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금요일 저녁. 메데인 시내. 저녁 시간이 가까워질 때까지 발굴 현장에 매달려 있던 도윤이 약속 장소인 호텔 커피숍에 들어서고 있었다. 텐트에서 잠시 토끼잠을 자기는 했지만 부스스한 머리카락과 충혈된 눈은 한가하게 관광을 온 여행객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클레이튼 커쇼?”
두 명의 백인 남자가 앉아 있는 자리로 다가간 그가 먼저 상대의 신분을 물었다. CIA 국가비밀정보국에 소속된 팀장 폴 아담스는 잘 생긴 동양 남자를 힐끗 올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이도윤 박사님이시죠? 만나서 반갑습니다.”
호의적인 태도이기는 했지만 아담스는 자신의 본명을 밝히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옆자리의 사람을 소개하지도 않았다. 너를 영웅으로 대우할지, 아니면 범죄자로 간주할지는 앞으로 나눌 대화의 내용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듯한 분위기였다.
‘뭐야? 눈치로 봐서는 저쪽이 더 상관인 것 같은데? 누구지?’
도윤은 아담스의 곁에 앉아 있는 오십대의 중년 남자를 힐끗 쳐다봤다. 하지만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일 뿐 인사는커녕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도윤 역시 굳이 그에 대해 묻지 않고 그냥 자리에 앉았다.
“가드너 미술관에서 오래 전에 도난당했던 작품들을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림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위치를 아시는 건가요, 아니면 직접 가지고 계신 건가요?”
폴 아담스의 목소리는 낮지만 위협적이었다. 도윤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림은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림의 행방을 묻기 전에 먼저 서로 해야 될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아담스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가 도로 펴졌다.
“원하시는 조건이 있습니까? 말씀하시지요. 최대한 적극적으로 고려하겠습니다.”
“적극적으로 고려하겠다는 건 제 요구를 위에다 전달하겠다는 겁니까, 아니면 당신에게 재량권이 있다는 뜻입니까?”
“그건 이 박사가 뭘 원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어지간한 요구는 제 선에서 승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권한을 넘는 요구를 하실 경우 아무래도 상부에 보고하고 논의를 거쳐야 하겠지요. 물론 조건이 지나치게 과하면 이 만남 자체가 무의미해질 겁니다.”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대화의 출발로서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가드너 미술관에서 잃어버린 그림은 모두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운이 좋아 도둑이 그림을 보관해 놓은 창고를 발견할 수 있었지요. 모든 그림이 완벽한 상태는 아니지만 특별히 손상된 곳은 없습니다. 약간의 복원 작업을 거치면 완벽하게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겁니다.”
아담스는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도윤의 말이 사실이라면 가장 걱정하던 문제 하나가 일단 해결된 셈이었다.
“그림들을 돌려받을 수 있겠습니까? 미술사 박사에다 뛰어난 감정가이기도 하시니까 그 작품들이 미국 국민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 애초에 그러려고 이 자리까지 나온 거니까요. 그런데 그것들만 가져가시려고요? 제가 분명히 화물기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아담스가 무심코 의견을 묻기 위해 옆에 앉은 중년의 신사를 쳐다봤다가 얼른 다시 고개를 돌렸다. 실수했군. 그는 속으로 자책하면서 질문을 던졌다.
“가드너 미술관의 그림들이 발견된 장소에 다른 작품들이 더 있나 보군요. 화물기가 필요할 정도라면 수가 꽤 많은가 봅니다?”
“그렇습니다. 그림과 조각을 합해서 대략 150점 가량 됩니다. 정확히는 154점이지요.”
순간 아담스의 옆에서 커피를 마시던 중년 남자가 조용히 잔을 내려놓았다. 그의 눈이 잠깐 동안 매섭게 도윤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도윤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가드너 미술관은 잃어버린 그림에 대해 천만 달러의 현상금을 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미술품들 역시 저 같은 일반인이 찾아 주인에게 돌려줄 경우 가격의 일부를 보상금으로 받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이번 경우에는 어떻습니까? 제가 얼마나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참고로 발견된 미술품들의 주인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을 겁니다.”
