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3만 2천 나왔습니다. 3만 4천 없습니까? 3만 4천 부르실 손님을 기다립니다.”
알라딘의 마술 램프, 아니 페르시아 제국 시대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되는 황금 램프의 시작가는 2만 유로였다. 얼핏 보기에는 순금과 은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굉장히 비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황동이 많이 섞인 공예품이었다. 당시의 제련 기술을 감안할 때 금과 은의 순도 또한 그리 높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렇더라도 장식이 섬세하면서도 화려했고, 역사적 가치를 지닌 예술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2만 유로라는 시작가는 지나치게 낮은 게 분명했다. 더구나 첫 물품이라서 그런지 사람들도 눈치를 보느라 호가를 마구 높이지 않고 있었다. 만약 경매 장소가 소더비나 크리스티였다면 훨씬 더 높은 시작가로 출발했을 것이다.
“지금이야.”
경매사가 3만 4천을 두 번째 외쳤을 때, 도윤이 작은 목소리로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최서라가 얼른 팻말을 들어올렸다.
“네. 3만 4천 나왔습니다. 아름다운 아가씨께서 드디어 용기를 내셨군요. 그럼 이제 3만 6천 갑니다. 3만 6천 없으십니까?”
누군가가 팻말을 한 더 들었고, 최서라는 뒤질세라 4만 유로까지 가격을 올렸다. 도윤은 이 정도에서 무난하게 램프를 낙찰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예상을 깨고 갑자기 다른 쪽에서 새로운 팻말이 올라갔다. 누군가 싶어 고개를 돌리던 그는 흠칫했다. 거기에는 이 자리에서 볼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이 앉아 있었던 것이다.
“압둘! 저 자가 언제 나타났지? 분명히 들어올 때는 없었는데…….”
황당하게도 이브라힘 왕세제의 비서인 압둘이 그를 쳐다보며 싱긋 웃고 있었다.
도윤은 최근 들어 낯선 장소에 갈 때마다 습관적으로 주변을 살피고는 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몇 차례에 걸쳐 험한 경험을 한 덕분에 붙은 버릇이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초대된 손님들 가운데 중동에서 온 듯한 사람들이 몇 명 눈에 띄기는 했지만, 경매장에 들어설 때만 해도 분명히 압둘의 얼굴을 본 기억은 없었다.
도윤이 편치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는지 압둘이 그를 향해 몸을 슬쩍 틀면서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댔다. 상대방에게 친밀감을 표시하는 이슬람식 인사법이었는데, 그것을 본 도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왜 쓸데없이 친한 척을 하는 거지? 우린 그럴 사이가 아니잖아?’
주로 미술계에 한정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트루쓰 앤 밸류에서 우승한 이후로 낯선 이들이 도윤을 알아보는 경우는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압둘이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이유가 단지 TV 프로그램에서 봤기 때문은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피의 사원에서 라스푸친의 목걸이를 손에 넣었을 때, 도윤을 납치해서 그걸 빼앗은 놈들은 다니엘 로스차일드 일당이었다. 나중에 나일라 아트 갤러리에서 일하는 폴리니의 전화를 받고 목걸이가 다시 이브라힘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 과정에서 도윤과 이브라힘 왕세제가 직접 접촉한 적은 없었다.
‘다니엘이 나한테서 목걸이를 뺏었다는 사실을 말했을까? 굳이 그런 말을 할 이유가 없잖아? 이브라힘 왕세제 일당이 다니엘을 붙잡아서 고문을 한 것도 아니었던 것 같고.’
오토 셰퍼로부터 가짜 파라켈소스의 검을 사들였다가 다니엘에게 빼앗긴 장본인은 이브라힘 왕세제였다. 그러나 그때 역시 도윤은 이브라힘이나 그 부하들과 직접 부딪치지 않았다. 짐작이 맞는다면, 양쪽 모두 파라켈소스의 검을 위조한 사람이 도윤이라는 걸 몰라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왜 이브라힘의 오른팔인 압둘이 자신에게 아는 척을 한단 말인가?
도윤이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에도 램프의 가격은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최서라는 예상보다 호가가 높아지자 은근히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입술을 꼭 깨물며 투지를 불태우는 그녀의 손을 도윤이 슬쩍 잡았다.
“5만 유로까지만 따라가. 그 이상 올라가면 포기하고.”
