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네가 다니엘 로스차일드, 그 개자식을 어떻게 알지?”
도윤의 목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거칠어졌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다니엘 때문에 한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잘츠부르크에서 가짜 파라켈소스의 검을 이용해 나름대로 복수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측천무후의 무덤에서 또 다시 그 자식과 연결되었다. 다니엘과 얽힐 때마다 자꾸 죽을 고비에 처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자 순간적으로 분노가 확 치밀었다.
그때 딩샤가 고개를 푹 숙이면서 흐느끼듯이 말을 뱉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런던에 있는 크리스티 아카데미에서 석사 과정을 밟을 때였어요. 매년 부활절 휴가 직전에는 전교생들이 참석하는 파티가 열리곤 했거든요. 그때 이 팔각금잔을 가지고 진행하는 이벤트가 있었어요.”
“이벤트? 어떤 이벤트?”
“금잔에 술을 담아서 학생과 교수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소원을 비는 거예요. 그게 끝나면 일제히 건배를 하죠. 매년 되풀이되는 평범한 행사였어요.”
술잔에는 보통 백포도주나 보드카처럼 무색투명한 술을 담는다. 그런데 딩샤가 술잔을 들고 소원을 빌 때 갑자기 잔 속의 술 색깔이 빨갛게 변했다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안에 뭔가 떨어져서 그렇게 됐을 거라고만 생각했지요. 그런데 며칠 뒤에 어떤 사람이 저를 찾아왔어요. 그 술잔이 사실은 다니엘 로스차일드 씨의 것이고, 그분이 저를 초대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로스차일드 씨의 저택으로 찾아가서 만났어요.”
그때부터 다니엘은 딩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학비와 생활비를 모두 대주는 것은 물론이고 그녀의 남동생마저 런던으로 불러 들여서 유학을 시켜줬다는 것이었다. 남동생은 런던에서 공부를 마친 뒤 지금도 그곳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딩샤가 술잔의 비밀에 대해 듣게 된 것은 그런 돈독한 관계가 1년 이상 지속된 뒤였다.
“학위를 받고 중국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로스차일드 씨가 저를 다시 집으로 불렀어요. 그때 술잔과 교감할 수 있는 사람, 즉 팔각금잔의 진정한 주인을 만나면 잔속의 술 색깔이 붉게 변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리고 술잔의 주인은 그걸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나 행동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얘기도요.”
“그걸 믿었다고?”
“당연히 처음에는 안 믿었지요. 그러자 로스차일드 씨가 저택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 실험을 하게 시켰어요. 몇 차례 실험이 끝난 뒤에는 저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었죠.”
도윤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그걸 여기까지 가지고 왔다고? 다니엘이 어떤 인간인데 이 금잔을 너에게 넘겨주겠어? 자칫하면 자신도 너의 꼭두각시가 될 수도 있을 텐데.”
“금잔을 넘겨받은 건 발굴단이 정식으로 발족된 뒤에요. 그리고 로스차일드 씨에게는 금잔의 능력이 통하지 않아요. 이미 실험을 통해 확인한 일이에요.”
“다니엘에게는 능력이 통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건 저도 몰라요. 아마 능력을 막을 수 있는 특이한 체질인가 보죠. 아니면 방어가 가능한 특별한 물건을 가지고 있던가. 아무튼 그에게는 확실히 능력이 통하지 않았어요.”
도윤은 손으로 턱을 괸 채 묘실 안을 왔다 갔다 했다. 금잔의 능력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직접 당해봤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많았다.
“다니엘은 어떻게 이 금잔의 비밀에 대해 알게 된 거지? 그냥 도굴을 해서 금잔을 손에 쥐었더니 이 물건이 어떤 건지 감이 딱 왔을 리는 없잖아?”
그가 도윤처럼 사물에 깃든 잔류 기억을 읽을 수 있는 링커라면 몰라도.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팔각금잔이 발견된 태평 공주의 무덤에서 작은 책자가 함께 발굴되었어요. 아마 공주가 직접 써서 남긴 것 같아요. 거기에 금잔의 비밀과 능력에 대한 기록이 있었어요. 자신은 금잔의 주인이 아니라서 아쉽게도 무후처럼 황제가 될 수 없었다고 탄식하는 내용도요.”
“책에 쓰인 기록을 직접 확인했나?”
“네. 로스차일드 씨가 보여줬어요.”
