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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120화 (120/300)

120화

도윤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콜롬비아에 가서 땅속에 묻힌 에스코바르의 보물을 파내는 것이었다. 입구가 무너진 동굴 안에 정확히 뭐가 얼마나 있을지는 가드너 미술관을 털었던 파울로 마르케스조차 정확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훔친 미술품이 동굴 안에 보관된 물건들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동굴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죽은 에스코바르밖에 없었어요. 그의 부인도 동굴 근처에는 얼씬도 못했으니까. 하지만 미술품뿐만이 아니라 각종 보석과 금괴, 미국 국채와 현금이 있다는 건 확실합니다. 그런 것들이 동굴 안에 들어가는 걸 내가 똑똑히 봤습니다.”

마르케스의 말이 절반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에스코바르의 동굴은 말 그대로 알리바바의 보물 창고라고 할 수 있었다. 한때 콜롬비아의 경제 전체를 좌지우지했을 정도로 큰돈을 모은 마약왕의 금고였다. 그 자연친화적인 금고 안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보물들이 숨겨져 있을까? 그걸 생각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콜롬비아로 날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 급한 건 이라크지. 괜히 시간을 끌다가는 나머지 황금 술병들이 언제 어디로 사라져버릴지 모르니까.”

그런데 장찬수와 장은서 부녀 때문에 이라크로 출발할 시간을 또 다시 늦춰야 했다. 그들이 마음을 바꿀 수 없도록 최소한 몇 가지 준비는 끝내야 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에게는 죄송하지만 그로 인해 현소 화랑의 봄맞이 정기 전시회에는 또 다시 소홀해졌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장찬수의 집이 생각보다 빨리 팔렸다는 점이었다. 수십억이 넘는 고가의 아파트였는데도 부동산에 내놓은 지 불과 열흘만에 계약하겠다는 사람이 나선 것이다. 한국에 돈 많은 부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미안하지만 이 돈은 압수예요. 대신 미국에서 살 집은 제가 구해주겠습니다. 물론 그 쪽은 월세로 계약할 거고 집도 여기에서 살던 곳처럼 좋지는 않을 거예요.”

도윤이 그 돈으로 뭘 할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장찬수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쉽지 않은 요구를 받아들이는 걸 보고 도윤도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두 부녀가 미국에서 살 집은 현지에서 오윤수가 부동산 중개업자의 도움을 받아 계약했다. 마침 그가 작업실을 만든 건물에 빈자리가 나서 장은서를 위한 작업 공간도 어렵지 않게 마련할 수 있었다.

“장은서 씨는 형이 만들 재단의 두 번째 장학생인 셈이잖아요. 제가 첫 번째니까 후배라고 생각하고 최대한 도와줄 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는 도윤이 새로운 집과 작업장을 구하는 이유가 전적으로 장은서의 공부를 돕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꼭 그런 건 아니었지만 도윤도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장찬수는 솔천 화방에 새로 들어올 임자가 나서기도 전에 서둘러 가게 내부부터 정리했다. 그는 미국에 꼭 가져가야할 물건들만 먼저 챙겨서 도윤이 계약한 주소로 보낸 뒤, 나머지 가구를 비롯한 살림들은 모두 팔거나 버렸다.

“새로운 곳에서 새 인생을 사는 거라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물건을 버리면서 미련도 버렸어요. 미국에서는 오로지 제 딸이 훌륭한 화가로 성장하도록 돕는 일에만 신경 쓸 겁니다.”

사람이 가장 버리기 힘든 것 가운데 하나가 돈에 대한 욕심이다. 그러나 장찬수는 수십억에 달하는 거금을 미련 없이 포기했다. 그 정도면 믿을만 하다는 게 도윤의 생각이었다.

장찬수에게서 돈을 받자마자 도윤은 적극적으로 그가 예전에 팔아버린 위작들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나섰다. 다시 사들이기 위해서였다.

대부분 국내 수집가들의 손에 들어갔지만 그 가운데 일부는 이미 외국으로 흘러나간 것도 있었다. 그나마 천만다행인 것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내걸린 작품은 없다는 점이었다. 그럴 경우 작품을 되사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봐야 했다. 미술관들은 당장 전시하지 않을 작품들도 팔지 않고 대부분 수장고에 넣어두기 때문이다.

도윤이 이라크로 떠나기 며칠 전, 두 점의 위작이 그의 손에 들어왔다. 석훈의 도움을 받아 찾아낸 개인 수집가에게 접근해서 원래 상대가 샀던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되찾아온 것이다. 그 그림들을 확보하자마자 그는 장찬수와 장은서를 야외로 불러냈다.

