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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153화 (153/300)

153화

천장 위의 공간은 정말로 황후의 묘실이었다. 사방을 정교하게 다듬은 돌로 마감한 넓은 석실 한 가운데에 허리 높이로 쌓아올린 단이 있었고, 그 단 위에 황후의 관이 안치됐다. 다만 다른 관과 다른 점이라면 다리 부분에 정사각형의 뚜껑이 있는 구멍이 뚫렸는데, 그 구멍이 단을 통과해 그대로 밑의 통로와 이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도윤은 밧줄에 매인 방패가 걸려 있는 구멍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해할 수가 없네. 처음 단을 쌓고 관을 제작할 때부터 이 구멍을 뚫어놨다는 얘긴데, 설마 죽은 시체가 살아나서 밑의 통로로 내려갈 거라고 생각했다는 거야?”

물론 그럴 리는 없다. 석벽 앞에서 죽은 시체가 황후의 복장을 한 젊은 여자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애초에 이 관 안에는 살아 있는 사람이 들어갈 예정이었던 게 분명했다. 당연히 묘실을 건축하고 관을 제작했던 사람들도 그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측천무후의 묘실에 장난을 친다고?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가 다리 쪽에 네모난 구멍이 뚫린 관을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데 석훈이 딩샤를 등에 업은 채 위로 올라왔다. 정작 그녀를 업고 밧줄을 탄 석훈은 멀쩡한데 묘실 안에 내려선 딩샤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겉으로만 봐서는 그녀가 석훈을 업고 올라온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진정해. 다 올라왔으니까 일단은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좀 가라앉혀. 분명히 이 묘실 어딘가에 밖에 있는 통로와 연결된 출구가 있을 거야.”

잠시 후, 딩샤가 조금 진정이 된 듯하자 세 사람은 곧바로 묘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당장은 보물보다 출구를 확인하는 게 더 급했지만 사방에 값비싼 부장품들이 가득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중간 중간 그쪽으로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근데 여긴 불교와 관련된 물건이 왜 이렇게 많아요?”

석훈이 묘실을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실제로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든 크고 작은 불상들이 묘실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당나라는 원래 도교와 불교를 숭상했어. 황궁 안에 도관과 절을 지어놓고 도사와 스님들이 거주했을 정도니까. 특히 측천무후는 생전에 스스로를 미룩불의 환생이라고 자처했어. 심지어 자기는 부처니까 내가 한 말은 곧 불경이 되어야 한다면서 ‘대운경’이라는 경전까지 짓게 했을 정도야.”

“자기가 미륵불이라고 했다고요? 그건 완전히 사이비 종교 교주나 마찬가지잖아요? 내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자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다, 뭐 그런 거 말이에요.”

“똑같은 얘기를 황제가 하면 더 이상 단순한 사이비 종교가 아니게 돼. 함부로 의심하거나 비웃었다가는 목이 달아날 테니까.”

말을 하면서도 도윤의 눈은 계속해서 묘실을 살폈다. 불교 부장품들 외에도 도가는 물론 유가와 관련된 물품들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책장 위에 놓인 나무 상자들 안에는 책이나 족자 형태의 서화가 들어있을 게 분명했고, 한쪽 벽에는 서 있는 선반 위에도 도자기와 함께 금은보석을 이용한 장신구들이 담긴 고급스러운 목함들이 가득했다.

“어? 저건 특별한 건가 본데요? 관 머리맡에 단을 만들어서 따로 올려뒀잖아요?”

석훈이 문득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는 표정으로 손가락으로 관을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관의 머리맡에는 따로 단을 만들어 모셔놓은 미륵불이 모셔져 있었다. 크기는 작은 편이어서 높이가 손바닥보다 약간 큰 편이었는데, 빛깔로 볼 때 전체를 황금으로 만든 게 분명했다. 도윤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다가가 불상을 들어올렸다.

“이건 아무래도 귀중품을 보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불상인 것 같은데? 등 쪽에 작은 서랍이 달려 있어. 이걸 열어서 안에다 뭔가를 넣어…”

그가 불상 뒤의 서랍을 잡아 빼려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선배. 잠깐만요. 죄송하지만 그 불상 저부터 좀 볼 수 있을까요?”

