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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157화 (157/300)

157화

“일단 함정 밑으로 내려가자.”

도윤의 말에 석훈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내려가다니요? 내려가서 뭘 어쩌려고요?”

“어쩌긴? 그럼 사람을 저렇게 꼬치에 꿰인 고기처럼 내버려 둘 거야? 어떻게 할지는 나중에 생각하더라도 일단 돌창에서 빼내기는 해야 할 거 아냐?”

황급히 움직이려는 도윤을 석훈이 붙잡았다. 녀석의 얼굴이 평소와는 달리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형.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차라리 밖에 나가서 다른 단원들을 부르죠?”

“무슨 소리야? 아무리 시체라도 저렇게 내버려두는 건 아니지.”

도윤은 자신을 붙잡은 석훈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측천무후의 관이 안치된 묘실로 달려갔다. 무후의 관에 걸쳐놨던 방패와 밧줄을 이용해 밑으로 내려간 그는 한달음에 딩샤가 죽어 있는 함정에 도착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저절로 욕이 흘러나왔다. 비밀 통로로 내려올 때만 하더라도 당장 그녀의 몸을 돌창에서 떼어낼 생각이었는데, 막상 처참한 광경을 눈앞에 대하자 이가 덜덜 떨리면서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다. 시체를, 그것도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 있는 시체를 보는 건 도윤으로서도 난생 처음이었다. 그때, 황급히 뒤따라온 석훈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형. 마음은 알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시체를 건드리면 안 돼요.”

“그럼 저대로 그냥 내버려두자고?”

“저도 안타깝지만 그냥 두는 게 맞아요. 사고든 아니든 이건 사망 사건이잖아요. 함부로 현장을 훼손했다가는 우리가 딩샤를 죽였다는 누명을 뒤집어쓸지도 몰라요.”

“누명을 뒤집어쓰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나도 형사나 검시관들이 정확히 어떻게 수사를 하는지는 몰라요. 그래도 일단 최대한 사고현장을 보존하는 게 나을 거예요. 그래야 사망 원인을 밝혀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거 아니에요. 적어도 우리가 딩샤 씨를 죽여서 함정에 던졌다는 오해는 피해야지요.”

석훈이로서는 드물게 냉철한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그제야 도윤도 조금 정신이 돌아왔다. 녀석의 말이 옳다. 시체를 돌창에서 꺼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온몸에 피가 묻을 것이다. 사망 원인을 밝히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고, 잘못하면 두 사람이 쓸 데 없는 오해를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기막힌 상황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때 함정 바닥에 팔각금잔이 나뒹굴고 있는 게 보였다. 딩샤가 함정으로 떨어지면서 놓친 술잔이었다. 도윤은 충동적으로 다가가서 술잔을 집어 들었다.

“형! 뭐하려는 거예요? 하지 마요!”

그는 석훈이 뒤에서 소리치는 것을 무시하고 손에 든 술잔을 바닥에 빽빽하게 꽂힌 돌창에 연거푸 내리찍었다. 캉, 캉, 캉, 캉. 몇 번 내려칠 필요도 없이 돌창에 부딪힌 팔각금잔은 순식간에 모양이 뭉개지고 말았다. 그와 함께 술잔에 희미하게 서려 있던 붉은 빛이 완전히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깃들어 있던 능력이 소멸된 것이다.

“그만하세요. 왜 애꿎은 술잔에다 화풀이를 하는 거예요?”

어느새 다가온 석훈이 도윤의 손에서 술잔을 뺏어들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술잔이 형체를 완전히 잃어버려 유물이 아니라 한갓 금덩어리로 변한 뒤였다. 녀석은 끌끌대며 혀를 차더니 그것을 다시 딩샤의 시체 밑으로 던져버렸다.

“아무리 요물이라고 해도 명색이 유물이잖아요? 명색이 감정사면서 그걸 저렇게 박살을 내버리면 어떻게 해요? 형답지 않게.”

책망하는 듯한 석훈의 말에 도윤이 허탈하게 웃었다.

“나답지 않다고? 나다운 게 뭔데? 저건 유물이 아니야. 네 말마따나 사람을 홀리는 요물일 뿐이지. 저런 건 아무도 가질 수 없게 차라리 없애버리는 게 나아.”

