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도윤의 기대와는 달리 딸의 그림을 모두 보고 난 오광표는 그저 씁쓸하게 웃기만 했다.
“왜 그렇게 주현이를 높게 평가하는지는 몰라도 너무 늦었어요. 3월이 되면 곧 고3이 되는 아이입니다. 이제 와서 미대 입시를 준비한다고 해도 재수는 거의 필수예요. 전 고작 미대에 진학시키기 위해 딸을 재수까지 시킬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재수를 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아버님이 허락하시면 주현이를 내년 6월 전까지는 미대에 합격시킬 방법이 있으니까요. 그렇게 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 곧바로 대학에 들어가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재수는 아닌 셈이지요.”
오광표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자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다른 나라에도 미대는 많습니다. 뉴욕이나 시카고에 있는 대학은 어떻습니까? 한국화를 전공할 게 아니라면 굳이 여기서 미술을 공부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오광표는 멍한 눈빛으로 한참 동안 도윤을 쳐다보다 기어코 실소를 터트렸다.
“비록 미대를 다닌 건 아니지만 저도 미국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습니다. 설마 미국 대학 입시라고 해서 만만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죠?”
“그럴 리가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어려서부터 중국과 미국을 돌아다니며 공부했습니다. 유학이 그리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 서류만 낸다고 해서 합격될 리가 없다는 걸 잘 아시겠군요. 주현이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미술 대회 수상 경력은 물론이고 SAT나 토플 성적도 없지요. 그런 아이를 어떻게 미국 대학에 입학시킨다는 거죠? 혹시 무슨 커뮤니티 칼리지 같은 델 보내겠다는 의도입니까?”
도윤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태블릿에서 다른 파일을 불러냈다. 이메일이었다.
“미국에 있는 몇몇 지인들에게 방금 보여드린 주현이의 그림 사진을 보냈습니다. 다행히 몇몇 분들이 긍정적인 답장을 보내주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말입니까?”
“일단 하버드에 계신 제 은사님과 시카고 미술 대학의 그렉 브렌트 교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큐레이터 부장인 에릭 하이든 씨, 그리고 소더비의 까미유 마텔라 씨를 들 수 있겠군요. 그분들은 하나같이 주현이 학생의 그림을 보고 깜짝 놀라셨습니다. 미국 대학에 지원한다면 자신들이 기꺼이 추천서를 써 주겠다고 하셨어요.”
모두 도윤을 지도했던 교수거나 트루쓰 앤 밸류에서 심사위원을 맡았던 인물들이다. 그들은 먼저 주현이의 그림이 고작 중학생 때 그린 것이라는 사실에 놀랐고, 그녀를 추천한 도윤의 안목에도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표시했다. 추천서가 있다고 해서 합격이 보장되는 건 아니지만, 그게 있으면 입학 사정 평가에서 큰 힘이 될 건 분명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수상 경력을 말씀하셨는데, 그거라면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오는 4월에 일본 교토에서 ‘국제 학생 미술 대회’가 열립니다. 아시아권에서는 가장 큰 학생 미술 대회죠. 얼마 전에 끝난 전국 학생 미술 대회 역시 내년 1월에 또 열리고요. 조기 입학을 노리는 게 아니라면 아직 포트폴리오를 만들 기회는 충분히 있습니다.”
도윤의 말에 오광표가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국내 대회도 아니고 국제 대회라고요? 그런 대회에 그림을 보낸다고 해서 상을 받는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하신다는 느낌이 듭니다.”
“지난 번 전국 학생 미술 대회에서 동상을 받았던 ‘숭례문 야경’이 바로 주현이 학생이 그린 겁니다. 물론 미완성 작품에 다른 학생이 적당히 손을 대서 자기 이름으로 제출했죠. 하지만 만약 그걸 주현이 학생이 마저 완성했다면 틀림없이 대상을 받았을 겁니다. 이건 당시 심사를 맡았던 사람들 가운데 한 명으로서 자신 있게 드릴 수 있는 말입니다.”
“아무래도 이 박사가 우리 아이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것 같습니다.”
