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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156화 (156/300)

156화

트루쓰 앤 밸류에서 우승한 덕분에 도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서양화 감정의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감정분야는 오히려 한국과 중국의 서화였다. 어렸을 때부터 고서 감정가인 조태석 교수의 밑에서 글과 글씨를 배웠기 때문에 여러 대가들의 글씨체가 머릿속에 단단히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걸 정말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정말 대단하네. 역시 왕희지다.”

그는 족자를 손에 든 채 한동안 넋을 잃었다.

왕희지의 난정서는 행서체로 쓰인 작품이다. 정자체인 해서와 완전히 흘려 쓴 초서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글씨체인 행서는 빠르게 쓰면서도 글자를 알아보기 쉽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행서는 후한 말의 서예가인 유덕승이 창안했지만 그것을 완성시킨 사람은 역시 왕희지라고 할 수 있었다. 난정서는 그 행서로 쓰인 최대의 걸작이었다.

“형. 그게 뭔데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는 거예요?”

그가 난정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을 본 석훈이 옆으로 다가왔다. 도윤은 손에 들고 있는 족자를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난정서다. 이게 바로 왕희지의 난정서야.”

목소리까지 떨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는 도윤의 권고에 석훈도 유심히 족자를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들며 어깨를 으쓱했다.

“정말 좋은 글씨네요. 알아볼 수 있는 글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만 빼면. 근데 왕이푸 회장이 반드시 찾아달라고 했던 게 바로 이거죠? 원본 맞아요?”

“그래. 이건 왕희지가 직접 쓴 글씨가 틀림없어. 모작이나 위작이 아니야.”

“이야. 그럼 그 양반이 얘기한 걸 최소한 두 개는 확보한 셈이네요? 팔각 금잔은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고, 이제 난정서도 찾았잖아요. 나머지 하나는 도대체 뭘까요?”

그건 아마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겠지. 왕 회장이 끝까지 세 번째 물건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으니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도윤은 다른 것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왕 회장은 이곳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다니엘 로스차일드는 태평 공주의 무덤에서 나온 책자를 통해 진신 사리의 존재와 효능을 알았다고 했다. 딩샤는 그에게서 이야기를 전해 들었고. 당연한 얘기지만 다니엘의 성격상 그가 진신 사리에 관한 비밀을 아무에게나 흘렸을 리는 없었다.

딩샤 역시 그녀의 자백에 의하면 누구에게도 진신 사리에 관해 언급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심지어 자신의 동생에게조차도. 만약 왕 회장이 찾는 세 번째 물건이 정말로 진신사리라면 그는 이곳에 그 물건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어야 한다. 그게 이상했다. 그에게 또 다른 정보의 출처가 있다는 말인가?

도윤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석훈이 문득 난정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런데 형. 이 난정서를 지금 들고나갈 거예요? 왕 회장에게 찾아주기로 했잖아요?”

도윤은 고개를 저었다. 그에게 그럴 의리까지는 없었다.

“정확히는 이곳에 난정서가 있을 경우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감정해주기로 했지. 찾아서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이걸 손에 넣는 건 왕 회장이 알아서 하기로 했어.”

“그래서 이걸 여기 그냥 두고 가겠다고요? 아까 형 눈치를 보니까 몹시 갖고 싶어 하는 것 같던데, 욕심 안나요? 여기서 우리만 입을 다물면 누구도 모를 거 아니에요?”

은근히 떠보는 듯한 석훈의 말에 도윤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솔직히 말하면 갖고 싶다. 하지만 이걸 몰래 숨겨서 들고나갈 경우 적어도 살아생전에는 공개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건릉 안에 들어갔었다는 걸 다 아는데, 이걸 거기 말고 어디서 어떻게 얻었다고 할 것인가? 게다가 이런 걸작은 누군가의 금고 속에서 잠드는 것보다는 박물관처럼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전시되는 게 더 바람직하다.

‘천년이 넘도록 어둠속에 갇혀 지냈잖아. 그럼 이제 빛을 볼 때도 됐지.’

