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121화 (121/300)

121화

<19. 세 개의 술병>

도윤이 이라크로 가려는 이유는 바샤르 라산이라는 미술품 중개상을 찾기 위해서다. 황금낙타 술병에 남아 있는 잔류 기억을 통해 보았던 명함에 그의 이름이 아랍어와 쿠르드어, 그리고 영어로 각각 씌어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남한의 네 배나 되는 이라크 땅에서 어떻게 이름 하나 달랑 들고 원하는 사람을 찾느냐는 거다.

그가 이라크로 간다는 얘기를 들은 최서라는 못내 걱정스러운 표정을 떨쳐버리지 못하더니 거듭해서 경호원을 고용하라고 당부했다.

“미래 건설 직원들도 이라크 현지의 공사 현장으로 출장 갈 때는 늘 그렇게 해요. 언제 테러가 발생할지 모르는 곳인데다 한국은 대표적인 친미 국가로 분류되거든요.”

“그 정도로 위험한가?”

“걸핏하면 총탄이 날아다니는 상황은 아니에요. 하지만 일 년에 단 한 번만 테러가 발생해도 그로 인한 피해는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커질 수밖에 없잖아요.”

이라크 전쟁 이후로 중동 건설 붐은 완전히 사그라진 줄 알았는데, 미래 건설을 비롯한 몇몇 대형 건설사들은 소수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공사를 수주하고 있었다. 다만 공사 현장 대부분이 테러 발생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안전한 곳이라고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현지 경호 회사와 계약을 맺고 직원들의 신변을 보호한다는 얘기였다.

“바그다드 시내에서만 머물 거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도윤 씨는 정확한 일정을 모른다면서요? 비용은 좀 들겠지만 안전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세요.”

최서라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바샤르 라산이 어느 곳에 사는지 알 수 없으니 이라크에서의 일정을 확정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던 것이다.

결국 도윤은 그녀의 충고를 받아들여 미래 건설이 계약을 맺고 있는 현지의 경호 회사와 연락을 취했다. 아만 시큐어리티라는 곳이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 회사가 한국의 경호업체와 파트너십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 이라크로 출장 가는 회사원들 가운데 아랍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실정이거든요. 그렇다고 저쪽 경호원들이 영어에 능통한 것도 아니고.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라크 현지 문화를 모르니까 본의 아니게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양쪽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우리 직원들이 그쪽에 파견 나가는 겁니다.”

아만 시큐어리티와 파트너십 관계를 맺고 있는 NKS라는 회사의 설명이었다. 도윤은 먼저 NKS와 계약을 맺은 뒤, 그들을 통해 다시 아만 시큐어리티와 접촉하는 수순을 밟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생각보다 경호 비용 지출이 커졌다.

“이라크에서의 경호는 단순히 강도나 폭력배를 막는 게 아닙니다. 여차할 경우 테러리스트를 상대로 목숨까지 걸어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실제로 바그다드 시내를 벗어나서 공사 현장으로 갈 때는 경호 회사 직원들 뿐만이 아니라 고객들도 방탄조끼를 착용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도윤은 결국 마뜩치 않아 하는 기색이 역력한 석훈을 설득해서 녀석을 함께 데리고 가기로 했다. 만약을 위해서 취한 조치였는데 덕분에 경호 비용이 순식간에 두 배로 뛰었다.

“나로서는 따로 부탁할 일이 있으니 비용이야 얼마든지 지불할 수 있기는 한데…….”

도윤은 NKS의 도움을 받아 현지 경호 회사인 아만 시큐어리티와의 직접 통화를 연결했다. 사람 찾는 일을 따로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도윤의 요구 사항을 들은 현지 담당자는 다소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일단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이름과 직업, 연령대를 알 수 있는 정상적인 시민일 경우에는 어디 사는 누구인지 알아내는 게 아주 어렵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전화번호를 가지고 계시니까 가능성은 더 높겠죠. 혹시 라산이라는 사람을 찾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전화를 받은 상대는 도윤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으면서도 몹시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제가 아는 한 바샤르 라산은 미술 중개상입니다. 저는 한국의 화랑에 소속되어 있는 감정가고요. 그 사람을 만나서 미술품을 구입하려는 게 목적입니다.”