그림이 도난당한 뒤, 가드너 미술관에서 처음에 내건 상금은 오백만 불이었다. 그러나 몇 년 전, 현재의 관장이 새롭게 취임하면서 상금이 두 배인 천만 불로 올랐다. 폴 아담스는 일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나라마다 법이 다 다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도난 물품을 되찾아줄 경우 물건 값의 5~20% 정도를 보상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이 자발적으로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을 경우 소송을 하셔야 될 겁니다. 말씀대로 미술품의 주인들이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다면 굉장히 길고 지루한 법정 싸움이 되기가 쉽겠죠.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솔직히 대답을 하기는 했지만 아담스는 도윤이 소송을 무릅쓸 가능성이 많을 거라 생각했다. 상대는 뛰어난 감정가다. 자신이 획득한 그림의 시세 정도는 이미 파악했을 테니, 저렇게 말한다는 건 본인이 감정한 가격이 상당히 높다고 판단을 내린 게 틀림없었다.
‘특별히 돈을 밝힌다는 소문은 없었는데? 자료가 잘못 된 건가?’
아담스는 이 자리에 오기 전에 당연히 이도윤이라는 인물에 대해 미리 조사를 했다. 소더비에서 경매에 붙여졌던 고흐의 해바라기가 원래 그에 의해 발굴됐다는 내용을 보고 깜짝 놀라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돈과 관련해서 특별한 범죄사실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순간, 그는 오늘의 대화가 굉장히 힘겹게 진행될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도윤의 입에서 또 다시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 튀어나왔다.
“미술품이 발견된 장소에 그림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다량의 금괴와 보석, 현찰은 물론이고 미국 국채도 함께 발견되었지요. 그 양이 제법 됩니다. 이걸 제가 순순히 돌려드릴 경우 범죄수익 환수에 따른 포상금을 받을 수 있지 않습니까?”
“범죄 수익 환수라고요? 말씀하신 그림과 금괴 같은 것들이 모두 범죄 수익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마 그럴 겁니다. 제가 발견한 게 마약왕으로 유명했던 에스코바르의 비밀 창고거든요.”
이번에는 아담스뿐만이 아니라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중년 신사마저 더 이상 태연한 척 할 수가 없었다. 에스코바르라고? 정말 그 에스코바르?
두 사람은 다른 곳도 아닌 CIA의 국가비밀정보국 소속이었다. 에스코바르가 죽기 전에 얼마나 많은 돈을 모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에스코바르가 남긴 비밀 창고라면 도대체 그 안에 뭐가 얼마나 있을까? 상상만 해도 저절로 입에 침이 말랐다.
아담스와 그의 일행이 보이는 반응을 살피던 도윤도 억지로 냉정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기는 하지만 속으로 긴장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동굴 안에 있는 엄청난 양의 미술품과 금괴 등을 발견한 뒤에 그는 많은 경우의 수를 따지며 고민에 또 고민을 거듭했다. 미술품은 몰라도 금괴와 보석, 채권 등은 솔직히 임자가 없는 물건이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그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월요일이 되면 인부들이 다시 이곳으로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이 많은 물건을 원하는 곳까지 옮긴다는 건 솔직히 불가능했다. 게다가 이걸 한국까지 몰래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아예 전무했다. 괜히 욕심을 부리다가는 오히려 범죄자로 몰리기 십상일 것이다. 그는 동이 틀 때까지 고민을 하다 결국 결론을 내렸다.
‘자, 난 솔직히 털어놓았으니까 이제 당신들의 카드를 보여줄 차례야.’
도윤과 아담스의 눈빛이 허공에서 한참 동안 부딪쳤다. 그때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중년 신사가 불쑥 입을 열었다.
“정말 물건을 발견한 곳이 에스코바르의 창고가 맞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셨죠?”
도윤의 시선이 중년 신사에게로 향했다. 드디어 당신이 나서는 건가?
