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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122화 (122/300)

122화

도윤은 그 자리에서 일행들과 함께 회의를 했다. 석훈은 당연히 아르빌로 가야 한다는 쪽이었다. 녀석의 평소 성격으로 볼 때 귀찮으니 그냥 바그다드에 있자고 할 것 같았는데 조금 의외였다.

“여기까지 귀한 시간 쪼개고 비싼 돈까지 들여서 왔잖아요. 아무런 소득도 없이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는 건 아무래도 아니죠.”

NKS 직원인 양세진은 도윤이 라산을 찾기 위해 이라크에 왔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화랑에 소속된 감정가라고 하니까 막연히 바그다드 인근의 유적지를 탐방할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는 뒤늦게 사실을 알고는 아킴을 슬쩍 째려봤지만 그렇다고 사정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얘기를 들은 양세진은 굉장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바그다드에서 아르빌까지 가는 이라크 국내선이 하루에 세 편 정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비행기를 이용할 경우 저하고 아킴 이외의 다른 경호원들은 동행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드린 돈으로는 아르빌까지 경호하기는 힘들다는 뜻인가요?”

“그럴 리가요. 이라크 내에 한정할 경우 이 박사님 일행이 어디를 가든 저와 아만 시큐어리티는 반드시 동행할 겁니다. 다만 경호의 효율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게 문제에요.”

“경호의 효율성이요?”

“네. 일단 무기를 들고 비행기에 탈 수 없으니 여럿이 가 봤자 별 의미가 없습니다. 여차하면 맨몸으로 부딪쳐야 하는데 어설픈 강도들은 저와 아킴 대장 둘이 가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요. 문제는 총기가 등장할 경우입니다. 그럴 때는 그냥 도망가거나 항복하는 편이 낫습니다. 여럿이 덤벼들었다가는 괜히 희생자만 더 늘어날 뿐이니까요.”

도윤이 석훈을 힐끗 쳐다봤다. 말 그대로 어설픈 강도들이라면 저 녀석 하나만 데리고 가도 충분할 것 같은데…….

세 사람이 한국어로 대화를 하는 바람에 아킴은 한동안 멀뚱멀뚱 지켜보기만 했다. 그는 도윤을 통해 양세진의 의견을 전해 듣고 나서야 원칙적인 동의를 표시했다.

“그렇다면 저와 미스터 양 둘만 동행하는 게 차라리 낫겠습니다. 어차피 저를 제외한 다른 대원들은 쿠드르어를 할 줄 모르거든요. 여러 가지 면에서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겁니다.”

이라크는 아랍어와 쿠르드어 두 가지 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지만, 사실 두 언어는 우리나라 말과 일본어 이상으로 다르다. 심지어 같은 쿠르드족끼리도 지역이 달라지면 말이 통하지 않을 정도였다.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한 도윤은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네 사람만 아르빌로 향하기로 했다. 도착 첫날부터 일정이 꼬이는 셈이었다.

격추가 아닌 추락을 염려해야 할 정도로 불안했던 비행은 다행히 한시간만에 끝났다. 네 사람은 아르빌 공항에서 SUV를 렌트한 뒤 곧바로 라산이 묵고 있는 호텔로 향했다. 하지만 그들은 호텔에 도착해서도 무려 네 시간 넘게 로비에서 하염없이 라산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가 아예 호텔에 없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급한 볼일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비웠습니다. 저녁 시간 전에는 호텔로 돌아갈 예정이니까 거기서 함께 식사나 함께 합시다.”

어제 재차 통화해서 아르빌로 가겠다는 뜻을 밝혔을 때만 해도 분명히 그런 얘기가 없었다. 그런데 정작 아르빌 공항에 내려 호텔로 가는 차 안에서 연락하자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일방적으로 약속 시간을 연기하자고 통보한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만만하게 보인 모양이네. 자기는 급할 게 없다는 건가?”

도윤이 굳은 얼굴로 중얼거리자 양세진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만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나마 라산은 사정을 설명하고 저녁 식사 약속까지 새로 잡지 않았습니까? 보통은 아무런 설명이나 연락도 없이 서너 시간 정도는 태연히 늦게 나타납니다. 이쪽 사람들 시간 개념이 원래 그래요.”