딩샤가 죽기 전까지만 해도 도윤은 무후의 팔각금잔을 어떻게 할지를 놓고 고민했었다. 세상에 다시없는 귀한 물건이 분명하지만, 하필이면 갖고 있는 능력이 다른 사람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주인을 만나기만 하면 그저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을 주는 술잔. 그렇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유물은 도윤도 처음이었다.

‘능력을 전해 받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 정도인데 만약 자신과 같은 링커가 술잔의 능력을 온전히 주인에게 전해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호기심이 생겼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건 참으로 멍청하고 어리석은 호기심이었다. 애초에 딩샤에게서 저걸 뺏자마자 바로 없애버렸어야 했다. 그럼 이런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새삼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유물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주인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주인에게는 이익이 되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는 피해가 되는 건 얼마든지 가능했다. 게다가 이번 일을 통해 유물의 능력이 너무 강할 경우 오히려 주인을 잡아먹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없애버렸어야 했어. 미련을 두지 말았어야 했어.’

도윤은 한참동안 바닥에 주저앉아 고개를 숙인 채 스스로를 자책했다. 석훈은 안쓰러운 표정을 한 채 그런 그를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군대에서부터 지금까지 함께 지낸 시간이 적지 않았던 그로서도 도윤이 이렇게까지 괴로워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미안하다. 일단 여기부터 좀 정리를 하자.”

그가 사과를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지난 뒤였다. 여전히 가슴이 묵직했지만, 그나마 간신히 약간의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도윤은 먼저 바닥에 널린 석벽의 부서진 돌조각들 가운데 ‘허원(許願)’이라는 글자가 쓰인 것들을 찾아 완전히 가루로 만들었다. 이제 누구도 원래 그런 글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을 것이다.

바닥에 죽어 있던 오래된 해골 뼈도 적당히 손을 보았다. 뼈의 상태를 조사하느라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것을 자연스럽게 죽은 것처럼 보이게 가지런히 정리한 것이다.

석벽을 무너뜨리느라 비밀 통로 안으로 쏟아졌던 돌조각들도 모두 함정 안으로 옮기고 주변의 흔적을 정리했다. 누가 보면 함정에서 통로 쪽으로 석벽을 무너뜨린 게 아니라 거꾸로 통로 안에서 함정 쪽으로 막힌 벽을 뚫은 것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다.

그런 뒤에 다시 무후의 묘실로 올라와 관에 걸쳐 놓았던 방패와 밧줄을 치웠다. 관 뚜껑을 덮고 주변에 있던 물건들도 원래 상태로 되돌려놓았다.

“사람들이 이곳을 발견하면 꽤나 혼란스러워하겠네요. 여기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아내려면 상상력이 아주 좋아야 할 것 같은데요?”

석훈의 말에 도윤이 씁쓸하게 웃었다.

“어차피 논리적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 현장이야. 난 그걸 조금 더 헷갈리게 만든 거고. 나중에 이곳의 모습이 세상에 알려지면 온갖 괴담이 쏟아져 나올 거다.”

두 사람은 그렇게 묘실과 통로에 널려 있던 흔적들을 조정한 다음에야 비로소 다시 회랑으로 나가 터널을 빠져나왔다. 밖은 이미 캄캄한 밤이었다. 아침에 이곳으로 들어왔는데 어느새 열두 시간가량이 지난 것이다.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자 몇몇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게 보였다. 그나마 몇몇 단원들이 바깥을 지키고 있었던 모양이다.

* * *

도윤과 석훈은 발굴단원들에게 희소식과 비극을 함께 전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건릉 내부에 엄청나게 많은 유물들이 실재하고, 그들 대부분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는 소식은 모든 단원들을 기쁘게 했다. 그러나 묘실 내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딩샤가 함정에 빠져죽었다는 얘기는 그들을 큰 충격에 빠트렸다.

발굴단장인 탕가오위안 교수는 평소와는 달리 신속하게 필요한 조치들을 취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도윤과 석훈을 격리시킨 뒤 철저하게 몸수색을 하는 것이었다. 혹시 안에서 몰래 들고 나온 물건이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나름 이해가 가는 조치이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기가 막혔다. 안에 사람이 죽어있다는데 공안이나 구조대원을 부르는 것보다 몸수색을 먼저 한다고?

몸수색이 끝나자 이번에는 심문이 이어졌다. 그때도 딩샤에 대한 질문은 뒤로 밀렸다. 탕 단장은 먼저 묘실 내부의 구조와 각각의 묘실에 있는 유물들에 대해 집요할 정도로 자세하게 물었다. 도윤은 안에 있는 모든 유물들의 목록과 상태에 대해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전체적인 윤곽만 대충 말해주었다. 시간이 갈수록 짜증과 분노가 치밀었다.