언젠가는 로스타일드의 저택을 털어서라도 그 책을 한 번 봤으면 좋겠군. 하지만 그건 나중 일이고 지금은 당장 확인해야 할 더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도윤은 손을 뻗어 속이 텅 빈 황금 불상을 들어서 딩샤의 코앞에 들이대었다.
“다니엘이 너에게 팔각금잔을 빌려주면서까지 얻으려고 했던 게 뭐지? 그가 이곳에서 찾던 게 도대체 뭐야? 넌 이 불상 안에 도대체 뭐가 들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냐고?”
딩샤가 고개를 들어 불상과 도윤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녀는 입술을 달싹거리며 한동안 무언가를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잠시 후, 그녀의 입에서 모기소리처럼 작은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석가모니의 진신 사리요.”
“뭐라고?”
“부처님의 진신 사리 말이에요. 그게 그 황금불상 안에 들어 있다고 했어요. 태평 공주의 무덤에서 발견된 책에 그렇게 쓰여 있었어요.”
도윤이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의 옆에 놓인 황금불상을 쳐다봤다. 이 안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들어 있었다고? 고작 그걸 얻기 위해 이 난리를 쳤단 말이야?
* * *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한 다음 그 뼈를 갈아서 가루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아무리 애를 써도 잘 갈리지 않는 보석처럼 단단한 덩어리가 나오기도 하는데 이걸 사리라고 부른다. 보통 죽은 사람이 생전에 수행이 깊고 불력이 높았을 경우에 나온다고 하는데, 그 때문에 사리는 소중하게 취급되어 따로 보관되는 경우가 많다.
석가모니 역시 죽은 후에 불교식 화장법인 다비식을 통해 많은 사리가 발견되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이것을 진신 사리라고 하는데 석가모니의 화신, 혹은 법신(法身) 그 자체로 간주된다. 문제는 전설을 그대로 믿을 경우, 그 양과 숫자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전설에 따르면 부처가 입멸한 뒤에 나온 진신 사리는 그 양이 8말 8되였고 숫자로는 무려 8만 4천개나 되었다. 솔직히 부처의 전신이 뼈와 살까지 몽땅 사리였다고 해도 불가능한 양과 수였다. 그 때문에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불교에서 의미 있게 간주되는 수를 그냥 석가모니의 진신 사리에 대응시켜 만들어낸 말이라는 견해도 많았다.
당시 석가모니의 진신 사리를 요구하는 나라가 너무 많자, 수행자 한 명이 중재에 나섰다. 그는 인도 각지에 여덟 개의 탑을 세우고 그 안에 사리를 나누어 보관했다. 이것을 근본 8탑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불교의 중흥자로 알려진 아소카 대왕, 혹은 아육왕이라 불리는 인도의 황제가 이 탑들을 모두 해체하고 사리를 수많은 곳에 나누어줬다.
그로 인해 석가모니의 진신 사리가 전 세계로 흩어졌다. ‘대당서역기’에 따르면 당나라 때 현장이 부처님의 진신 사리 150과를 인도에서 중국으로 옮겼고, 의정 역시 300과를 가져왔다. 우리나라는 신라 선덕 여왕 때 자장스님이 당나라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뼛조각 100과를 모셔와 황룡사, 통도사 등에 봉안했다는 얘기가 삼국유사에 전한다.
사실 석가모니의 진신 사리는 그 자체로 귀한 성물임이 분명했지만 양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였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는 물론이고 동남아시아와 티벳의 절들 가운데에도 석가모니의 진신 사리를 보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곳이 너무 흔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정말로 고작 부처의 진신사리를 얻기 위해 금잔을 동원하고 목숨까지 걸었단 말이야? 차라리 인도나 중국에 있는 절들을 뒤지지 그랬어? 진신 사리를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곳들 많잖아? 그게 더 확실하고 안전하지 않아?”
도윤의 질책에 가까운 말에 딩샤가 처연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널려 있는 석가모니의 진신 사리는 대부분 가짜에요. 우리가 아는 고승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기를 치거나 혹은 사기를 당했는지 선배도 잘 알잖아요? 원래 근본 8탑에 보관된 진신 사리는 각각 한 개씩뿐이었어요. 원래부터 여덟 개만 존재했다는 거죠.”
“그것도 하나의 견해일 뿐이지. 솔직히 어떤 사리가 진짜인지 누가 알겠어?”
