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발굴단이 서안으로 이동한 지도 벌써 한 주가 지났다. 도윤은 석훈을 데리고 터널 작업이 한창인 발굴 현장으로 답사를 나갔다. 아직은 발굴 초기라서 포크 레인이 열심히 땅을 파고 있었다. 지금은 과감하게 땅을 파서 터널을 만들고 있지만, 터널이 묘실이 있는 곳에 가까워지면 발굴단원들이 인부들을 지휘하면서 조심스럽게 전진해나갈 것이다.
건릉은 그 자체로 커다란 산이다. 도윤은 석훈과 함께 측천무후를 기리기 위해 세운 글자 없는 비석, 즉 ‘무자비(無字碑)’와 대부분 머리가 잘린 61개의 석상 등을 돌아보았다. 그러면서 석훈에게 건릉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었다. 아무리 보디가드로 따라왔다지만 그래도 일단은 발굴단원으로 이름을 올렸으니 기본적인 사항은 알고 있으라는 뜻이었다.
무덤을 만드는 방법은 땅을 파서 관을 묻고 그 위에 다시 흙을 덮는 게 가장 일반적이다. 그러나 실제로 분묘를 조성하는 방식은 지역과 시대, 죽은 이의 신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봉분을 만드는 방식 역시 생각보다 다양하다. 대개는 사자의 신분이 고귀할수록 봉분이 더 높고 넓어진다. 왕이나 왕비의 경우에는 봉분 자체가 작은 동산만한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당나라 황제들은 조금 색다른 방식을 사용했어. 흙을 덮어서 동산을 만드는 게 아니라 원래 있던 산에 터널을 뚫어 그 끝에 묘실을 만들고 관을 안치했지. 물론 무덤이 완성되면 터널은 완전히 메워서 흔적을 없애버렸고.”
그의 설명을 들은 석훈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흙을 덮어서 산을 만드느니 아예 기존의 산에다 동굴을 파자는 거예요?”
“그렇지. 그게 돌과 흙을 쌓아서 산을 만드는 것보다는 여러 가지로 나은 점이 많으니까. 무엇보다 안에 있는 묘실이 무사하게 보존될 가능성도 크고.”
관이나 묘실 위에 돌과 흙을 쌓아올려 봉분을 만들 경우 세월이 지나면서 내부가 붕괴되는 경우가 많다. 하중을 조금만 잘못 계산해도 내부 구조가 조금씩 뒤틀리다가 어느 순간 통째로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그게 싫으면 이집트 피라미드처럼 무덤 전체를 하나의 건축물처럼 설계해서 만들면 된다. 돈과 노력이 많이 든다는 게 문제지만.
“그럼 다른 황제들도 전부 산을 파서 무덤을 만들면 좋잖아요? 근데 왜 안 그랬어요?”
“장점만큼 단점도 있어. 일단 산에다 굴을 파는 게 돌과 흙을 덮어서 봉분을 만드는 것보다 공사하기가 어려워. 게다가 산을 파서 무덤을 만들면 도굴을 막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어. 그만큼 함정을 만들기가 어려워지거든.”
“함정이요? 무덤에 함정도 있어요? 그런 건 피라미드 같은 데만 있는 거 아니었어요?”
“중국 황제들의 무덤에도 함정이 있어. 당연하잖아? 도굴꾼들이 가장 군침을 흘리는 게 바로 황제의 무덤이야. 막대한 보물이 묻혀 있을 게 뻔하니까. 근데 황제의 무덤은 워낙 커서 위치를 숨길 수가 없으니까 도굴방지 장치라도 만들어 둬야지.”
작은 산만한 분묘를 만들 때 가장 흔히 쓰는 도굴방지 장치가 바로 석실 위에 모래를 두텁게 덮는 것이다. 그런 뒤에 그 위에 다시 흙을 쌓아서 봉분을 완성한다.
발굴이 아닌 도굴일 경우, 봉분 전체를 차근차근 깎아내는 방식으로 작업할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당장 남들에게 들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굴꾼들은 보통 무덤의 위나 옆에 사람 하나가 간신히 지나갈 만한 구멍을 파서 묘실로 접근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런데 이때, 중간에 모래층이 있으면 구멍이나 터널 주변의 모래가 자꾸 안으로 쏟아져 내리게 된다. 작업하기 불편한 건 둘째 치고 나중에는 모래가 빠져나간 부분의 지반이 약해지면서 결국 위에 있는 흙이 통째로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그럼 구멍 안에 있던 도굴꾼은 꼼짝없이 빠져죽는 수밖에 없겠네요?”
