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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119화 (119/300)

119화

장은서의 능력은 도윤에게 새로운 고민을 안겨주었다. 이러면 진짜 경찰에 신고하기가 어렵다. 장찬수는 몰라도 장은서만큼은 경찰에 잡혀가는 걸 반드시 막아야 하게 생긴 것이다.

위작을 만들어 팔았다는 이유로 체포되면 당연히 제작 방법에 대한 심문이 이어진다. 그때 피의자는 구체적으로 자신이 사용한 방법에 대해 진술해야 하고, 필요할 경우 형사들 앞에서 직접 시연을 하기도 한다. 장은서가 위작을 만든 방법이 세상의 상식을 벗어났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렇게 되면 아마 세상이 발칵 뒤집힐 것이다.

‘난리가 나겠지. 만화에서나 보던 초능력을 가진 인간이 등장한 셈이니까’

여파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장은서가 만든 위작은 전문가들이 봐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정교했다. 더구나 그녀가 만든 작품은 지금도 진작으로 간주되어 버젓이 유통되고 있었다. 그녀가 체포되고 어떤 작품들이 가짜인지 세상에 알려지면 분명히 미술계가 충격에 빠질 것이다. 기자들 또한 벌떼처럼 달려들어 취재 경쟁을 벌일 게 뻔했다.

‘문제는 장찬수를 처벌하면서 위작을 직접 만든 장은서를 숨길 수는 없다는 거야. 본인은 아빠가 자기 작품을 내다 팔았는지 몰랐다고 하지만, 그걸 누가 믿겠어?’

장찬수가 처벌될 경우 그가 유통시킨 위작의 목록이 공표될 수밖에 없다. 소장자들에게도 따로 통지가 갈 것이다. 그럼 그들이 과연 가만히 있을까? 적어도 수천만 원, 비싼 건 수억이 넘는 재산이 하루아침에 날아갈 판이니 그럴 리가 없다며 항의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나타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위작을 직접 만든 장은서가 대중에게 노출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도윤은 처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장은서를 한참동안 쳐다봤다. 평범한 방법이 아닐 거라고는 짐작했지만 설마 저런 식으로 위작을 만들 줄이야. 솔직히 자신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었다. 그래도 설마 그게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두 분은 일단 돌아가서 지금 열고 있는 부스부터 철수하세요. 그런 다음에 내일 오후 세 시에 제 방에서 만나죠. 저도 준비를 해야 할 것이 있으니까 이 문제는 내일 다시 얘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도윤의 말에서 어떤 희망을 느꼈는지 장찬수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저희를 용서해 주실 겁니까?”

“말씀드렸잖아요. 이번 일은 제가 용서하고 말고 할 일이 아니라고. 그런 소리 말고 내일 오후 세 시까지 제 방으로 오세요. 꼭 오셔야 합니다. 안 그러면 진짜 신고할 테니까.”

그제야 장찬수 부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이 호텔방을 나서려는 찰나, 장은서가 고개를 돌려 도윤을 쳐다봤다.

“이대로 저희를 놓아주었다가 도망이라도 가면 어쩌시려고요?”

그 말에 도윤이 코웃음을 쳤다. 지금 토끼가 호랑이 걱정을 하는 거야?

“제발 그렇게 해 주세요. 그럼 저도 고민할 것도 없이 경찰에 신고하면 되니까. 아마 다른 건 몰라도 그럴 경우 화가로서의 생명은 끝일 겁니다. 장은서 씨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도 떳떳하게 그림을 그리며 살 수 없을 거예요. 혹시 모르죠. 장은서 씨가 죽은 다음에 그 유작이 새삼스럽게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될지. 그렇게 살고 싶으세요?”

“그럼 지금 당장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까?”

이번에는 장찬수의 질문이었다.

“그 문제는 내일 얘기하자니까요?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장찬수 씨도 절대로 도망을 가거나 몸을 숨길 생각은 하지 마세요. 그럼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는 건 물론이고 한국에 있는 재산도 범죄 수익으로 간주되어서 압류될 테니까요. 평생 빈털터리로 도망 다니고 싶은 생각이 아니라면 내일 꼭 저를 다시 보는 게 좋을 겁니다.”

두 사람이 호텔을 떠나자마자 도윤은 곧바로 조명근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든 면에서 믿음직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럴 때는 그의 도움이 절실했다. 도윤은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마치 가정인 것처럼 꾸며 그에게 여러 가지 법률적인 내용을 물었다.