“그렇게 물으시는 분은 누굽니까? 옆에 계신 분이 클레이튼 커쇼라고 했으니 다저스 팀의 감독이라도 되시나요? 아니면 구단주?”
그의 말에 중년 남자가 가볍게 혀를 차더니 명함을 하나 꺼내서 건넸다.
“CIA의 국가비밀정보국 국장 타일러 보이드입니다. 옆에 있는 친구도 커쇼가 아니라 폴 아담스라고 우리 부서의 팀장이지요.”
도윤이 살짝 눈을 치켜떴다.
“국장님께서 직접 오셨을 줄은 몰랐네요? 그럼 이제부터 보이드 국장님과 의논하면 되는 겁니까? 국장님이면 결정 재량권도 더 크겠군요.”
“이번에 제가 따라온 것은 사실 개인적인 관심 때문이었습니다. 가드너 미술관의 관장과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거든요. 원래는 웬만하면 나서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됐으니 우리 솔직하게 얘기해 보죠. 그 창고의 주인이 에스코바르라고 생각한 이유가 뭡니까?”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콜롬비아에서 그만한 액수의 물건을 가지고 있을 만한 사람이 에스코바르밖에 더 있습니까? 제가 콜롬비아 사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은 생각나지 않더군요.”
“에스코바르 말고는 창고의 주인으로 생각할 만한 사람이 없다라……. 안에 있는 물건들의 액수가 상당히 큰가 보군요. 아까 금괴를 말씀하셨는데 양이 어느 정도 되던가요?”
도윤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는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에야 입을 열었다.
“한 상자에 200Kg 정도의 순금이 담긴 상자가 대략 50개 정도 됩니다. 무게로만 따지면 1톤이 약간 넘지요.”
어지간한 보이드 국장도 생각지도 못한 금괴의 양에 입을 크게 벌릴 수밖에 없었다. 끊임없이 시세가 변동하기는 하지만 순금 1Kg의 가격은 대략 48,000달러에서 50,000달러 정도 된다. 1톤 남짓이면 액수로 5억 달러 가량의 순금이 창고에 쌓여 있다는 얘기였다.
도윤은 두 사람의 반응을 살피면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제가 화물기를 동원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습니까? 포장 때문에 부피는 그림이 더 크겠지만 무게는 금괴가 압도적입니다. 아마 한꺼번에 물건들을 옮기려면 트럭도 더 필요할 거예요. 저희가 가진 트럭이 네 대 뿐이거든요.”
“보석하고 현찰, 채권 같은 것들은요? 그건 얼마나 있습니까?”
“보석에 대해서는 저도 시세를 모르기 때문에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말씀드리기 어렵군요. 하지만 다이아몬드만 하더라도 1캐럿이 넘는 것들이 수두룩했습니다. 정확한 무게와 개수는 나중에 직접 보고 확인하시지요. 현찰은 생각보다 많은 편이 아니지만 채권은 총액이 정확히 1억 달러입니다.”
보이드 국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아무리 국장이라고 해도 자신의 손에서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도윤이 말한 것들을 다 합하면 못해도 시가가 십억 달러를 가볍게 넘는다. 그는 상대가 그만한 물건을 넘겨주는 대가로 원하는 게 무엇일지 가늠하기조차 두려워졌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까 조건이 있다고 했는데 우리한테 원하는 게 뭡니까?”
도윤은 맞은편에 앉은 두 사람에 들키지 않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모두 세 가지입니다. 제가 한국 사람인 건 아시죠? 일단 미술품 중에 우리나라 문화재가 두 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림과 금동 불상이 각각 한 점씩 있지요. 둘 다 크기가 제법 큰데, 특히 불상은 제 상반신 정도 크기에요. 그 두 점을 제가 한국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
“이 박사의 상반신 크기라면 무게가 보통이 아니겠군요.”
“그렇다고는 해도 금의 양 자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속이 비어있는데다 그 정도 크기의 불상을 순금으로 제작할 경우 모양을 유지하기가 힘들거든요. 황동을 많이 섞은 겁니다.”