“그렇지. 그리고 보통은 모래층에 날카로운 돌을 섞어 놔. 확실히 죽으라고.”
“우와! 옛날 황제들도 정말 독했네요?”
“독하니까 황제가 됐지. 그리고 너 같으면 자기 무덤을 파헤치는 놈을 살려두고 싶겠냐?”
봉분 중간에 모래층을 두는 건 기본이고 황제들의 무덤에는 그밖에도 각종 함정이 많았다. 발을 디디면 바닥이 무너지면서 날카로운 쇠꼬챙이가 박혀 있는 구덩이로 빠지게 만든다거나 화살이 발사되는 부비 트랩도 존재했다. 분묘를 덮은 흙이나 묘실 바닥에 수은을 재어놔서 침입자가 들어오다가 수은 증기에 중독돼서 죽게 만들기도 했다.
“화살을 이용한 부비 트랩은 오래 되면 시위가 삭아서 끊어지게 마련이야. 하지만 수은의 경우에는 정말 무서워. 그래서 발굴할 때는 방독면을 쓰고 일하기도 해.”
“저는 굴 다 파고 안에 있는 묘실이 발견되었다 그때 들어갈게요.”
석훈은 도윤의 설명을 들을수록 은근히 겁이 나는 듯했다. 도윤이 실소를 터트렸다.
“걱정하지 마라. 아까 말했듯이 건릉은 산을 파고 들어가서 묘실을 만들었기 때문에 모래층은 없을 거야. 묘실 바닥이면 몰라도 흙 속에 수은을 섞어놓지도 못했을 거고.”
“그럼 건릉에는 함정이 없다는 뜻이에요?”
“그럴 리가 있겠냐? 측천무후는 묘실을 뺑 둘러 석벽을 세우고 거기다 쇠를 녹여 부었어. 폭약으로 폭파를 하기 전에는 곡괭이 같은 걸로 구멍을 뚫기 어렵게 말이야. 근데 남의 눈을 피해야 하는 도굴꾼들이 함부로 폭약을 쓸 수는 없잖아? 무덤을 지키는 관리가 항상 근무하는데다가 멀지 않은 곳에는 인가도 있는데.”
건릉의 묘실 주변에 철벽이나 다름없는 석벽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도 역시 도굴꾼들이었다. 그나마 석벽까지 도달한 도굴꾼들도 오직 한 팀밖에 없었는데, 그들은 결국 그걸 뚫지 못하고 도굴을 포기했다. 건릉은 오랜 세월 동안 수도 없이 많은 도굴꾼들로부터 도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두 물리친 유일한 무덤이었다.
“밟으면 무너지는 함정이나 화살이 발사되는 부비 트랩은요?”
“천 년 동안 버티고 있을 활시위가 있겠냐? 하지만 밟으면 무너지는 함정이라면 혹시 모르지. 그러니까 너도 나중에 묘실에 들어가면 아무데나 막 밟고 다니지 마.”
“걱정 마세요. 저는 형 뒤만 졸졸 따라다닐 테니까.”
“뭘 내 뒤만 졸졸 따라다녀? 그게 보디가드라는 놈이 할 소리야?”
무심코 말을 뱉고 나자 문득 걱정이 되기는 했다. 측천무후가 만들어놓은 도굴 방지 장치가 정말 쇠를 녹여 부은 석벽뿐일까? 그 양반이 그렇게 만만한 여자가 아닐 텐데……?
* * *
서안으로 이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윤과 석훈은 다른 단원들이 자신들을 따돌린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노골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은근한 편도 아니었다. 발굴단장인 탕가오위안은 그래도 별 내색을 안했지만 린타오는 그들이 눈에 띄면 노골적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했다. 다른 단원들도 먼저 와서 말을 거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보니 도윤은 석훈은 자연스럽게 발굴단 안으로 섞여들지 못하고 겉으로만 맴돌았다. 기껏해야 어쩌다 왕화나 딩샤와 함께 밥을 먹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도윤으로서는 그게 오히려 편한 측면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영 아니었던 모양이다.
시안에서 머문 지 한 달가량 되었을 무렵, 그날도 도윤 석훈은 딩샤와 왕화와 함께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딩샤가 문득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린 교수와는 선배와 같은 감정 섹션에 있잖아요. 툭하면 회의를 할 텐데 그때도 전혀 아는 체를 안 해요?”
“글쎄? 잘 모르겠는데?”
“잘 모르다뇨?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어요?”
“그쪽이 날 아는 체 하는지 안하는지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쓴 적이 없어. 회의에도 고작해야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만 참석하거든.”
