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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130화 (130/300)

130화

인부들을 메데인 시내까지 데려다 준 티엔과 도안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것은 해가 완전히 저문 뒤였다. 간단히 저녁 식사를 마친 도윤 일행 네 명은 그때부터 쉬지 않고 동굴을 찾아내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티엔과 도안이 번갈아가며 포크 레인을 이용해 흙을 파냈고, 석훈과 도윤은 파낸 흙은 트럭을 이용해 치웠다.

“속이 빈 곳이 나왔습니다. 동굴인 것 같습니다.”

포크 레인을 조작하던 티엔이 동굴의 발견을 알린 것은 새벽 세 시가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저녁 여덟 시가 약간 넘었을 때부터 작업을 시작한 걸 고려하면 일곱 시간 가량을 쉬지 않고 땅을 파헤친 끝에 얻은 희소식이었다. 사람이 드나들 정도로 구멍이 커지자 도윤과 석훈이 곧바로 준비를 갖추고 나섰다.

“여기서 잘 지키고 있어요. 누가 접근하거나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면 바로 무전 날리고.”

도윤은 티엔과 도안에게 입구에서 경비를 서라고 지시한 뒤 석훈과 함께 둘이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자체는 원래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 같았지만 곳곳에 사람이 손을 댄 흔적이 뚜렷했다. 두 사람은 커다란 회중전등으로 사방을 비추면서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형. 여기 좀 이상한데요? 냄새도 그렇고, 공기가 동굴 속 같지 않아요.”

탐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석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도윤이 느끼기에도 조금 이상했다. 오래된 동굴 안에서는 으레 차갑고 축축한 냄새가 풍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에스코바르의 보물 창고로 짐작되는 동굴의 공기는 오히려 바깥보다 더 건조했다.

“어떻게 된 거지? 오랫동안 밀폐된 상태로 유지되었던 동굴치고는 습도가 너무 낮잖아? 미술품 보호를 위해서는 좋은 징조지만 이럴 수도 있나?”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보기는 어려운데……. 어? 여기 보세요.”

석훈이 회중전등으로 비춘 곳에는 오래된 휘발유 발전기가 놓여 있었다. 발전기에서 뻗어나간 전선들을 따라 회중전등을 움직이자 여기저기 매달린 전등들이 눈에 띄었다.

“정말 본격적인 보물 창고로 만들었던 게 틀림없네.”

도윤은 생각보다 넓고 큰 동굴내부와 곳곳에 설치된 조명장치들을 보며 혀를 찼다. 혹시나 싶어 작동을 시켜봤지만 녹이 잔뜩 슬고 기름까지 말라붙은 발전기는 이미 기능을 잃은 지 오래였다. 두 사람은 오래지 않아 망가진 전구들 밑으로 적지 않은 나무 상자들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무 상자 뒤로는 철제 컨테이너도 두 개나 보였다.

동굴 안의 상자들 가운데 절반가량은 뚜껑이 없었다. 뚜껑이 없는 상자에 다가간 석훈이 미처 말릴 틈도 없이 안에 담긴 흰 결정을 손가락으로 살짝 찍어 맛을 보았다.

“야, 인마! 그게 뭔지 알고 함부로 맛을…….”

“진짜네. 형, 이거, 아무래도 죄다 소금인 것 같은데요?”

도윤이 기겁을 해서 말리려는 찰나, 석훈이 먼저 인상을 찌푸리며 침을 퉤퉤 뱉었다. 급히 다가가 내용물을 확인한 도윤은 이내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도윤의 말마따나 열린 상자 안에 담긴 것들은 죄다 굵은 소금이었던 것이다.

“에스코바르, 이 자식. 생각보다 창고 관리에 신경을 많이 썼네. 그림을 찾으러 온 우리 입장에서는 다행이기는 하지만, 이걸 보면 놈도 상당히 주도면밀했던 것 같아.”

굵은 소금은 가장 대표적인 천연 제습제다. 2차 세계 대전 때 나치가 유럽 전역에서 약탈했던 그림을 가장 많이 숨긴 곳 가운데 하나도 소금 광산이었다. 광산 안의 암염이 습기를 빨아들이는 성질이 있다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감탄은 나중에 하고 일단 보물부터 확인해 보죠.”

석훈이 어깨에 들고 있던 장비들을 바닥에 내던졌다. 삽과 곡괭이, 쇠지레 같은 것들이었다. 두 사람은 먼저 쇠지레를 이용해서 뚜껑이 있는 나무 상자들을 열기 시작했다. 짐작했던 대로, 그리고 기대했던 대로 안에 있는 것들은 모두 소금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첫 번째 상자를 열자마자 석훈이 헉 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떡 벌렸다.