“측천무후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신 사리가 진짜일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어요. 그건 카쉬야파마탕가, 그러니까 가섭마등이 축법란과 함께 처음 중국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왔을 때 가지고 온 거니까요.”
중국에 최초로 불교가 전해진 것은 후한 시절, 서기 67년으로 알려졌다. 가섭마등과 축법란이라는 인도 승려가 백마에 불경을 싣고 중국으로 건너와서 불교를 전했다는 것이다. 당시 후한의 명제는 지금의 낙양 백마사를 지어 두 승려를 머물게 했다. 이때 두 사람이 천축어를 중국어로 번역한 불경이 최초의 한문 불경이다.
불교에서는 불, 법, 승, 즉 부처와 불경, 승려의 셋을 삼보(三寶)라고 부른다. 가섭마등과 축법란은 중국에 이 삼보를 가지고 왔다. 승려는 자신들이었고, 불경은 수많은 천축 불경을 암송하고 있던 축법란을 통해 번역해서 전했다. 딩샤의 말에 의하면 나머지 하나인 불, 즉 부처를 대신해서 가지고 온 것이 그의 진신사리였다는 것이다.
“그것도 태평 공주의 무덤에서 나온 책에 쓰여 있던 내용이야?”
도윤의 물음에 딩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인지는 저도 몰라요. 다만 말씀드렸듯이 측천무후는 분명히 그렇게 믿었어요.”
태평공주는 무후가 살아생전 가장 총애했던 자식이었다. 아마 자신을 가장 많이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무후는 태평공주가 어렸을 때, 여러 차례에 걸쳐 불상에서 진신 사리를 꺼내 보여주며 자랑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딸이 너무 어려서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예상과는 달리 태평공주는 당시 무후가 했던 말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중국에 삼보를 전했던 가등마섭의 말에 의하면 자신들이 가져온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는 업으로 인한 윤회의 고리를 끊어주는 힘이 있다고 했어요.”
딩샤의 말에 도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윤회의 고리를 끊어준다고? 부처가 된다는 말이야?”
“아뇨. 무후는 그 말을 좀 더 도가적으로 이해했어요. 목숨이 경각에 달한 사람이 사리를 삼키면 나중에 부활할 수 있다고 믿은 것 같아요. 그것도 몸이 다시 젊어진 상태로요.
순간 도윤과 석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죽은 사람이 젊어져서 환생한다고? 도윤의 머릿속으로 딩샤의 얼굴이 유난히 창백하게 변했던 장면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석벽 앞에 쓰러져 죽은 시체가 젊은 여자의 것이라고 말했을 때였다.
“너도 그 말을 믿었다는 말이야? 정말로 그런 황당한 물건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해?”
석훈이 기가 막히는지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러자 딩샤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어떻게 안 믿어요? 사람의 마음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술잔도 존재하는 마당에?”
“아무리 그래도 세뇌와 부활은 너무 차원이 다르잖아?”
“우리 모두 함께 봤잖아요? 측천무후의 무덤 안에서 젊은 여자의 시체가 발견되었어요. 그럼 그 시체가 누구 건데요? 무후의 시신을 이곳에 안치했던 사람들이 설마 팔십 먹은 노파의 시체와 팔팔하게 살아 있는 젊은 여자도 구분하지 못했을 거 같아요? 시체를 염하고 장례를 치르는 동안 무후의 얼굴을 확인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 거라고요?”
석훈은 입을 다물었다. 사실 그로서도 이곳에서 발견된 기괴한 정황들을 마땅히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 도윤이 길게 한숨을 토했다.
“윤회의 고리를 끊어주기는 개뿔. 사리를 삼켜서 젊은 사람으로 다시 살아나면 뭐해? 그런다고 깨달음을 얻어서 부처가 되는 것도 아니고 영생을 누리지도 못하는데. 고작 몸이 다시 한 번 젊어지는 것뿐이잖아? 그렇게 젊어져서 얻은 대가가 통로에 갇혀서 굶어죽는 것인 줄 알았다면 무후도 절대로 다시 살아나고 싶지 않았을 거야.”
그 말에 딩샤와 석훈도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 석벽 앞에서 죽은 젊은 여자가 다시 살아난 무후가 맞는다면 그녀는 세상 최고의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받은 셈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살아나기 위해 선택한 무덤이 결국 자신의 진짜 무덤이 되다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네요.”
석훈 역시 기가 막힌지 혀를 찼다. 다들 비슷한 심정이었다.
