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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160화 (160/300)

160화

<23. 숨은 그림 찾기>

오주현은 어린이집에서 늘 가장 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였다. 주현이의 엄마는 딸을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극심한 산후 후유증을 앓다가 결국 목숨을 잃었고, 혼자 남은 아빠는 일곱 시 이전에는 퇴근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주현이는 다른 아이들이 모두 부모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언제나 혼자 놀이방에 남아있고는 했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그럴 때마다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TV를 틀어주었고, 저녁마다 그걸 멍하니 쳐다보는 게 그녀의 정해진 일과나 마찬가지였다.

“주현이, 혼자 놀기 심심하면 그림이라도 그려볼래?”

하루는 어린 아이가 혼자서 TV만 쳐다보고 있는 걸 안쓰럽게 여긴 어린이집 선생님이 주현이에게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건네주었다. 그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직전, 여섯 살 때의 일이었다. 다른 아이들이라면 이미 그 이전부터 숱하게 낙서를 하며 놀아본 경험이 있을 법한데도, 정작 주현이가 손에 크레파스를 잡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날부터 주현이는 그림을 그리는 일에 푹 빠졌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자신이 평온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주현이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금세 깨달았다. 장난감을 잔뜩 안겨주거나 TV를 틀어주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았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주현이는 짧은 시간 동안에 엄청나게 많은 크레파스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스케치북을 써버렸다. 어린이집에서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비품만으로는 그걸 다 감당할 수가 없었다. 결국 주현이에게 처음 그림을 그리게 한 지 불과 열흘 만에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은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들른 주현이 아빠 오광표를 불러 세웠다.

“주현이 아버님. 죄송하지만 저 좀 잠깐만 보고 가실 수 있겠어요?”

원장 선생님은 원장실로 들어온 오광표에게 세 권의 스케치북을 보여주었다. 무심코 스케치북을 받아들어 한 장씩 넘겨보던 오광표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이게 뭡니까? 왜 저한테 이걸…….”

원장 선생님은 최대한 침착하게 상황을 설명하려고 애썼다.

“그게 전부 주현이가 그린 그림이에요. 그것도 지난 열흘 동안에요.”

“우리 애가 열흘 동안에 스케치북 세 권 분량의 그림을 그렸다는 말입니까?”

“네. 그리고 보시면 알겠지만 굉장히 잘 그렸어요. 도저히 아이의 솜씨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이에요. 솔직히 저도 직접 보지 않았으면 믿지 않았을 거예요.”

오광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예상과는 달리 너무나 경직된 그의 반응에 원장 선생님이 잠깐 멈칫했다. 보통은 이럴 경우 기뻐해야 하지 않나?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선생님인 제가 부모님께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걸 먼저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주현이는 천재에요.”

오광표의 얼굴에 진한 자조의 웃음이 떠올랐다.

“천재라고요? 미술 천재라는 말인가요? 우리 아이가요?”

원장 선생님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뭐지? 이 떨떠름한 반응은?

“저도 한때는 미대 진학을 꿈꿨던 시절이 있었어요. 하지만 입시에 실패하는 바람에 유아교육으로 전공을 바꿔서 대학에 진학했죠. 그래도 나름대로 그림을 보는 안목은 조금 있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볼 때 주현이는 분명히 미술 천재에요.”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주현이에게는 스케치북을 주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제 아이는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게 하지 않을 겁니다.”

“네? 아니 왜 그런 말씀을…….”

“좋게 봐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아빠로서는 우리 아이가 그림에 취미를 갖는 게 달갑지 않습니다. 죄송하지만 앞으로는 그림을 그리게 하지 말아주세요. 그럼 이만…….”

오광표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딸의 손을 잡고 휑하니 돌아갔다. 원장 선생님은 기가 막혀서 총총히 사라지는 오광표의 등을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저 사람 뭐야? 화가한테 무슨 원수라도 졌나?

원래는 부모가 크레파스와 스케치북 비용을 대주면 자신이 어린이 집에서 주현이를 따로 가르쳐보겠다는 얘기를 할 생각이었다. 그럴 정도로 주현의 재능은 보석같이 빛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 얘기는 꺼내보지도 못하고 만 것이다.