도윤은 무심코 뒤를 돌아보다가 깜짝 놀랐다. 딩샤가 초조함이 잔뜩 배인 얼굴로 어느새 자신에게 바짝 다가와 손을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표정이 너무나 간절했다.

“너 서화 복원이 전공 아니었어? 갑자기 왜 금불상에도 관심을 보이고 그래?”

“선배가 몰라서 그렇지 원래 불교 용품에도 관심이 있었어요. 영국에서 공부할 때 그쪽 수업을 들은 적이 있거든요. 아무튼 그거 저한테 좀 줘보세요.”

“알았어. 그런데 잠깐만 기다려. 일단 안에 뭐가 있는지만 잠깐 확인하고.”

“안 돼요. 그냥 저한테 달라니까요?”

도윤이 불상 등에 있는 서랍을 잡아 빼려는 순간 딩샤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높아졌다. 그 와 동시에 머리에 둔중한 통증이 느껴졌다. 잠시이기는 하지만 눈앞이 흐릿해질 정도였다.

“이게 무슨……?”

도윤의 눈에 자신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딩샤의 전신에 붉은 기운이 휘감겨 있는 게 느껴졌다. 그것은 앞으로 뻗은 그녀의 손끝을 따라 희미한 붉은 안개가 되어 흘러나와 도윤의 몸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너? 그게 도대체 뭐냐?.”

도윤은 입을 떡 벌렸다. 이게 뭔지는 누구보다 그가 더 잘 안다. 능력을 가진 물건이 그 주인을 만났을 때 흘러나오는 빛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의 눈이 딩샤의 허리에 매달린 작은 여행용 색으로 향했다. 붉은 빛은 거기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 * *

“선배. 그 불상을 저한테 넘기세요.”

딩샤의 목소리는 어느새 차갑게 굳어 있었다. 그녀의 얼굴 표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돌변한 딩샤의 태도도 당혹스러웠지만 무엇보다 도윤을 깜짝 놀라게 만든 것은 그가 저도 모르게 불상을 든 손을 앞으로 내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게 뭐지? 내가 왜 이러는 거야? 그때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던 석훈이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소리를 빽 지르며 다가왔다.

“두 사람 지금 뭐하는 거예요? 형? 딩샤 씨? 왜 그래요?”

그게 도윤을 구했다. 딩샤의 고개가 석훈을 향해 휙 돌아가면서 도윤을 감싸고 있던 붉은 안개가 순식간에 그에게로 옮겨갔다.

“석훈 씨도 거기에 멈춰요. 내가 허락할 때까지 움직이면 안 돼요.”

그러자 두 사람을 향해 다가오던 석훈이 마치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얼굴 표정을 보면 녀석 역시 자신의 행동에 놀란 게 분명했지만 아무리 힘을 줘도 바닥에서 다리가 떼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도윤이 자신의 몸에 치료의 능력을 일으켰다. 몸이 이상해진 것을 깨닫고 혹시나 싶어 취한 조치였다.

천만다행으로 그게 효과가 있었다. 도윤의 몸과 마음을 옥죄이는 것 같던 기운이 안개처럼 흩어지면서 다시금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도윤은 딩샤가 다시 자신을 향해 다시 몸을 돌리는 것을 보고 재빨리 다가가 그녀의 팔을 잡아 꺾었다.

“악!”

딩샤가 짧은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에 무릎을 꿇는 사이, 재빨리 손을 뻗어 그녀의 옆구리에 매달려 있던 색을 떼어냈다. 지퍼를 열자 안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물건이 튀어나왔다. 도윤은 여전히 붉은 기운을 내뿜고 있는 술잔을 꺼내 딩샤의 코앞에 들이대었다.

“이게 뭐지? 네가 왜 이걸, 아니 어떻게 이걸 가지고 있는 거야?”

그의 손에 들린 것은 팔각형으로 생긴 황금 술잔이었다. 십 년 전에 건릉 내부를 찍었던 영상에 의하면 당연히 옥좌가 위치한 중앙 묘실에 있어야 할 물건. 아리스 온라인의 창업자인 왕이푸 회장이 자신에게 꼭 진위를 감정해달라고 부탁했던 측천무후의 팔각금잔이었다.

도윤이 색에서 금잔을 꺼내 들이밀자 거칠게 저항하던 딩샤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와 더불어 석훈도 몸에 스며들었던 붉은 기운이 풀리면서 다시금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녀석은 마치 귀신을 본 사람처럼 눈을 크게 뜨고서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이 술잔은 뭐죠? 왜 제가 갑자기 꼼짝도 할 수 없게 된 거예요? 딩샤 씨는 왜 또 이래요?”