도윤은 씩 웃었다. 오광표가 더 이상 코웃음을 치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는 건 어느 정도 마음이 기울었다는 뜻이었다. 더구나 자신을 부르는 호칭도 ‘당신’에서 ‘이 박사’로 바뀌었다. 분위기가 처음 얘기를 시작할 때보다 크게 호전되었다.
“물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단 시도해 본다고 해서 나쁠 건 없지 않겠습니까? 아직 2월입니다. 지금부터 그리기 시작하면 새 학년이 되기 전까지 한두 점 정도는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학업에 큰 지장 없이 말입니다.”
오광표는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동안 고심했다. 그러더니 마침내 고개를 들고 물었다.
“어머니의 작품 전체를 담은 도록을 만드는 건 확실합니까?”
도윤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합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나서기를 꺼려한다면 저와 현소 화랑 단독으로라도 반드시 도록을 만들겠습니다. 그러면 이십년 전의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세상이 모두 알게 되겠지요. 작품의 진위를 가리는 문제라면 누구보다 자신이 있습니다.”
그럼 한성 옥션은 또 다시 시체에 못질을 당하는 꼴이 될 것이다. 예전에 박 화백의 가짜 그림들을 진작이라고 감정해 준 곳이 바로 거기였기 때문이다. 물론 공소 시효가 지난 일이니 새삼 배상 책임을 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한성 옥션이 더 이상 기어오를 수 없는 깊은 나락으로 굴러 떨어질 거라는 건 분명했다.
오광표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주현이만 좋다고 하면 그 아이의 그림을 교토 국제 대회에 출품하는 걸 말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미국에 유학 보내는 문제는 일단 어머니의 특별전이 성사된 다음에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해서 결정하겠습니다. 그전까지는 국내 대학에 정상적으로 진학하기 위한 공부를 계속시킬 거예요.”
도윤은 이 정도에서 만족하기로 하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려 이십 년이 넘게 버텨온 고집이었다. 아무리 그럴듯한 조건을 제시했다고 해도 오광표로서는 도윤의 말 몇 마디에 당장 마음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도윤은 결국 그가 딸의 미술 공부를 허락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믿었다.
오광표는 역시 오주현이 미술에 소질이 있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딸을 미워하기는커녕 몹시 사랑하는 아빠였다. 어쩌면 그 역시 지금까지 누군가 자신의 고집을 꺾어주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마다 증오와 사랑 사이에서 선택하는 게 제각기 다르지.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도윤은 그와 악수를 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비교적 보람 있는 만남이었다.
* * *
며칠 뒤, 도윤은 다시 한 번 분당을 찾았다. 이번에는 오광표가 아니라 그의 딸 오주현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약속 장소에 나타난 도윤을 보자마자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깊이 숙였다.
“아빠에게 말씀 들었어요. 정말 감사해요.”
도윤은 진심으로 감사를 표시하는 그녀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오주현이 정말 화가로서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상대가 재능을 가지고 있고, 또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건 적어도 나쁜 짓은 아닐 것이다.
그는 자리에 앉아 음료를 주문한 뒤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아직 완전히 허락하신 건 아니야. 일단은 교토 국제 학생 미술 대회에 그림을 출품하는 것까지만 허락을 받았다고 생각해. 그것 말고는 당분간 일반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시험 준비를 계속한다는 조건이었으니까. 미술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연습을 할 수 있을지는 대회 결과에 따라 달라질 거야.”
“아빠도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그것만 해도 어디에요? 정말 감사해요, 아저씨.”
“야, 차라리 박사님이라고 불러라. 아저씨는 아직 너무하다.”
그 말에 오주현이 쿡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덕분에 분위기가 살짝 부드러워졌다.
“그나저나 너 정말 화가가 되고 싶은 거는 맞지? 내가 괜히 나선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 말에 오주현이 정색을 했다.
“전 솔직히 아직 화가가 된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은 많아요. 나중에 후회를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다른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아요.”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저 나이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만 해도 어디일까? 자신 또한 어려서부터 감정가가 되고 싶어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다른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차피 선택이란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내리는 결정이 아니다.