“가짜를 진짜라고 팔았으면 사기잖아? 금액이 5억 원이 넘으면 못해도 최하 3년 이상인데? 먹은 돈도 다 토해내야 하고. 형량이 그 정도면 아무리 초범이라도 집행유예는 당연히 안 돼. 근데 이거 정말 너하고 관련된 일은 아니지? 아닐 거야. 우리 착한 도윤이가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 리는 없지.”

마지막 말은 못 들은 걸로 했다. 그나저나 이거 참 갈등되네.

* * *

이튿날, 도윤은 오전부터 시내를 돌아다니며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했다. 점심 무렵에는 아트 페어가 열리는 장소로 가서 솔천 화랑의 부스가 철수되었는지도 확인했다. 다행히 장찬수는 그의 말을 어기지 않았다.

장찬수는 지금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미 비행기를 타고 홍콩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도윤 역시 다양한 경우를 가정해서 자신이 취할 태도를 결정해야 했다. 평소에 머리가 좋다고 자부했지만 이번 일의 경우에는 그도 마음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음날 오후 세 시, 장찬수와 장은서 부녀가 약속했던 시간에 그의 호텔방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고 두 사람의 모습을 확인한 도윤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저들이 약속을 지켰다는 건 최소한 막장까지 가지는 않기로 했다는 뜻이다.

“잠깐 기다려보세요.”

도윤은 두 사람을 소파에 앉게 하고 호텔방의 옷장을 열어 안에서 몇 가지 미술 도구를 꺼냈다. 이젤과 캔버스, 물감과 붓은 물론이고 아트 페어의 다른 부스에서 사들인 10호 크기의 그림 한 점이 줄지어 나왔다. 그는 방 한가운데에 이젤을 설치해서 빈 캔버스를 올려놓은 뒤, 벽에 있던 액자를 떼어내고 거기에 자신이 산 그림을 걸었다.

“이게 다 뭡니까?”

장찬수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도윤은 아무 말 없이 손짓으로 장은서를 빈 캔버스가 놓인 이젤 앞에 앉게 했다.

“다른 것보다 먼저 장은서 씨의 능력을 조금 더 자세하게 확인하고 싶어서 준비한 겁니다. 능력에 대한 검증이 끝나면 위조 문제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릴 거예요.”

장은서가 도윤을 힐끗 보더니 물감과 붓을 잡았다.

“뭘 어떻게 하면 되나요?”

그녀는 어제보다는 한결 차분해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눈이 충혈 되고 피부도 거칠해져 있는 것으로 보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한 게 분명했다.

“벽에 걸린 저 그림을 토대로 새로운 그림을 그려 주세요. 화풍을 그대로 흉내 내되 원작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그림을 완성해야 합니다. 할 수 있겠어요?”

다른 사람의 화풍을 보고 모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점의 작품을 면밀히 여구하고 숱한 연습을 거쳐야만 비로소 가능한 게 바로 모방을 통한 창작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화가 자신의 재능이 뒤따라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생전 처음 보는 화가의 작품을, 그것도 달랑 한 점만 보고 동일한 화풍의 새로운 그림을 그려내라는 도윤의 요구는 사실 말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일부러 장은서에게 무리한 일을 시켰다. 그녀가 그 무리한 일을 어느 정도까지 해내느냐에 따라 앞으로 이루어질 그의 결정도 달라질 것이다.

‘내 양심의 대가는 비싼 거니까. 내 돈도 소중하고.’

도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은서는 무려 한 시간가량을 들여 새로운 그림을 꼼꼼하게 관찰했다. 그 사이에 도윤은 물론이고 장찬수 역시 그녀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침묵을 지켰다. 무료한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가던 어느 순간, 드디어 장은서가 팔레트에 물감을 짰다. 일단 작업에 착수하자 그때부터 그녀의 손이 거침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붓이 움직임에 따라 여러 가지 색깔의 물감들이 하얗던 캔버스 위를 어지럽게 뒤덮었다. 서로 다른 색깔의 물감들이 한 자리에 엉키면서 전혀 다른 색으로 변하기도 했다.

