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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145화 (145/300)

145화

인천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전날, 도윤은 중앙지검 특수부의 조명근을 잠시 만났다. 이틀 전, 한성 옥션에 대한 수사에 검찰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뒤였다. 조명근이 전하는 한성의 상황은 한 마디로 말해서 암울했다.

“공개 검증 이후에 소문이 쫙 도는 바람에 고소 고발이 줄을 잇고 있어. 지금까지는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던 사람들도 한성에서 낙찰 받았던 작품을 다시 감정하려고 난리야. 자기 소장품이 위작으로 드러나면 당장 고소하려는 거지.”

“그 동안 한성에서 팔아치웠던 작품들이 엄청나게 많을 텐데, 그걸 다 재감정 한다고?”

“전부는 아니겠지. 하지만 일부만 재감정을 한다고 해도 그 수가 얼마이겠냐? 한성에게는 안 됐지만 감정가들 입장에서는 대박이 터진 거나 마찬가지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런 호황기에 넌 도대체 왜 또 한국을 뜬다는 거냐?”

조명근은 도윤이 한동안 중국에서 머물 거라고 하자 어이없어 했다. 그는 이번 공개 감정을 통해 미술계에 폭탄을 던져 놓은 장본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놈이 정작 세상이 시끄러워지자마자 갑자기 또 한국에서 사라지겠다고?

비록 공개 감정에서 있었던 자세한 일들은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판정관을 비롯해서 당시 참가했던 감정가들만 해도 여러 명이었다. 그 때문에 공개 감정이 끝난 지 며칠 되지 않아 미술계 내부에서는 한성 옥션에서 내세운 감정가들이 도윤에게 얼마나 처참할 정도로 박살이 났는지에 관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넌 이제 단순한 천재 감정가가 아니야. 미술계에서 명망 있는 중견 감정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지위까지 올라간 거라고.”

“에이. 왜 과장을 하고 그래?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형.”

“아니긴 뭐가 아냐? 다들 감정할 일 있으면 너부터 찾는 거 몰라?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아저씨도 그래. 현소 화랑으로 밀려드는 감정 의뢰를 모조리 거절하고 계시다면서?”

그랬다. 한성 옥션에서 낙찰 받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던 수집가들의 상당수가 현소 화랑으로 밀려들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작품들을 재감정 해달라는 의뢰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세준은 그 의뢰들을 모조리 거절했고, 그 점은 도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상도의라는 게 있잖아. 한성에서 경매에 올린 작품들을 위작이라고 판정한 게 사실상 나와 현소라는 걸 사람들이 뻔히 알거 아냐? 그런데 남의 집에 불을 지른 사람이 그 불에 고기까지 구워먹으면 욕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야.”

손사래를 치던 도윤이 문득 목소리를 살짝 낮췄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어때? 한성이 이대로 무너질 것 같아?”

“글쎄다, 현재로서는 완전히 전쟁터나 마찬가지지. 고소장을 제출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양반인 편이고, 회사로 직접 찾아가서 애꿎은 직원들한테 삿대질하고 욕하는 사람들이 매일 끊이지 않나 봐. 한성 옥션은 지금 전시고 경매고 모두 폐점 상태야.”

“한성에서 그동안 팔아치웠던 가짜를 모두 배상해줄까? 금액이 만만치 않을 텐데.”

그 대목에서 조명근도 목소리를 낮췄다.

“성진아 사장은 처음에 법대로 하자고 길길이 뛰었던 모양이야. 그런데 한대길 의원이 극구 만류하면서 가능하면 배상하고 합의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들었어.”

“한대길 의원이? 그 사람이 웬일로?”

“내년이 총선이잖아. 이거 제대로 단도리 못하면 내년 총선에서 당선되는 건 고사하고 아예 당에서 공천 받는 것조차 위태위태해질 가능성이 있어. 일단 자신은 한성 옥션의 경영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여론이 굉장히 안 좋아.”

“그 정도야? 그래도 명색이 여당 실세인데?”

“오늘의 실세가 내일의 천덕꾸러기가 되는 게 정치야. 뜨는 데는 오래 걸려도 몰락하는 건 순식간이지. 한성이 아무리 부자라도 소송 들어오는 걸 다 받아주는 건 불가능할 거야. 그래도 어떡하든 일단 성난 파도를 잠재워서 내년 총선은 넘기려는 모양이야.”