“미술 중개상도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문제될 게 없지만 불법적인 거래를 목적으로 하시는 거라면 도와드리기 곤란할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건 라산이라는 사람을 만나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되도록 합법적으로 거래를 하고 싶지만 여기서는 현지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워서요.”

“그렇군요. 그럼 저희는 공식적으로는 호위 업무만 맡는 걸로 하겠습니다. 사람을 찾아 드리기는 하겠지만 그 부분은 계약서에 기재하지 않기로 하죠. 그리고 그에 대한 수고비는 이곳에 도착하신 다음에 현찰로 직접 지불해 주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꼭 좀 부탁드립니다. 그 사람을 찾을 수 없다면 제가 굳이 이라크로 갈 이유가 없어지거든요. 사례는 후하게 드리겠습니다.”

이라크 같은 곳에서 경호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은 아마도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어야 하는 일일 것이다. 아만 시큐어리티는 겉으로는 불법적인 일을 맡을 수 없다고 하면서도 결국은 비공식적으로 도윤의 의뢰를 받아들였다. 알라가 지배하는 곳이든 여호와를 섬기는 곳이든, 언제나 가장 숭배 받는 것은 역시 돈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바샤르 라산이 유난히 찾기 쉬운 사람이었거나 아니면 아만 시큐어리티가 운이 좋았는가 봐다. 도윤이 의뢰를 한 지 불과 사흘 만에 라산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바샤르 라산은 바그다드에 거주하고 있고, 자기 이름으로 사무실도 열고 있습니다. 나이는 46세의 미술품 중개상이고, 알려주신 전화번호도 그 사람의 것이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곧장 그리로 가겠습니다.”

그게 도윤이 한국의 떠나기 열흘 전의 일이었다.

* * *

한국 외교부는 바그다드는 물론이고 이라크 전역을 여행금지 구역으로 정했다. 업무 상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는 허가를 받아서 임시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었지만 도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바그다드로 직접 가지 못하고 이스탄불에 먼저 들렀다가 거기서 이라크행 비자를 발급받아야 했다. 그러느라 또 며칠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길거리 걸어가는데 이상하게 생겼다면서 괜히 시비 거는 놈들이 있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형은 왜 이런 시기에 하필 그런 델 가려는 거요? 나 참.”

마지못해 도윤과 동행한 석운은 이라크로 갈 거라는 얘기를 처음 들은 순간부터 계속 투덜대는 걸 멈추지 않았다. 두 사람은 UDT로 복무할 때 이라크 전에 참전했던 미군들과 합동 훈련을 한 경험이 있다. 석훈은 당시 그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로 인해 이라크를 소돔과 고모라쯤으로 생각했다.

“시비 거는 놈들이 있을까 봐 너하고 함께 가는 거잖아. 안 그러면 내가 왜 비싼 비행기 표에다 경호비용까지 지불하면서 널 데리고 가겠냐?”

솔직히 도윤도 바그다드로 가는 건 조금 긴장되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경호업체와 계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석훈을 데리고 가는 게 맞았다.

“아니 그놈들은 총을 들고 다니는데 내가 맨주먹으로 어떻게 형을 보호해요?”

“바그다드도 엄연히 한 나라의 수도야. 무슨 무법지대인 줄 알아? 어떤 미친놈이 길거리에서 시비 좀 붙었다고 총을 꺼내들어? 차라리 뉴욕이라면 모를까.”

“만약 그런 미친놈이 있으면? 형이 몸으로 날 막아줄 거요?”

“야, 인마. 네가 내 보디가드잖아? 근데 왜 얘기를 거꾸로 해? 당연히 네가 몸으로 날 막아줘야지. 나 다치면 치료비만큼 월급에서 깔 테니까 그렇게 알아.”

“우와, 요즘 직장에서 상사 갑질이 심하다고 하더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 목숨을 가지고 갑질을 해요? 아무튼 난 총 보면 바로 튈 테니까 알아서 해요.”

