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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155화 (155/300)

155화

도윤은 옥좌의 맞은편 끝을 향해 걸어가면서 현재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차마 석훈에게는 털어놓지 못했지만 그는 솔직히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유일한 희망은 처음 그들이 뚫고 들어왔던 석벽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찾는 것뿐이었다.

‘처음 건릉을 조성할 때만 해도 한번 묘실을 닫으면 밖에서는 절대로 침입할 수 없게 만들었을 거야. 문제는 그 때문에 무후 역시 부활을 해도 이곳을 벗어나는 게 불가능해졌다는 거지. 그래서 나중에 이곳을 개축할 때 자신의 묘실에서 석벽 안쪽의 회랑으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를 따로 준비한 게 아닐까?’

그렇다면 회랑에서 다시 무덤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도 마련해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래 회랑으로 이어졌어야 할 비밀 통로의 끝이 함정으로 변한데다 심지어 석벽으로 막혀버렸다는 게 그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누가 그렇게 했는지는 몰라. 그러나 묘실을 빠져나가는 비밀 통로를 막은 사람이 회랑에서 무덤 밖으로 통하는 통로는 그냥 두었을까?’

없애버렸을 수도 있고 그러지 못했을 수도 있다. 도윤은 곰곰이 생각한 끝에 그 통로를 없애기는 힘들었을 거라는데 좀 더 무게를 두었다. 회랑으로 빠져나오는 통로 끝을 함정으로 만들고 출구를 벽으로 막아버리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도 전체가 하나의 산인 무덤을 관통하는 통로를 무너뜨리는 것보다는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에 요즘처럼 성능 좋은 폭약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보는 눈도 많았을 거 아냐?’

물론 일단 회랑까지만 빠져나갈 경우 거기서 밖으로 나가는 건 어렵지 않다. 자신들이 이미 석벽까지 이르는 터널을 뚫어서 회랑 안으로 들어왔으니까. 자신의 짐작이 맞는다면 그곳 외에도 무덤을 빠져나갈 수 있는 다른 통로가 하나 더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새삼 무후의 비밀 통로를 막은 사람이 누구일지가 궁금해졌다.

건릉은 원래 무후의 남편이었던 고종을 위해 조성한 무덤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사망한 뒤 아들마저 죽이고 스스로 황제가 된 무후는 본인이 병들어 눕게 되자 굳이 고종의 곁에 함께 묻히겠다고 선언했다. 살아생전 수많은 젊은이들을 침대에 불러들인 것으로 유명했던 그녀의 평소 행실로 볼 때 뜻밖의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중앙의 묘실을 비롯한 전체적인 무덤의 구조는 고종을 장례지낼 때 이미 완성했을 거야. 그걸 모조리 뜯어고치기는 힘들었겠지. 그 대신 나중을 위해 필요한 부분만을 개조한 게 분명해. 비밀 통로도 그때 만들었을 테고. 그 공사를 지휘했던 사람이 누구였을까?’

건릉 개축 공사 당시에는 이미 무후가 병들어 누워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누워있는 동안 비밀 통로는 무후가 지시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완성되었다. 변경을 지시한 사람은 당연히 공사의 책임자이거나 그를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도윤은 무후가 믿었던 둘째 딸인 태평공주가 범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딩샤의 말이 맞는다면 그녀는 무후가 죽은 뒤 어머니의 팔각금잔을 빼돌렸고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까지 노렸다. 통로가 석벽으로 막히고 줄사다리마저 끊어져 내렸을 때, 무후도 그것을 눈치 챘을 것이다. 그러니까 마지막에 손톱으로 긁어 딸의 이름을 남겼겠지.

‘태평(太平)’과 ‘허원(許願)’이라는 네 글자 가운데 앞의 두 글자가 태평공주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허원’은 무슨 뜻일까? 어쩌면 그것 역시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가리키는 고유명사일도 모른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문득 이곳에서 빠져나가면 확인해야 할 장소가 한 군데 떠올랐다.

그가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어느새 옥좌의 맞은 편 끝에 있는 벽 앞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열 마리의 용이 구름을 부리며 노니는 이른바 ‘운룡도’가 그려져 있었다. 중앙에는 커다란 백룡과 청룡이 여의주를 움켜쥔 채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고, 그 주변으로 여덟 마리의 조금 더 작은 용들이 각자 서로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태평공주가 어머니인 무후처럼 독한 성격이었다면 분명히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뒀을 거야. 진신사리는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고 술잔 역시 자신에게는 반응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테니까. 나라면 혹시라도 죽은 어머니가 얌전하게 무덤에 묻혀서 썩어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거 같아.’