보이드 국장과 아담스가 서로를 쳐다봤다. 보이드 국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대신 아담스가 질문을 던졌다.
“다른 조건들은 뭡니까?”
“가드너 미술관에서 내건 현상금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대신 제 신분을 밝히시면 안 됩니다. 그 외의 다른 그림에 대해서는 일체 보상을 원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아마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원래부터 도난당한 미술품을 발견한 사람을 위해 내건 현상금이었으니까요. 신분을 숨길 경우 세금을 매길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기겠지만 그건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세 번째 조건은요?”
“이번에 발견된 미국 국채를 저에게 주십시오. 그게 마지막 조건입니다.”
이번에는 보이드 국장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도윤의 말이 사실이라면 채권 총액이 무려 1억 달러였다. 그만한 액수의 돈을 주겠다는 약속은 그의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던 도윤이 조금 더 단호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모르긴 해도 창고에 있는 물건들의 총액은 10억 달러가 훨씬 넘을 거예요 그만한 액수의 물건을 미국 정부에게 넘겨주는 대가로 저는 10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 보상금을 원하는 겁니다. 만약 그것도 어렵다면 저 역시 굳이 콜롬비아 정부와 원수질 필요가 없겠죠.”
보이드 국장의 안색이 변했다.
“물건을 콜롬비아 당국에 넘기겠다는 뜻입니까?”
“어차피 제가 갖지 못할 물건이라면 그게 누구 손에 들어가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아무리 콜롬비아 정부가 한심한 상태라고 해도 설마 미술품을 훼손하지는 않겠지요. 게다가 저는 물건을 오래 쥐고 있을 형편이 못 됩니다. 곧 한국으로 떠나야 하거든요. 그 전에 모두 처리해야 합니다.”
도윤의 말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월요일이 되면 인부들이 현장으로 돌아온다. 그때까지 물건을 옮기지 못하면 동굴의 존재가 외부에 알려질 수밖에 없고, 그럼 콜롬비아 당국이 에스코바르가 남긴 모든 걸 차지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인부들이 먼저 도둑으로 돌변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범죄 조직이 치고 들어올 가능성도 있다.
‘그러느니 차라리 콜롬비아 당국에 먼저 신고하는 게 낫지.’
그럼 모든 걸 뺏기겠지만 적어도 그림들을 보존할 수는 있을 것이다.
보이드 국장은 도윤의 눈을 보면서 여러 가지 경우를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그가 괜한 허풍을 떠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저희가 비용을 댈 테니 이 호텔에서 묵으시지요. 상부와 의논해서 최대한 빨리 이 박사의 요구를 받아들일지의 여부를 결정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CIA 핵심부서 국장의 상부라면 도대체 누굴까? CIA 전체를 총괄하는 원장? 아니면 설마 대통령? 도윤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기다릴 수 있는 건 내일 저녁까지입니다. 그 전에 연락이 오지 않으면 제 나름대로 일을 진행시키겠습니다.”
도윤은 현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석훈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몇 가지 지시를 내린 뒤, CIA에서 제공한 객실에 투숙했다. 마음 같아서는 석훈도 이 자리에 데려오고 싶었지만 녀석은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건 티엔과 도안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한쪽은 느긋한 반면, 다른 한쪽은 몹시 초조하고 분주했던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이 됐다. 폴 아담스가 도윤의 방문을 두드린 것은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뒤였다. 도윤이 문을 열자 보이드 국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아담스가 처음 보는 남자 한 명과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상부에서 이 박사의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세 가지 모두 말입니다.”
도윤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상부라는 건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을 말하는 겁니까?”
“CIA의 결정입니다. 우리는 이번 일에 대해 자체적으로 판단을 내렸고, 그에 따라 아무런 차질 없이 작전이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문서로 된 약속 같은 건 없습니까?”
“이런 일에 문서로 된 약속 같은 게 필요합니까? 그런 건 이 박사를 오히려 더 위험에 빠트리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번 일은 서로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진행되는 겁니다. 이 박사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한 게 아닙니까?”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아담스의 말이 전적으로 옳았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