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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134화 (134/300)

134화

정사에 구선(龜船), 즉 거북선에 대한 기록이 처음 나오는 것은 태종실록이다. 태종 15년(1415년)에 “거북선의 법은 많은 적과 충돌하여도 적이 능히 해하지 못하니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계책이라고 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이 기록은 흔히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거북선이 적군의 배와 부딪쳐서 그것을 깨트렸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적선과 충돌해도 상대 병사들이 이쪽으로 넘어올 수 없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게 맞다. 다시 말해 거북선은 일종의 돌격선 역할을 하면서 상대의 진형을 교란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는 뜻이다.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선조 29년(1596년)에는 "사면을 판옥(板屋)으로 꾸미고 형상은 거북등 같으며 쇠못을 옆과 양머리에 꽂았는데, 왜선과 만나면 부딪치는 것은 다 부서지니, 수전에 쓰는 것으로는 이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라는 설명이 나온다. 도윤은 이것 역시 현장을 목격한 적이 없는 문관이 임금에게 과장된 보고를 한 것으로 보았다.

“거북선은 조선 시대의 판옥선을 기본으로 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배 앞면이 평평해. 아무리 튼튼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그런 배로 충돌을 이용해 적선을 부숴버리는 건 무리지. 게다가 일본 수군은 상대 배에 접근한 다음에 병사들을 건너보내 백병전을 벌이는 게 장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순신 장군이 상대가 자신의 장기를 발휘할 수 있는 전술을 썼겠어?”

도윤은 거북선이 철갑선이었다는 말도 믿지 않았다. 실제로 선조실록은 물론이고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도 거북선이 철갑선이었다는 기록은 없다. 철이 극도로 부족했던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정말로 거북선의 등을 모조리 철갑으로 덮었다면 그에 대한 언급이 없었을 리가 없다는 게 도윤의 생각이었다.

다만 고종 때 조선에 왔던 호머 헐버트는 ‘대한제국멸망사’를 쓰면서 이순신 장군이 ‘거북이 모양과 비슷하게 생긴 기묘한 철갑선을 발명했다’고 적었다. 도윤은 이에 대해 헐버트가 당시 민간에서 떠돌던 이야기를 옮겨 적었을 뿐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다만 고종 당대에 우리나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거북선의 철갑선 설이 유포되어 있었던 같기는 하다.

거북선의 갑판 구조가 2층이었느냐, 3층이었느냐, 아니면 2.5층이었느냐는 데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이견이 존재한다. 임진년(1592년) 6월 14일, 이순신은 사천포에서 왜군을 무찌른 뒤 선조에게 ‘당포파왜병장(唐浦破倭兵狀)’이라는 장계를 올린다. 여기서 그는

“일찍부터 섬 오랑캐가 침노할 것을 염려하여 특별히 구선(龜船)을 만들었습니다. (중략) 이번 싸움에 돌격장으로 하여금 적선 속으로 먼저 달려 들어가 천자포, 지자포, 현자포, 황자포 등 각종 총통을 쏘게 했습니다.”

라고 적었다. 이 장계대로라면 거북선 역시 배 옆구리에서 각종 포를 쐈다는 뜻이 되는데,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갑판이 3층 구조로 되어 있어야 한다. 노를 젓고, 포를 쏘고, 덮개를 덮은 채로 전투를 하는 부분이 각각 분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간단한 기록을 바탕으로 한 추론에 불과할 뿐 명확한 증거자료는 될 수 없다.

도윤의 설명을 듣던 석훈이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손뼉을 짝 하고 쳤다.

“이 그림에도 확실히 거북선이 3층 구조로 되어 있네요. 이게 정말 임진왜란 당시에 그려진 거라면 거북선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첫 번째 자료가 되겠네요?”

“맞아. 그리고 거북선의 덮개가 쇠가 아닌 나무판으로 되어 있다는 증거도 될 거야. 솔직히 당시에는 노를 저어서 배를 움직였는데, 등에 철갑을 씌우면 배가 너무 무거워져서 기동력이 떨어질 거야. 그렇게 느린 배를 어떻게 돌격선으로 쓰겠냐?”

그림 속에 묘사된 배는 나무판을 물고기 비늘이나 기와지붕처럼 덧댄 덮개를 쓰고 있었고, 군데군데 날카로운 쇠꼬챙이를 꽂아놓았다. 덮개 한 가운데에 십자 형태로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을 낸 것도 특이했다. 아마 쇠꼬챙이를 무릅쓰고 기어오르는 적을 떨어트리거나 적선에서 던진 밧줄을 걷어내기 위해 만든 통로인 듯 했다.