그는 미리 준비했던 상자를 내밀었다.
“붓하고 물감이야. 아빠 얘기를 들어봐서는 집에 변변한 미술 도구 하나 없을 것 같아서 준비했다. 선물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당장 그림 그릴 곳은 있어?”
그 말에 오주현의 얼굴이 난감하게 변했다. 도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피식 웃으면서 메모지를 한 장 건넸다.
“아틀리에 주소하고 전화번호야. 아는 화가 중에 분당에 개인 화실을 낸 분이 있거든. 이젤하고 캔버스는 거기 가면 그 분이 챙겨주실 거야. 마음 같아서는 현소 화랑에 와서 그리라고 하고 싶지만 집에서 너무 멀잖아? 전화 드리고 가면 반갑게 맞아주실 거야.”
“너무… 신세를 많이 지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는 오주현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도윤은 괜히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걸 피하기 위해 일부러 손을 크게 내저었다.
“넌 아마 앞으로도 나한테 신세를 질 일이 많을 거다. 어차피 나중에 다 갚아야 하니까 지금은 그런 생각하지 말고 그림이나 열심히 그려. 대회 출품작이라고 긴장할 필요 없어. 그냥 네가 그리고 싶은 걸 마음대로 그려. 그래야 오히려 더 좋은 결과가 나올 테니까.”
“네. 그렇게 할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도윤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은 장학금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오광표가 자식을 공부시키지 못할 만큼 돈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어쩌면 미국 대학에 장학생으로 합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그녀를 곧 세울 재단 소속의 화가 가운데 한 명으로 이미 점찍어 두었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잘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 * *
봄이 되었다지만 아직은 아침마다 길거리에서 살얼음이 눈에 뜨이는 3월 초순의 어느 날, 한대길과 한치호, 그리고 성진아 사장 일가가 거실에 모여 앉았다. 다들 얼굴이 심각했다. 가장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성진아 사장이었다.
“당신도 얘기 들었죠? 청파 갤러리와 아리움 갤러리, 그리고 현소 화랑이 공동으로 박은비 화백 특별전을 열기로 했대요. 게다가 박 화백의 전작을 도록으로 만드는 작업도 함께 진행하려는 모양이에요.”
한대길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들었어. 그런데 세 군데서 공동으로 일을 진행하는 게 확실해?”
“네. 주동자가 바로 이도윤이에요. 그 자식이 청파의 최수아 관장과 아리움의 이세희 관장을 설득한 모양이더라고요.”
“청파야 원래부터 이도윤하고는 가까웠다 쳐도, 그 녀석이 어떻게 아리움까지 설득했지?”
“지난 번 미술 대회에서 오성 전기의 손창현 전무하고 심사위원을 같이 했잖아요. 그때 서로 죽이 맞았나 봐요. 손 전무가 옆에서 지원을 했다고 들었어요.”
한대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렇잖아도 곧 다가올 총선 때문에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쁜 상황이었다. 하필 이럴 때에 이도윤이 또 다시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다닌다고 하자 그로서는 저절로 이가 갈릴 지경이었다.
“그 사람들이 박은비 화백 특별전을 여는 게 우리하고 무슨 상관인데요? 당장 우리 코가 석 자인데 왜 그런 일에까지 신경을 쓰시는 거예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묻는 한치호의 말에 성진아 사장의 표정이 대뜸 안 좋게 변했다. 그녀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아들을 쳐다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특별전이야 우리하고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고 쳐도 도록 발행이 문제야. 그걸 작성하려면 기존의 작품들을 죄다 한 번씩 다시 감정해야 하거든. 감정을 철저히 하지 않으면 도록 자체의 의미가 없어진단 말이다. 그러다 보면 지금까지 진작으로 여겨지던 작품들 가운데 사실은 가짜였던 게 모조리 밝혀질 수밖에 없어.”
“그런데요? 그렇게 하라 그러면 되잖아요.”