중앙 묘실의 다른 방향으로는 모두 각각 두 개씩의 작은 묘실과 그곳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연결되어 있었다. 반면에 이곳은 전체가 커다란 벽으로 막혀 있을 뿐이었다. 따라서 만약 그녀가 어딘가에 묘실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두었다면 지금 보고 있는 벽 뒤가 가장 그럴 듯한 장소였다.

벽화 앞으로 다가간 도윤은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그림 표면을 눌러봤다. 짐작대로 딱딱한 석벽에 직접 물감을 칠해 그린 그림이었다. 모든 용은 크기와 색깔이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파란 눈과 흰 수염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 자체는 전통적인 운룡도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가 한참 동안 벽을 더듬거리기만 하자, 보고 있던 석훈이 답답했는지 다가왔다.

“형, 뭘 그렇게 자꾸 더듬대고 있는 거예요? 벽에 꿀이라도 발려져 있어요?”

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도윤이 피식 웃으며 벽에 그려진 용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 이 용들 말이야.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니?”

그의 말에 따라 벽화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석훈이 고개를 저었다.

“다 잘 그렸는데요? 뭐가 이상하다는 거예요?”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홀수를 양, 짝수를 음이라고 생각해. 특히 숫자 9는 노양(老陽), 혹은 태양(太陽)이라고 해서 가장 강한 양의 기운을 뜻하지. 지위로는 황제에 해당하는 수야. 그렇게 보면 이곳은 황제의 무덤이니까 당연히 아홉 마리가 그려져 있어야 하거든. 그런데 여기는 한 마리를 더 해서 무려 열 마리가 그려져 있잖아.”

“물감이 남아서 한 마리 더 그렸나 보죠, 뭐. 더 그리면 안 돼요?”

너한테 뭘 바라겠냐? 도윤이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녀석이 발끈했다.

“에이, 참. 사람이 모를 수도 있지. 여기는 무덤이잖아요. 그러니까 양이 아니라 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짝수로 그렸나보죠, 뭐.”

“노음, 혹은 태음에 해당하는 숫자는 6이야. 네 말대로라면 여섯 마리를 그렸어야지.”

“그럼 형은 왜 여기에 열 마리가 그려져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혹시 구궁이니 팔괘니 하는 얘기를 하려면 아예 입도 벌리지 말아요. 어차피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할 테니까.”

“구궁의 원리를 따라 그렸어도 용은 아홉 마리여야지. 그리고 그럴 경우 중앙에는 황룡 한 마리만 그렸어야 해. 팔괘도 아니야. 주변에 있는 여덟 마리의 용이 차지하고 있는 방위가 팔괘의 위치와 비슷하긴 한데 색깔이 전혀 안 맞아. 팔괘도 각각 어울리는 색이 있거든.”

설명하지 말라니까! 석훈이 기가 막혀서 입을 헤 벌리고 쳐다보고 있는데도 도윤은 아랑곳하지 않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측천무후는 불교를 신봉할 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을 미륵불로 자처했어. 그런데 불교에서는 10이 완전수야. 그래서 온 세상을 가리킬 때도 시방(十方)세계라고 불렀지. 그렇게 따지면 열 마리를 그린 게 아주 이상한 건 아닌데…….”

말을 하던 그가 갑자기 가장 오른쪽에 있는 푸른색의 용 그림에 손을 대더니 눈동자를 꾹 눌렀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도윤이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면서까지 손가락이 부러져라 용의 눈을 누르는 것을 본 석훈이 혀를 차며 나섰다.

“거참, 뭐하는 거예요? 이리 나와 봐요. 이걸 누르면 되는 거예요?”

도윤이 입맛을 다시며 물러나자 이번에는 석훈이 용의 눈에 손가락을 대고 눌렀다. 처음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녀석이 이를 악물고 본격적으로 힘을 주자 갑자기 우르릉 하고 돌이 서로 마찰되는 소리와 함께 눈동자가 안으로 쑥 밀려들어갔다. 석훈이 깜짝 놀라 손을 떼었지만 벽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헉. 이거 어떻게 된 거에요? 용 눈동자가 무슨 비밀 단추라도 되는 거예요?”

석훈의 말에 도윤이 눈썹을 찌푸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랬군. 확실히 벽 속에 뭔가 장치가 되어 있어.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까. 일단 눌려지는 눈동자가 더 있는지부터 찾아보자.”

