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168화 (168/300)

168화

<24. 물고기 세 마리>

“전화기가 꺼져 있어 통화가 연결되지 않습니다. 삐 소리가 울리면…….”

백담은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을 꺼 벼렸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재수가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처음 현재의 집으로 이사 올 때만 해도 적당한 가격에 괜찮은 빌라를 구했다고 좋아했다. 계약 기간 2년이 지나고 집 주인이 전세금을 오백만 원 더 올려달라고 할 때도 선뜻 돈을 지불했다. 전세금이라는 게 어차피 나중에 이사 갈 때 모조리 돌려받는 게 아닌가.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하필이면 아들이 병원에 입원한 다음에야 깨달았다. 그나마 너무 늦지 않게 아들의 병을 확인한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었다.

“만성 C형 간염입니다. 이게 보통은 성 행위나 수혈, 소독되지 않은 주사 바늘 같은 것을 통해서 감염되는 건데, 혹시 짐작 가는 일이 있습니까?”

의사의 말에 백담은 고개를 저었다. 아들은 아직 초등학생에 불과했고 수혈을 받은 적도 없었다. 주사라고는 예방 접종을 몇 번 받은 게 전부인데 혹시 그것 때문인가? 하지만 아내와 함께 찾아간 병원에서는 그의 얘기를 듣자마자 펄쩍 뛰었다.

“우리 병원에서는 1회용 주사기만 사용합니다. 주시기를 통해 감염되었을 리가 없어요.”

지식에서나 말빨에서나, 그리고 현실적인 힘에 있어서나 모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예방 주사를 놓아주었던 병원에서는 자기들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리가 없다며 딱 잡아뗐고, 백담에게는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문제는 만성 C형 간염을 치료하는데 들어가는 돈이 보험 혜택을 받더라도 기본적으로 천만 원 이상이라는 점이었다.

“괜히 남한테 돈 빌릴 생각하지 말고 그냥 이사 가요. 어차피 계약 기간도 몇 달 남지 않았잖아요. 조금 싼 데로 집을 옮기면 빚을 갚고도 애 치료비 정도는 나올 거예요. 힘내요, 여보. 돈은 나중에 또 벌면 돼요.”

아내가 의기소침해진 그를 오히려 위로했다. 하긴 이 집에서 산 지도 벌써 4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예상과는 달리 어렵게 문을 연 음식점이 망하는 바람에 통장 잔고가 마이너스였다. 집 주인에게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뒤에 새 집을 구했고, 없는 돈에 빚을 내어 계약금까지 지불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지금 있는 집주인에게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난리가 난 집이 한두 군데가 아니래요. 말이 집주인이지 그 사람도 도망자 신세라고 하더라고요. 어떡해요? 애도 아프다면서, 쯧쯧.”

사정을 전해들은 이웃 사람이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렇게 잘 알면 진즉에 귀띔이라도 해 줄 것이지. 이제 와서 그런 위로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이 근처에 백담의 집주인 소유로 되어 있는 빌라만 수십 채가 넘었다. 그런데 그 많은 빌라가 모조리 갭 투자를 이용해서 사들인 빈 깡통들이었다.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임대 제도, 전세의 희한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지역에 따라 전세 값이 집값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었다. 가령 매매 시세가 1억인 집의 전세가가 8천에서 9천까지 육박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걸 이용해서 일단 집을 사기로 계약을 하는 동시에 그걸 전세로 내놓으면 고작 1천에서 2천만 원만 내고 집 하나를 소유하는 게 가능했다. 이처럼 집의 매매가와 전세가 사이의 갭, 즉 가격 차이가 적은 것을 이용해 적은 돈으로 집을 사는 것을 갭 투자라고 한다.

집을 사면 취득세를 내야하는 건 물론이고 매년 보유세도 부담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 채, 때로는 수백 채에 이르는 집을 마구잡이로 사들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집값이 오르면 다시 팔아서 그 차액을 먹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주춤하면서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소유주는 막대한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경기가 계속 안 좋을 경우, 집주인이 전세를 빼겠다는 사람들에게 줄 돈이 없어 잠적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백담이 처한 상황이 딱 그거였다.

아이는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는데 비싼 약값은 고사하고 입원비조차 지불할 능력이 없었다. 음식점을 차리고 이사 갈 집의 계약금을 치르느라 이미 대출 한도도 최대한 끌어 썼다. 이제는 집주인을 찾기보다는 백담 자신이 사채업자들을 피해 다녀야 할 판이었다.