“그래서 딩샤가 어떻게 해서 죽었다고요?”

그녀에 대한 질문이 나온 것은 드디어 묘실 내부의 구조와 유물에 대한 파악이 모두 끝난 뒤였다. 도윤은 끓어오르는 속을 달래며 비교적 사실에 근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딩샤는 처음부터 자신의 허리 색에 팔각금잔을 숨겨서 가지고 왔습니다. 중앙 묘실에서 발견된 것과 모양이 아주 흡사했어요. 그런데 자신이 가져온 금잔을 중앙 묘실에 있던 것과 비교하던 그녀가 갑자기 눈을 하얗게 뒤집더니 밖으로 뛰쳐나가더라고요.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어요. 그러더니 결국 그런 사고가 난 겁니다.”

도윤의 얘기를 들은 탕 단장이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여러 차례나 같은 질문을 하면서 당시의 정황을 상세하게 캐묻더니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이 박사. 조금 있으면 공안이 올 거예요. 그럼 그 사람들도 이 박사를 심문할 텐데, 죽은 딩샤에게는 안 됐지만 얘기를 조금만 바꿉시다.”

“얘기를 바꾸자고요? 어떻게 말입니까?”

“그녀는 그냥 회랑을 탐사하던 도중에 실수해서 함정에 빠져 죽은 걸로 합시다. 눈을 하얗게 까뒤집었다느니 하는 말은 빼고요. 그런 말은 공안이 잘 믿으려고 하지 않을 게 뻔해요. 그럼 조사가 길어지고 일도 복잡하게 될 겁니다.”

“저보고 거짓말을 하란 말씀입니까?”

“거짓말을 하라는 게 아니라 필요하지 않은 부분은 빼자는 뜻입니다. 이 박사가 그렇게만 해주면 나도 적극적으로 이 박사를 돕겠소. 서로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건 공안을 만난 다음에 결정하겠습니다. 괜히 진술을 대충 했다가 나중에 저만 덤터기를 쓰는 건 싫으니까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공안들한테는 제가 미리 손을 써놓겠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 발굴 현장에 공안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건릉 안으로 사람들을 보내 딩샤의 유해를 꺼내오는 한편, 도윤과 석훈을 밀실에 격리시킨 채 심문을 진행했다. 심문을 받으면서 도윤은 속으로 실소를 금치 못했다.

‘미리 손을 써놓겠다고 하더니 벌써 여기저기 힘을 쓴 모양이군. 탕 단장의 영향력이 공안까지 미칠 리는 없고, 누가 배후에 있는 거지?’

국가문물국 국장인 장린펑이나 린타오 교수의 아버지이자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인 린카이창이 손을 썼을 가능성이 있었다. 어쩌면 왕이푸 회장이 뒤에 있을지도 모른다.

공안들의 심문은 지극히 형식적이었다. 그들은 딩샤가 잘못해서 함정에 빠져 죽었다는 도윤과 석훈의 진술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토를 달지 않았다. 어쩌다가 그렇게 됐는지. 혹시 누가 밀지는 않았는지 등에 대한 질문이 전혀 없었다. 결국 그들이 심문을 통해 들은 얘기는 그냥 간단히 현장을 확인하기만 하면 알 수 있는 것들뿐이었다.

덕분에 도윤과 석훈은 간단한 심문을 받은 끝에 공안에서 풀려날 수 있었고, 딩샤의 유해는 무덤에서 꺼내진 후에 신속하게 화장되었다. 그녀의 부모는 유해를 북경까지 옮긴 후 거기서 장례를 치르기를 원했지만 그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 *

공안들이 철수하자 본격적으로 묘실에 대한 탐색이 시작되었다. 회랑 안에 널려 있던 비상 가루가 모두 제거되고, 바닥이 꺼진 함정 가장자리에는 임시로 철제 난간이 설치되었다.

탐색 초기에는 도윤도 적극적으로 조사에 참가했다. 왕이푸 회장의 적극적인 지원과 압력 때문에 탕 단장이나 다른 발굴 단원들이 함부로 그를 조사에서 배제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실제로 눈치를 보는 대상은 도윤이 아니라 왕화였다.