“거의 매일 열리는 게 아니고요? 주말은 쉰다고 쳐도 그 사람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최소한 세 번은 모여서 회의를 하는 것 같던데요? 하 언니 섹션은 거의 매일 회의를 하고 저희도 주말에만 조금 한가한 편이에요.”
딩샤는 요즘 황하를 하 언니라고 불렀다. 자주 식사를 함께 하다보니까 어느새 친해진 것이다. 도윤은 그냥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나도 회의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오면 빠지지 않고 나가긴 해. 그럼 나한테는 회의가 열릴 때마다 연락하지 않는가 보지 뭐.”
“그렇게 별 거 아닌 것처럼 얘기할 게 아니에요. 집단 따돌림이나 마찬가지잖아요?”
딩샤는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며 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정작 도윤은 태연했다.
“따돌림이 효과를 거두려면 당하는 쪽에서 억울해 해야 되는 거잖아? 근데 난 괜히 오라 가라 하지 않아서 오히려 편해. 일은 적게 해도 수당은 꼬박꼬박 나오잖아.”
왕이푸 회장과의 약속 때문에 발굴단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무료봉사는 아니었다. 도윤은 물론이고 석훈까지 꼬박꼬박 수당을 받아 챙기는 중이었는데, 외국인이다 보니 그 액수가 제법 짭짤했다. 게다가 숙식제공이 아닌가?
물론 도윤이 저쪽에서 먼저 부르지 않는 이상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건 단순히 편하게 돈을 벌자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다. 솔직히 회의에 참석해봤자 스트레스만 쌓일 뿐이었다.
감정 섹션 단원들은 회의를 할 때마다 당나라 유물의 사진과 영상 등을 비롯한 여러 자료들을 놓고 토론했다. 고대 중국의 유물 감정에 관한 논문을 요약해서 발표하고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다. 다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열심이었고, 나름대로 전문가들을 모아놨으니 회의의 수준도 낮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문제는 린타오가 너무 말이 많다는 거야. 단원들 가운데 수준이 가장 낮으면서도.’
아무리 도윤이 아는 게 많다고 해도 남들과의 토론을 통해 건질 게 전혀 없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세상에 그런 사람은 존재할 수가 없으니까. 그러나 린타오의 말도 안 되는 궤변과 가끔씩 터져 나오는 지루한 장광설을 참고 들어야 할 만큼 그 시간이 유익하지도 않았다. 솔직히 린타오를 참고 받아주는 다른 단원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터널이 묘실까지 뚫리면 본격적으로 감정 섹션 사람들이 나서서 안에 있는 유물들을 확인해야 할 거예요. 그때도 지금처럼 뒷짐만 지고 계실 생각이세요?”
왕화가 다소 우려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게 되면 왕 회장이 애써 도윤을 중국까지 부른 보람이 없게 된다. 도윤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당연히 나서서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펴봐야죠. 보고서도 작성할 겁니다. 그때 가서도 린타오나 다른 단원들이 유물 감정을 방해하면 이 친구가 나설 거예요.”
도윤이 손가락으로 석훈을 가리켰다. 녀석은 세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거의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열심히 밥만 먹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자 눈을 둥그렇게 뜨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전체 발굴단원들 가운데 현재까지 가장 완벽하게 무위도식하고 있는 녀석이 바로 석훈이었다.
* * *
묘실이 완전히 개방된 뒤에나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도윤의 계획은 갑작스럽게 터진 사고로 인해 휴지조각으로 변하고 말았다. 본격적으로 발굴이 시작된 지 두 달이 지나 아침마다 현장 부근에 서리가 하얗게 내리던 무렵의 어느 날 오후, 발굴단이 발칵 뒤집혔다.
그날도 도윤은 숙소에 머물면서 다른 황제들의 무덤에 대한 자료들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기가 마구 울어대기 시작했다. 딩샤였다.
“여보세요? 이 시간에 웬일이야? 오늘도 회의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
“큰일 났어요, 선배. 발굴 현장에서 사고가 터졌어요. 인부하고 단원들이 여러 명이나 다쳤대요. 터널에서 사람이 실려 나왔는데 입에서 피를 토하고 있더라고요. 죽었으면 어떡하죠? 괴로워서 마구 몸부림을 치던데.”