그녀가 분기에 찬 눈빛으로 압둘이 있는 쪽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뾰족하게 만들었다.
“저 사람 아무래도 일부러 저러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저 램프를 꼭 가지고 싶어요. 분명히 굉장한 가치를 지닌 물건이란 말이에요. 지금 놓치면 다시 구하기 어려울 거예요.”
“그래도 5만 유로까지가 한계야. 내가 보기에는 서라 씨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하고는 상관없이 저쪽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아. 치킨 게임이 될 가능성이 커.”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 그녀와는 달리 여유 있게 팻말을 들어 올리는 압둘의 얼굴에는 미소까지 맺혀 있었다.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이었다. 물론 최서라 역시 일이십만 유로에 부들부들 떨 형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대가 끝까지 따라오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이상, 잘못하면 낙찰을 받는 것 자체가 오히려 당하는 꼴이 될 공산이 컸다.
“네. 첫 번째 물품인 황금 램프는 5만 유로에 낙찰됐습니다. 축하합니다.”
결국 최서라는 도윤의 충고를 받아들여 5만 유로에서 램프를 포기했다. 화가 나서 숨소리가 높아진 그녀를 달래면서도 도윤은 고개를 갸웃했다. 압둘 저 친구, 도대체 목적이 뭐지?
다니엘 로스차일드가 습격당했던 사건은 뉴스에서 크게 보도가 됐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테러범은 물론이고 피해자의 신분조차 알려진 게 없었다. 물론 테러범의 행방 역시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도윤도 런던 테러에 관한 뉴스를 보았지만 그것이 설마 다니엘이나 이브라힘 왕세제가 직접적으로 연루된 사건일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명색이 중동의 패자를 자처하는 큰 나라였고, 이브라힘은 그런 나라에서 차기 국왕으로 지목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만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 설마 부하들을 시켜 남의 나라 한복판에서 테러를 자행했을 거라고 상상하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무리였다.
‘설마 나를 방해하려고 오늘 경매에 참석한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우연을 가장한 오늘의 만남은 상당히 심각한 일로 발전할 가능성이 컸다.
다행히 램프 이후에 등장한 유물들에 대해서는 압둘도 공연히 호가를 올리면서 그들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비록 첫 유물을 놓치기는 했지만 최서라는 그날 하루 동안 세 점의 금속 공예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도윤의 조언이 있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모두가 그녀 자신의 안목을 바탕으로 해서 고른 물건들이었다.
다소 껄끄럽게 시작됐던 첫날 경매가 무사히 끝난 뒤, 묵고 있는 호텔로 돌아가려는 두 사람 앞에 압둘이 나타났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에게 명함을 건넸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이브라힘 왕세제를 모시고 있는 비서실장 압둘 바시뜨 알 하쉬르라고 합니다. 램프가 워낙 마음에 드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숙녀의 즐거움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사과의 뜻으로 차를 한 잔 대접하고 싶군요.”
도윤은 압둘이 자신에게 뭔가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러나 그가 뭐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최서라가 먼저 사양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한국의 청파 갤러리에서 일하는 최서라라고 해요. 이 분은 이도윤 박사이시고요. 덕분에 마음에 드는 물건을 놓치기는 했지만 굳이 사과까지 하실 일은 아니에요. 경매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니까요. 차는 다음 기회에 마시겠습니다.”
그녀의 뜻이 정 그렇다면. 도윤은 압둘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몸을 돌리려고 했다. 그런데 돌아서는 그의 등 뒤에 대고 압둘이 새로운 제안을 했다.
“램프 때문에 마음이 상하셨다면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혹시 그러면 사과가 될까요?”
최서라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도윤을 쳐다봤다. 램프가 탐이 나기는 하지만 굳이 남의 물건을 공짜로 얻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저 사람 뭔가 속셈이 있어서 일부러 우리 일을 방해하고 나섰던 게 아닐까요?”
한국말이었다. 그녀 역시 순간적으로 상대의 접근이 의도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도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윙크를 한 뒤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로 몸을 돌렸다.
“그렇게까지 성의를 보여주시니 차마 초대를 거절하지 못하겠군요. 대신 램프 대금은 지불하겠습니다. 그만한 선물을 그냥 받는 건 조금 더 친해진 다음에 생각해 보지요.”