‘저렇게 서로 다른 색깔의 물감이 마구잡이로 뒤섞이면 곤란하지 않나? 같은 색의 잉크가 겹치는 것하고는 달리 물감이 섞이면 그걸 다시 분리해낼 수가 없잖아?’

도윤의 걱정은 한갓 기우에 불과했다. 그녀는 화면이 엉망으로 변해버릴 정도로 빈자리 없이 물감을 칠하더니 문득 붓을 멈췄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그녀의 붓끝이 닿은 자리를 중심으로 해서 캔버스 위의 물감들이 돌멩이가 떨어진 호수처럼 이리저리 파문을 일으키며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건 도윤의 입장에서 볼 때 기적 같은 일이었다.

장은서의 붓끝이 캔버스 위를 미끄러지며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마치 위에 칠해진 물감을 벗겨 밑에 숨어 있던 그림을 드러내는 것처럼 캔버스 위에 선명한 형체들이 서서히 모습을 나타냈다. 도윤은 엉망으로 뒤섞였던 물감들이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하며 완전한 모양을 만들어내는 모든 과정을 숨을 죽인 채 지켜봤다.

‘미치겠군. 나도 남부럽지 않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저건 정말 화가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 할 만큼 신기한 재주네. 물감과 캔버스만 있으면 머릿속에 있는 형상을 얼마든지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잖아?’

도윤이 저절로 벌어지려는 입에 억지로 힘을 주고 있는 사이, 드디어 장은서의 붓이 캔버스에서 떨어졌다. 그녀가 손을 뗀 캔버스 위에는 원색을 바탕으로 한 비구상 작품 한 점이 선명한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말없이 그것을 쳐다보던 도윤은 기어코 탄식을 토해냈다.

“비구상 작품이라서 화풍을 잡아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누가 봐도 같은 화가가 그린 다른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겠네요. 물감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은 그렇다 쳐도, 처음 보는 작품의 화풍은 어떻게 파악해낸 겁니까?”

도윤의 물음에 한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내던 장은서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모든 화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을 구현하려고 해요. 그래서 이 작가가 그림을 그릴 때 기본적으로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게 무엇인지만 알아내면 그 다음부터는 별로 어려울 게 없어요. 형태적인 특성은 화가의 관점에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거든요.”

간단하게 말했지만 무지하게 어려운 얘기였다. 미술 전문가가 아니면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처럼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도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장은서가 가진 능력은 단순히 물감을 통제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뛰어난 감정가 못지않을 정도로 그림의 특성을 단숨에 파악해내는 심안을 함께 지녔다.

‘베끼지 못할 그림이 없고, 흉내 내지 못할 화가가 없다는 뜻이군. 그나마 지금이라도 만났으니 다행이지, 모르고 지나쳤으면 자칫 미술계를 초토화시킬 엄청난 재앙이 될 뻔 했어.’

지금이야 장은서는 물론이고 장찬수도 어느 정도 선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는 두 사람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구나 욕심을 가지고 있는 법이고, 어떤 사람도 성인이 아닌 이상 자신의 욕심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감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 말이에요. 이미 굳어버린 물감도 통제가 가능합니까? 그러니까 기존에 있던 그림도 내용을 바꿀 수 있는지 묻는 겁니다.”

도윤의 질문에 장은서가 약간 고민하는 듯하더니 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렵기는 하지만 가능은 해요. 하지만 너무 딱딱하게 굳으면 모양을 바꿀 수 있을 뿐이지 제가 원하는 대로 형태를 만드는 건 아직 어려워요.”

“아직이요? 그럼 나중에는 가능할 수도 있다는 뜻이에요?”

“아주 어릴 때는 잉크나 연필처럼 단색으로 그린 그림도 제가 원하는 대로 조종하는 게 힘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너무 오래 돼서 변색이 된 것만 아니면 이미 말라버린 잉크라고 해도 제 마음대로 형태를 바꿀 수 있어요. 하지만 굳어버린 물감은 아직 그렇게 못해요.”

진정한 의미에서의 미술관 파괴자가 될지도 모를 위험인물이 여기 있었군. 만약 그녀가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개화시킬 경우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을 엉망으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도윤은 그녀가 미술관의 전시실을 가로질러 감에 따라 사방에 전시된 그림들이 엉망으로 변하는 모습을 상상하다 진저리를 쳤다.

“자, 이제 우리 얘기를 좀 해 봅시다. 두 분 다 감옥에 가고 싶은 건 아니죠?”