물론 왕 회장이 이것을 손에 넣은 다음에 자신의 거실에 걸어놓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도 최소한 난정서의 존재는 세상에 알려질 수밖에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도윤 자신이 그것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도윤은 집무실 안에 있는 여러 서책과 족자들을 둘러보다 입맛을 다셨다.

“여기 있는 책과 그림, 글씨들이 밖으로 나가면 세상이 발칵 뒤집힐 거야. 중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되겠지. 얼마나 떠들썩할지 상상이 안 될 지경이다.”

중국의 문화재는 곧 인류 전체의 문화재이기도 하다. 그건 유럽이나 이집트, 중동의 문화재도 마찬가지다. 새삼 이런 발굴단에 참여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십년 전, 카메라로 중앙 묘실의 사진을 찍었던 조사 팀은 건릉 안에 500톤가량의 유물이 묻혀 있을 거라고 예측했다. 정확한 무게야 지금 알 수가 없지만, 실제로 중앙 묘실을 포함한 일곱 개의 묘실에는 엄청난 부장품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 하나하나가 모두 값비싼 골동품이자 문화재들이었다.

도윤은 묘실을 탐사할수록 이곳이 정말 굉장한 보물창고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문화재가 보관된 곳은 역시 불당과 집무실이었다. 고종의 관이 안치된 묘실에 들어가 관 뚜껑을 열어보기까지 했지만 다른 곳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아무래도 그 두 곳에 보관된 유물들에 비해서는 양과 질 모두가 미치지 못했다.

“그거야 기준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 다른 거 아니에요? 형이야 서화나 불상에 관심이 많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옛날 복장이나 가구, 도자기 같은 것에 더 가치를 둘 수도 있잖아요. 내가 너무 몰라서 그런가?”

석훈이 이의를 제기했다. 물론 녀석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기준에 비쳐볼 때 유물 자체의 가격은 역시 불상과 서화가 가장 높을 수밖에 없었다. 역사적 가치나 예술적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든 결국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건 시장에서의 가격이었다.

두 사람은 몇 시간에 걸쳐 묘실들을 샅샅이 뒤졌고, 도윤은 그 과정에서 발견한 유물들의 이름과 상태를 모조리 머릿속에 담았다. 나중에 혹시라도 누군가 유물을 몰래 빼돌릴 경우 그의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조사가 대충 마무리되자 이젠 슬슬 이곳을 빠져나갈 때가 되었다. 그때 석훈이 자신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색에서 팔각금잔을 꺼내들었다.

“근데, 형 이건 어떻게 할 거예요? 이건 가지고 나가야 하잖아요?”

석훈이 자신의 허리춤에 매달린 색에서 팔각금잔을 꺼내며 물었다.

카메라 영상에 나왔던 것처럼 옥좌 옆에는 딩샤가 가져왔던 것과 흡사하게 생긴 팔각 금잔이 하나 더 놓여 있었다. 금잔에 양각으로 새겨진 문양이나 세부적인 형태는 서로 달랐지만 전체적인 윤곽은 쌍둥이처럼 흡사했다. 도윤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럼 두고 갈 거야? 원래 여기 있던 물건도 아니잖아?”

“그럼 왕 회장에게는 뭐라고 할 거예요? 그 사람도 이 술잔에 사람을 세뇌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원래 여기 있던 건 가짜잖아요.”

“가짜라고는 할 수 없어. 이것도 무려 천 년 전에 만들어진 정교한 세공품이니까. 완성도가 떨어지는 게 아닌 이상 그 정도 시간이 흐르면 아무리 모작이라고 해도 유물로서의 가치를 부정할 수 없게 돼. 이것도 나름대로 비싼 거라는 뜻이야.”

왕 회장에게는 묘실에 있던 금잔이 진품이라고 얘기하면 그만이다. 본질은 석훈이 가지고 있는 금잔의 모작이지만, 원작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그걸 누가 어떻게 알겠는가? 도윤은 왕 회장은 물론이고 다른 누구에게도 무후의 팔각금잔을 넘길 생각이 없었다.

“우린 있는 그대로만 얘기해주면 돼. 원래 여기 없던 것까지 찾아줄 의무는 없어.”