램프를 넘겨주겠다는 제안은 고맙지만 그걸 선물로 받을지의 여부는 당신 얘기를 들어본 뒤에 결정하겠다는 말이었다. 압둘의 얼굴에도 의미심장한 미소가 맺혔다.
* * *
세 사람은 호텔 꼭대기에 위치한 레스토랑의 창가 자리를 얻어 서로 마주앉았다. 탁 트인 곳이어서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적당치 않은 곳이었지만, 압둘이 미리 손을 썼는지 그들 주변의 테이블에는 다른 손님들이 앉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소 특이한 방법으로 부와 권력을 과시한 압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인사를 나누고 레스토랑까지 올라오는 내내 그의 시선은 줄곧 도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이도윤 박사를 직접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지만 왠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군요. 제가 모시는 이브라힘 왕세제께서도 이 박사를 나일라 아트 갤러리로 모시고 싶어 하셨습니다. 트루쓰 앤 밸류가 끝난 뒤에 우리 직원들이 호텔로 찾아갔던 걸 기억하시죠? 그때 끝내 거절하시는 바람에 제 입장이 잠시 난처했었습니다. 하하하.”
도윤은 애매하게 웃었다. 당시만 해도 이브라힘 왕세제와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얽히는 관계가 될 줄은 몰랐다. 물론 알았다면 더 강하게 거절했겠지만.
“그때도 말씀드렸다시피 집안에서 운영하는 화랑이 있습니다. 좋은 제안을 주신 건 감사했지만 가업을 물려받아야 하는 형편이라서 초대에 응하지 못했습니다.”
“스카우트하러 갔던 직원들도 그렇게 말하더군요. 그래도 저로서는 무척 아쉬웠습니다. 이 박사에게 꼭 감정을 부탁하고 싶은 일이 몇 가지 있었거든요.”
“저와 함께 결승전까지 진출했던 폴리니 씨가 나일라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분도 상당히 좋은 감정가이니 굳이 저까지 필요하지는 않을 겁니다.”
“폴리니 씨가 좋은 감정가라는 말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밤하늘에 빛나는 별의 밝기가 모두 같은 건 아니지요. 이브라힘 왕세제께서는 조만간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실 분입니다. 그래서 자기 밑의 사람들도 늘 최고이기를 원하시지요.”
“귀한 분께 실망을 끼쳐드린 셈이 되었군요. 대신 사과의 말을 전해 주십시오.”
과도한 겸손과 칭찬으로 뒤범벅된 알맹이 없는 얘기들이 허공에 부유했다. 듣고 있던 최서라가 둘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긴장감을 느끼고 그만 일어서자는 얘기를 하려는 찰나, 갑자기 압둘이 품속에서 납작한 상자 하나를 하나 꺼냈다. 그가 테이블 위에 상자를 올려놓고 덮개를 열자 안에서 목걸이가 나왔다. 라스푸친의 목걸이였다.
이 목걸이가 정말로 이브라힘 왕세제의 손에 들어갔구나. 저절로 침이 꿀꺽 넘어갔지만 도윤은 자신이 긴장했다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무심한 눈빛으로 목걸이를 쳐다보자 압둘이 도윤의 앞으로 물건을 슬쩍 밀었다.
“갑자기 이러는 게 결례인 줄은 알지만 귀한 분을 어렵게 만났으니 저로서는 기회를 놓치기가 참으로 아쉽습니다. 죄송하지만 이 목걸이에 대한 감정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리히터 회장님이 자기 대신 이 박사께서 경매에 참석하신다는 말씀을 하시기에 혹시나 해서 여기까지 들고 나왔습니다. 부디 오늘의 자리를 의미 있게 만들어주십시오.”
리히터 회장이? 하, 이 사람 보게? 결국 리히터 회장이 초대장을 준 건 오카시오를 비롯한 몇 가지 미술품을 감정해 준 보너스가 아니었다는 뜻이었다. 그는 자신을 이곳으로 보내 압둘이나 이브라힘 왕세제를 만나게 하려고 수작을 부린 것이다.
“리히터 회장님이 이브라힘 왕세제 전하와 친분이 두터운 줄은 미처 몰랐군요.”
도윤의 목소리에 흐르는 냉기를 압둘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태연했다.