뭐? 입에서 피를 토해? 직감적으로 함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윤은 석훈과 함께 급히 현장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들이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터널 입구 주변에 줄을 쳐서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은 상태였다. 다쳤다는 인부들도 병원에 실려 간 뒤였다.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이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발을 동동 구르는 딩샤가 눈에 띄기에 다짜고짜 붙잡고 물어봤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 전 전화로 말했던 내용 이외에는 특별히 더 아는 게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왕화가 나타났다. 그제야 도윤은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터널이 묘실에 점점 가까워지면서 작업은 매우 더디게 진행되었다. 터널의 양 옆과 천정에 버팀목을 설치하는 작업은 숙련된 인부들이 맡았지만, 발굴단원들도 굴을 팔 때 나오는 흙 속에 수은과 같은 중금석이 섞여 있지 않은지 수시로 검사를 해야 했다.
중간에 쇳덩어리가 박힌 이중 석벽이 나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환호를 질렀다. 인부들이 달려들어 석벽을 깨내고 쇠를 녹여 떼어낼 때만 해도 며칠 내로 당고종과 측천무후가 잠들어 있는 묘실을 확인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팽배했다. 그런데 불과 한 시간 전, 석벽 한쪽을 완전히 들어낸 인부와 발굴단원들이 안으로 걸음을 내딛으면서 참사가 발생했다.
“석벽 너머의 바닥에 여러 장의 얇은 석판들이 죽 깔려 있었어요. 그런데 단원 한 명이 무심코 그 위에 발을 디디자마자 뭔가 날카롭게 끌리는 소리와 함께 천장에서 뭐가 팍 하고 터지더니 하얀 가루가 자욱하게 쏟아지더래요. 단원 한 사람하고 인부 둘이 그걸 그대로 뒤집어썼어요. 한 명은 입을 벌리고 있다가 삼키기고 했고.”
병원에 실려 간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기어코 죽고 말았다. 응급실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들이 손을 쓰기도 전에 숨이 넘어갔다고 했다. 나머지 둘도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하니 사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었다.
그날 저녁, 현장에서 철수해서 숙소에서 머물고 있던 단원들을 탕가오위안 단장이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당연히 분위기가 우중충했다. 단원들은 걱정과 공포가 뒤섞인 표정으로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단장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조금 전 병원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살아 있던 두 명도 조금 전에 숨을 거뒀답니다. 단장으로서 이번 사고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불행한 사고를 당한 동료들에게 조의를 표합시다.”
결국 세 명 모두 죽었다는 얘기에 분위기가 완전히 얼어붙고 말았다. 여기저기서 헉 하는 비명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누군가 손을 들어 물었다.
“사인이 뭡니까? 병원에서는 그 하얀 가루의 정체가 뭐라고 하던가요?”
탕 단장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어 대답했다.
“비상(砒霜)입니다.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극약이지요.”
단장의 입에서 비상이라는 말이 떨어지는 순간, 도윤은 속으로 탄식을 토했다. 측천무후라는 여자, 정말 독하구나.
비상은 비석, 혹은 신석이라 불리는 천연 광물을 가공해서 만든 결정형 독약이다. 흰색과 붉은 색의 두 가지가 있는데 전자를 백신석, 후자를 홍신석이라고 부른다. 둘 다 비소 화합물인데, 비소가 황과 결합한 것이 붉은 색의 홍신석으로 흔히 ‘학정홍’이라고도 부른다. 반면에 하얀색의 백신석은 삼산화비소(As2O3), 즉 비소 산화물이다.
하얀 분말이 날렸다고 한 것으로 보아 건릉에서 나온 것은 백신석인 모양이었다. 백신석은 청산가리보다 독성이 두 배나 강하기 때문에 입으로 들어가면 순식간에 목숨을 잃게 된다. 흡입해서 폐로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그 독한 걸 천장에 달아두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측천무후는 비상보다 더 독한 여자임이 분명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발굴 작업은 며칠 동안이나 중단되었다. 인부들 가운데 상당수는 일을 그만 두고 돌아갔고, 어떤 지독한 함정이 더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단원들을 묘실 안으로 무작정 밀어 넣기도 곤란했다. 그렇다고 석벽까지 뚫은 상태에서 발굴을 마냥 미루고 있을 수만도 없다는 게 또 다른 문제였다.
“이 박사. 잠시 나 좀 봅시다.”
탕가오위안 단장이 도윤을 자신의 방으로 부른 건 작업이 중단된 지 나흘 째 되는 날이었다. 왠지 꺼림직한 느낌을 받으며 방으로 들어선 그에게 단장이 단도직입적으로 부탁했다.
“이 박사가 좀 나서줬으면 좋겠소. 다들 무서워하는 건 알지만 누군가는 용기를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럴 때 젊은 사람이 앞장을 섭시다.”
도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양반 진짜 뻔뻔하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