“그럼 왕 회장은 또 남은 평생을 진작을 찾아서 헤매는 거 아니에요?”

“그걸 네가 왜 신경을 써? 그건 왕 회장이 알아서 하겠지.”

왕희지의 난정서만 해도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이었다. 솔직히 그것만으로도 왕 회장은 이번 발굴에 투자했던 대가를 충분히 얻는 셈이라는 게 도윤의 생각이었다.

‘근데 솔직히 좀 의외이기는 하네. 하나쯤은 있을 줄 알았는데.’

이번 탐사에서 도윤이 진짜로 아쉬웠던 점은 이렇게 많은 부장품들 가운데 능력이 깃든 유물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다. 몇 시간 동안 묘실들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주 잠깐이라도 붉은 빛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물건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긴, 천 년도 넘은 무덤에 그런 게 남아 있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일지도 모르지.’

잔류기억과 마찬가지로 유물에 깃든 능력 역시 영원토록 지속되는 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흐려지다가 결국은 없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곳에 있는 물건들 가운데 일부는 원래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지간한 유물이나 능력이 아니고서는 천 년의 세월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가 여기 들어온 지 너무 시간이 많이 지났다. 얼른 정돈하고 그만 나가자.”

도윤은 일단 옥좌에 묶여 있던 딩샤의 밧줄을 풀어주었다. 사실 막상 묘실을 떠나기로 하자 그녀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가장 고민스러웠다.

딩샤가 자기 입으로 이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모두 털어놓지는 않을 것이다. 그럴 경우 팔각금잔에 얽힌 세뇌 능력이나 진신 사리가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얘기를 해야 하는데, 도대체 요즘 같은 세상에서 누가 그런 황당한 소리를 믿을 것인가?

문제는 발굴단이나 신문 기자들이 아니라 그녀를 이곳까지 보낸 다니엘 로스차일드였다. 딩샤를 이대로 놓아줄 경우 분명히 그에게 사실을 얘기할 것이고, 그러면 다니엘은 진짜로 도윤을 죽여서라도 팔각금잔을 도로 회수하려 할 게 뻔했다.

‘그렇다고 딩샤를 죽여서 입을 막을 수도 없고. 난감하네.’

자신과 석훈을 세뇌시켜서 별다른 생각없이 함정이 즐비한 묘실 안으로 들어가게 한 것은 분명히 괘씸한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그게 그녀를 죽여서라도 입을 막아야 할 정도로 큰 죄라고 할 수는 없었다.

경찰에 넘기는 것도 곤란했다. 그녀를 무슨 죄로 고발할 것인가? 사람을 세뇌시켰다고? 하지만 그걸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도윤은 묶여 있는 그녀를 보다가 혀를 차고 말았다.

“일단 밖으로 데리고 나가기는 하겠지만 널 어떻게 처리할지는 좀 고민해봐야겠다.”

도윤은 일단 그녀를 묶었던 밧줄을 풀어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누에고치처럼 꽁꽁 묶어서 끌고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경우 밖에 있는 발굴단원들에게 그녀를 왜 묶었는지 설명하기가 난감했다. 도윤은 밧줄을 풀어주면서도 강하게 경고했다.

“다니엘이 금잔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면 너나 네 동생을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너도 그 정도는 알겠지? 밖에 나가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나하고 진지하게 얘기를 해보자.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게 좋을 거야. 섣부르게 런던으로 연락을 취하지 말고.”

딩샤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대로 교육을 받은 여자이니까 조금은 합리적으로 생각할 줄 알겠지. 그렇게 믿은 것이 큰 실수였다.

한숨을 내쉰 도윤이 그녀의 팔과 다리를 묶었던 밧줄을 모두 풀었을 때, 딩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그의 뒤에 있던 석훈을 향해 달려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그녀는 온몸을 던져 녀석에게 부딪쳤다. 마침 손에 들었던 금잔을 다시 색에 넣느라 잠시 시선을 돌렸던 석훈은 갑작스러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잠시 비틀거리고 말았다.

녀석의 손에 들렸던 금잔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그게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이를 악문 딩샤가 공중에서 금잔을 낚아챘다.