두 사람 모두 총알이 날아올지 모른다고 엄살을 떨었지만 사실 진짜 큰 문제는 언어소통이었다. 도윤은 적지 않은 수의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지만, 그런 그도 아랍어는 배우지 못했다. 바그다드에서 만날 경호원들 가운데 한국에서 파견된 직원이 한 명 있고, 현지 직원들 가운데도 영어에 능통한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

“하지만 양쪽 다 얼마나 능숙하냐가 문제지.”

도윤의 그런 우려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절반만 현실이 되었다. 두 사람이 바그다드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장을 나서자 경호업체 직원 두 명이 그들의 이름이 크게 쓰인 카드를 들고 마중 나와 있었다. 한 명은 아만 시큐어리티 소속의 이라크 인이었지만 다른 한 명은 NKS에서 현지에 파견된 한국 직원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NKS의 양세진입니다. 두 분이 여기 계실 동안 제가 통역 겸 경호를 책임지게 될 겁니다.”

“바그다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아만 시큐어리티의 잘랄 하산 아킴입니다.”

양세진이 한국어로 두 사람을 맞이한 데 비해 아킴은 영어를 사용했다. 당분간 한 팀으로 움직여야 할 두 사람은 아랍어로 대화를 나눴는데 그 모습을 보고 도윤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가 비록 아랍어를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아무리 봐도 두 사람의 사이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양세진이 아랍어를 떠듬거리는데 반해 아킴의 영어는 놀랄 정도로 능숙했다. 덕분에 도윤은 양세진의 통역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아킴과 영어로 얘기를 나누는 쪽을 택했다.

“영어를 아주 잘 하시네요?”

도윤의 물음에 아킴이 씩 웃었다.

“이라크에서는 학교에서 영어를 제1 외국어로 가르칩니다. 그리고 저는 따로 영국에서 2년 동안 파견 근무를 한 적이 있습니다. 덕분에 팀장을 맡을 수 있었지요.”

그럼 양세진과도 차라리 영어를 대화를 하는 게 낫지 않나? 도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본 양세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변명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까 되도록 아랍어를 배워야죠. 영어는 한국에 돌아가서도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지 않습니까?”

양세진의 대답이었다. 나름 일리 있는 얘기이기는 했지만 문제는 어느 세월에 아랍어에 능숙해지느냐는 점이었다.

두 사람의 인도를 받아 주차장으로 가자 그곳에는 모두 세 대의 차가 서 있었다.

“어, 경호 차량이 세 대나 될 줄은 몰랐는데요?”

생각보다 많은 호위 차량의 수에 도윤이 당황하자 양세진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소하시겠지만 이곳에서는 늘 이런 식으로 경호합니다. 중앙의 차량에 고객이 타면 앞뒤로 무장한 경호 차량이 달리 에워싸고 달리는 방식이죠. 테러범들은 최소 1개 분대 이상의 병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이 정도 수가 돼야 섣불리 건드릴 생각을 못하거든요.”

그래서 비용이 엄청났던 거군. 공격을 당한 다음에 그걸 방어하는 것보다는 아예 저쪽에서 쉽게 덤벼들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드는 게 낫기는 했다.

가운데 차에 도윤과 석훈이 타자 아킴이 운전대를 잡고 양세진은 조수석에 탔다. 차가 공항을 떠나자마자 아킴이 예상치 않았던, 그리 전혀 달갑지 않은 소식을 전했다.

“한국에서 문의하셨던 인물에 관해서 마리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바샤르 라산을 찾기는 했지만 그 사람이 지금 바그다드에 없습니다.”

“바그다드에 없다니요? 그럼 어디 있습니까?”

도윤이 깜짝 놀라 되묻자 아킴이 조수석에 앉아 있는 양세진을 힐끗 쳐다봤다. 아마 라산을 찾은 일에 대해서는 그에게 말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라산은 지금 아르빌에 있습니다. 쿠르드 자치구의 수도죠.”

“이라크에 쿠르드 자치구가 있다고요?”

그건 또 뭐야? 도윤이 의아해하는 모습을 백미러로 확인한 아킴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라크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엄연히 자체적으로 의회를 가지고 있고 대통령도 뽑는 실정이지요. 실질적인 자치구라고 봐야 합니다.”