한참 동안 신기한 물건을 구경하듯 그림을 살펴보던 석훈이 문득 혀를 찼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도 참 황당하네요. 전쟁터에서 싸우기도 바빠 죽겠는데 이런 그림까지 그리고 있을 정신이 어디 있어요?”

“그 사람들은 전국 시대 때부터 이미 종군 화가들이 전쟁터를 쫓아다녔어. 그래서 당시의 전투 장면이나 부대의 진형 같은 것들이 아직까지 그림으로 많이 남아 있지.”

“아무튼 이 그림이 진품이라면 역사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굉장하겠네요. 그래서 형도 동굴에 있는 미술품들 가운데 이걸 꼭 집어서 달라고 했던 거예요?”

“개인적인 관심사이기도 했어. 진짜 거북선의 모습이 어땠을지 오래전부터 궁금했거든. 그러다 에스코바르의 동굴에서 이 그림을 봤을 때 이거다 하는 생각이 딱 들은 거지. 사실 이건 누구보다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귀중한 역사 기록이잖아.”

“이거 팔면 가격이 만만치 않겠죠?”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사료로서의 가치는 엄청나니까 돈으로 따지면 아무래도 비싸겠지. 그래도 팔 생각은 없어. 대신 나중에 다른 연구자들에게도 공개해서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검토하게 할 거야. 이건 그렇게 하는 게 맞아.”

사실 현찰이나 다름없는 국채를 10억 달러 이상 얻기는 했지만, 도윤 스스로는 에스코바르의 동굴에서 얻은 것들 가운데 눈앞의 거북선 그림을 가장 큰 수확이라고 여겼다. 이 그림이 공개되면 학계에 만만치 않은 파장을 미칠 게 분명했다.

* * *

다음날 오후, 법무법인 대동의 변호사 노영태가 도윤의 연락을 받고 집으로 찾아왔다. 조명근의 추천을 받아 도윤의 전담 변호사로 선임된 그는 미국에서도 변호사 자격을 받았을 뿐 아니라 오랫동안 기업과 금융에 관련된 일을 맡아왔다.

“이게 다 뭡니까?”

하지만 그런 그도 자신의 눈앞에 놓인 엄청난 액수의 미국 국채를 보고는 일순 할 말을 잃었다. 평소답지 않게 약간 얼이 빠진 듯한 그를 보며 도윤이 용건을 밝혔다.

“원래는 제가 사무실로 찾아가는 게 맞지만 보시다시피 함부로 들고 다니기가 어려운 물건인데다 남들이 알면 곤란할 것 같기도 해서 직접 오시라고 했습니다.”

“그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물건이군요. 이게 도대체 전부 얼마입니까? 액면가 100만 달러짜리 국채가 이렇게 많으면…….”

“정확히 10억 달러입니다. 이걸 적절하게 분산해서 예치하거나 투자하기 위해 노 변호사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10억 달러라는 말을 듣는 순간 노영태는 저도 모르게 끙 하고 신음소리를 내었다. 한참동안 눈앞에 쌓인 국채 뭉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저야 이 박사님의 전담 변호사니까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하지만 먼저 솔직히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이 국채들이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게 맞습니까?”

“정당함의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합법적으로 취득한 건 맞습니다. 누구도 제가 이 국채를 소유했다는 사실에 대해 시비를 걸 거나 따질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이걸 처분하는 작업은 되도록 은밀하게 진행시켜야 합니다. 아무래도 액수가 굉장히 크니까요.”

합법적이라는 말을 할 때 살짝 켕기기는 했다. 특히 나중에라도 콜롬비아 정부나 CIA가 이 국채의 존재에 대해서 알면 단순히 시비를 거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공산이 컸다. 하지만 도윤은 그냥 밀고 나가기로 했다. 지금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선량한 취득자의 역할을 자처하는 게 아니라 이 국채를 되도록 은밀하고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일이었다.

노영태는 국채를 앞에 놓고 긴 시간을 궁리했다. 도윤으로부터 국채를 얻게 된 과정을 간략하게 전해들은 그는 무엇보다 비밀 유지가 중요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가 제시한 방법은 되도록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가급적 액수를 잘게 쪼개서 처분하는 것이었다.

“홍콩과 싱가포르에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알게 된 로스쿨 동기들이 있습니다. 둘 다 로펌에 소속되어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그 회사들은 로펌이라기보다는 투자 컨설팅 회사에 더 가깝습니다. 아무래도 그 친구들에게 협력을 부탁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외국 투자 회사들을 통해 국채를 처리한다는 말입니까?”