“움직이지 마. 둘 다 거기 그대로 꼼짝 말고 있으란 말이야.”

딩샤가 소리를 치는 순간, 금잔에서 붉은 빛이 흘러나왔다. 빛은 그녀의 몸을 한 바퀴 휘감았다가 곧바로 석훈을 향해 날아갔다. 딩샤를 잡으려고 손을 내뻗던 석훈의 몸이 목각인형처럼 우뚝 멈춰섰다.

“뭐 하는 거야? 그만 두지 못해?”

도윤이 고함을 버럭 지르며 다가가려는 순간 이번에는 붉은 빛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

“멈춰요! 선배도 그 자리에 서란 말이에요.”

발악에 가까운 딩샤의 목소리가 석실을 가득 채웠다. 도윤은 원래 금잔에 의한 조종이 잘 먹히지 않는 특이한 체질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딩샤는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로 온 힘을 쏟았고, 그 바람에 도윤도 잠시나마 허리 아래가 바닥에 고정된 것처럼 딱 붙어버리고 말았다. 문득 그의 머리로 불안한 느낌이 스치고지나갔다.

“하지 마. 너 그러다가 또 기절할 거야. 자꾸 그러면 안 좋다고 했잖아?”

도윤이 그녀를 향해 팔을 뻗으며 초조하게 소리쳤다. 그러나 딩샤는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도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이건 로스차일드 씨에게 돌려줘야 해요. 안 그러면 저는 물론이고 런던에 있는 제 동생마저 무사하지 못할 거란 말이에요. 선배를 해칠 생각은 없어요. 제가 여길 빠져나갈 때까지 움직이지 말고 그냥 가만있기만 하면 돼요.”

“네가 그럴 돌려주면 로스차일드가 그냥 웃고 넘어갈 것 같아? 지금 그 자식에게 돌아가는 건 자기 무덤을 파는 거야. 그러지 말고 나하고 얘기를 좀 하자.”

도윤이 억지로 힘을 쓰자 바닥에 붙었던 다리가 살짝 떨어졌다. 그것을 본 딩샤가 더욱 이를 악물며 힘을 썼다. 그것이 사태를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몰고 가 버렸다.

그녀가 너무 과도하게 금잔의 능력을 끌어 쓴 게 분명했다. 금잔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한층 더 강해지는가 싶더니 간신히 움직였던 다리가 도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문제는 그와 동시에 딩샤의 눈동자가 위로 말려 올라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도윤이 안타깝게 쳐다보는 사이에 그녀의 눈자위 전체가 하얗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안 돼! 멈추란 말이야!”

도윤이 고함을 지르며 팔을 뻗는 순간, 딩샤가 몸을 홱 돌리더니 두 손으로 금잔을 꼭 쥔 채로 묘실 밖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 나갔다. 능력을 과도하게 쓰면 머리가 백치가 될 수도 있다고 하더니 아무래도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도윤은 얼른 따라가고 싶었지만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잠시 후, 묘실 밖에서 뭔가 쿵 하고 밑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도윤의 가슴도 덜컥 내려앉았다. 그때 마침 묶여있던 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석훈도 몸이 풀렸는지 다급한 표정으로 묘실 밖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도윤이 그의 등을 향해 소리쳤다.

“방독면 써. 아무래도 딩샤가 사고를 당한 것 같다.”

그녀가 비상 가루가 든 접시를 건드리렸다면 밖은 지금쯤 하얀 가루가 날리고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방독면을 뒤집어쓴 채 급하게 묘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밖에서 벌어진 상황은 그들이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끔찍했다. 딩샤가 그들이 처음 빠졌던 함정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이번에는 아무런 보호 장치가 없었고, 도윤이 등으로 그녀를 받쳐줄 기회도 없었다. 두 사람이 재빨리 함정으로 다가가 밑을 내려 보자 딩샤에 뾰족한 돌창에 온몸이 찔린 채 죽어 있는 게 보였다.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끔직한 모습이었다.

석훈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형, 저거 어떻게 해요?”

도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하지?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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