도윤의 재촉을 받은 석훈이 그림 속에 있는 용의 눈을 하나씩 찌르기 시작했다. 녀석이 씩씩대며 눈동자를 눌러대는 바람에 물감이 일부 벗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벽화를 보존하기 위해 조심해야 할 상황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열 마리 용안들 가운데 안으로 밀려들어가는 것은 모두 네 개뿐이었다. 문제는 그걸 다 눌렀는데도 벽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마지막 네 번째 눈동자가 안으로 밀려들어가는 순간, 이미 안으로 들어가 있던 다른 눈알들이 도로 튀어나와 버렸다. 석훈이 손을 떼자 네 번째 눈알마저 고정되지 않고 밀려나왔다

“이거 뭐예요? 분명히 무슨 장치가 되어 있기는 한 것 같은데 왜 눈알이 다시 밀려나오는 거지? 누르는 순서라도 따로 있나?

석훈은 맥이 빠지는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데 그의 말에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대로 누르는 순서가 따로 있는 게 맞는 것 같다. 이 작은 용들 말이야. 얼핏 보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것 같지만 머리는 모두 일정한 방위를 차지하고 있지?”

도윤의 말을 들은 석훈이 그림을 쳐다보더니 감탄사를 터트렸다.

“확실히 그런데요? 중심에서 멀고 가까운 게 다를 뿐이지 정확하게 동서남북의 네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요. 그럼 이번에는 동서남북의 순서대로 눌러볼까요? 근데 중심에서 가까운 쪽에 있는 걸 눌러야 해요, 아니면 먼 데 있는 걸 눌러야 해요?”

“잠깐만 기다려. 동서남북은 아닐 거야. 그리고 방향에 따라 눌러야 용의 위치도 다른 것 같고. 동남서북, 그러니까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며 여기, 여기, 여기, 여기를 찔러봐.”

도윤은 동쪽의 청룡, 남쪽의 적룡, 서쪽의 백룡, 그리고 북쪽의 흑룡을 순서대로 가리켰다. 그러다보니 중심으로부터의 거리가 들쭉날쭉해졌지만 그게 동서남북의 방위에 걸맞은 색깔이었다. 게다가 불교식으로 하면 방위의 순서도 그게 맞았다.

전 세계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동서남북의 방위를 가리키는 명칭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 방위를 열거하는 순서는 일정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동서남북으로 좌우상하를 오가며 십자를 그리는 순서로 열거하지만, 서양의 경우에는 그게 북남서북이 된다. 불교권에서는 동남서북이 가장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열거 방식이었다.

도윤은 왜 그런 순서로 용의 눈동자를 눌러야 하는지 설명하지 않았지만 석훈은 토를 달지 않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가 네 방위에 있는 용의 눈동자를 모두 누르자 이번에는 네 번째 눈동자를 눌러도 다른 눈동자들이 다시 튀어나오지 않았다.

“눈동자가 다시 올라오지 않는 걸로 봐서는 이게 맞는 순서인 것 같은데, 왜 아무런 변화가 없는 거죠?”

석훈이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리자 도윤이 그림의 한쪽 가장자리에 두 팔을 대고 힘껏 밀었다. 그러자 우르릉 하고 돌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와 함께 벽화가 그려진 벽 전체가 돌아갔다. 그 뒤로 회랑이 보였다. 드디어 벽이 열린 것이다.

* * *

중앙 묘실의 반대편 끝이 곧바로 회랑과 연결된다는 사실이 도윤을 약간 허탈하게 만들었다. 내심 다른 복잡한 통로를 더 지나야 할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덤 전체의 공간 크기를 생각하면 오히려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벽화가 그려진 벽은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는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반대쪽 벽에도 안쪽과 똑같은 위치에 동일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밖에서 이곳으로 들어올 때도 마찬가지 순서로 눈동자를 누르면 걸쇠가 벗겨지게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형. 이제 우리 살 수 있게 된 거 맞죠? 여기로 빠져나가면 되는 거죠?”

석훈은 드디어 살아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길길이 뛰며 기뻐했다. 하지만 아직은 그렇게 마냥 좋아할 때가 아니었다.

“회랑에 함정이 있었잖아. 여기서 우리가 들어온 곳까지 가는 동안에 또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몰라. 일단 우리가 들어왔던 구멍까지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돼.”

그리고 나가기 전에 묘실을 철저하게 조사해서 쓸 만한 물건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하고.

두 사람은 일단 딩샤를 중앙 묘실에 있는 옥좌에 앉힌 다음 팔과 다리를 의자와 함께 밧줄로 단단히 결박했다. 그녀를 해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함께 돌아다니며 회랑과 묘실을 조사하기는 껄끄러웠다.