“물론 이 박사님 이름으로 직접 돈을 맡길 수도 있지만 그건 추천 드리지 않겠습니다. 세금이 많이 나올 뿐만이 아니라 은밀하게 국채를 처리하는 것도 불가능해 지니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간단히 설명하자면 먼저 케이먼 군도나 아일랜드 같은 조세 회피 지역에 역외 금융 센터에 해당하는 사모 펀드 회사를 설립하는 게 먼저입니다. 그리고 그 회사 이름으로 홍콩이나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에 투자 회사를 세우거나 기존의 작은 투자 회사들을 인수하는 거지요. 그러면 그 투자 회사들이 비로소 이 박사님이 원하는 방식으로 투자를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미국 국채를 단계적으로 매각하게 되고요?”

“네. 기본적으로는 적당한 회사의 주식을 사고팔면서 국채를 현금으로 바꿀 겁니다. 그러면 그렇게 만들어진 돈이 조세 회피지역에 세운 사모 펀드 회사로 모이는 거지요. 그럼 이 박사님이 그 회사의 계좌에 있는 돈을 필요할 때 꺼내 쓰시면 됩니다.”

“애초에 사모 펀드 회사를 여러 개 만들면 액수를 분산시킬 수도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10억 달러나 되는 국채를 안정적으로 투자하면서 현금화시키는 데는 그 방법이 비교적 무난합니다. 비밀을 유지하기도 쉽고요.”

도윤은 잠시 고민했다. 중간에 새는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는 했지만 지금 당장은 다른 무엇보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CIA의 감시망을 피하는 게 관건이었다. 그러자면 자신과 밀접한 연관이 없는 외국 로펌을 이용하자는 노영태의 제안이 효율적일 것 같았다. 언제까지나 저들의 눈을 속이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어느 정도는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좋습니다. 그 문제는 노 변호사님이 알아서 처리해 주세요, 아참, 그리고 투자 회사를 세우게 되면 당분간 미래 건설 주식을 집중적으로 매입해 주세요. 가급적 티 안 나게요.”

“미래 건설 말입니까? 아, 그러고 보니까 비에코에서 그 회사에 공사를 주겠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노영태를 향해 도윤이 미소를 씩 지어보였다.

“물론이죠. 비에코가 비록 미래 그룹의 자회사는 아니지만 넓게 보면 한 가족이니까요.”

* * *

도윤이 콜롬비아의 산속에서 더위에 시달린 지 한 달가량이 지난 어느 날, 베트남에 있는 고정혁이 잔뜩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야, 이 박사! 됐어. 됐다고.”

“뜬금없이 되긴 뭐가 돼요? 땅에서 석유라도 나왔어요?”

“그래! 나왔어. 석유가 나왔다고.”

의자에 느긋하게 기대어 앉은 자세로 전화를 받던 도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말이에요? 정말로 석유가 나왔어요?”

“그래. 아직 매장량을 확인하고 경제성 평가도 거쳐야 하지만 일단 시추공에서 나온 석유 자체는 품질이 아주 좋아. 매장량만 충분하면 우린 노다지를 캔 거라고. 으하하하하.”

진짜로 기뻤나보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도윤도 가슴이 쿵쿵 뛸 정도로 감정이 벅차올랐다.

“그럼 매장량 확인하고 경제성 평가까지 끝내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려요?”

“글쎄다. 아무리 빨라도 한두 달은 더 걸리겠지. 그게 끝나면 생산 설비도 갖추어야 하니까 본격적으로 석유를 뽑아내는 건 아마 내년 초나 되어야 가능할 거야.”

“드디어 몇 년 동안 고생한 보람을 얻게 되셨네요. 사장님, 축하합니다.”

“이게 다 이 박사가 돈까지 투자하면서 등을 떠밀어준 덕분이야. 나도 정말 고맙다.”

그런데 잔뜩 들떠있던 고정혁의 목소리가 어느 순간 갑자기 작아졌다.

“저기, 그런데 말이야 이 박사. 혹시 우리 회사에 투자 좀 더 할 수 있겠나?”

“돈이 부족하세요?”

“본격적으로 석유가 나오기 전까지 들어가야 할 돈이 많아. 생산용 시추공도 몇 개 더 뚫어야 하고 생산 설비를 갖추어야 하거든. 근데 자금 사정이 바닥이야.”

“얼마나 더 필요하신데요?”

“못해도 오백 억은 더 있어야 할 거야. 경제성이 입증되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 전까지 당장 쓸 돈이 부족해.”

