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21. 악연의 고리>
콜롬비아에서 돌아온 지도 어느 새 한 달가량이 지났다. 경제 쪽으로는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수출 부진에 따른 불황이 우려된다는 얘기들이 흘러나왔고, 내년으로 다가온 총선을 준비하기 위한 정치인들의 이합집산과 관련된 소식들도 연일 지면을 장식했다. 그러나 도윤에게는 그런 게 모두 남의 나라 얘기나 다름없었다.
최근 들어 그는 오랜만에 한가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하루하루가 대부분 그제와 같은 어제, 어제와 비슷한 오늘의 반복이었다. 아침에 화랑에 출근하면 점심때까지는 대개 의뢰가 들어온 미술품 감정을 하고, 오후에는 전시회 준비를 돕거나 섭외가 필요한 화가들에게 전화를 하거나 직접 찾아가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저녁에는 주로 최서라를 만나서 데이트를 즐겼다. 화랑 일과는 달리 그건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해도 날마다 새롭기만 했다. 비슷한 인테리어를 한 영화관에 가서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영화를 보고, 수백 년째 똑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콘서트 장에 앉아 하품을 하거나 전에 봤던 그 배우가 다시 나와 노래를 부르는 뮤지컬을 감상했다. 그래도 즐거웠다.
데이트가 없는 날에는 대부분 석훈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특별히 조명근이나 노영태 변호사 같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한, 그 이후로는 대개 집에서 새로 얻은 거북선 그림을 연구했다. 거기에 묘사된 거북선의 모습이나 해상 전투 장면이 기존의 다른 자료에 나와 있는 내용들과 어떻게 부합하고 어디가 다른지를 비교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가고는 했다.
석훈에게 줄 보상들도 처리했다. 티엔과 도안에게도 각각 100만 달러씩 안겨줬는데, 정작 가장 공이 큰 녀석에게 입을 씻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한 것은 현재 살고 있는 집의 명의를 석훈에게 넘겨주는 것이었다. 어차피 그 집에서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니고, 아주 호화롭지는 않아도 신혼부부 살림집으로는 적당했기 때문에 석훈도 제법 감동하며 선물을 고마워했다. 녀석은 최근 들어 조민아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더니 슬슬 결혼 이야기를 주고받는 눈치였다.
하지만 진짜 보상은 비에코 주식이었다. 노영태 변호사가 케이먼 군도와 홍콩, 싱가폴 등에 투자 회사를 설립하고 미래 건설 주식을 사들이는 걸 시작으로 조금씩 국채를 처리해나갈 무렵, 도윤은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석훈에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내년에 비에코 주식을 받으면 너한테도 1퍼센트 줄게.”
열심히 수저를 놀리던 석훈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녀석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도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정말이요? 그거 1퍼센트면 액수가 좀 세지 않아요?”
“내가 1000억을 투자해서 30%의 지분을 받았어. 그러니까 1%면 투자 액수로만 33억이 조금 넘을 거야. 하지만 비에코에서 석유가 생산되기 시작하면 회사를 상장시키고 주식을 조금씩 시장에 풀 계획이다. 그러면 시세가 많이 뛰겠지.”
“어…, 이 형이 밥 먹는데 괜히 사람 목이 메게 하네. 고맙기는 한데 보상이 너무 과한 거 아니에요? 이미 아파트도 내 이름으로 등기 이전해 줬잖아요. 그것만 해도…….”
“대신 앞으로도 나를 잘 지켜. 내 목숨이 곧 네 목숨이라고 생각해야 돼. 알지?”
“뼈와 살이 모두 가루가 되더라도 반드시 형님을 지키겠습니다. 충성!”
마지막에는 농담처럼 얘기를 주고받았지만 석훈도 도윤이 자신을 얼마나 크게 배려해주는 것인지 절실하게 느꼈다. 몇 분 뒤, 녀석은 은근슬쩍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 전화기를 붙잡고 소리를 꽥꽥 질렀다. 십중팔구 조민아에게 방금 들은 얘기를 자랑하는 게 분명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마냥 무난하게 지나가던 어느 날. 그날도 도윤은 오전 내내 계속된 미술품 감정을 끝낸 뒤 사무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두 발을 책상 위에 걸쳤다. 어차피 팀원이라고 해봤자 자신과 석훈 밖에 없는 사무실이었다. 그가 오후의 여유를 한껏 만끽하고 있는데 밖에 나갔다 돌아온 석훈이 그 꼴을 보고 빈정이 상했는지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살판 나셨네. 형만 혼자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 것 같네요.”
