재를 사들인다고 하더군요. 아마 그 회사 건물을 뒤지면 깜짝 놀랄 물건들이 쏟아져 나올 겁니다.”

돌아가신 장인어른이라는 말에 강일환의 얼굴이 심드렁하게 변했다.

“한 의원님 장인이 하신 말씀이라면 이미 오래 전 일이 아닙니까? 공소 시효가 지나도 한참 지났을 겁니다. 불법적인 거래가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남아 있는 게 아니면 방금 하신 말씀만 가지고는 수사에 착수하기도 어려워요.”

“콩 심은 데 콩 난다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입니다. 아버지가 하던 일을 아들이 이어받는 경우는 흔하지요. 실제로 지금의 현소 화랑도 이세준 대표가 자기 선친이 하던 일을 이어받은 게 아닙니까? 조만간 새로운 거래가 있을 거라는 얘기를 들었으니까 강 차장께서는 준비만 해주세요. 시기는 제가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강일환이 앞에 놓인 술잔을 단숨에 비우더니 한대길을 보며 씩 웃었다.

“국회의원께서 어떻게 그런 정보까지 얻으셨습니까? 나랏일을 하느라고 바쁘실 텐데 생각보다 남의 화랑 일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그쪽하고 뭐 불편한 일이라도 있으셨어요?”

한대길이 마주 웃음을 지어보이며 그의 잔에 새로 술을 따랐다.

“제가 새삼스레 일개 화랑하고 무슨 불편한 일이 있겠습니까? 그저 마누라가 미술품을 거래하는 일에 종사하다보니 이런저런 불미스러운 소식도 접하게 뙤는 거지요. 미술계가 깨끗해져야 제 아내도 마음 편히 일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차장님 말마따나 나랏일 하느라 바쁜 못난 남편의 조그만 외조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외조 좋아하네. 당신이 건드렸다가 문제가 될까 봐 내쫓은 여자 보좌관만 해도 몇 명인데. 그렇게 외조하고 싶으면 아랫도리 간수부터 잘할 것이지. 하지만 강일환은 속마음을 숨긴 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어쨌든 문화재를 불법 거래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요. 하지만 이미 말씀 드렸듯이 방금 주신 정보만 가지고는 수사에 착수하기도 어렵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이고 확실한 정보가 생기면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세요. 그럼 저도 문화재도 구하고 애국도 하는 일에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저도 남의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알아보겠습니다. 어차피 그런 게 다 나랏일에 속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차장님도 그런 기회를 이용해 자꾸 실적을 챙겨서 차기 검사장까지 올라가셔야지요.”

그 말에 강일환이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검사장 승진이 어디 쉽습니까? 그런 건 한두 개 더 건진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어요. 다른 사람들이라고 해서 책상 위에 발 올리고 낮잠만 자는 것도 아니고.”

한대길이 목소리를 슬쩍 낮췄다.

“그 문제 때문에라도 이번 일을 확실히 파헤칠 필요가 있습니다. 특수부에 조명근 검사라고 있지 않습니까? 3차장이 총애한다는 젊은 친구 말입니다. 그 친구 아버지가 이세준 대표하고 막역한 사이라고 하더군요. 고서적 감정에 관한 일로 요즘도 현소 화랑과 가끔씩 함께 일을 하는 모양입니다. 어쩌면 그 양반도 불법적인 거래에 연루되었을지도 몰라요.”

강일환이 등받이에 기대고 있는 몸을 바로 했다.

“조 검사 아버지라면 조태석 교수 말입니까?”

“역시 아시는군요. 바로 그 양반입니다. 원래부터 이세준 대표와는 집안끼리 가까운 사이지요. 게다가 3차장도 조명근 검사를 통해 현소 화랑 측에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이세준 대표 아들인 이도윤이라는 친구가 그 일을 맡아서 처리를 해준 모양입니다.”

강일환의 얼굴색이 눈에 띄게 변했다. 그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똑똑 치며 물었다.

“그러니까 현소 화랑을 치면 3차장 검사를 물 먹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아무래도 땅 밑으로 엮여있는 뿌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한 번 잘 파헤쳐보시죠.”