“하긴 설사 재판까지 가더라도 내년 총선 때까지는 기껏해야 1심 판결 정도만 나오겠네.”

“1심 판결 기일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자꾸 늦추려고 할 게 뻔해. 아무튼 그래도 올해가 가기 전에 몇 건은 돈 물어주고 합의해서 고소를 취하시킬 거야. 그래야 그쪽에서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고 변명할 수 있을 테니까. 아마 고의가 아니라 자기들도 그게 위작인 줄 전혀 몰랐다고 주장하겠지.”

“그럼 형사 처벌은 안 되는 거야?”

그 말에 조명근이 피식 웃었다.

“위작 제조에 관련되었다는 증거가 나오면 손해 배상 소송과는 무관하게 한성은 끝나는 거야. 그래서 요즘 우리 차장님 분위기가 완전히 살벌해. 강일환 차장이 속초 지청장으로 발령 났잖아? 명백한 좌천이지. 그 뒤부터 매일 닦달하는 바람에 특수부가 온통 난리다.”

하긴 한성 옥션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가는 자칫 경매 허가 자체가 취소될 가능성이 컸다. 그럼 회사 문을 닫거나 업종을 전환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지금까지 팔았던 위작들을 전부 배상해줄 수는 있으려나? 아무리 한성에 돈이 많아도 그렇게 했다가는 기둥뿌리가 휘청할 텐데.”

“기둥뿌리? 대들보가 통째로 내려앉을 거다. 절대로 다 못 물어줘.”

한성은 어떻게 하든 발버둥을 치려고 할 거다. 한대길 역시 지금은 성진아를 달래 가며 협상을 종용하고 있지만, 자신의 정치 자금줄이나 마찬가지인 한성 옥션이 이대로 쓰러지게 놔두지는 않을 게 분명했다.

한대길을 포함해서 한성 일가를 완전히 무너뜨리려면 또 다른 한 방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한 방 거리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바로 중국에 있었다.

* * *

도윤은 북경으로 떠나기 전에 발굴 일정과 참가자들의 신상 명세가 적힌 파일을 미리 받아보았다. 그에 따르면 참가자들은 먼저 북경에서 모여 상견례를 포함한 몇 차례 회의를 한 뒤, 건릉이 위치한 서안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발굴에 착수할 예정이었다.

그가 석훈과 함께 베이징의 서우두 국제공항에 내리자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그들을 마중 나와 있었다. 그녀는 두 사람을 미리 예약된 5성급의 고급 호텔로 안내한 뒤, 자신이 가지고 온 카드로 체크인까지 마쳤다.

“북경에 계시는 열흘 동안은 이 호텔에서 묵으시면 됩니다. 아시다시피 서안에서는 발굴단 전체가 단체 생활을 하게 되는데 아마 숙소의 질이 이곳보다는 좋지 않을 거예요.”

“발굴이야 현장에 텐트를 치고 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뭐. 그건 상관없습니다.”

도윤의 말에 여자가 씩 웃으며 왕이푸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왕 회장님께서 내일 두 분을 점심 식사에 초대하셨습니다. 오후 한 시까지 호텔로 차를 보낼 테니 그걸 타시면 될 거예요.”

부드러운 미소와 딱 부러진 행동. 왠지 쉽게 틈을 주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아가씨는 용건만 간단히 전하고는 바로 등을 돌리려고 했다. 그런 그녀를 도윤이 불러 세웠다.

“죄송하지만 내일 점심에는 선약이 있어서 곤란합니다. 왕 회장님을 뵙는 건 모레나 그 이후로 미뤘으면 좋겠군요.”

“네?”

시종일관 무덤덤하던 그녀의 표정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여자는 도윤이 설마 왕이푸 회장의 초대를 거절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게 분명했다.

“왕 회장님께도 대신 죄송하다고 전해주세요. 모레 이후로 약속을 다시 잡아주시면 언제라도 기꺼이 초대에 응하겠다고요. 그럼 저희들은 이만.”

도윤은 그녀에게 가볍게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석훈과 함께 곧바로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왕이푸가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약속을 잡으려면 미리 본인에게 물어보고 승낙을 받았어야 하는 건데, 설마 중국에 오자마자 다른 선약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내가 결례를 한 셈이니 크게 한 턱 내리다. 모레 오후 한 시 정도면 시간이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저도 도착하자마자 바로 초대를 받을 줄은 몰라서 별 생각 없이 다른 약속을 잡아두었네요. 모레 오후에는 아무런 일정이 없으니까 편하신 대로 하셔도 좋습니다.”