터키와의 접경에 해당하는 이라크 북부 지역은 쿠르드 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곳에는 500만이 넘을 정도로 쿠르드 인들의 수가 많았기 때문에 이라크는 중동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아랍어와 함께 쿠르드 어를 공용어로 채택하고 있다.

“쿠르드 자치구는 원래 사담 후세인에 의해 강력한 탄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라크 전쟁으로 후세인이 몰락하고 정부의 통제가 약해지자 곧바로 독립을 선언했죠. 그 때문에 현재의 정부와도 적지 않은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쿠르드 자치구는 한때 주민들을 대상으로 분리 독립 투표를 실시해서 통과시키기까지 했지만 이라크 정부가 곧바로 군대를 투입하는 바람에 결국 독립이 무산되었다. 그렇다고 현지 주민들이 독립을 포기한 것도 아니어서 여전히 내전의 씨앗이 남아 있다는 얘기였다.

“그럼 위험한 지역일 텐데 바샤르 라산은 왜 거기까지 간 겁니까?”

도윤의 말에 아킴이 씁쓸하게 웃었다.

“쿠르드 자치구는 이라크 전체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부유한 지역에 속합니다. 큰 유전을 차지하고 있거든요. 내전 위험이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격한 전쟁이 일어난 적도 없습니다. 더구나 이라크 전쟁에 휘말리지 않은 덕분에 오히려 살기가 좋다고 할 수 있지요.”

바그다드 시내에는 신호등이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앞에서 오는 차를 피해 핸들을 꺾느라 잠시 말을 멈췄던 아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라산은 현재 쿠르드 자치구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아빌라의 한 호텔에 머물고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그곳까지 모시고 가겠지만 그럴 경우 추가 요금이 필요합니다. 쿠르드 자치구보다는 정작 그곳까지 가는 길이 더 위험하거든요.”

잠시 고민하던 도윤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호텔에 도착하면 라산이 아빌라에서 머물고 있다는 호텔 전화번호를 알려주세요. 그 사람하고 먼저 통화를 해보겠습니다. 통화 결과에 따라 어떻게 행동할지 정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도윤과 석훈은 티그리스 강변에 위치한 5성급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이라크 전쟁 때의 폭격으로 인해 도심이 엉망이 되었다더니 큰 호텔들은 여전히 건재했다. 폭격기의 폭탄이 유적지는 가차 없이 부수면서도 대형 호텔들은 피해갔다는 뜻이었다. 그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아이러니한 상황에 도윤은 그만 혀를 차고 말았다.

호텔에 방을 정하자마자 도윤은 씻지도 않고 먼저 아빌라의 호텔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라산은 호텔에 있었는지 방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누구십니까?”

“아, 저는 한국에서 온 이도윤이라고 합니다. 현재 바그다드에 있습니다. 몇 가지 미술품을 거래하고 싶어서 그런데 혹시 만나서 얘기를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저쪽에서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더니 약간 놀란 목소리로 질문이 날아왔다.

“트루쓰 앤 밸류에서 우승한 이도윤 박사? 그 이 박사가 맞습니까?”

이 사람도 그 프로그램을 봤구나. 도윤은 맥이 빠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습니다. 그 이도윤입니다. 혹시 언제 바그다드로 돌아오실지 알 수 있을까요?”

“당분간은 그곳으로 돌아갈 계획이 없습니다. 미술품을 거래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특별히 염두에 두고 있는 물건이 있습니까?”

이걸 얘기해야 하나? 도윤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냥 솔직히 말하기로 했다. 어차피 그를 통해 구해야 할 물건이었다.

“저는 금속 공예품에 관심이 많습니다. 혹시 황금으로 만든 술병을 가지고 계십니까? 양쪽 면이 납작하게 생긴 물건인데 아마 몇 개가 세트로 되어 있을 겁니다.”

또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뭐야? 무슨 꿍꿍이를 생각하느라 말을 안 해?

“뭘 말씀하시는지 압니다. 그런데 그 물건들을 원한다면 아빌라로 직접 와야 할 겁니다. 나는 이곳에서 사흘 동안 머물다가 터키로 넘어갈 예정이요. 당신이 그 전에 온다면 거래를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지요.”

도윤은 저도 모르게 옆에 있던 아킴을 힐끗 쳐다봤다. 아빌라로 오라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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