그가 손뼉을 짝 치며 이야기를 꺼내자 장찬수와 장은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부터 도윤이 어떤 얘기를 꺼내느냐에 따라 두 사람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 * *

“저희들 보고 뉴욕으로 가라고요?”

도윤의 제안을 들은 장찬수와 장은서가 가장 먼저 보인 반응은 황당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강력하게 두 사람의 미국행을 밀이붙였다.

“거기서 영원히 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두 분이 저질러놓은 일을 수습하는 동안만이라도 한국을 떠나있는 게 나을 거예요.”

“저희는 미국에 아무런 연고가 없습니다. 영어도 능숙하지 못하고요.”

“그 문제는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뉴욕에 계실 동안 묵을 집은 물론이고 장은서 씨가 공부하고 작업할 수 있는 환경까지 완벽하게 준비해 드릴 테니까. 두 분이 미국 생활에 무사히 적응할 수 있도록 가까운 곳에서 도와줄 사람도 소개시켜 주겠습니다.”

도윤이 염두에 둔 사람은 오윤수였다. 미국으로 간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 동안 오윤수의 영어는 상당히 늘었다.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작업실이 있는 건물에서 미국의 젊은 화가들하고만 어울리다 보니 생각보다 빠르게 영어 실력이 향상된 것이다.

“지금은 파리가 아니라 뉴욕이 현대 미술의 중심지입니다. 장은서 씨라면 거기서 머무는 동안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거예요.”

“저더러 뉴욕에서 미술 공부를 하라는 말씀이세요?”

계속 침묵을 지키던 장은서도 자기 얘기가 나오자 입을 열었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두 분에게 단순한 도피를 권하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는 장은서 씨가 한 명의 훌륭한 화가로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라는 거예요. 거기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부서지고 다시 일어나세요. 물론 두 분이 정 싫다고 하면 저도 억지로 권하지는 않겠습니다.”

장은서는 납득한 것 같았다. 그러나 장찬수가 또 다시 현실적인 문제를 꺼냈다.

“하지만 그러려면 지금 가지고 있는 집하고 가게를 처분해야 하는데…….”

“가게는 어차피 세를 들어 있는 거 아닙니까? 그거 빼세요. 집을 팔기 싫으면 전세를 놓으면 되고요. 아니면 한국을 떠나지 못할 다른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 겁니까?”

장찬수는 꽤 망설인 끝에 결국 도윤의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무엇보다 딸이 조금 더 훌륭한 화가로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이 그의 결심을 부추겼다. 두 사람이 미국행을 결정하자 도윤은 다시 한 번 그들에게 단단히 못을 박았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다른 사람의 그림을 모방하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일단 완성한 모작은 반드시 없애버리세요. 연습을 위해서라도 남의 화풍을 연구할 필요는 있어요. 그러나 단 한 점이라도 완성된 모작을 보관하다가 들키면 저도 지금 했어야 하는 일을 그때라도 반드시 실천할 겁니다. 물론 더 지독한 방법으로요.”

도윤은 그 말과 함께 휴대폰의 녹음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전날 장찬수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서 울먹이던 목소리가 고스란히 흘러나왔다. 도윤이 설마 그렇게까지 했을 줄은 몰랐는지 녹음된 소리를 듣던 장찬수와 장은서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우리 사이의 신뢰는 아직 미약합니다. 그걸 얼마나 단단한 것으로 만들지는 앞으로 두 분이 어떻게 할지에 달려 있다는 걸 명심하세요.”

도윤도 이런 방식으로까지 사람을 협박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범죄 사실을 덮어주기로 한 이상, 그도 마냥 사람 좋은 시늉을 낼 수는 없었다. 그들을 미국으로 보낸 뒤, 그는 자신의 돈과 시간을 들여 장찬수와 장은서가 저지른 범죄의 뒤처리를 할 생각이었다.

‘범죄 사실 자체를 없애는 건 불가능해. 하지만 최소한 피해자를 없애는 건 가능하지.’

결국 장찬수 부녀는 도윤의 제안을 받아들여 한국으로 돌아가는 즉시 미국행을 준비하기로 약속했다. 다음날, 도윤은 그들과 함께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이라크에 들르고 콜롬비아까지 가서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은데, 어째 시간이 갈수록 일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계속 늘어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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