양세진의 설명에 의하면 아랍인들의 세상 태평한 시간 개념은 몇 천 년 전부터 DNA에 각인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일 수도 있지만 이곳 생활에 적응하려면 그러려니 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사람들도 비슷한 경향이 있지만 아랍인들은 대부분 부족 단위로 생활하던 사막 유목민 출신이에요. 문화 자체가 원래부터 시계나 달력과는 무관하지요. 기껏 일정을 잡아놔도 모래폭풍 한 번에 모든 약속이 허망하게 날아가 버리는 게 다반사니까요.”

다시 말해 라산이 도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두세 시간 정도 늦는 건 아예 사과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거라는 얘기였다. 그나마 외국인들과의 접촉이 잦아지면서 예전과는 다른 문화가 조금씩 형성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약속 시간에 철두철미한 비즈니스 마인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라산이 수행원들과 함께 호텔 로비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저녁 여덟 시가 가까워서였다. 약속 장소로 잡은 호텔 식당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서더니 그 중 한 명이 도윤 일행이 앉은 테이블로 다가왔다.

“셰이크 라산을 보러 오신 분들이 맞습니까?”

셰이크는 아랍인 남성 어른을 가리키는 존칭이었다. 남자는 능숙한 영어를 구사했고, 도윤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전통적인 아랍 복장을 한 사십대 후반의 남자가 수행원들을 물리치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와 불쑥 손을 내밀었다.

“바샤르 라산입니다. 이도윤 박사님이시죠?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라산은 아랍 억양이 심하게 섞인 영어를 구사했다. 도윤은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음을 애써 숨기며 활짝 웃음을 지었다.

“이도윤입니다.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짐작했듯이 라산은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자리에 앉은 뒤 진행된 대화에서는 아킴이 통역을 도맡아야 했다. 물론 라산 쪽에도 영어에 능통한 남자가 한 명 있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대화 자체는 무리 없이 진행됐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서로 악수를 나눈 두 사람이 다른 일행과 함께 칸막이가 쳐진 방으로 자리를 옮기는 도중 양세진이 굳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 박사님. 저 친구들 총을 가지고 있는데요.”

아랍의 남성 전통 의상인 ‘쑵’에는 허리 양 옆으로 코란 한 권을 충분히 넣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주머니가 달려 있다. 양세진은 그 주머니의 한쪽이 무겁게 처진 모양을 보고 라산의 수행원들이 권총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래? 도윤은 고소를 머금었다. 잘못하면 오늘 거래가 살 떨리는 대화로 진행되겠군.

* * *

“동남아시아와는 달리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는 우리 문화와 종교가 익숙하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박사가 이슬람의 문화재를 구하러 바그다드까지 왔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깜짝 놀랐습니다. 찾으시는 게 황금 술병이라고 했습니까?”

먼저 대화의 물꼬를 튼 것은 라산이었다. 그는 아주 여유만만한 자세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체 질문을 던졌다. 도윤은 휴대폰을 꺼내 황금낙타 술병의 사진을 띄웠다.

“이게 현재 제가 가지고 있는 겁니다. 라산 씨가 직접 경매에 올렸으니 본인 말마따나 잘 아는 물건일 겁니다. 원래는 여러 개가 한 세트인데 제가 그 중 하나를 이스탄불에서 운 좋게 구했지요. 혹시 지금 나머지 술병도 가지고 계십니까?”

라산은 엷은 미소를 입에 문 채 가타부타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한참동안 손으로 턱수염을 쓰다듬기만 하던 그는 도윤이 답답해질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럴 거라 짐작은 했지만 그게 역시 진짜 술병이었군요. 그 물건은 원래 세 개가 한 세트입니다. 낙타 말고도 말과 늑대 모양으로 된 게 하나씩 더 있지요. 세트를 전부 갖추고 싶으신 겁니까?”

“맞습니다. 혹시 가지고 계시다면 제가 구입하고 싶습니다.”

도윤은 갑자기 입에 침이 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자신이 본 잔류 기억에 의하면 술병은 칭기즈칸 당대나 그 직후에 중동에서 몽골로 전해진 공물이었다. 그는 이 술병들이 칭기즈칸과 관계된 것일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다만 확실한 걸 알기 위해서는 나머지 술병들을 다 모야야 했다. 세 개가 한 세트여서 그런지 황금낙타 술병에 남은 잔류 기억은 희미할 뿐 아니라 토막토막 끊겨 있었던 것이다.