“애는 무조건 공부를 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만 생각하는 건가? 그렇게까지 꽉 막힌 아빠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이상하네?”

재혼도 하지 않고 아빠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딸에 대한 애정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오히려 아이 키우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꽉 막힌 아빠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쩔 수 없지. 내가 대신 키워줄 수 있는 것 아니고. 그나저나 애는 진짜 아깝네.”

선생님은 그냥 혀를 차고 말았다. 그 뒤로는 주현이가 혼자 있을 때에도 그림 도구를 주지 않았다. 학부모와 마찰을 빚는 것보다는 아이가 칭얼대는 걸 달래는 게 차라리 속 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끝날 것 같던 문제가 주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다시 불거졌다. 어느 학교든 미술 시간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모든 학생들은 싫든 좋든 그림을 그려야 했다. 실기 시간만 되면 주현이는 아빠의 무서운 얼굴을 떠올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슴을 조여드는 기쁨을 느끼며 그림을 그렸다. 그러고 나면 언제나 선생님의 칭찬이 뒤따랐다.

중학교 일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학부모 상담을 요청했다. 담임선생님이 하필이면 미술교사였는데, 그녀가 주현이 아빠를 학교로 불러 딸에게 미술 공부를 시킬 것을 권한 것이다.

“주현이는 단순히 그림을 예쁘게 잘 그리는 게 아니에요. 굉장히 독창적인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아이에요. 나이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생각이 깊기도 하고요. 제가 알기로는 집안 형편이 어려운 편도 아니라고 하던데 그림을 가르쳐서 미대에 보내시면 어떨까 해서요.”

그날 저녁, 주현이는 아빠가 그렇게 길길이 뛰면서 화를 내는 모습을 태어나서 처음 봤다.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빠가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걸 싫어하는 줄은 어릴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정말로 이렇게까지 화를 내야 할 만큼 나쁜 일인가?

아빠가 모든 면에서 고지식한 꼰대였다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혐오만 제외하면 오광표는 여느 아빠와 다를 게 없었다. 아니, 오히려 평균보다 훨씬 좋은 아빠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아빠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

그날 이후부터 그녀는 아빠 앞에서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절대로 꺼내지 않았다. 정 그림을 그려야 하거나 그리고 싶을 때는, 아빠 몰래 그림을 그렸다. 그건 언제나 기쁘고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 * *

도윤은 중국에서 두 달 남짓 머물렀다. 베트남의 비에코에서는 한창 원유 생산 시설이 건설 중이었고, 그에 따라 미래 건설의 주가도 조금씩 올랐다. 특히 베트남 정부에서 미래 건설에게 정유 공장 설비를 맡길 거라는 소문이 나돌면서부터는 상승폭이 제법 커졌다.

하지만 새해가 되면서 베트남으로부터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희소식이 계속 전해졌다. 드디어 원유 생산 시설이 완성되고 본격적으로 기름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새해를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 잠시 귀국했던 비에코 사장 고정혁이 현소 화랑으로 직접 도윤을 찾아왔다. 일이 잘 풀려서 그런지 그의 얼굴은 전보다 훨씬 좋아보였다.

“자네도 그렇고 권 전무와도 의논을 해봐야 하겠지만, 일단 봄이 되면 회사를 상장시키는 게 어떨까 싶어. 상장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여름부터는 시장에 주식을 팔 수 있을 거야. 섣부는 예측일지는 몰라도 최소한 10배는 뛰지 않을까 싶어. 하지만 당장은 주식을 팔지 않고 가지고 있는 걸 권하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진짜 대박이 터질 테니까.”

주식 값이 열배로 뛰는 것도 진짜 대박이 아니라면 도대체 얼마나 주가가 오르기를 기대하는 걸까? 도윤이 지금까지 비에코에 투자한 돈은 천억이었다. 물론 그 대가로 받은 주식의 액면가는 그보다 적은 7백억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만 해도 열 배로 뛰면 무려 칠천 억이다. 그런데 거기서 더 뛸 거라고?