도윤과 석훈은 딩샤를 묶어둔 뒤에 먼저 회랑부터 점검했다. 비상 가루가 휘날리거나 밑이 꺼지게 만든 함정이 더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방독면을 뒤집어쓰고 묘실에서 가져온 기다란 돌창으로 바닥을 두드리며 조심스럽게 회랑을 돌아다녔다.

묘실 전체를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을 거라는 짐작과는 달리, 회랑은 중앙 묘실의 맞은편을 반달 모양으로 감싸고 있는 게 전부였다. 양쪽 끝은 석벽으로 막혀 있었는데 돌과 돌 사이에 쇠가 스며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너머에 다른 공간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도윤 일행이 빠졌던 함정은 중앙 묘실에서 바라봤을 때 왼쪽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미처 가보지 못했던 오른쪽에도 바닥이 꺼지게 되어 있는 이중 함정이 하나 더 있었다. 거기도 마찬가지로 날카로운 돌창이 밑에 빽빽하게 박혀 있었다.

“함정을 교활하게 설치했네요. 설사 도굴꾼들이 밖에 있는 석벽을 뚫는데 성공했다고 해도, 드디어 무덤 안으로 들어왔다고 안심하는 순간 아차하면 목숨을 잃었겠는데요?”

회랑 탐사를 끝낸 석훈이 혀를 찼다. 바닥이 꺼지는 함정은 둘 밖에 없었지만 비상가루를 담은 접시들은 곳곳에 산재했던 것이다. 한 번만 바닥을 잘못 밟으면 사방에 비상 가루가 날릴 테고, 방독면이 없을 경우 늦든 빠르든 그걸 마시고 피를 토하며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극도로 조심한 덕에 비상가루를 담은 접시를 깨트리거나 뒤집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다만 중앙 묘실을 사이에 두고 양쪽 바닥에 있던 함정은 모두 무너져 내렸고, 그 때문에 더 이상 함정을 건너가기는 어려웠다. 다행히 일행이 처음에 뚫고 들어온 석벽의 구멍이 양쪽 함정 사이에 있었고, 따라서 밖으로 빠져나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안전한 탈출구를 확보한 두 사람은 다시 중앙 묘실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 있는 여섯 개의 석실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탐사가 거듭될수록 석훈의 놀라움이 더욱 커졌다. 특히, 불당처럼 꾸민 묘실은 그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형. 이게 전부 황금 덩어리면 금값만 해도 도대체 얼마에요?”

불당에는 세 개의 황금 불상이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가운데 있는 가장 큰 것은 높이가 거의 2미터에 달했다. 물론 통째로 금을 부어 만든 건 아니고 금판을 두드려서 이어붙인 것이기는 했지만, 그것만 해도 족히 몇 백 Kg은 되어 보였다. 게다가 세공 솜씨가 워낙 절묘해서 예술적인 가치도 엄청났다. 말 그대로 보물인 셈이었다.

하지만 진정으로 도윤을 감탄하게 만든 것은 역시 불경이었다. 현재 전하는 한문 불경은 크게 인도 출신의 승려인 구마라습이 번역한 구역과, 현장이 천축에 다녀온 뒤에 새로 번역한 신역으로 나뉜다. 그 중에서도 번역의 권위가 더 높고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불경은 역시 현장의 신역이었는데, 구마라습 이전의 번역본은 한 권도 전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에 축법란이 번역했던 첫 번째 번역본이 있다니. 이게 밖으로 나가면 불교계가 또 한 차례 발칵 뒤집히겠네.”

왕이푸 회장이 꼭 찾아달라고 부탁했던 왕희지의 난정서가 발견된 곳은 집무실로 꾸며진 묘실이었다. 그곳에서는 도윤의 입장에서 볼 때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귀한 책들도 여러 권 발견되었다. 정현의 주석이 달린 십삼경(十三經)과 왕필이 주석을 단 노자와 주역은 물론이고 여러 가지 역사적 가치가 있는 사료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도 왕희지의 난정서만큼 도윤의 눈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집무실에 가득 쌓여 있는 책 상자를 하나씩 열며 그 안에 들어있는 족자들을 하나씩 펼쳐보던 어느 순간, 도윤의 눈을 부시게 할 정도로 찬란한 빛이 쏟아져 나와 석실을 가득 채웠다. 이미 어릴 때부터 여러 차례 사진을 통해 보아서 익숙해진 글씨. 왕희지의 난정서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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