“이건 원래부터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물건이었습니다. 위작은 원작자를 모욕하고, 수집가들을 속일 뿐만 아니라 위작자 자신을 타락시키는 마약 같은 거예요. 이런 게 세상에 존재하면 결국에는 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 파괴됩니다.”

그 말과 함께 도윤은 날카로운 칼로 그림을 산산조각으로 잘라버렸다. 그는 액자까지 알뜰하게 부숴버린 뒤 잔해 위에 기름을 붓고 깨끗이 불태워버렸다. 장은서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자신의 그림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봤다. 장찬수 역시 고개를 푹 숙인 채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분이 팔아버린 위작들은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제가 모조리 찾아내서 이것처럼 완전히 없애버릴 겁니다. 아마 원래 팔았던 가격보다 더 많은 돈이 들 거예요. 당연히 장찬수 씨 집을 판 돈으로는 부족하겠지요. 하지만 차액은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장은서 씨가 훌륭한 화가로 다시 태어날 거라 믿고 미리 투자하는 거라 생각해 주세요.”

두 사람은 도윤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은 그 길로 두 사람을 현소 화랑 사무실로 데리고 가서 계약서를 작성했다. 향후 3년 동안 장찬수, 장은서 부녀가 뉴욕에 머무는데 필요한 집세와 작업실 사용료를 모두 도윤이 부담하되, 그 기간 동안 만들어진 장은서의 작품은 모두 현소 화랑에서 독점적으로 전시하고 판매한다는 내용이었다.

며칠 후, 두 사람은 뉴욕 행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떠났다. 도윤은 석훈과 함께 공항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헤어지기 직전, 도윤은 장은서를 따로 불렀다.

“장은서 씨의 능력은 남의 것을 모방하고 배우는 데는 아주 좋아요.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자신의 틀을 깨고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큰 장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조만간 제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면 뉴욕에 들를 거예요. 그동안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는데 타고난 능력을 어떻게 쓸 건지 계속 고민하세요.”

장은서는 아무 말 없이 도윤의 손을 꼭 쥐었다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출국장을 나섰다. 그들을 떠나보낸 이틀 뒤, 도윤 역시 터키 이스탄불 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다시 바그다드로 향하는 여정이었다.

* * *

대형 빌딩들이 도로를 따라 줄지어 서 있는 종각 근처의 어느 음식집. 내부 인테리어는 제법 현대적인 느낌이 났지만 파는 음식은 수육과 보쌈이 주종인 전통적인 한식집이었다. 이세준이 다른 손님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식사를 할 수 있는 조그만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미리 와 있던 현정환이 앉은 채로 손을 들어 그를 반겼다.

“어서 와. 난 배가 고파서 먼저 먹고 있었어. 넌 뭘로 할럐? 보쌈? 아니면 수육?”

환한 웃음을 입에 매단 채 메뉴를 묻는 현정환은 이세준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동시에 현소 화랑을 대리해서 각종 법률적인 문제를 처리해주는 법무법인 대동의 대표이기도 했다.

“조금만 기다렸다가 함께 먹을 것이지. 나이가 들면서 위장만 커졌냐? 난 보쌈으로 할게.”

이세준이 나지막하게 투덜거리자 현정환이 씩 웃더니 종업원을 불러 보쌈과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식사가 시작되자 현정환이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너 요즘 한성 옥션하고 뭐 틀어진 일 있냐?”

입을 크게 벌리고 보쌈을 틀어넣던 이세준의 손이 뚝 멎었다. 그는 대충 씹어서 음식을 넘기고는 냅킨으로 입 주위를 닦았다.

“한성 옥션하고 틀어진 일이라니? 갑자기 그건 왜 물어?”

“중앙 지검에 강일환 차장이라고 이름 들어봤지? 그 친구가 요즘 자기 밑에 있는 검사들한테 현소 화랑을 뒤져보라는 지시를 내린 모양이야. 자기들 딴에는 은밀히 움직이려고 애를 썼는데, 그 얘기가 하필 전시헌이한테 들어갔어. 알지? 특수부를 맡고 있는 3차장 검사. 나한테는 같은 과 직속 후배인데 그 친구가 어제 저녁에 전화를 했더라고.”

전시헌이 현동환에게 특별한 얘기를 한 건 아니다. 그저 안부를 물으면서 지나가는 말투로 현소 화랑 때문에 요즘 지검이 조금 시끄러운 것 같다고 슬쩍 말을 흘린 것뿐이었다. 하지만 현동환은 그것만으로도 상대의 의도를 금세 이해했다. 통화를 마친 그는 즉시 몇 군데 전화를 돌려 좀 더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해냈다.