‘이 자는 괜히 허풍을 치고 있는 게 아니야. 진짜로 술병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분명해.’

황금낙타 술병이 말과 늑대 모양의 다른 술병들과 더불어 한 세트라는 건 도윤도 잔류 기억을 통해 비로소 확인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라산이 그 점을 정확하게 언급했다는 것은 그 역시 나머지 두 개를 본 적이 있다는 걸 의미했다.

하지만 잔뜩 달아올랐던 도윤의 기대감은 이어진 라산의 말로 인해 김이 빠져버렸다.

“늑대 모양의 황금 술병이라면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 모양의 술병은 저한테 없어요. 그건 아쉽지만 다른 분에게 팔렸습니다.”

도윤은 라산의 말을 듣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울화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이 자식이 전화할 때만 해도 그런 얘기가 전혀 없더니…….

“세 개가 한 세트로 되어 있는 걸 하나씩 따로 팔았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었어요. 내가 그렇게 판 게 아니니까.”

“그럼 누가 세트를 흩어놓았단 말입니까?”

“애초에 그걸 발굴해서 나한테 팔아넘긴 자가 세 개를 따로따로 팔았어요. 그 친구는 아마 그게 더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아무리 단속이 심하지 않다고는 해도 어쨌든 불법적으로 유물을 발굴해서 파는 거였으니까요. 그래서 일부러 물건을 분산시켜서 추적이 어렵게 한 겁니다. 덕분에 귀한 보물이 짝을 잃고 헤어지게 됐지요.”

“조금 전에 라산 씨가 늑대 모양의 황금 술병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판매자가 물건을 따로따로 팔았다는 건 뭡니까?”

“그 친구한테서 늑대 술병을 산 사람이 마침 저하고 안면이 있는 친구였습니다. 덕분에 적당한 가격에 넘겨받을 수 있었지요. 하지만 말 모양의 황금 술병을 사간 사람은 저도 함부로 접근하기 어려운 인물입니다. 그래서 아쉽지만 세트를 갖추지 못했지요. 어차피 낙타 술병도 이미 경매에 넘긴 상황이라 그냥 포기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저 능글능글한 얼굴을 한 대 후려패고 싶었다. 세트를 갖추기는 개뿔.

도윤은 이스탄불에서 황금 낙타 술병을 18만 유로에 낙찰 받았다. 라산이 그 대가로 얼마나 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는 분명히 예상을 뛰어넘는 수익이었을 것이다. 그 뒤에 혹시나 싶어서 부랴부랴 수소문한 끝에 늑대 술병마저 손에 넣었겠지.

그런데 마침 황금 낙타 술병을 낙찰 받은 도윤이 다른 술병을 찾아 바그다드까지 날아온 것이다. 라산은 지금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럼 지금 제가 살 수 있는 건 늑대 모양의 술병뿐이겠군요.”

도윤의 말에 라산의 표정이 거만하게 변했다.

“그렇습니다. 30만 달러를 내십시오. 그럼 물건을 넘겨드리지요.”

30만 달러면 27만 유로가 넘는다. 라산은 도윤이 18만 유로에 낙타 술병을 낙찰 받았다는 걸 뻔히 알 것이다. 그런데도 대뜸 그보다 한 배 반이나 되는 금액을 불렀다. 도윤은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말 모양의 술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굽니까?”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고 거꾸로 질문을 던지자 라산의 눈썹이 꿈틀댔다.

“그걸 왜 제가 알려드려야 하지요? 뭐 하긴 적당한 사례를 하신다면 여기까지 오신 성의를 생각해서 말씀드릴 수도 있기는 합니다.”

“정부 고위 관리인 모양이군요.”

“호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도윤이 갑자기 찌르고 들어가자 라산이 순간적으로 움찔하는 게 보였다. 그러나 그는 급히 표정을 수습하고 다시 능글맞은 미소를 입가에 흘렸다. 늦었어, 이 자식아.