한대길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맺혔다. 그때, 지금까지 옆에서 묵묵히 얘기를 듣고만 있던 또 다른 중년 사내가 입을 열었다. 동명 일보의 편집국장인 조상욱이었다. 정치부 기자 출신인 그는 오래전부터 한대길은 물론이고 강일환과도 인연을 맺어왔다.

“이거 무슨 영화에 나오는 음모의 현장을 지켜보는 느낌입니다.”

그 말에 한대길이 얼른 웃음을 지으며 그의 잔에도 다시 술을 따랐다.

“조 국장, 무슨 그런 흉측한 소리를 하십니까? 음모라니요? 여태까지 우리가 하는 일 못 들으셨소? 이게 다 나랏일을 잘 하자는 우국충정에서 하는 소리입니다. 강차장이나 나나 다 나라에서 녹을 먹고 있는 공무원 아닙니까?”

조상욱이 피식 웃으며 새로 따른 술을 반쯤 마시고는 내려놓았다.

“그러니까 오늘 이 자리에 저까지 부르신 이유가 뭡니까? 여기 계신 강 차장이 뭔가를 밝혀내면 우리더러 그걸 기사화시켜달라는 말씀이지요?”

그의 말에 한대길이 바로 그거라며 손뼉을 짝 하고 쳤다.

“그렇죠. 바로 그겁니다. 검찰은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고, 언론은 또 그걸 적극적으로 국민들에게 알리는 세상이 바로 정의로운 세상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야 저 같은 국회의원도 더욱 더 신이 나서 열심히 의정활동을 할 수 있고요. 암, 그럼요.”

당신은 그냥 의정활동을 게으르게 하는 게 국익에 훨씬 도움이 될 텐데. 조상욱은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정의로운 세상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요즘 언론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 점점 심해지고 있어요. 최근에 국회에 계류 중인 그 언론개혁법 말입니다. 말로는 건강한 언론을 만들기 위한 법이라고 하지만 그게 또 사실은 언론에 대한 통제를 노리고 있다는 건 한의원님도 잘 아실 거예요. 그런 말도 안 되는 법이 통과되지 않도록 국회에서 힘을 좀 써주십시오.”

“그야 이를 말이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우리 강차장님이 앞으로 하실 일에 많은 협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검찰에서 좋은 일을 하면 언론에서 자꾸 칭찬도 해주고 그래야 일선 검사들이 더욱 힘을 내서 열심히 일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건배!”

세 사람의 술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방안에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상대방이 사회 정의 따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정의는 곧 내 주머니 속의 돈이고, 내 손 안의 권력이었다. 그밖의 다른 모든 것은 전부 불의였다. 그것이 좋은 머리와 쟁쟁한 집안을 배경으로 이 자리까지 오면서 그들이 깨달은 세상의 진실이었다.

* * *

도윤이 도착한 다음날, 뉴욕에 폭설이 내렸다. 뉴스에 따르면 사상 유래 없을 정도로 지독한 폭설이었다. 그 바람에 이틀 동안 뉴욕 일대를 지나가는 대부분의 항공 노선이 취소되었고, 그것은 도윤에게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일주일이면 여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러다가는 콜롬비아는 가보지도 못하고 곧장 이스탄불로 떠나야 할지도 모르겠네.”

도윤이 오윤수를 위해 얻어 준 뉴욕의 한 아파트. 그가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은 오윤수는 오히려 여유 있는 미소를 지었다.

“잘 됐네요. 강제로 휴가를 받았다고 생각하세요. 형은 미술관 구경하는 거 좋아하잖아요. 눈이 아무리 많이 쌓였어도 미술관들은 대부분 문을 열었으니까 시내 구경도 할 겸 미술관 구경이나 다녀오세요. 이럴 때 좋잖아요? 핑계 거리도 있고.”

그 말에 도윤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이 녀석 못 보는 사이에 참 너그러워졌네?

“넌 참 속이 편해서 좋겠다. 뉴욕 물이 좋기는 좋은가 보다. 지지리 궁상 오윤수가 천재지변을 다 즐길 수 있게 되고.”