도윤은 일단 고정혁에게 이번에 석유가 발견된 곳의 지질에 관한 자료와 샘플 분석 데이터 등을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다음날, 고정혁이 보낸 자료를 받아든 그는 그것을 몇 군데의 연구소에 보내 간단한 분석을 부탁했다. 출처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자료의 진위 여부와 샘플의 품질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확인을 거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료 분석 결과가 도착하자마자 도윤은 다시 고정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동 법무법인의 노영태 변호사 알죠? 저번에 서로 만나서 계약할 때 보셨던 제 전담 변호사 말이에요. 며칠 내로 그 분이 베트남 사무실로 갈 거예요. 그 분하고 논의해서 계약서를 새로 작성해 주세요. 계약서에 사인이 되면 곧바로 돈을 보내 드릴게요.”

며칠 뒤, 노영태 변호사로부터 무사히 계약이 완료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도윤은 비에코 계좌로 다시 오백 억을 송금했다. 덕분에 고흐의 해바라기를 팔아서 벌었던 돈이 대부분 사라졌다. 도윤은 그 대가로 비에코의 주식 지분을 30퍼센트로 늘리기로 했다.

비상장 주식회사인 비에코의 지분은 현재 사장인 고정혁이 65%, 그리고 전무인 권두철이 35%를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번 계약서를 작성할 때 만약 비에코에서 본격적으로 석유를 생산하게 될 경우 고정혁의 지분 12.5%와 권두철의 지분 7.5%를 각각 도윤이 넘겨받기로 했다. 투자금 오백 억에 대한 대가였다.

이번에 종전과 같은 오백 억을 더 투자하면서 도윤은 고정혁과 권두철로부터 각각 6.5%와 3.5%씩을 더 양도받기로 했다. 그럼 고정혁의 지분이 46%가 되고 도윤은 24%의 권두철을 넘어서서 30%의 지분을 확보한 2대 주주가 된다. 투자 금액이 같은데도 지분을 10%만 더 늘리는 이유는 그만큼 비에코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감안한 것이었다.

물론 아직 본격적인 석유 생산이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도윤이 실질적으로 주식을 인수받게 되는 것은 내년 초나 되어야 할 것이다. 돈을 송금한 뒤에 도윤은 고정혁에게 은근슬쩍 생산 설비 시설을 맡을 건설사에 대해 물어봤다. 고정혁은 별로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무래도 미래 건설에 수주를 줘야 하겠지. 우리 회사가 실질적으로는 미래 그룹과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그래도 넓게 보면 한 가족이잖아. 조건이 같다면 다른 곳보다는 역시 미래 건설에게 공사를 맡겨야 하지 않겠어?”

그런데 도윤으로부터 자기네 회사에 관한 기쁜 소식을 들은 티엔과 도안이 조금 묘한 소리를 했다.

“아마 비에코에서 본격적으로 석유가 쏟아지기 시작하면 정부에서도 정유 시설 건설에 박차를 가할 거예요. 그게 없으면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자기 땅에서 석유가 쏟아지는데도 남 좋은 일만 시켜주는 꼴이 되거든요.”

“남 좋은 일만 시켜주다니? 왜?”

“비에코에서 생산하는 원유의 30%는 베트남 정부의 몫이에요. 허가 조건이 그렇거든요. 그런데 정유 시설이 없으면 원유를 유조선에 실어서 다른 나라에 보낸 다음에 정유를 시켜서 다시 가져와야 해요. 그럼 자칫하다가는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요.”

문제는 베트남에는 현재 대규모 정유 시설 건설을 맡을 만한 건설사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베트남에서 그만한 정부 공사를 수주하려면 무엇보다 베트남 현지에서의 공사 실적이 있어야 한다. 여러 가지 점을 고려할 때 직접 석유를 생산하는 회사들의 입김도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게 티엔과 도안의 의견이었다.

“일단은 티 안 나게 미래 건설 주식을 조금씩만 매입하세요. 그러다가 제가 언질을 드릴 때 집중적으로 사들이시면 돼요. 적어도 내년 초가 되면 약간이라도 오를 테니까요.”

도윤이 미래 건설의 주식을 매입하라고 요구한 것은 그런 이유들 때문이었다. 아직은 확실하게 정해진 게 없기 때문에 모험을 걸 시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일이 잘 풀릴 경우 주사위를 던져야 할 때가 반드시 올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미래 건설 사장 일가가 비록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돈을 포기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내년 초가 지나면 미래 건설 주식을 사기도 곤란해. 잘못하다가는 내부자 거래로 고발될 수도 있거든.”

투자 대상 기업과 계약 관계를 맺고 있는 기업의 대주주는 업무상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상대 회사의 주식을 거래할 수 없다. 그러나 아직까지 도윤은 실질적으로 비에코의 주식을 단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지분을 인도 받기 전에 돈을 던져야 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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