한대길이 혀를 차며 아들을 노려봤다.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지난 IMF 때 한성에서 경매에 올렸던 박 화백 작품 가운데 위작이 여러 점 있었어. 그 때는 워낙 분위기가 혼란스러워서 대충 넘어갈 수 있었지만 이제 와서 다시 감정하면 우리가 가짜를 팔았다는 게 밝혀질 거야.”
“하지만 그건 벌써 이십 년도 더 지난 일이잖아요? 공소 시효도 이미 다 지났는데 이제 와서 가짜라고 밝혀진다고 해도 우리하고는 상관없는 일 아닌가요?”
한대길과 성진아는 동시에 할 말을 잃었다. 명색이 옥션의 기획 실장이라는 놈이 어쩌면 이렇게까지 머리가 안 돌아갈까? 자식만 아니라면 머리를 쥐어박았을 거다. 한대길은 더 이상 아들을 상대하지 않고 성진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그 세군데서 함께 일을 벌인다면 우리 힘으로는 막기 어렵잖아? 사안 자체가 국회에서 거론할 만한 일도 아니고 말이야.”
성진아가 입술을 꼭 깨물더니 선언하듯 말을 뱉었다.
“지금 상황에서 이십년 전 일까지 밝혀지면 한성 옥션은 그냥 청산 절차를 밟는 수밖에 없어요. 신뢰를 잃은 경매 회사를 더 이상 어떻게 운영하겠어요? 그래서 말인데, 현재 우리 창고에 쌓여 있는 위작들 있잖아요, 그거 전부 북경으로 옮겨서 팔 수 없을까요? 앞으로 들어가야 할 돈도 많은데 그거라도 팔아야 거지꼴은 면할 거 아니에요.”
“북경이라니? 아리스 옥션 말이야?”
“네. 진작은 어디서 팔든 상관이 없지만 위작들은 아무래도 국내에서 처분하기가 어려워요. 다들 우리 물건이라고 하면 눈에 불을 켜고 살피는 분위기라고요.”
한대길은 고민에 잠겼다. 사실 위작은 그냥 없애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성진아 사장은 물론이고 한대길 역시 위작을 그냥 버리기가 아까웠다. 그걸 모두 팔 수만 있다면 돈이 얼마인데……. 게다가 작년부터 건물을 매입해 인테리어 작업을 진행 중인 아리스 옥션은 앞으로 한 달 후면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시기상으로는 딱 적절했다.
문제는 처음 합작 회사를 설립할 때에 비해 현재의 상황이 몹시 안 좋다는 점이었다.
“지난 번 압수 수색 사건 때문에 요즘 왕이푸 회장이 나를 보는 눈초리가 그리 곱지 않아. 회사 이름도 원래 한성아리스로 하기로 약속해 놓고 갑자기 한성을 빼 버렸잖아. 몇 점이라면 모를까 우리 물건을 대량으로 받아주려고 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그럼 애써 모은 걸 그냥 버리자고요? 그것들은 뭐 길바닥에서 주워온 줄 알아요? 나름대로 꽤 돈을 들여서 만든 거예요.”
성진아의 목소리가 뾰족해졌다. 하지만 한대길도 입맛을 다시며 얼굴을 펴지 못했다.
“중국에도 눈 좋은 감정가들이 꽤 있을 텐데 우리가 넘기는 물건들이 모두 가짜라는 걸 알아채면 어떡하려고?”
“한국에는 중국 미술품 전문가가 있지만 중국에는 한국 미술품 전문가가 없어요. 같은 감정가면 아무거나 다 가려낼 수 있는 줄 알아요? 중국 감정가들은 눈치 채지 못할 거예요.”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잖아?”
“당신 왜 그렇게 약한 소리만 해요? 그거 팔지 못하면 당장 선거 운동할 자금도 없다는 거 몰라요? 맨발로 유세할 거예요?”
한대길은 결국 성진아의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불안한 게 사실이었지만 그녀의 말마따나 그렇잖아도 한성 옥션이 줄 소송을 당해 폐업 직전까지 몰린 마당이었다. 그 때문에 다가올 선거를 위한 총알이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그녀는 새삼 마누라가 원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