“형. 이거 엄청난데요? 나머지 상자들도 다 똑같다면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은 그냥 옛날이야기에 불과하겠어요. 이 정도면 거기에 나오는 보물 창고에 못지않겠는데요?”

도윤도 같은 심정이었다. 그들이 열어젖힌 첫 번째 나무 상자 안에 노란 색으로 빛을 내는 금괴가 잔뜩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놀란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킨 두 사람은 다른 상자들도 모조리 얼어 젖혔다. 아쉽게도 모조리 금괴가 들어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엄청난 양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숱한 금괴들이 그들의 눈을 어지럽혔다.

“이게 도대체 전부 얼마짜리들이에요? 형. 우리 진짜 대박을 터트린 게 확실해요.”

석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도윤도 침을 꿀꺽 삼키고는 금괴들을 종류별로 들어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상자 안의 금괴는 크기 별로 세 종류가 있었다.

“제일 작은 게 1Kg이고 중간 것은 5Kg, 그리고 가장 큰 건 10Kg인 것 같다.”

“그럼 각각 얼마에요?”

“요즘 시세를 기준으로 하면 순금 1Kg이 대략 6천만 원정도 할 거야.”

그러자 석훈이 가장 큰 금괴를 두 손을 움켜쥐더니 숨 막히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럼 이건 10Kg짜리니까 이거 하나에 6억이라는 소리예요?”

“그렇지. 그런데 이런 게 여기 잔뜩 쌓여 있으니까…….”

전부 합하면 도대체 얼마냐? 도윤도 섣불리 액수가 가늠되지 않았다.

금괴 상자를 제외한 나머지 상자들에는 현찰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역시 100달러와 50달러, 그리고 10달러짜리들로 나뉘어 있었는데, 상자마다 담겨 있는 지폐를 일일이 확인한 석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유로는 하나도 없네요? 전부 다 달러뿐이에요.”

그의 말에 도윤이 허탈하게 웃었다. 유로 화폐가 실물로 시장에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1월부터다. 에스코바르가 이 동굴을 만들었을 때는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석훈이 상자를 하나씩 열어보며 암에 담긴 달러의 총액을 열심히 세고 있는 동안, 도윤은 상자들 뒤편에 놓인 두 개의 커다란 컨테이너를 향해 다가갔다. 철제 컨테이너에는 육중해 보이는 자물쇠들이 달려 있었지만 녹이 잔뜩 슬은 탓에 쇠지레를 걸어서 힘을 주니까 금세 부서졌다. 문을 열고 회중전등으로 안을 살핀 도윤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컨테이너 안에는 여러 겹으로 포장된 물건들이 잔뜩 들어차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포장의 모양이나 물건들이 서로를 짓누르지 않게 조심스럽게 비치된 것으로 볼 때 액자나 조각품들이 분명했다. 도윤은 내용물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포장의 일부를 뜯어 안에 있는 내용물들을 하나씩 확인해 나갔다.

“에스코바르 이 자식, 진짜 엄청나게 끌어 모았네? 이걸 다 돈 주고 샀다면 생전에 얼마나 부자였다는 소리야?”

꽤 긴 시간을 들여 포장의 내용을 꼼꼼하게 확인한 도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짐작했던 대로 포장된 채로 컨테이너 안에 있던 것들은 모조리 그림이나 조각품들이었다. 그런 미술품들이 두 개의 컨테이너 안에 겹겹이 들어차 있었는데 그 가운데 일부는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대가들의 명작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컨테이너 안에서 도윤은 드디어 그토록 찾던 작품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갈릴리 호수의 폭풍우!”

1990년, 가드너 미술관에서 도난당했던 일련의 그림들이 드디어 ‘갈릴리 호수의 폭풍우’를 시작으로 도윤의 앞에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램브란트의 ‘자화상’과 베르메르의 ‘콘서트’가 살짝 뜯긴 포장 아래에 곱게 보존되어 있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보존 상태도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그 점에 대해서는 에스코바르에게 감사를 하고 싶을 정도였다.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컨테이너 안의 작품들을 확인한 도윤은 마치 탈진한 듯한 피로감을 느꼈다. 컨테이너 안에 있는 도난 미술품들은 가드너 미술관에서 나온 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과거 도난당한 뒤에 지금까지 실종 상태로 남아 있던 미술품들이 적지 않게 섞여 있었던 것이다.