“다녀올게.”

백담은 시름이 가득한 아내의 눈빛을 뒤로 하고 집을 나섰다. 그의 가방 속에는 그동안 이리저리 이사하면서도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던 족자가 몇 개 들어 있었다.

‘이게 정말 돈이 될까?’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또 그 아버지 때부터 물려받은 골동품. 어렸을 때 서당을 다녔다는 동네 할아버지가 한 번 쳐다보고 만 원짜리 가짜 그림이라며 코웃음을 쳤던 낡은 그림이었다. 이걸 팔아서 다만 백만 원이라도 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 * *

장안동에서 들른 몇 군데 골동품 가게에서 제시받은 최고 가격은 50만원이었다. 그것도 한 점이 아니라 가지고 있던 다섯 점의 족자를 몽땅 합한 금액이었다.

“지방의 옛날 다방 같은 데서 가끔씩 그런 그림을 찾는 경우가 있어. 두고 가면 그런 사람들한테 이문을 조금 남겨서 팔 수는 있을 거야. 솔직히 창고만 차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큰 물건이니까 그 돈으로 넘길 거면 놓고 가. 아니면 딴 데 가서 알아보든가.”

마음 같아서는 그거라도 받고 팔고 싶었다. 하지만 50만 원이라는 가격이 너무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짜에 싸구려 그림이라며? 그럼 5만원을 부를 것이지 왜 50만 원까지 쳐주겠다는 거지? 백담은 한참을 망설이다 그냥 발길을 돌렸다. 가게 주인이 뒤늦게 백만 원을 부르며 옷깃을 잡았지만 그는 결국 지하철을 타고 인사동까지 왔다.

여기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는 감정가가 일하는 화랑이 있다고 하던데……. 근데 그 사람이 내 그림을 봐 주기나 할까? 백담은 한참을 헤맨 뒤에야 비로소 자신이 찾던 곳을 발견했다. 장안동의 가게들과는 달리 너무 번듯한 건물을 차지하고 있는 바람에 오히려 한참을 헤맸다. 그의 머리 위에 ‘현소 화랑’이라는 간판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 * *

“그러니까 이게 과거에 급제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그린 그림이라는 거죠? 근데 하필이면 왜 꽃이 다 지고 나서 말라비틀어진 자루 부분만 그린 거예요?”

석훈의 질문에 도윤이 입맛을 다셨다. 이 자식이 왜 갑자기 그림 공부에 이렇게 열을 올리는 거지? 명색이 화랑에서 일하는 녀석이니 바람직한 자세이기는 했다. 하지만 시기가 나빴다. 그렇잖아도 요즘 박은비 화백의 특별전 준비와 도록 작성 때문에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는 중이었다. 거기다 얼마 전에는 오주현의 그림을 교토에 보내기도 했다.

“연꽃 열매를 한자로 연과(蓮果)라고 써. 근데 그게 연속해서 과거에 급제한다는 뜻의 연과(連科)하고 발음이 같아. 그래서 연꽃 열매를 그려서 그런 소망을 표현하는 거야.”

도윤의 대답이 노골적으로 시큰둥했음에도 불구하고 석훈의 뒤늦은 향학열은 꺼질 줄을 몰랐다. 늦게 배운 도둑질, 아니 그냥 늦게 배운다는 게 무서운 거구나.

“소망을 표현한다고요? 그럼 이게 그림으로 그린 부적 같은 거라는 뜻이에요?”

도윤은 보고 있던 모니터 화면을 잠시 끈 다음에 아예 의자를 돌려 앉았다.

“부적이란 게 원래 추상적으로 간단하게 만들어진 그림이나 다름없어. 문인화나 초상화 같은 게 아닌 동양화 중에는 그런 소망이나 바람을 표시한 것들이 많아. 그래서 옛날부터 동양화는 보는 게 아니라 읽는 거라고 했던 거야.”

“에이. 그게 뭐예요? 그림이면 순수하게 아름다움을 추구해야지. 무슨 암호문도 아니고.”