현동환의 얘기를 들은 이세준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강일환 검사면 1차장이잖아? 그 사람 있는 곳에서 문화 관련 범죄도 전담하지 않나?”

“맞아. 형사 6부가 그 일을 하지. 그리고 형사 6부는 1차장 소속이고.”

“거기서 갑자기 왜 우리 화랑을 조사해? 그리고 그게 한성 옥션하고는 무슨 상관이고?”

현정환이 자기 앞에 놓였던 술잔을 한 번에 비우더니 앞으로 내밀었다. 이세준은 그의 잔에 술을 따라준 뒤 자신도 잔을 비웠다. 이번에는 현정환이 그의 잔에 술을 채웠다.

“한성 옥션의 성진아 사장 남편이 한대길 의원이잖아. 입으로는 정의로운 말을 내뱉으면서도 뒤로는 온갖 구린 짓을 다하는 전형적인 구태 정치인. 그 한대길하고 강일환이 아주 친해. 강 차장 그 친구, 검사장 진급 못하면 바로 옷 벗고 나가서 정치판에 뛰어들 거야.”

“결국 그 한대길이 우리 화랑을 노린다는 거네? 한성 옥션하고 관련된 일 때문에.”

“그래. 그래서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 거야. 너희 집안하고 성진아 사장네 집안이 원래부터 악연이 깊잖아? 하지만 이제 와서 뜬금없이 선대에 있었던 일을 가지고 들쑤시는 것 같지는 않아서 말이야. 도윤이가 얼마 전에 상해까지 가서 한 건 했다면서? 그 일 때문에 한성 옥션이 물먹어서 그러는 거 아냐?”

“한성이 물을 크게 먹기는 했지. 수십억을 날렸으니까. 그래도 성진아 사장도 아니고 한대길이 직접 움직이는 건 좀 이상한데? 혹시 뭐 다른 얘기는 들리는 거 없어?”

그러자 현정환이 몸을 살짝 숙이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현소 화랑에서 국보급 문화재를 잔뜩 가지고 있다는 찌라시가 돌고 있어. 이건 아무래도 검찰이 아니라 언론에서 직접 흘린 것 같아. 조만간 정식으로 기사화될지도 몰라.”

“언론? 언론 어디?”

“동명일보의 조상욱 편집국장이 또 한대길하고 짝짜꿍이 잘 맞아. 나도 아직 정확한 건 모르는데, 그쪽에서 냄새가 좀 심하게 나기는 해.”

이세준이 생각에 잠겼다. 청파 갤러리에서 열렸던 불교 미술 전시회 때에 성진아가 아내인 서연희에게 국보급 문화재를 운운하며 시비를 걸었던 게 벌서 다섯 달 전이었다. 그 때문에 잠시 긴장했지만 반년이 가깝게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서 그냥 지나가려나 싶었다. 하지만 저들은 그가 방심하는 사이 더 넓고 치밀한 그물을 설치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끝까지 해보자는 거네.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고 싶었는데.’

이세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현정환의 잔에 새로 술을 채웠다.

“얘기해 줘서 고맙다. 그 일에 대해서는 나도 따로 대비를 할 테니까 새로운 소식이 들리면 곧바로 알려줘. 한대길 그 사람은 음흉해서 물밑으로 진행하는 일이 더 있을 거야.”

“그거야 당연하지. 그런데 현소도 이참에 가지고 있는 작품들을 그냥 공개하는 건 어때? 이젠 그럴 때도 됐잖아? 쓸데없이 도굴꾼들하고 거래한다는 황당한 소리까지 들으면서 살 필요 있어? 그냥 툭 까는 편이 나중에 도윤이한테 물려줄 때를 생각해서라도 낫지 않아?”

현정환은 현소 화랑이 정확하게 얼마나 대단한 작품들은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은 문화재급 작품들이 여러 점 있다는 것까지는 대충 짐작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세준은 친한 친구인 그에게도 수장고의 존재를 발설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렇잖아도 그 문제와 관련해서 생각해 둔 게 있어. 하지만 지금은 도윤이도 너무 정신없이 바쁜 것 같고,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해. 너무 늦게까지 꽁꽁 숨겨두지만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술이나 마시자.”

두 사람은 그날 밤 늦게까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을 마시다 헤어졌다. 다음날 아침, 숙취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모습으로 출근한 이세준은 점심 무렵, 서연희와 김하선 실장을 자기 방으로 불렀다. 이세준으로부터 현정환이 한 얘기를 전해들은 두 사람은 하나같이 얼굴을 굳혔다. 특히 서연희의 분노는 아주 거셌다.

“명색이 국회의원에 큰 회사 사장이라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하는 짓이 치졸하대요? 그 사람들 진짜 그냥 두면 안 되겠네요.”