“친분이 두텁다기보다는 서로 유용한 정보를 주고받는 사이라고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이 박사님처럼 뛰어난 감정가에 대한 소식은 수집가들에게 늘 인기가 있는 정보지요.”
도윤은 더 이상 따지지 않고 라스푸친의 목걸이를 자기 앞으로 끌어왔다. 아마 압둘이 램프를 놓고 최서라와 신경전을 벌였던 것도 도윤으로 하여금 자신을 의식하게 만들기 위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상대가 자신에게 목걸이를 감정시키려고 처음부터 일을 꾸몄는데 이제 와서 못하겠다고 뻗대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그리고 사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도윤은 일부러 목걸이에 코를 바짝 들이대며 꼼꼼하게 살피는 흉내를 냈다. 물론 자신이 피의 사원에서 직접 꺼낸 것이니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한참 동안 목걸이를 살핀 그는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죄송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평범한 은 세공품 같군요. 아마 민간에서 유통되던 물건인 것 같은데, 솔직히 어느 지역의 것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아시는 게 있으면 정보를 좀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때 옆에서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목걸이를 넘겨보던 최서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인도 무굴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목걸이 같은데요? 비슷한 걸 사진에서 본 적이 있어요. 제 기억이 맞는다면 아마 17~18세기 무렵의 물건일 거예요.”
도윤과 압둘이 둘 다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압둘이 얼른 물었다.
“이 목걸이가 인도에서 나온 거란 말씀입니까?”
“디자인만 보면 그렇다는 얘기에요. 아마 이 박사님 말씀대로 왕족이나 귀족들이 사용하던 목걸이는 아닐 거예요. 그 사람들의 장신구에는 보석이나 에나멜이 많이 사용되었거든요. 그렇다고 서민이나 하층민들이 은 목걸이를 하고 다녔을 리는 없고, 아마 상인이나 중간 관리 계급들을 위한 장신구로 만들어졌었을 거예요. 남자용으로요.”
그녀의 입에서 도윤도 미처 몰랐던 사실들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압둘과 도윤이 동시에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시키자 최서라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정확한 건 아니에요. 런던에서 공부할 때 각 나라의 금속 공예품에 대해 조금 공부를 했었거든요. 적어도 유럽이나 동아시아에서 만들어진 건 확실히 아닐 거예요.”
“그것만 해도 대단한 안목입니다. 덕분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군요. 감사합니다.”
압둘이 새삼 최서라에게 감탄을 표시하더니 목소리를 살짝 낮췄다.
“그런데 유럽에서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이 듭니다. 사실 이 목걸이는 니콜라이 2세 시대에 괴승이라고 불렸던 라스푸친의 유품이거든요.”
목걸이가 라스푸친의 유품이라는 압둘의 말에 이번에는 최서라가 크게 놀랐다.
“어머. 말로만 듣던 괴승에게 유품이 남아 있을 줄은 몰랐네요. 하지만 그렇게 말씀하셔도 이 목걸이가 러시아에서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제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어쩌면 라스푸친의 젊었을 때 인도를 여행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사실 라스푸친의 젊은 시절 행적에 대해서는 남아 있는 기록이 없습니다. 말씀하신 추측이 사실이라면 덕분에 새로운 추론이 가능해질 수도 있겠군요.”
압둘이 최서라의 말에 동의를 표시할 때 도윤이 슬쩍 끼어들었다.
“아니면 이 목걸이가 사실은 라스푸친과는 무관한 물건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이게 라스푸친의 유품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습니까? 보기에는 너무 평범해서요.”
“이 목걸이는 이브라힘 왕세제께서 러시아를 여행하다 우연히 얻게 된 수집품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때 라스푸친의 유품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지요. 자세한 얘기는 지금 말씀드릴 수 없는 걸 양해해 주십시오. 하지만 분명히 신뢰할 만한 사실입니다.”
그는 간단히 양해를 구하더니 갑자기 직격탄을 날렸다.
“그런데 두 분 모두 혹시 이 목걸이에서 무언가 신비한 느낌을 받지는 않으셨습니까? 가령 이상한 빛이 새어나오는 걸 봤다든가 하는 것 말입니다.”
“빛이요? 글쎄요? 은이라서 금속광택이 나는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최서라는 별다른 생각 없이 고개를 저었지만 도윤은 그럴 수 없었다. 압둘의 말을 듣는 순간 그의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이 작자도 링커에 대해 알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