“이것들을 다 돌려주려면 골치깨나 아파야겠네. CIA가 과연 자기나라 것이 아닌 작품들을 얌전히 원주인들에게 돌려줄까?”

새삼 걱정이 들었다. CIA는 결코 정의로운 국가 기관이라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통계에 의하면 매년 영국 한 곳에서만 도난당하는 미술품들의 가격이 보통 3억 파운드에 달한다. 전 세계적으로는 피해 액수가 해마다 100억 달러에 근접할 정도다. 게다가 더 심각한 문제는 도난당하는 미술품들의 수와 가격이 갈수록 더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도난당한 미술품들이 다시 시장에 나올 때까지는 보통 10년 정도가 걸리지. 그래도 영영 소식이 없는 것들이 있어서 죄다 어딜 갔다 했더니 에스코바르가 사들인 게 꽤 되네.”

물론 여기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도난 미술품들이 각국의 부호나 권력자들의 거실과 서재, 침실 등을 장식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에스코바르 역시 막연히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열심히 미술품을 긁어모았던 게 분명했다. 그가 예술을 사랑했다는 기록은 없으니 원래는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에 필요에 따라 조금씩 유통시킬 생각이었을 것이다.

도윤과 석훈은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을 동굴 안에 머물러야 했다. 그만큼 에스코바르의 보물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것들의 양과 수가 예상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컨테이너 안에는 미술품들 외에도 검은색의 가방이 각각 두 개씩 들어 있었다. 첫 번째 컨테이너에서 나온 두 개의 가방은 모두 납작했는데, 도윤이 그것들을 열자 뒤에서 보고 있던 석훈이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다이아몬드와 루비, 사파이어 등등. 가방 안에 있는 격자 형태의 칸막이들 안에 온갖 보석들이 주머니에 담긴 채로 들어 있었다.

“이거 하나만 민아한테 주면 프로포즈용으로 딱일 텐데…….”

물론 그렇겠지. 그리고 넌 아마 프로포즈가 끝나는 대로 교도소에 가게 될 거야. 도윤은 재빠릴 가방을 닫고 두 번째 컨테이너 안에 들어 있는 두 개의 가방을 열었다. 그것들은 보석 가방과는 달리 상당히 두툼했는데, 이번에는 석훈이 아니라 도윤이 신음을 내뱉었다.

“이건……. 이건 좀 고민을 해봐야 하겠는데.”

두 번째 컨테이너 안에서 나온 두툼한 검은 가방들 안에는 미국 재무부 채권, 흔히 미국 국채라고 하는 것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 * *

미국에서 발행되는 채권들 가운데 연방 정부, 정확히는 미국 재무부가 발행 주체가 되는 것을 흔 국채, 혹은 재무부 채권이라고 부른다. 가장 신뢰성이 높은 채권일 뿐만 아니라 공개 시장에서 가장 활발히 거래되는 채권이기도 하다.

미국 국채가 지니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역시 액면가가 크다는 점이다. 만기가 1년 미만이고 이자조차 없는 T-Bills만 하더라도 최소 액면가가 1만 달러였는데, 그나마 그것이 미국 국채 가운데 가장 액면가가 작은 것이었다.

T-Bond, 즉 만기가 10년 이상짜리인 장기 국채의 경우에는 최소 액면가가 10만 달러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두 개의 검은 가방들 가운데 하나에는 만기 30년짜리가, 그리고 다른 하나에는 만기가 정해지지 않은 영구채가 가득 들어 있었다. 게다가 양쪽 모두 액면가가 100만 달러였다. 그런 고가의 채권이 두 개의 가방에 가득 들어 있었던 것이다.

“형. 그거 숫자가 잔뜩 씌여 있는데 무슨 주식 같은 거예요?”

석훈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내뱉은 소리를 들은 도윤은 저도 모르게 가방을 탁 닫았다. 잠시 멍한 표정으로 가방을 쳐다보던 도윤이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석훈아, 우리 진짜 로또 맞은 것 같다. 아니지. 이건 로또에 비교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도윤의 목소리가 저절로 떨렸다. 에스코바르 이 자식, 도대체 얼마나 부자였던 거야?

1989년, 포춘 지는 콜롬비아의 마약왕인 에스코바르를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부유한 인물로 선정했다. 당시 포춘 지가 추정했던 그의 재산은 요즘 가치로 환산할 때 대략 350억 달러 정도 된다. 문제는 마약 거래의 특성 상, 그 많은 돈의 대부분이 현찰로 들어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에스코바르도 생전에 그 돈을 보관하는 문제를 놓고 골머리를 앓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만한 채권을 모으는 것만 해도 상당히 힘든 일이었을 텐데.”