이세준은 쓴웃음을 웃었다. 그래. 그냥 두면 안 되지. 하지만 어떻게? 중요한 건 상대가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그 잘못을 어떻게 응징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세준이 김하선을 쳐다봤다.

“내가 몇 달 전에 목록을 정리하라고 말했던 거 있지? 그거 다 정리됐어?”

“네. 정리는 꾸준히 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목록이 깁니다. 쓰시려면 일단 그 가운데 덩치가 큰 것만 몇 개 뽑아서 터트리시는 게 나을 겁니다. 나머지는 상황을 봐 가면서 검찰이나 언론에 추가적으로 흘리시는 게 더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하는 말을 들은 서연희의 눈이 동그래졌다.

“목록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무슨 목록이요?”

눈짓으로 이세준의 의중을 물은 김하선이 머리를 숙이면서 설명했다.

“대표님께서는 오래전부터 한성 옥션에서 거래되는 물건들 가운데 출처가 의심스럽거나 위작이 확실한 것들을 조사해 오셨습니다. 그동안 쭉 혼자서 그 일을 해오셨는데 십여 년 전부터는 제가 맡아서 목록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사모님께는 알리지 말라고 하셔서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서연희가 남편을 쳐다봤다.

“언제부터요? 왜 저한테는 말을 안했어요?”

이세준이 미안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말했잖아. 중학교 때부터 성택진 사장 때문에 아버지가 몹시 괴로워하셨다고. 그래서 나는 아버지처럼 그 사람들한테 당하지 않겠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어. 다만 내가 무슨 복수의 화신도 아니고 상대가 가만있으면 나도 그냥 잊고 살려고 했지. 그래서 당신한테도 말을 안 했던 거야. 목록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준비한 보험 같은 거였어.”

서연희가 뭔가를 말하려고 몇 번 입술을 달싹 거리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서요. 조사해 보니까 한성 옥션에서 위작을 많이 팔았던가요?”

“거래한 물품 전체에 비하면 출처가 의심스럽거나 위작이 확실한 물건의 비중은 얼마 되지 않아. 하지만 워낙 거래량이 많다보니까 숫자 자체는 적다고 할 수 없지. 그 다운데 액수가 큰 건만 몇 개 뽑아서 터트려도 한성 옥션이 입을 피해는 아마 치명적일 거야.”

“옥션에서 팔았던 물건이 가짜로 밝혀지면 경매회사가 낙찰자에게 보상해야 하잖아요.”

“그렇지. 물건을 위탁한 사람이 돈을 내놓지 않아도 경매 회사는 일단 자기 돈으로 먼저 그걸 물어줘야 해. 회사가 챙기는 수수료에는 그런 보장이 포함되어 있는 거니까. 낙찰자가 정신적인 피해까지 배상하라고 요구하면 문제가 더 골치 아파질 테고.”

“출처가 의심스러운 물건도 있어요? 당신 말에 의하면 저쪽에서는 우리더러 도굴꾼들하고 거래한다고 몰아붙이고 있다면서요?”

“한성이 도굴꾼들하고 거래한 지는 오래 됐어. 성진아 사장의 아버지인 성택진 사장 때부터 계속 해 왔으니까. 몇 개는 팔아넘긴 놈들의 이름까지 알아.”

“그럼 바로 고발하지 왜 가만있었어요? 그럼 바로 콩밥을 먹일 수 있잖아요?”

“그 문제는 상황을 봐 가면서 어떻게 할 지 결정하는 게 좋아. 도굴꾼들이 훔친 물건은 사실이 밝혀질 경우 국가에 귀속될 가능성이 크거든. 그럼 괜히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가 있어. 그럼 사람들이 우리에게 박수를 보내기는커녕 손가락질을 할 거야.”

“그게 무서워요? 저는 하나도 안 무서워요.”

“무섭다는 게 아니야. 파장을 생각하자는 거지. 잘못하면 미술 시장 자체가 한동안 얼어붙을 가능성이 커. 정의가 실현되었는데 이익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피해자만 잔뜩 생긴다면 그것도 우스운 일이잖아.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해야 돼.”

서연희는 다소 불만이 있는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남편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녀 역시 미술계에서 잔뼈가 굵은 터라 이세준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했던 것이다.

폭풍 전야가 시작되었다. 양쪽에서 서로 상대를 향해 그물을 드리운 채 언제 던질지를 노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얼마나 크고 질긴 그물을 준비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언제 던지느냐 하는 것이었다. 명분도 고려해야 했다. 섣부르게 투망질을 하다가는 고기를 잡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발목이 그물에 걸려 물에 빠질 우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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