왕 회장은 시간에 맞춰 차를 보내겠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글피에는 이번에 참가하는 발굴단 전원이 상견례를 하기로 되어 있으니 함께 식사를 하려면 모레 밖에는 달리 시간이 없었다. 전화를 끊은 도윤은 피식 웃었다.

“잘못하면 내가 기싸움을 벌이려 한다고 오해하겠군.”

물론 자기 할 말만 하고 돌아서려는 아가씨의 행동이 다소 괘씸하기는 했다. 그러나 꼭 그 때문에 왕 회장의 초대를 거절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진짜로 내일 다른 약속이 있었다.

다음날, 석훈을 호텔에서 기다리게 한 도윤은 약속 시간에 맞추어 자신의 모교, 북경 중앙미술학원을 찾았다. 그곳에서 한때 지도교수였던 장웨이닝 교수를 만나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장 교수가 점심을 대접하겠다는 도윤의 청을 극구 사양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그의 연구실에서 간단하게 차만 마시기로 했다.

장웨이닝 교수는 건릉 발굴을 주도하는 국가문물국 국장 장린펑의 사촌 형이다. 예전에 상해 공항에서 잠깐 만났던 쉬주하오는 장린펑이 장 교수에게 건릉 발굴단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나 이번에 북경에 오기 전에 받았던 파일에서는 장 교수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발굴단장은커녕 아예 발굴단 자체에 합류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교수님 그동안 건강하셨습니까? 전보다 살이 많이 빠지신 것 같네요?”

장 교수의 연구실을 찾은 도윤은 제일 먼저 그의 건강부터 물었다. 몇 년 동안 못 보는 사이에 그의 몸이 상당히 수척해졌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환한 웃음을 띤 채 도윤의 손을 꼭 붙잡으며 반가워했다.

“괜찮아. 내 나이에 이만하면 건강한 거지. 자네야 말로 좋아 보이는군. 한국에서도 천재 감정가로 소문이 자자하다면서? 이제 복원은 그만 두고 완전히 감정가로 나선 건가?”

“복원도 가끔 합니다. 지금 집에서 운영하는 화랑에서 부모님 일을 돕고 있는데, 가끔씩 손을 봐야하는 작품들이 들어오기도 하거든요. 교수님께 잘 배운 덕분에 간단한 건 제 손에서 해결이 됩니다.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윤은 장 교수에게 선물로 준비했던 찻잎을 드렸고, 장교수는 즉석에서 그것으로 차를 내려 내놓았다. 두 사람은 차를 함께 마시며 한 동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도윤이 은근슬쩍 건릉 발굴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사실은 이번에 제가 건릉 발굴단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몇 달 전에 교수님이 발굴단장을 맡으실 거라는 얘기를 듣기도 해서 별 망설임이 없이 참여하기로 했지요. 그런데 막상 참가자 명단을 받아보니까 교수님 이름이 없더라고요.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었습니까?”

조심스러운 도윤의 질문에 장 교수가 씁쓸하게 웃었다.

“사촌 동생이 나를 발굴단장으로 추천하기는 했는데, 내가 내키지 않아서 고사했어. 그리고 자네가 건릉 발굴에 참여한다는 얘기는 나도 들었네. 왕이푸 회장이 자신의 대리인으로 내세웠다면서? 솔직히 자네가 옆에 있었다면 말렸을 걸세.”

그가 영 마뜩치 않아 하는 표정을 짓는 바람에 도윤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말리다니요? 혹시 이번 발굴에 뭔가 걱정되는 거라도 있으세요?”

“왕이푸 회장이 건릉에서 꼭 찾고 싶어 하는 물건이 있다고 하던데 혹시 들었나?”

“왕 회장께서는 건릉 안에 왕희지의 난정서가 있다고 확신하더군요. 저한테 그걸 꼭 갖고 싶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습니다.”

도윤의 말에 장 교수가 문득 실소를 터트렸다.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왕희지의 난정서가 희대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지. 그게 건릉 안에 있는지는 직접 파 보아야만 알 수 있겠지만 전설로만 전해지던 걸작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왕 회장은 아닐 거야. 나는 그 사람이 서화에 취미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네. 내가 알기로는 안목이 뛰어난 편도 아니고.”