비에코에서 생산하는 원유의 품질이 우수하다는 것은 이미 시추 단계에서 몇 번이나 확인했다. 추정치이기는 하지만 매장량도 최소한 삼십 년은 안심하고 뽑아낼 수 있을 만큼 충분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희대의 재앙이 벌어지지 않는 한 비에코의 주가가 상장과 동시에 폭등할 거라는 사실은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고정혁은 자신감은 충분히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회사가 상장되더라도 당장 주식을 파는 건은 삼가라고 적극적으로 권했다.

“당분간 원유를 판 돈 가운데 일부는 회사를 늘리는데 재투자할 생각이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대로 가면 연말에 받을 이익 배당금이 엄청날 거라고 장담하지. 그것만으로도 한국에서는 충분히 목에 힘주고 다닐 수 있을 정도는 될 걸?”

물론 도윤은 당장 비에코의 주식을 팔아치울 생각이 없었다. 그가 상황에 따라 매각하려고 생가갛고 있는 주식은 따로 있었다.

그동안 그는 케이먼 군도 등에 설립한 투자 회사들을 미래 건설의 주식을 조금씩 지속적으로 사들였다. 덕분에 이미 그의 투자 회사가 가지고 있는 미래 건설의 지분이 거의 5퍼센트에 육박하고 있었다. 덕분에 대주주로 공시가 되는 걸 피할 수는 없었지만 여전히 그게 도윤의 소유라는 걸 아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베트남에 세울 정유 회사의 건설을 드디어 미래 건설이 수주받았어. 적어도 올 여름까지는 주가가 계속 오를 테니까 아직은 손에 쥐고 있는 게 좋아.”

대동 로펌의 노영태가 몇 번이나 강조한 충고였다. 당장 돈이 급한 건 아니었으므로 도윤도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사실 최근 들어 그쪽으로 많은 신경을 쓰기 어려울 정도로 그의 일상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도윤은 이제 조금이라도 미술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반인들도 익히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가 아닌 감정가인데도 그랬다.

트루쓰 앤 밸류에서 우승을 한 덕분에 잠깐 화제의 대상이 되기는 했지만, 이도윤이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일반인들의 머리에 각인된 것은 작년에 있었던 몇 건의 사건들 때문이었다. 현소 화랑에 대한 압수 수색과 한성 옥션의 위작 판매 사건이 크게 화제가 된 이후, 그의 이름이 조금씩 SNS와 유튜브를 통해 퍼져나갔던 것이다.

―한성 옥션에서 현소 화랑을 검찰에 찔렀다는데? 그걸 이도윤이 박살을 냈나 봐.

―한성 옥션에서 지금까지 위작을 잔뜩 팔았는데, 이도윤이 그걸 잡아냈대.

―국내에서 가장 뛰어난 감정가는 역시 이도윤이지. 그 왜 트루쓰 앤 밸류에서 우승한 미술사 박사 있잖아? 젊은 놈인데 눈에 귀신이 붙었다는 소문도 있어.

젊은 놈이 잘나봤자 얼마나 잘났겠느냐고 비아냥대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터져 나올 무렵, 중국 건릉이 드디어 성공적으로 발굴되었다는 뉴스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왕희지의 난정서를 비롯한 수많은 유물들의 정체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세계 각국의 학자와 미술계 인사들의 이목이 그곳에 집중되었다.

그 바람에 끈질기게 발굴을 주장했던 장린펑 국장은 물론이고 탕가오위안 발굴 단장을 비롯한 단원들의 이름이 뉴스에 자주 등장했다. 중국 내부에서는 도윤의 이름이 철저하게 무시되었지만, 한국에서는 그가 특별 초대를 받아 건릉 발굴에 참여한 유일한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었다. 역시 이도윤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그래서 말인데, 네가 심사위원으로 꼭 참석했으면 좋겠다는 부탁이 들어왔다.”

1월 중순 경, 갑자기 이세준이 아들을 자기 사무실로 부르더니 뜬금없는 얘기를 꺼냈다. 도윤으로서는 전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뜻밖의 제안이었다.

“심사위원이요? 무슨 심사위원 말이에요?”