“얼씨구? 서양화는 뭐 다를 줄 알아? 그것도 읽을 줄 알아야 돼. 거기도 은유하고 상징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고. 제대로 그림을 이해하려면 그런 걸 다 봐야 한단 말이야”

가령 어린 아이가 늑대 가죽 옷을 두르고 있다면 그건 사도 요한을 상징한다. 푸른 색의 옷을 입고 있는 여자는 대개 성모 마리아고 손에 열쇠를 들고 있는 사람은 베드로다. 르네상스 시대까지만 해도 푸른 물감은 굉장히 귀한 것이었고, 베드로는 천국의 문을 지키는 임무를 부여받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도윤이 때 아닌 석훈의 향학열에 괴로워하고 있을 때, 갑자기 녀석의 전화벨이 울렸다. 화랑 로비에 있는 안내 데스크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여기 어떤 분이 그림을 좀 감정해 달라고 오셨어요. 그런데 꼭 이 팀장님에게 감정을 받고 싶다고 하시는데 올려 보내도 될까요?”

“네. 올려 보내세요.”

석훈이 냉큼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자 도윤이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누굴 올려 보낸다는 거야?”

“어떤 분이 와서 그림을 감정 받고 싶대요. 그 양반이 형을 꼭 지정해서 왔다기에 올려 보내라고 했어요.”

“야, 인마. 나 요즘 특별전 준비 때문에 오후에는 감정 안 하는 거 몰라? 네 맘대로 사람을 올려 보내라고 하면 어떡해?”

“에이. 지금 당장 아무 일도 안 하고 있는 걸 뻔히 아는데 웬 엄살이에요?”

“아무 일도 안 하긴? 조금 전까지 널 교육 시키고 있었잖아?”

“전 나중에 교육 받아도 되니까 그냥 일이나 하세요. 대답도 대충 하고 있었으면서…….”

도윤이 기가 막혀 입을 떡 벌리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네. 들어오세요.”

도윤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석훈이 먼저 냉큼 대답을 해버렸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절어있는 남자였다. 나이는 대략 삼십대 후반에서 사십대 초반. 남자는 도윤을 향해 허리를 꾸벅 숙이더니 조심스럽게 들고 있는 가방을 앞으로 내밀었다.

“저기 죄송하지만 이걸 좀 감정 받았으면 해서 왔는데요. 제가 돈이 별로 없어서 그런데 먼저 감정료를 얼마나 드려야 할지 알 수 있을까요?”

대뜸 감정료 얘기부터 꺼내는 모양새로 보아 여유가 없는 사람이 분명했다. 도윤은 속으로 혀를 차면서 앞에 있는 감정용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감정료는 일단 물건을 보고 얘기하죠. 일단 저 위에 가지고 온 걸 꺼내보세요.”

“그래도 제가 먼저 감정료를 말씀해 주셔야…….”

“감정료 애기는 물건부터 보고 말씀드릴게요. 굳이 감정할 필요가 없겠다는 판단이 들면 돈을 내실 필요 없이 그냥 돌아가시면 됩니다. 진품이거나 값어치가 있는 물건일 경우에 한해서만 감정료를 협의하시면 되거든요. 감정료도 물건 값에 비례해서 책정되니까, 제가 얼마를 받을지 알려면 물건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사실은 물건의 진위와 관계없이 일단 감정을 하면 무조건 소정의 감정료를 받게 되어 있다. 하지만 남자의 행색이나 표정을 볼 때 기본 감정료를 내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아,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도윤의 설명을 들은 남자는 그제야 얼굴을 펴면서 테이블 위에 가방을 올려놓았다. 그가 주섬주섬 꺼내놓은 것은 크기가 서로 다른 다섯 개의 족자였다. 석훈의 도움을 받아 하나씩 족자를 펼쳐보던 도윤의 얼굴이 얼핏 경직되었다.

“이거 다른 데서도 감정을 받아보셨어요?”

그의 빤히 쳐다보면서 묻자 남자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장안동에서 몇 군데 골동품 가게를 찾아갔었는데 부르는 가격이 전부 제각각이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필요 없으니 그냥 가져가라고 하고, 다른 곳에서는 또 전부 합해서 5만원을 주겠다고 하더군요. 가장 비싸게 부른 곳은 50만까지 쳐주겠다고 했습니다.”

“50만 원이요? 그게 가장 높게 부른 가격이었다고요?”

“네. 근데 전부 다 이 족자들이 대충 그린 막 그림이나 가짜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잘 몰라서 그런데 가짜 그림도 한 점에 10만 원씩 사주기도 합니까?”

이런 순 날강도 같은 놈들. 도윤은 속으로 혀를 차면서 다섯 개의 족자 가운데 하나를 손으로 짚었다. 텅 빈 화면에 마차 장난하듯 물고기 세 마리를 쓱쓱 그려 넣은 그림이었다. 워낙 단순하게 그린 그림이었기 때문에 물고기의 종류가 뭔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림의 위로 글귀가 잔뜩 쓰여 있고. 왼쪽에는 화가의 서명과 낙관이 찍혀 있었다.