“무슨 소리야? 나만 혼자 세상에서 떨어져 나오다니?”
“혼자만 한가해 보여서요. 지금 화랑이 온통 북새통이라는 거 몰라요?”
도윤은 자세를 바꾸지도 않고 눈만 게슴츠레 뜨고서 석훈을 쳐다봤다.
“갑자기 웬 잔소리? 난 뭐 일도 안하고 놀기만 하는 거 같아? 오전 내내 쉬지도 않고 감정한 그림이 몇 점인데? 그러고도 다음 전시회에 그림을 출품할 화가들한테 섭외 전화도 다 돌렸어. 내가 남들보다 일을 빨리 한다고 해서 욕먹을 이유는 없잖아?”
“어휴, 진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이렇게 부모한테 관심이 없다는 걸 알면 대표님들이 얼마나 속이 상하실까. 진짜 아무 얘기도 못 들었나 보네.”
“얘기? 무슨 얘기?”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낀 도윤이 책상 위에 올려놓았던 발을 내리면서 슬그머니 몸을 세웠다. 그러자 석훈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성큼성큼 다가와서 도윤의 컴퓨터를 켰다. 녀석은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하더니 그에게 신문 기사 하나를 띄워서 보여주었다.
“이거 한 시간 전에 동명일보 인터넷 판에 올라온 거예요. 현소 화랑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확보한 국보급 문화재를 어려 점 가지고 있다는 기사가 떴더라고요. 눈치를 보니 까맣게 모르고 있었나 보네? 지금 기자들이 대표님 인터뷰 하겠다고 몰려와서 난리도 아니에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도윤은 얼른 해당 기사를 클릭해서 꼼꼼하게 읽어보았다. 시간이 갈수록 그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더니 기어코 욕설을 터져 나왔다.
“이거 어떤 새끼가 소설을 썼어? 우리가 오래전부터 도굴꾼들하고 거래를 했다고? 뭐? 미술계 관계자의 증언? 우리가 그런 놈들하고는 상종을 안 한다는 사실을 미술계가 다 아는데 어떤 미술계 관계자가 그따위 증언을 해?”
“기자들이 기사 안 쓰고 소설 쓴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근데 정말 현소에 그런 물건 없는 거 맞죠? 나도 기사 읽어봤는데 아무래도 작심하고 긁어댈 모양이더라고요.”
도윤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벗어놨던 양복 윗도리를 걸쳤다.
“아버지하고 어머니 두 분 다 지금 사무실에 계시지?”
“계시겠어요? 기자들이 만나자고 난리를 치는데. 잠시 자리를 피하셨어요.”
갑자기 온몸에서 맥이 쫙 빠졌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아, 네, 부장님. 저 현소 화랑의 이도윤입니다. 바쁘시겠지만 잠시만 찾아뵐 수 있을까요? 네. 네, 맞습니다. 저희 화랑에 대해 난 기사 때문에 좀 여쭤볼 게 있어서요. 알겠습니다. 그럼 한 시간 뒤에 그리로 가겠습니다.”
통화 상대는 한강일보의 우재경 부장이었다. 전화를 끊은 도윤의 눈이 무섭게 타올랐다. 이게 기자 한 명의 낚시질일 경우 그 놈 하나만 때려잡으면 끝난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누군가 작심하고 현소를 모함하려고 벌인 일이라면 초반에 확실히 진압하는 게 중요했다.
* * *
그날 저녁, 도윤은 오랜만에 부모님 집을 찾았다. 같은 회사,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지만 오후부터 두 분 다 자리를 비우셨기 때문에 만나서 얘기를 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미리 연락을 하지 않고 찾아서 그런지 두 분 다 집에 계시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도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음성메시지만 흘러나왔다 기자들 등쌀 때문에 휴대폰을 아예 꺼 놓으신 게 분명했다. 결국 그는 초조하게 거실을 서성대다가 밤 열 시가 넘어서야 얼큰하게 취한 모습으로 귀가하는 이세준을 만날 수 있었다.
“웬일이세요? 이렇게 술을 많이 드시고?”
도윤이 아버지를 부축하며 걱정스럽게 묻자 옆에 있던 서연희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많이 드신 건 아니야. 그나저나 너는 연락도 없이 집에 웬일이냐? 밥은 먹었어?”