예상대로 발굴단원들을 가장 환호하게 만든 곳은 불당과 집무실이었다. 그곳에서 발견된 각종 불교 유물과 귀한 서화들을 확인한 단원들은 흥분해서 비명을 지르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도윤의 역할 또한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왕이푸 회장은 발굴 경비를 지원하는 대가로 건릉에서 발견된 유물 가운데 세 가지를 죽을 때까지 임대형식으로 소장할 수 있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가 제일 먼저 선택한 두 개의 유물은 당연히 왕희지의 난정서와 중앙 묘실에서 발견된 팔각금잔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하나로 뭘 선택할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망설이며 선뜻 정하지 못했다..

“딩샤가 죽은 곳에서 부서진 채로 발견된 팔각금잔 말이에요. 그걸 그녀가 처음부터 가지고 들어왔던 게 확실한가요? 혹시 그것도 원래 묘실에서 발견된 건 아니었나요?”

왕화는 몇 번이나 도윤과 석훈에게 그 점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도윤은 그때마다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왕화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그 금잔은 왜 그렇게 찌그러진 거죠? 복원이야 가능하겠지만 손상이 너무 심하던데요?”

“내부에 들어가 보셨으면 알겠지만 함정이 굉장히 깊습니다. 떨어지면서 밑에 있던 돌창에 강하게 부딪쳤을 거예요. 금속으로 된 술잔이니까 아마 이리저리 튕기기도 했을 겁니다.”

대답을 하던 도윤도 슬그머니 물어보았다.

“근데 왕화 씨는 왜 유독 그 물건에 대해 그렇게 관심을 보이는 거죠? 그건 어차피 건릉에서 나온 유물이 아니니까 왕 회장님이 빌릴 수도 없잖습니까? 중앙 묘실에서 발견된 것은 이미 왕 회장님이 소장하기로 한 걸로 아는데, 혹시 딩샤의 금잔도 갖고 싶어서 그래요?”

“아니에요. 두 개의 금잔이 워낙 비슷하게 생겼잖아요. 호기심이 생겨서 그래요.”

도윤의 질문이 조금 당황스러웠는지 왕화가 얼른 질문을 바꿨다.

“그리고 무후의 묘실에서 발견된 황금 불상 말이에요. 안에 유물을 넣을 수 있는 서랍이 달려 있던데 속이 비었더라고요. 혹시 처음 조사할 때 서랍 안을 확인해 보셨나요?”

“아뇨. 묘실 안에 유물이 그렇게 많은데 언제 하나하나 일일이 확인하겠어요? 혹시 제가 서랍 안에 있던 뭔가를 훔쳤을 거라고 의심하는 겁니까?”

“아, 아니에요. 제가 설마 이 박사님을 의심할 리가 있겠어요?”

“묘실에서 나오자마자 철저한 몸수색을 받았습니다. 서랍 안에 원래 뭐가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나 석훈이가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는 건 믿으셔도 좋습니다.”

결국 왕 회장은 세 번째 임대 유물로 그 불상을 선택했다. 속이 비어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심정이었던 모양이었다. 이로써 그 역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었음이 분명해졌다. 도윤은 새삼 세계적인 거부들이 갖고 있는 엄청난 정보력에 치를 떨었다.

왕 회장의 선택이 모두 끝나자 도윤 역시 발굴 업무에서 거의 배제되었다. 묘실 내부에 대한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 달 후, 도윤과 석훈은 결국 발굴단을 떠나기로 했다.

“눈치를 보니까 더 이상 제가 여기서 할 일이 없는 것 같네요. 남은 일은 다른 분들이 잘 할 수 있을 거 같으니까 저는 그만 한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연말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새해는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맞이하고 싶다는 그의 핑계를 탕 단장이 넙죽 받아들였다. 눈치로 봐서는 오히려 껄끄러운 혹 하나를 떼어내게 되어서 속이 후련하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왕 회장은 소문난 재벌답게 도윤과 석훈에게 두둑한 보너스를 주었다. 그동안 일하면서 받은 수당까지 합치면 제법 짭짤한 수익을 거둔 셈이었지만 지금의 도윤에게 사실 그 정도는 푼돈에 불과했다. 물론 석훈은 희희낙락하며 감사하게 그 돈을 받았다.

서안을 떠난 이틀 후, 그들은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가 아니라 낙양에 있는 호텔에 투숙했다. 탕 단장에게 댄 핑계와는 달리, 도윤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반드시 먼저 찾아가야 할 곳이 있었다. 바로 낙양 인근에 위치한 고찰, 백마사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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