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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173화 (173/300)

173화

옆에 앉아 있던 왕이푸 회장이 웃으면서 설명을 보충했다.

“과거 유럽에서는 오허스(?合師)를 링커, 리어, 커넥터, 퍼빈다 등으로 표현했습니다. 아랍이나 인도에서는 키웅가, 카팔라, 혹은 무칼라나라는 이름으로 불렸고요. 생각 외로 여러 지역에서 비슷한 용어들이 쓰였습니다.”

링커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도윤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 사람들이 자신을 불러놓고 왜 링커를 운운하는 거지? 그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오허스면 짝을 지어주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일 테고, 링커 역시 뭔가를 연결시켜주는 사람이나 매개체를 지칭하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맞습니까?”

“짐작하신 것하고 비슷합니다. 링커란 어떤 사물에 담긴 신비한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옮겨줄 수 있는 사람을 뜻하니까요.”

“사물에 담긴 신비한 능력이라고요? 그건 또 뭡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능력이죠?”

“그건 한 마디로 얘기하기가 곤란합니다. 물건마다 담고 있는 능력이 다 다르니까요.”

“능력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오직 링커만이 알아볼 수 있고 또 전해줄 수 있는 능력이지요.”

왕이푸 회장의 설명에 의하면 세상에는 신비한 능력이 깃들어 있는 특별한 물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보통은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지만 오허스, 혹은 링커라는 특별한 존재만은 그것을 식별해낼 수 있다. 하지만 링커의 진정한 존재 의미는 그들이 물건에 깃든 능력을 그것과 짝을 이루는 주인에게 전해줄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물론 그 모두가 희귀한 고서들에 어쩌다 한 번씩 단편적으로 나오는 얘기들을 조합한 것에 불과합니다. 당연히 과장이나 거짓도 포함되어 있을 테니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렵지요. 하지만 그 책들에 적힌 다른 기록들 중에는 의외로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는 것들도 많아요. 그래서 단순히 완벽하게 허황된 소리라고만 치부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왕 회장의 얘기에 도윤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책이라고요? 저는 그런 얘기가 나오는 책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습니다. 혹시 어떤 책인지 여쭤 봐도 될까요?”

“저도 알고 있는 게 몇 권 없습니다. 십자군 전쟁 직후에 베니스에서 쓰인 것으로 짐작되는 ‘감춰진 진실들(Verum Occultatus)’과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자라 야코브 비망록’, 그리고 독일에서 프랑스 혁명 시기에 발간된 ‘보헤미아 이야기’ 정도가 고작이에요.”

이름조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책들이었다. 그렇다면 누구나 쉽게 사거나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개인 소유의 희귀한 책들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책들의 이름을 저렇게 쉽게 알려준다고? 저들의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자신을 불렀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왕 회장의 설명에 의하면 ‘감춰진 진실들’은 베니스의 한 사제가 양피지에 라틴어로 쓴 문서에 제목을 붙인 것이고, ‘자라 야코브 비망록’ 역시 책이 아니라 문서 묶음의 형태로 발견되었다. 중국어 ‘오하스’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는 문서가 바로 그 ‘자라 야코브 비망록’이었다. ‘보헤미아 이야기’에는 물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사람과 그에게 그런 능력을 전해준 링커에 관한 이야기가 짧게 언급되어 있다고 했다.

설명을 모두 듣고 난 도윤은 일부러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저한테는 그 모든 게 진부한 신화나 전설로 들립니다. 평범하던 사람이 신비한 능력을 지닌 물건을 얻어서 영웅으로 거듭난다는 얘기는 어느 나라에나 있지 않나요?”

“링커는 영웅이 아닙니다. 오히려 영웅을 만들어주는 사람이지요. 그래서 오래 전부터 영웅이 되고 싶은 사람들은 링커를 찾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오래전부터라면 혹시 짐작되는 인물이 있습니까?”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으라고 보냈던 서복이나 명나라 영락제 때 아프리카까지 원정했던 환관 정화 역시 링커였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황제의 명을 받고 특별한 능력이 담긴 물건을 찾으러 세상을 떠돌았다는 거죠.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자라 야코브 비망록에 중국어가 등장하는 이유 역시 정화 원정대가 그곳까지 도달했었기 때문이라 보고 있습니다.”

정화 원정대는 1405년부터 1430년 사이에 일곱 차례에 걸쳐 원정을 떠났다. 당시 그들은 모든 함대가 함께 다니지 않고 몇 개의 분함대로 나뉘어 독립적인 항해를 했는데, 그 가운데 일부는 현재의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도착했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도윤은 약간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저로서는 여전히 믿기 어려운 얘기군요. 만약 제가 링커라면 설사 그런 물건을 찾았다고 해도 남에게 주지 않고 자기가 능력을 전해 받았을 것 같습니다. 뭐 하러 애써 고생해서 남 좋은 일만 시키겠어요? 자기가 영웅이 되는 게 더 나을 텐데.”