도윤은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내는 석훈을 짐짓 무시하고 무릎을 꿇은 딩샤에게 눈을 부라렸다. 그 역시 알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너 뭐냐? 어떻게 이런…….”

그가 대답을 재촉하려는 순간, 딩샤의 눈동자가 갑자기 위로 까뒤집혀지더니 고개가 뒤로 푹 꺾였다. 정신을 잃은 것이다.

“이 아가씨는 또 왜 이래? 이봐요? 이거 일부러 기절한 척 하는 거 아니야?”

석훈이 그녀의 어깨를 거칠게 흔들었지만 딩샤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도윤은 딩샤의 코끝에 손가락을 가져다대고 눈을 까뒤집어보았다.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기절을 위장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는 일단 석훈과 함께 딩샤의 소지품을 모두 꺼내고 몸을 밧줄로 묶었다. 별 것도 아닌 일을 했을 뿐인데도 이마에서 진땀이 흘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이 술잔은 뭐야? 모든 게 놀랍고 당황스럽기만 했다.

* * *

삼십 분 정도 딩샤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던 도윤은 결국 그녀의 몸에 다시 치료 능력을 사용했다. 그러자 그녀가 가벼운 신음소리와 함께 비로소 눈을 뗐다. 도윤은 그녀에게 일단 물을 한 모금 마시게 한 뒤, 색에서 꺼낸 금잔을 눈앞에 들이대었다.

“이건 분명히 측천무후의 팔각금잔이야. 확실한 진품이지. 하지만 이건 원래 옥좌가 있는 중앙 묘실에 있어야 해. 네가 어떻게 이걸 가지고 있는 거냐?”

하지만 정신을 차린 딩샤는 술잔에 대해 대답하기는커녕, 거꾸로 자신이 도윤의 손에서 뺏으려고 했던 황금불상에 대해서 물었다. 게다가 목소리가 아주 초조하고 절박했다.

“불상 등에 달린 서랍을 열어보셨어요? 그 안에 뭐가 있던가요?”

“뭐가 있었냐고? 그 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뺏으려고 했던 거야? 나하고 석훈이한테 이상한 수작까지 부려가면서?”

“제발 그 안에 뭐가 있었는지부터 말해주세요. 그럼 저도 궁금해 하시는 걸 대답할게요.”

도윤이 혀를 차면서 석훈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녀석이 옆에 두었던 황금불상을 들어 올리더니 등에 있는 서랍을 잡아 뺐다. 하지만 그가 서랍을 완전히 빼서 거꾸로 뒤집어 흔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에서는 먼지 한 톨 떨어지지 않았다.

“저 불상의 속은 처음부터 비어 있었어. 아무것도 없었다고.”

도윤의 말을 들은 딩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아무 것도 없었다고요? 정말이에요? 거짓말 하는 거 아니죠?”

“내가 왜 너한테 그런 걸 가지고 거짓말을 해? 왜? 너한테 사실을 말하면 그걸 뺏길까 봐 두려워서? 쓸 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이제 대답해 봐. 어떻게 측천무후의 팔각금잔이 네 손에 있는 거지? 어떻게 얻은 거야?”

하지만 딩샤는 얼른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기어코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워낙 애처로워서 도윤가 석훈은 자기들이 무슨 몹쓸 짓이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딩샤는 그 뒤로도 십 분이 넘도록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기만 했다. 두 사람의 입장에서는 미치도록 짜증이 나는 상황이었다.

* * *

도윤이 드디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제법 시간이 지난 뒤였다. 간신히 감정을 추스른 딩샤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다.

“그 잔은 측천무후가 애용했던 팔각금잔이 맞아요.”

“맞는다고? 그게 말이 돼? 이건 건릉의 중앙 묘실에 있어야 하는 거잖아? 거긴 이제까지 아무도 들어간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팔각금잔을 네가 가지고 있다는 거야?”

딩샤가 처연하게 웃으며 천천히 설명했다.