장 교수의 말에 도윤은 당황했다. 왕 회장이 서화에 취미가 없다고? 나한테는 분명히 난정서를 갖고 싶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라면 목적이 다른 데 있다는 거야? 도윤의 표정을 살핀 장 교수가 한숨을 내쉬면서 말을 이었다.

“자네도 몇 년 전에 국가문물국 주도로 건릉에 작은 구멍을 뚫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을 거야. 그 때 카메라를 집어넣어 내실을 촬영했는데 무덤 안이 작은 궁전처럼 꾸며져 있더군. 나도 당시에 찍은 영상을 봤는데 확실히 삭아서 부서진 나무 상자 안에 몇 개의 족자가 있기는 했어. 하지만 모두 돌돌 말려 있어서 내용은 알 수가 없었지.”

“그렇다면 사진만으로는 건릉에 왕희지의 난정서가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없었겠군요.”

“그렇지. 기록에 의하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역시 파보기 전에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야. 정말로 난정서가 있다면 그 자체로 엄청난 가치를 지닌 보물이 틀림없을 테지만 그렇다고 그게 왕이푸 회장의 손으로 들어갈 거라는 보장도 없고. 그 사람이 이번 발굴에 큰돈을 낸 건 사실이야. 그러나 그렇다고 중국 정부가 그런 보물을 쉽게 내줄까?”

“그럼 왕 회장이 이번 발굴에 큰 기대를 거는 이유가 도대체 뭣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러자 장 교수가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서재 책꽂이에서 책 하나를 꺼냈다. 오래 전에 만들어진 목판 인쇄본이었는데, 안에 여러 가지 그림과 함께 설명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당대품물도해(唐代品物圖解)라는 책이네. 작자는 미상이지만 황실이 개봉에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북송 시대에 쓰였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어. 당나라 때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던 유명한 물건들에 대한 그림과 설명이 적혀 있지.”

그는 책장을 이리저리 넘기다가 팔각형으로 생긴 잔이 그려진 부분을 펼쳐보여 주었다.

“성신황제, 그러니까 측천무후의 팔각금잔이라는 술잔이네. 나도 왕 회장이 정확히 뭘 노리는지는 몰라. 하지만 내가 그 사람이라면 이 물건이 몹시 갖고 싶을 것 같기는 하네.”

팔각금잔이라면 금으로 만든 팔각형의 술잔이라는 뜻이었다. 도윤은 책에 나와 있는 그림과 설명을 들여다보다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능력을 지닌 술잔이라고요? 이 책에는 측천무후가 팔각금잔을 이용해서 태종과 고종 두 황제의 마음은 물론이고 나중에는 신하들까지 홀렸다고 되어 있네요. 이성을 유혹할 때 쓰이는 물건이라는 겁니까?”

장 교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는 범위가 넓어. 작게 쓰면 이성을 얻고 친구를 사귀는 정도겠지만, 크게 쓰면 천하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잔이지. 이 책에서 사람을 홀린다는 건 누구든 마음을 굴복시켜 복종하게 만든다는 뜻이니까. 사실이라면 엄청난 물건인 셈이지.”

도윤은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이 잔이 정말로 장 교수가 설명한 그대로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든 이 잔을 손에 넣기만 하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원하는 사람을 모두 복종시킬 수 있다면 세상에 하지 못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런데 이 잔이 건릉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의 물음에 뜻밖에도 장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건릉 내부를 찍은 카메라에 이 잔의 모습이 잡혔어. 아까 건릉 내부가 작은 황궁처럼 꾸며져 있다고 했지? 거기 옥좌 바로 옆에 그림과 흡사한 모양의 잔이 놓여 있다는 게 확인됐네. 영상이 흐릿하기 때문에 그 잔이 진짜로 이 책에 나오는 팔각금잔인지는 발굴을 해봐야 알 수 있겠지. 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이런 엄청난 물건이 있다면 교수님도 발굴단에 참여하지 그러셨습니까? 말씀대로라면 희대의 보물이 아닙니까?”

도윤의 말에 장 교수가 고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 잔이 정말로 전설대로의 능력을 지닌 물건이라면 절대로 무덤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네. 이건 보물이 아니야. 요물이지.”

도윤은 장 교수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쉽게 굴복시킬 수 있는 물건이라니! 확실히 그건 요물이라고 할 만 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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