도윤의 옆에서 그림을 쓱 넘겨본 석훈이 괜히 아는 체를 했다.

“이게 뭐예요? 꼭 애들이 낙서해 놓은 것 같은 그림이네? 이런 것도 굳이 진위를 가릴 필요가 있어요?”

남자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는 것을 본 도윤이 혀를 차며 녀석의 뒤통수를 쥐어박았다.

“이런 그림은 원래 자세하게 그리면 안 돼. 물고기라는 것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대강의 윤곽만 간단하게 그리는 게 핵심이야.”

“대충 그리는 게 핵심인 그림도 있어요?”

“그래. 이건 삼여도(三餘圖)라는 그림이야. 물고기 세 마리를 그렸으니 삼어도(三魚圖)라고 읽어야 할 것 같지만 대개는 삼어도가 아니라 삼여도라고 불러. 중국어로 읽으면 물고기를 뜻하는 어(魚)와 여유를 뜻하는 여(餘)의 발음이 똑같이 위(yu)거든.”

“삼여도면 세 가지 여유를 뜻하는 거잖아요? 그걸 나타내기 위해서 발음이 같은 물고기 세 마리를 대신 그렸다는 말이에요?”

어쭈, 이 자식 봐라? 그래도 그간 제법 공부한 보람이 있기는 하네?

“그래. 가끔씩 붕어나 잉어를 커다랗게 세 마리 그려 넣기도 하지만, 그러면 사실 삼여도의 취지에 맞지 않아. 형태만 간단히 그려야 진짜 삼여도라고 할 수 있지.”

‘세 가지 여유’란 공부하는 데 필요한 세 가지 여가 시간, 즉 밤, 겨울, 흐리거나 비 오는 날을 가리킨다. 밤은 하루의 나머지 시간이고 겨울은 한 해의 나머지, 흐리거나 비 오는 날은 말게 갠 날의 나머지가 된다. 시간이 없어 공부할 수 없다는 건 핑계에 지나지 않고 누구나 그 세 가지 여가만 잘 활용하면 얼마든지 학문적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설명을 들은 석훈이 고개를 끄덕일 때, 도윤이 남자를 향해 물었다.

“죄송하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석훈과 마찬가지로 감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던 남자가 얼른 대답했다.

“네. 백담이라고 합니다. 외자 이름이죠.”

“혹시 집에서 예전에 벼슬을 하거나 공부를 하셨던 분이 있으세요? 이런 그림은 아무나 가지고 있을 게 아니라서 묻는 겁니다.”

도윤의 물음에 잠시 머리를 갸웃하던 백담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할아버지한테서 조상 중에 역관을 지낸 분이 계시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집안에 큰 벼슬을 한 어른이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요?”

역관이라.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그림 왼쪽의 서명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그림은 명나라 때의 문인 화가인 심주(沈周)가 그린 겁니다. 여기 백석(白石)이라고 쓰고 낙관을 찍은 게 보이죠? 심주는 석전(石田), 백석옹(白石翁)등의 호로 불렸고, 그림에도 그렇게 서명을 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림 위에 쓴 글씨의 필체나 종이의 상태, 그림의 필선 등으로 볼 때 그 양반의 그림이 맞습니다. 이건 심주의 진작이에요.”

감정 결과를 들은 백담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다.

“이 그림이 진짜로 진짜라는 말입니까? 그럼 가격이 얼마나 될까요?”

“파실 겁니까?”

“네. 아이가 지금 병원에 입원한 상태라서 돈이 급히 필요하거든요.”

아이가 아프다고? 눈치를 보니 사실인 것 같았다. 도윤은 어깨를 으쓱하고 대답했다.

“만약 저한테 파신다면 3억까지 드리겠습니다. 시간을 들여 경매에 내놓는다면 4억까지는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럴 경우 경매 수수료하고 세금을 떼셔야 하니까 직접 손에 쥐는 돈은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거예요. 어떻게 하실래요? 만약 시간이 충분하시면 제가 직접 경매를 알선해 드릴 수도 있어요.”

백담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림 다섯 점을 모두 합한 가격도 아니고 고작 한 점에 3억이라고? 그럼 당장 빚을 갚고 아이 병원비를 대고도 돈이 한참 남는다. 처음 족자를 가방에 넣어서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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