“무슨 말씀이세요? 이게 다 타고난 천성이라고요. 이 정도의 정신적인 여유도 없었으면 서울에서 살 때 이미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렸을지도 몰라요.”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그게 사실은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도윤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오윤수가 도윤을 처음 만났을 당시는 말 그대로 극한까지 몰려있는 상황이었다. 아마도 그림에 대한 열정이 그의 삶을 지탱해주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말마따나 진즉에 붓 한 자루 입에 물고 한강에 뛰어들었을지도 모른다.

“내 걱정 말고 네 걱정이나 하자. 작업은 잘 진행되고 있는 거야?”

도윤의 말에 오윤수가 자신 있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늦어도 3월까지 적어도 다섯 점은 보내드릴 테니까.”

도윤이 굳이 뉴욕까지 오윤수를 찾아온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현소 화랑의 봄맞이 정기 전시회 때문이었다. 올해에도 예년처럼 이름 있는 기성 작가들로부터 작품을 받아서 합동 전시회를 열 생각이었는데, 거기에 오윤수의 작품도 몇 점 포함시키기로 한 것이다.

매년 열리는 현소 화랑의 봄맞이 정기 전시회는 언제나 화단의 주목을 받고는 했다. 기라성 같은 화가들의 최신 작업 결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전시회였기 때문이다. 그런 기획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크다고 할 수 없는 현소 화랑이 아직까지 미술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봄맞이 정기전은 이세준과 서연희가 한 해씩 번갈아가며 서양화와 동양화로 주제를 바꿔서 전시를 총괄했다. 올해는 서연희 차례였다. 도윤은 오윤수를 만나 그의 작품을 전시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최근의 작업 결과들도 확인할 겸 일부러 온 것이다.

“근데 정말 제 그림을 거기에 걸어도 되겠어요? 솔직히 저는 개인전 한 번 한 것 말고는 아직 별다른 성과도 없잖아요. 너무 과분한 자리인 거 같아요.”

오윤수의 걱정 어린 말에 도윤이 피식 웃었다.

“되도 않는 겸손을 떨 시간이 있으면 네 그림이나 열심히 그려. 그림을 걸어도 될지 안 될지는 나하고 우리 엄마가 알아서 판단할 테니까. 수준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사정해도 네 그림이 전시장에 걸리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야.

“화가는 다 자기 그림에 자부심이 있어요. 그것마저 없으면 계속 붓을 잡기 어려우니까요. 문제는 제 만족이 다른 사람의 만족이 될 수 있느냐는 거지요.”

“그러니까 너는 네가 만족하는 그림만 그리면 된다니까? 다른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을 지까지 신경 써서 뭐하려고? 남들은 좋다고 하는데 네 맘에는 안 드는 게 더 괴로운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도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한 오윤수의 그림은 전에 비해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아직 젊어서 그런지 뉴욕으로 온 지 아직 일 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다양한 시도를 새롭게 시작한 게 분명했다.

‘실패해도 상관없어. 그것마저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시기니까.’

오윤수는 최소 다섯 점을 보내겠다고 얘기했지만 도윤이 찾아간 그의 화실에는 이미 빛을 발하고 있는 작품이 일곱 점이나 되었다. 그것만 모아서 서울로 보내도 최소한 뉴욕에서 엉뚱한 짓을 하고 있었다는 소리를 들을 걱정은 없을 것이다. 녀석은 발전하고 있었다.

* * *

도윤이 뉴욕에 도착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저녁, 다행히 뉴욕 공항이 다시 정상적인 업무를 재개했다. 덕분에 그는 이코노미석 하나를 간신히 얻어서 콜롬비아로 향할 수 있었다.

보고타의 엘도라도 공항에 내린 그는 제일 먼저 자동차를 한 대 렌트했다. 사륜 구동에 연료통 용량도 넉넉한 SUV였다. 마르케스의 지도에 표시된 비밀 동굴의 위치는 에스코바르의 고향인 메데인에서 멀지 않았는데, 그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교통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무려 이틀을 낭비했기 때문에 도윤의 마음은 급했다. 그는 원래 보고타에서 하루를 묵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계획을 바꿔 보고타 공항에서 차를 빌리자마자 곧바로 메데인을 향해 출발했다. 그가 무려 10시간이 넘게 걸려 메데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완전히 어두워진 뒤였다. 그는 허름한 호텔 하나를 빌려 일단 주린 배부터 채웠다.