에스코바르가 건전한 일반 기업의 오너였었다면 떳떳하게 채권 시장을 통해 국채를 매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약왕으로 알려진 그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공개적으로 국채를 사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도윤도 그가 주로 그림이나 금괴 등에 투자했을 거라 짐작했는데, 막상 동굴을 뒤져보자 그게 착각이었다는 게 드러났다.

“형. 이게 다 채권이라는 거예요? 그거 회사나 나라에서 발행하는 증권 아니에요? 근데 아까 얼핏 보니까 숫자가 상당히 큰 거 같던데 그럼 이게 다 얼마예요?”

“정확한 액수는 세어봐야 알겠지만 대충 봐도 10억 달러는 될 것 같다.”

“얼마라고요? 아니 이만한 가방 안에 어떻게 그런 큰돈이 들어가요?”

“이 채권 한 장 한 장이 모두 100만 달러짜리야. 그거 100장 한 묶음이면 벌써 1억 달러잖아. 채권의 크기가 지폐보다는 훨씬 크지만 그래도 가방 두 개에 들은 게 최소 천 장은 넘을 거 같아. 이 정도면 미국에서 로또에 당첨돼도 만질 수 없는 돈이다.”

미국에서 가장 큰 두 개의 복권이 메가밀리언과 파워볼이다. 하지만 그 두 복권의 당첨금을 모조리 합해도 13억 달러가 조금 넘는 정도다. 그만 해도 우리나라 돈으로는 1조가 훨씬 넘는 액수이기는 하지만 지금 눈앞의 가방 두 개에 들어 있는 돈은 어쩌면 그보다 많을 것 같았다. 도윤은 생각지도 못했던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직면하자 기가 막혔다.

에스코바르가 벌여들었던 돈의 액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떠돈다. 그가 벌어들인 지폐를 묶기 위한 고무줄을 사는 데만 매주 1000달러가 들었다느니, 창고에 쌓아둔 지폐들 가운데 쥐가 갉아먹거나 물에 젖어 못 쓰게 된 것만 매년 20억 달러가 넘는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런데 동굴에서 발견된 물건들을 보자 그게 모조리 사실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근데, 형. 이거 다 어떻게 할 거예요? 진짜로 전부 CIA에 넘길 거예요?”

석훈의 질문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이 들면서 조금씩 현실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럼 어떻게 하자고? 여기 있는 것들을 전부 옮기려면 우리가 가진 트럭으로는 어림도 없어. 이걸 밖으로 꺼내는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닐 거다.”

공사 현장에는 현재 세 대의 트럭이 있었다. 하지만 미술품이 들어찬 컨테이너만 해도 두 개나 되는데다 금괴가 들어있는 나무 상자들의 무게 또한 장난이 아닐 것이다. 트럭 세대로는 절반도 옮기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림은 임자가 있는 것들도 많으니까 깨끗하게 포기합시다. 금괴도 우리가 몰래 챙겨봤자 기껏해야 한 상자도 되지 않을 테니까 역시 다 넘기는 게 나을 거예요. 하지만 보석하고 채권은 얘기가 다르잖아요. 이건 우리도 좀 챙기는 게 낫지 않아요?”

“부자가 되고 싶으냐?”

“어디서 철 지난 영화 대사를. 당연하죠. 세상에 가난하게 살고 싶은 사람도 있어요?”

도윤은 고민에 잠겼다. 보석은 한두 개 정도라면 모를까, 이 정도 양을 가지고 가봤자 처리하는 것 자체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금씩 판다고 해봤자 어차피 꼬리가 밟힐 위험성이 컸다. 그는 보석이 든 가방을 열었다.

“이 중에서 네가 가장 마음에 드는 거 두 개만 챙겨라. 딱 두 개야.”

“형은요?”

“난 적어도 주머니 하나는 챙겨야지. 각자 처분할 수 있는 양 만큼만 들자.”

석훈은 잠시 입을 삐죽 내밀었지만 이내 피식 웃더니 가방 안에서 다이아몬드 하나와 루비 하나를 각각 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래도 아주 개념이 없지는 않은지 나중에 문제가 될 정도로 큰 것을 고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만 해도 몇 캐럿은 되어보였다. 도윤은 주머니를 일일이 확인한 뒤에 그 중 하나를 통째로 집어 들었다.

“이건 어떻게 할 거예요?”

석훈이 채권이 든 가방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좀 계획을 짜야 하겠는 걸? 그때부터 도윤의 머리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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