* * *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을 설명해줄 수 있는 해답이 있기는 한데, 그 해답 자체가 너무나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 자리에 있는 세 사람 모두 세상에는 과학이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경험했다는 점이었다.
‘왕이푸 회장이 끝내 밝히지 않았던 물건이 혹시 석가모니의 진신 사리가 아니었을까?’
도윤은 문득 왕 회장도 의심스러워졌다. 재력과 권력을 한손에 쥐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게 바로 죽지 않고 오래 사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겪었던 몇 차례의 사건을 통해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왕이푸는 건릉 안에 욍희지의 난정서와 무후의 팔각금잔이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난정서는 이제부터 묘실을 뒤져보면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팔각 금잔도 실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왕 회장의 예상과는 달리 건릉이 아닌 태평공주의 무덤 속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그렇다면 남은 것은 그가 끝내 말하지 않은 세 번째 물건이었다.
“형.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여기서 나갈 방법을 찾는 게 먼저예요. 잘못하다가는 우리도 측천무후 꼴이 될 수 있다고요.”
석훈이 골똘하게 생각에 잠겨 있는 그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그제야 도윤도 정신이 번적 들었다. 맞는 말이다. 무덤의 비밀을 푸는 것보다는 살아나갈 방법을 찾는 게 먼저였다.
도윤은 딩샤를 일으켜 세운 다음 그녀를 앞세워서 묘실 안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두 팔을 등 뒤로 꺾어 밧줄로 묶고, 압수한 금잔은 석훈에게 주어 가장 뒤에서 따라오게 했다. 마음 같아서는 요물이나 다름없는 금잔을 부숴버리고 싶었지만 그 역시 지금 당장 할 일은 아니었다.
무덤 안에 있는 각각의 묘실들은 문이 없어 휑하니 뚫린 통로를 통해 연결되어 있었다. 세 사람은 얼마 걷지 않아 곧바로 중앙의 묘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황제가 옥좌에 앉아 대신들의 조회를 받을 수 있는 형태로 꾸며진 커다란 내전 형식의 묘실이었다.
중앙의 묘실은 모두 여섯 개의 회랑을 통해 서로 다른 여섯 개의 묘실로 연결되어 있었다. 옥좌 뒤에 나 있는 두 개의 회랑은 각각 고종과 측천무후의 묘실로 통하는 길이었다.
“합장을 시켰다고 해서 관도 같은 방에 나란히 썼을 줄 알았더니 방을 따로 만들었네요?”
두 황제의 묘실을 확인한 석훈이 이상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명색이 둘 다 황제라서 그렇게 한 게 아닐까? 어느 쪽이든 서로에게 지조를 지켰던 것도 아니니까 굳이 죽어서까지 나란히 잠들고 싶지는 않았을 수도 있지.”
도윤의 대답이었다. 황제의 관이 안치된 두 개의 묘실 이외에도 중앙 묘실의 양 옆으로 다시 또 각각 두 개의 묘실이 만들어져 있었다. 두 개의 묘실은 황제들이 평소에 거처하던 침전을 본 딴 것이었고, 나머지 둘은 서재를 겸한 개인 집무실과 부처를 모신 불당이었다.
묘실을 모두 확인한 세 사람의 표정은 어두웠다.
“묘실 어디에도 밖으로 통하는 통로는 없는 것 같은데요? 그냥 다 막힌 공간이에요.”
석훈의 말에 딩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이렇게 겁이 많은 아가씨가 왜 여길 들어오겠다고 자원을 해서는……. 도윤은 아무 말도 없이 옥좌의 반대편 끝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함정이 있다는 건 누군가 이곳으로 오지 못하게 막으려했다는 뜻이다. 그럼 그 함정들을 모두 피할 경우 적어도 중앙 묘실에 도달할 수는 있는 게 아닐까?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애초에 이곳으로 각종 물건과 관을 옮기기 위해 사용했던 통로는 있어야 할 게 아닌가?
‘환생한 무후는 하필 지하의 통로에 갇히는 바람에 굶어죽었다고 쳐도, 정말 이곳에도 밖의 복도와 연결되는 부분이 전혀 없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나중에 벽을 쌓아 다시 막았다고는 해도 분명히 원래는 뚫려 있었던 통로가 존재할 것이다. 그의 시선이 옥좌에 앉은 황제가 바라보는 부분, 그 맞은편 벽에 꽂혔다. 도윤이 갑자기 그곳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