“운동을 좀 해야겠네. 이 정도 가지고 벌써 온몸이 쑤시는 걸 보면 확실히 운동부족이야.”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샤워와 식사를 마친 그는 곧바로 다시 차를 몰고 지도에 표시된 곳으로 향했다. 도로 사정이 워낙 안 좋아서 사륜 구동의 SUV를 빌렸음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가파른 경사를 올라갈 때는 바퀴가 미끄러져 헛돌기도 했다.

그가 천신만고 끝에 지도에 표시된 지역에 가까워졌을 때는 이미 점심시간이 다되어 가고 있었다. 거리만 놓고 따지면 오전 내내 굼벵이가 기어가듯 산길을 이동한 셈이었다.

“그나마 비포장이라도 도로가 있는 게 어디냐?”

콜롬비아의 경제 사정은 여전히 안 좋았고, 그런 현실은 도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나마 동굴이 있는 자리가 원래 에스코바르의 부하들이 건물을 짓고 기거하던 곳이었고, 지금은 군부대가 들어가 있는 상태라 꾸준히 도로 관리가 되었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러지 않았으면 이미 도로는 풀과 나무로 뒤덮여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근데, 아까부터 저 트럭들은 다 뭐지?”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도윤이 비탈길을 거슬러 차를 몰고 올라가는 동안, 이따금씩 대형 군용 트럭들이 여러 대씩 꼬리를 물고 그를 지나쳐 산 아래로 내려갔다는 점이었다. 그 때문에 도윤은 여러 번이나 도로 옆의 풀숲에 차를 처박아놓고 트럭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했다. 소총까지 들고 있는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경적을 울려대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어디 가시는 겁니까?”

마침 세 번째 트럭 행렬이 다가오다가 진창에 빠진 바퀴를 빼내기 위해 잠시 멈춰 섰다. 도윤은 창문을 내리고 그들에게 소리쳐 물었다. 그러자 차를 빼내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다른 군인들과는 달리 짐칸에 탄 채로 노래를 흥얼거리던 군인이 그를 쳐다봤다.

“우린 메데인으로 철수하는 거요. 그러는 당신은 여기 무슨 일이요?”

“지질 탐사하러 왔습니다. 이 근처에 광물이 묻혀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요.”

즉흥적으로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얼마 전에 비에코에 투자를 해서 그런지 엉겁결에 지하자원 탐사 얘기가 나온 것이다. 그 말에 얼굴이 까무잡잡한 군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광물? 그런 얘기는 못 들었는데? 뭐가 묻혀 있다고 합디까?”

“석탄이요. 이 부근에 제철소에서 쓸 만한 석탄이 묻혀 있다고 들었소.”

“석탄? 여기서 이 년이나 있었지만 부근에서 석탄 비슷한 건 한 번도 본적이 없는데?”

“묻혀 있으니까 지하자원이지 겉에서 보이면 그냥 석탄 창고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확신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에요. 그냥 조사하러 나온 거지. 그나저나 철수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소. 이 위에 군부대가 있었는데 지금 한창 철수 중이요. 별로 지킬 것도 없는 자리에 오래도 눌러앉아 있었지. 다행히 상부에서 부대 변경 통보가 내려와서 우리도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곳을 떠나게 됐소. 부대 전체가 이사하는 중이요.”

“저런! 고생하셨겠습니다. 그럼 이제 사람들 많은 곳에 가서 편하게 지내는 겁니까?”

“군인 생활이 다 똑같지 어딜 간들 편하기야 하겠소. 아무튼 솔직히 말하면 저 위에 석탄이 없기를 바랍니다. 안 그러면 당신도 이 지겨운 곳에서 썩어야 할 테니까.”

군인은 자기 딴에는 재미있는 농담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깔깔대고 웃었다. 잠시 후, 바퀴를 빼낸 트럭이 그를 지나쳐 산 아내로 내려갔다. 그들을 떠나보낸 도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 군부대가 철수한다고? 그럼 진짜로 올라가서 지하자원 탐사를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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