“그건 무후의 팔각금잔이 맞지만 건릉에서 나온 게 아니에요. 벌써 오래 전에 태평공주의 무덤에서 도굴된 거니까요. 나중에 감정해 보시면 알겠지만 중앙 묘실에 있는 건 측천무후의 장례를 치를 즈음에 만들어진 복제품일 거예요. 진짜는 무후가 죽자마자 태평공주가 빼돌렸거든요.”

측천무후는 남편인 당 고종과의 사이에서 4남 2녀를 두었다. 태평공주는 그 가운데 차녀였다. 성격이나 능력의 모든 면에서 어머니를 가장 많이 닮았다는 평을 들었던 그녀는 측천무후 생전에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그녀 역시 무후의 사후에 동생인 예종을 몰아내고 자신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려고 했다. 그녀가 어머니와 달랐던 점은 거사에 성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역으로 동생에게 숙청을 당했다는 점뿐이었다.

“형, 태평이라면 아까 그…….”

석훈이 옆에서 뭔가 말을 하려는 것을 도윤이 손을 뻗어 제지시켰다. 녀석이 하려는 말은 굳이 들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아까 무너진 석실 조각에서 발견했던 손톱으로 긁은 흔적, 거기에 쓰인 태평이라는 글자가 혹시 태평 공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일 거다. 도윤도 순간적으로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 술잔이 어떻게 딩샤의 손에 들어갔는지가 더 중요했다.

“이 술잔에 있는 능력이 뭐지? 넌 어떻게 해서 이 술잔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거냐?”

도윤의 추궁을 받은 딩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배가 그걸 어떻게……?”

“내가 그걸 어떻게 아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묻는 말에 대답부터 해.”

도윤이 눈을 부라렸다. 지금도 금잔에서 흘러나온 붉은 빛이 딩샤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녀가 이 유물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더구나 그 빛의 연결이 유난히 선명하고 강했다. 그녀가 링커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금잔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다만 상황으로 볼 때 능력의 사용에 제한이 있는 게 분명했다.

도윤의 거듭된 추궁을 받은 딩샤가 긴 한숨을 토했다.

“서로 코드가 맞는다고 할까, 어떤 사람들은 그 금잔의 힘을 이용해서 사람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어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뭐든지 다 시킬 수 있을 정도로 힘이 강하지도 않아요. 그래도 대상으로 삼은 사람에게 꾸준히 힘을 사용하면 상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제가 하는 말을 무조건 따르게 돼요. 일종의 세뇌 능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나하고 석훈이한테 그 능력을 썼던 거야? 언제부터? 그리고 왜?”

“북경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요. 선배는 사실 이상할 정도로 세뇌가 잘 통하지 않는 편이라서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게다가 함정에서 기절했다 깨어나니까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세뇌가 풀려 있더라고요.”

도윤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부상을 입고서 치료의 능력을 쓴 때문일 것이다. 그때 치료 과정에서 부서졌던 무릎이 나았을 뿐만 아니라 머리도 좀 개운해졌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게 아마 세뇌에서 풀려나는 느낌이었던 모양이다. 석훈에게도 치료 능력을 썼으니 녀석도 그때 세뇌가 풀렸을 것이다.

“아까 보니까 나하고 석훈이를 잠시 꼼짝 못하게 할 수도 있던데?”

“맞아요. 아주 잠깐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도 가능해요.”

“그럼 왜 그렇게 미리부터 공을 들였지? 그냥 필요할 때만 능력을 빌려 쓰면 되잖아?”

딩샤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하면 세뇌가 잘 걸리지 않을 뿐 아니라 저도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받아요. 기절을 하는 정도는 오히려 다행이고, 잘못하면 당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저까지 백치가 될 수 있어요.”

도윤은 저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그러니까 자신이 딩샤의 말을 듣고 함께 묘실 탐사에 나섰던 게 사실은 진심이 아니라 금잔의 힘에 홀린 탓이었다 거지?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맹랑한 아가씨에게 정신 지배를 받았다고? 화가 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저절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럼 이건 원래 네가 가지고 있던 거야? 아니면 태평 공주의 무덤에 들어가 직접 도굴한 거야?”

“아니요. 전 도굴을 한 적이 없어요. 그 팔각금잔은 영국에 사는 다니엘 로스차일드라는 부호에게서 받았어요. 이게 있으면 선배를 제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다니엘 로스차일드! 그 말을 들은 도윤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그 자식의 이름이 왜 또 여기서 튀어나오는 거야?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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