“시간이 몇 시인데 여태 굶고 있었겠어요? 계속 전화를 드려도 휴대폰이 꺼져 있기에 그냥 집으로 왔어요. 두 분이 지금까지 같이 계셨던 거예요?”
“너희 아빠가 술을 드셨으니 나라도 운전을 해야지. 전화벨이 하도 시끄럽게 울어대기에 귀찮아서 꺼 놨어. 아빠 친구 분들 몇 분 만나서 같이 이야기 하느라 좀 늦었다.”
그때 이세준이 게슴츠레하게 풀린 눈을 위로 치켜뜨더니 히죽 웃었다.
“우리 아들이 아빠 엄마가 걱정돼서 온 거야? 기특하네? 다 자랐어. 아주 잘 컸어.”
이세준이 손을 뻗어 도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들이 군대에 다녀온 이후로는 하지 않던 행동이었다. 순간 이세준의 몸에서 술 냄새가 확 풍겨왔다. 많이 드시지 않았다고 하더니 아무래도 꽤 마신 모양이었다. 도윤은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아버지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았다.
“앉아라. 할 얘기가 있어서 온 모양이니 무슨 얘기인지 들어보자.”
이세준이 거실 소파에 털썩 앉으면서 맞은편 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서연희가 얼른 주방으로 가서 꿀 차를 두 잔 내왔다. 도윤은 차를 한 모금 넘긴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늘 낮에 한강일보의 우재경 문화부장을 만났어요. 추측일 뿐이라는 단서를 붙이기는 했지만 동명일보의 조상욱 편집국장이 이번 기사를 직접 기획한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전 몰랐는데 혹시 우리가 그쪽하고 평소에 사이가 안 좋았어요?”
도윤의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딱딱해졌다. 그러자 이세준이 피식 웃었다.
“괜한 짓을 했구나. 그냥 나한테 물어봤으면 다 얘기해 줬을 텐데. 우린 어느 언론사하고도 척을 진 적이 없어. 특별히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지만. 그리고 동명의 조 국장이 손을 썼다는 건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알고 계셨다고요?”
“그래. 원래 며칠 지나서 따로 이야기를 해줄 생각이었는데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너도 알고 있어라. 이번 일은 아마 기사 하나로 끝나지 않을 거야. 동명의 조 국장뿐만이 아니라 중앙지검의 강일환 차장하고 한대길 국회의원도 연관이 되어 있어. 한성 옥션에서 작심하고 우리를 골탕 먹이려고 나선 모양이다.”
언론에 검찰, 그리고 극회의원까지! 특히 이세준이 마지막에 언급한 한성 옥션이라는 말 때문에 도윤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한성 옥션에서 작심했다는 건 그쪽이 이번 일의 배후라는 뜻인가요? 혹시 제가 상하이에서 한치호를 물 먹인 일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이세준이 앞에 놓인 꿀 차를 술 마시듯 벌컥대며 들이켜더니 고개를 저었다.
“글쎄다. 그것도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야. 한성 옥션하고 우리 화랑 사이에는 네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져온 질긴 악연이 있거든. 오래 묵어서 이제는 완전히 삭아 없어졌기를 바랐는데, 이번 일을 보니 삭지 않고 그냥 썩은 것 같아.”
“한성 옥션이 우리하고 오래 전부터 악연이 있었다고요?”
금시초문이었다. 도윤이 깜짝 놀라자 이세준이 옆에 있는 서연희를 힐끗 돌아봤다. 그러더니 한숨을 푹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내 가슴에 박힌 못이어서 나만 아픈 줄 알았는데, 망치 든 놈이 더 화를 내니까 좀 우습게 됐다. 일이 이렇게까지 됐으니 너도 알아두는 게 좋겠구나.”
이세준은 아들에게 자신의 아버지, 즉 도윤의 할아버지와 한성 옥션의 창립자인 성택진 사장 사이에 있었던 일을 설명해줬다. 술이 얼큰하게 취해서 그런지 이야기가 갈수록 넋두리처럼 변했지만 도윤은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그의 말을 모조리 머릿속에 담았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난 도윤은 화가 나면서도 아연한 느낌이 들었다.
“이 사람들 정말 황당한 인간들이네요? 유유상종이라더니 성백진이라는 그 양반도 그렇지만 어떻게 사위에 손자까지 대를 이어가며 저러는 거죠? 잘못은 저희들이 해놓고 오히려 화를 내는 꼴이잖아요? 정말 그냥 두면 안 될 사람들이네요.”