이라크 같은 나라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돈보다 권력이다. 따라서 라산처럼 닳고 닳은 중개상조차 함부로 접근하기 어려운 상대라면 십중팔구 종교 지도자이거나 정부 고위 관리, 혹은 군 장성일 가능성이 크다고 짐작했다.

도윤은 말 모양 술병을 산 사람이 나름 지위가 있는 수집가일거라는 가정 하에 정부 관리가 아니냐고 슬쩍 넘겨짚었다. 그런데 다행히 라산이 거기에 걸려든 것이다.

그는 일행에게 눈짓을 한 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장자가 정부 관리라면 누구일지 대충 짐작이 갑니다. 이라크 정부 관료 중에서 유물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 분이라면 기껏해야 두세 분 정도밖에 안 되니까요. 번거롭지만 고작해야 전화 몇 통 돌리면 그만인 일입니다. 저도 그 정도 인맥은 있습니다.”

뜻하지 않은 도윤의 행동에 라산의 거만한 태도가 무너졌다. 그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그 분에게 직접 연락하겠다는 거요? 그건 별로 현명한 일이 아닐 것 같은데?”

“글쎄요. 설마 기껏해야 5만 달러밖에 되지 않는 술병을 30만 달러나 주고 사는 것보다 더 멍청한 일이겠습니까? 말 모양 술병의 주인을 찾으면 라산 씨의 안부도 전하겠습니다.”

5만 달러라는 액수는 술병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시장에서 거래할 때의 시세를 짐작해서 말한 것이었다. 그런데 라산의 표정을 보니 대충 맞은 모양이었다. 이래서 안목이 중요하다. 단호하게 몸을 돌리던 도윤은 깜박했다는 듯이 말을 덧붙였다.

“물건을 위탁하셨으니 이스탄불 경매가 특별히 초대받은 VIP들만 참석할 수 있는 자리였다는 것도 아시겠군요. 그럼 저는 어떻게 초대장을 손에 넣었을까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렇죠. 모르시겠죠. 만약 알았으면 감히 바가지를 씌울 생각은 못했을 테니까. 저를 아르빌까지 헛걸음하게 만든 호의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단순한 허풍이 아니었다. 라산도 무언가를 느꼈는지 검은 얼굴이 점점 하얗게 변했다.

도윤은 드라이바인 그룹의 총수인 리히터 회장에게서 초대장을 받았다. 그리고 리히터 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브라힘 왕세제와 잘 아는 사이인 게 분명했다. 그러지 않았으면 그의 비서실장인 압둘이 이스탄불까지 자신을 보러 올 수는 없었을 테니까. 도윤은 압둘과의 만남이 절대로 우연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유물을 사는 게 주목적이었다면 둘째 날 경매에는 참가도 하지 않고 바로 돌아갔을 리가 없지. 그는 나한테 라스푸친의 목걸이를 보여주려고 일부러 온 거야.’

도윤은 일이 잘 안 풀릴 경우 압둘에게 연락할 작정이었다. 한동안 계속 좋지 않았던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는 이란에 대한 미국 제제를 기점으로 다시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브라힘 왕세제의 입김이라면 이라크 정부 관료의 양보를 얻어내는 게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되도록 그쪽과는 엮이고 싶지 않지만 황금 술병을 얻기 위해서라면 할 수 없지.’

찬란했던 명성과는 달리 칭기즈칸과 직접 관련된 유물은 아주 귀했다.

도윤이 정말로 자리를 뜰 기세를 보이자 결국 라산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생각보다 배짱이 좋은 분이었군. 골치 아픈 사람이기도 하고. 좋습니다. 말씀드리지요. 말 모양의 술병은 카딤 장관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옆에 있던 아킴이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현직 외교부 장관인 알리 아드난 카딤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도윤이 라산을 물끄러미 쳐다보자 그가 쓸개를 씹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카딤 외교부 장관이 맞습니다. 그 양반이 술병을 샀어요.”

그걸로 끝이야? 도윤이 여전히 시선을 거두지 않자 라산이 허탈하게 웃었다.

“술병이 5만 달러라는 건 너무 심한 소리요. 그건 내가 사들인 가격에도 미치지 못해요. 10만 유로만 주시오. 그럼 깨끗이 물건을 넘기겠습니다.”

진즉에 그럴 것이지. 도윤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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