“지금 교육부와 문화관광체육부에서 공동으로 주최하는 전국 학생 미술 대회가 진행 중이야. 오성 그룹에서 후원하는데다 수상자에게는 대학 장학금까지 지급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어서 경쟁이 아주 치열한가 봐. 학생 미술 대회 중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기도 하고.”

“그런데 왜 그렇게 큰 대회에서 저를 심사위원으로 초대한다는 거예요? 저는 화가가 아니라 감정가잖아요? 그런 건 화가나 대학 교수님들이 심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세준이 피식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건 너도 잘 알잖아? 이미 위촉을 받은 심사위원들 가운데 절반은 미술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야. 그런 거에 비하면 너는 그래도 미술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잖아? 게다가 너는 요즘 대중적으로도 인지도가 높아졌으니까 이번 기회에 네 이름을 빌리자는 뜻도 있는 것 같아.”

“에이. 그렇게 구색 맞추는 자리에 끼는 건 별로 내키지 않는데.”

“오성 그룹에서 특별히 전화를 걸어왔어. 거기도 아리움 미술관을 가지고 있잖아? 그쪽에서 네가 심사위원으로 참가해서 이름을 빛내줬으면 좋겠다고 정중하게 요청을 해왔다.”

아리움 미술관에서? 순간 도윤은 저들의 요청을 거절하기가 어렵게 되었다는 걸 직감했다. 아무리 그가 청파 갤러리와 가까운 사이라고는 해도 아리움 미술관을 대놓고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더구나 그 배후에 있는 오성 그룹은 명실공히 국내 최대의 재벌 그룹이 아닌가? 도윤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설마 아침부터 저녁까지 눈이 빠져라 그림만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죠?”

“심사 위원이 다 합해서 열 명밖에 안 되는데 출품작은 수천 점이 넘어. 대학으로 치면 조교쯤 되는 사람들이 미리 그림들을 살펴보고 백 점 정도로 추려놓을 거야. 심사 위원들은 그것만 보고 입상작을 고르면 돼. 정작 본격적인 심사는 이삼일이면 끝날 거다. 괜히 수상작을 놓고 논쟁이 붙으면 좀 길어질 수도 있겠지만.”

도윤은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결국 심사위윈직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아직 새파랗게 젊은 그가 비록 학생 대상이라고는 하지만 전국적 규모의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초대된다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경력에도 보탬이 되면 됐지 손해볼 것은 없었다.

* * *

도윤이 심사위원들과 처음 상견례를 한 것은 1월 마지막 토요일이었다. 심사위원들 가운데 세 명은 현직 대학교수였고, 두 명은 제법 이름이 알려진 화단의 중견 화가들이었다. 나머지 다섯 명은 감정가인 도윤과 국회위원 둘, 그리고 제법 이름이 알려진 현직 시인과 오성 그룹에서 나온 임원 한 명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현소 화랑에서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도윤입니다.”

상견례 자리는 늘 그렇듯이 가벼운 다과회를 겸해서 열렸다. 도윤은 다른 참가자들이 모두 인사를 마친 뒤에 가장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그의 이름을 들은 몇몇 사람들이 오호 하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지만 절반가량은 그냥 무뚝뚝한 표정으로 눈길만 힐끗 주고 말았다.

인사를 마친 도윤은 자리에 앉으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젊은 놈이 자기들하고 같은 자격으로 심사위원이 된 게 언짢은 모양이네.’

하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이미 하루 이틀 겪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되도록 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앞에 놓인 음료수만 홀짝 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오더니 말을 걸었다.

“이 박사님이시죠? 요청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성 전기의 손창현 전무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이도윤입니다.”

인사를 하며 악수를 나누는데 문득 그의 이름을 어딘가 다른 데서도 들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도윤으로서는 드물다고 할 정도로 기억이 떠오르지 않아 잠시 머리를 굴리던 그는 약간 시간이 지나서야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아, 이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구나.’

청파 갤러리든 아리움 미술관이든, 재벌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거느리고 있는 미술관에는 이상할 정도로 여자를 책임자로 앉히려는 경향이 강했다. 아리움 미술관은 현 오성 그룹 총수의 둘째 딸인 이세희가 맡고 있었는데, 손창현은 바로 그의 남편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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