이야기를 하는 동안 술이 약간 깼는지 세준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이번 일은 네가 나설 필요 없다.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너는 지켜보기만 해.”
“저도 도울게요. 화랑 일인데다 집안일이기도 한데 제가 그냥 지켜보기만 한다는 게 말이 돼요? 명색이 팀장인데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기도 하잖아요.”
“도윤아!”
이세준이 갑자기 목소리를 가라앉히며 아들을 불렀다.
“현소 화랑은 너희 할아버지가 세우고 지키신 곳이다. 난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그걸 키우고 발전시키려고 애썼고. 내가 물려받은 유산을 받아서 지금까지 편하게만 살아왔다고 생각하니? 아빠가 이 정도 문제도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약하지 않아. 너는 일단 물러나 있어.”
“혼자 애쓰실 필요 없어요. 저도 도울게요. 아버지 아들, 보기보다 꽤 능력이 있어요.”
“내가 왜 혼자야? 너희 엄마도 있는데. 네 나이는 아직 뭔가를 지키기보다는 너 자신을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려고 애쓸 때다. 지키는 건 나중에 하고 이번에는 아빠를 믿고 옆에서 잘 지켜봐. 그것만으로도 얻는 게 있을 거야.”
취해서 눈이 붉게 충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세준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도윤은 끝내 몇 마디를 더 하려다가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대로 지켜볼게요. 하지만 이건 아니다 싶으면 저도 나서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는데 굳이 힘을 아낄 필요가 없잖아요.”
“힘을 아끼라는 게 아니라 마음을 아끼라는 거다. 힘이야 쓰다가 지쳐도 쉬면 그만이야.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니까. 하지만 마음을 잘못 낭비하면 다시는 회복이 되지 않아. 너보고 깨끗하게만 살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굳이 피할 수 있는 진흙탕에까지 일부러 발을 담글 필요는 없어. 이번 싸움은 별로 힘들지 않아. 단지 지저분할 뿐이지.”
그 말을 끝으로 이세준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피곤하다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지금까지 부자지간의 대화를 말없이 듣기만 하던 서연희가 다가와 아들을 꼭 안고 등을 토닥였다.
“우리 아들 아주 훌륭하게 컸네? 씩씩하기도 하고. 하지만 이번에는 아빠 말을 들어. 네 아빠 아직 늙지 않았다. 이만한 일로 기가 죽을 양반도 아니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얼른 들어가서 쉬어라.”
서연희마저 안방으로 들어가자 도윤만 혼자서 거실에 우두커니 남게 되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 고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부모님이 계신 안방을 잠시 쳐다보다 그대로 집을 나왔다. 오늘은 원래 여기서 잘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여전히 건강하신 것 같아서 고마웠고, 자신이 아직 어린 것 같아서 미안했다.
거실을 나와 차를 세워놓은 주차장을 향해 걸어가는데 문득 피부에 와 닿는 밤공기가 유난히 쌀쌀하게 느껴졌다. 어느새 가을이었다.
* * *
현소 화랑이 도굴꾼들과 거래를 했다는 동명 일보의 기사가 나가자, 다른 신문사들 역시 앞 다투어 그 기사를 받아서 썼다. 하지만 정작 이세준과 서연희는 그 문제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발표하지 않았고, 밀려드는 인터뷰 요청도 모조리 거절했다.
첫 기사가 나간 지 이틀 만에 서울 중앙 지검이 현소 화랑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예상보다 빠른 검찰의 대응에 미술계가 또 다시 한 바탕 출렁댔다. 담당 검사의 이름은 생소했지만 검찰 내부 사정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은 그 수사가 실질적으로는 강일환 차장에 의해 지휘되는 것이라는 얘기를 수군거렸다.
그로부터 다시 사흘 뒤, 종로 경찰서 수사 과장 윤다솔이 지휘하는 일련의 형사들이 자기 관할 지역을 벗어나 서울 외곽의 한 단독 주택을 급습했다. 다소 이례적인 일이기는 했지만, 형사들은 거기서 다량의 위작들과 함께 집 주인인 민달삼이라는 칠십 노인을 긴급 체포했다. 그 사건 자체는 특별히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지만 그것이 사실상 이세준이 시작한 반격의 시작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