그 말에 계속 듣고만 있던 우바오량이 갑자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아쉽게도 링커는 스스로 물건의 능력을 전해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황제들도 안심하고 그들을 멀리까지 보냈겠지요. 큰돈까지 주면서 말이에요.”

“링커는 영웅이 될 수 없다고요? 정말입니까?”

도윤은 티 나지 않게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과 너무나 달랐다. 실제로 그는 링커이면서도 지금까지 서로 다른 유물로부터 무려 세 가지나 되는 능력을 직접 전해 받았다. 이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자신이 특별한 링커라는 뜻이었다.

“말씀을 들으니 정말 궁금해지는군요.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언급하셨던 그 책들을 제가 좀 빌려볼 수 있을까요? 복사본이라도 괜찮습니다만…….”

“미안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도 원본이 아니라 필사본인데다 그것조차 워낙 낡아서 함부로 복사하거나 사진을 찍기가 어려워요.”

생각 외로 매몰찬 거절이 돌아왔다. 도윤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렇게 낡고 귀한 책이라면 언제 망가질지도 모를 텐데 지금까지 사진 한 장 찍어놓지 않았다고?

“제가 과한 부탁을 드렸나 보군요.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링커를 찾았다고 하시니까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링커에게 겉으로 알아볼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까? 설마 아무나 붙잡고 링커인지 물어보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그 말에 대답한 사람은 우바오량이었다.

“조금 전에 능력이 담긴 물건은 오직 링커만이 알아볼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링커들은 예외 없이 뛰어난 감정가이기도 합니다. 아마 그들에게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링커를 찾는 사람들은 늘 안목이 뛰어난 인물들에게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도윤이 찻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우바오량의 눈빛이 목덜미에 싸늘하게 꽂히는 느낌이었다. 그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랬군요. 저한테 왜 이런 이야기를 하나 싶었는데, 두 분 모두 제가 그 링커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정말 그런 겁니까?”

그 말에 우바오량이 크게 손을 내저었다.

“의심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솔직히 이 박사가 워낙 뛰어난 감정가라서 그런 생각을 약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건 의심이 아니라 기대지요.”

“그렇게까지 말씀을 하시니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습니다. 아까 링커는 능력을 담은 물건을 보면 알아차릴 수 있다고 하셨지요? 링커는 어떻게 그걸 알아보지요? 무슨 신비한 느낌을 받나요? 아니면 그런 사물에게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뭔가가 있는 겁니까?”

“기록에 의하면 능력이 잠재된 물건에서는 링커만이 볼 수 있는 붉은 빛이 새어나온다고 하더군요. 그 빛을 통해 특별한 물건인지의 여부를 구분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빛이 주인을 만나면 서로 연결된다는 것까지는 모르는 건가? 도윤은 일부러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입맛을 다셨다.

“그렇군요. 그럼 저는 링커가 아닌 것 같습니다. 여태까지 저절로 붉은 빛을 내는 물건은 전등 말고는 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나중에라도 그런 물건을 보게 되면 꼭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제가 두 분을 영웅으로 만들어 드리면 사례는 두둑이 주시겠지요?”

약간의 농담을 섞어 가볍게 던진 말에 왕 회장과 우바오량이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은 도윤이 링커일 거라는 의심을 여전히 버리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그러나 더 이상 그 문제를 거론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지금 당장 그를 몰아붙이며 추궁하기는 곤란하니 차차 지켜보며 좀 더 관찰을 하겠다는 것 같았다.

‘앞으로 이 사람들 때문에 적잖게 골치 아파질 것 같네. 저렇게 노골적으로 링커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는 건 내가 링커라고 거의 확신을 하고 있다는 뜻이잖아.’

도윤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 뒤로 이어진 대화에서는 더 이상 링커에 관한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바오량이 먼저 자리를 떴다. 도윤 역시 그만 호텔로 돌아가려고 일어나자 왕 회장이 숙소까지 자신의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나섰다.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신다고 했죠? 당분간 보지 못할 테니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그의 차는 운전석과의 사이에 벽이나 다름없는 칸막이가 쳐진 커다란 리무진이었다. 차가 출발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갑자기 왕 회장이 뜻밖의 이름들을 꺼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브라힘 왕세제가 에티오피아의 십자가를 노린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일에 영국의 다니엘 로스차일드가 끼어들려는 모양입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십니까?”

도윤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잘…….”

“이 박사께서 에티오피아의 십자가가 뭔지 모르지는 않으실 테고, 영국의 다니엘 로스차일드와 다소 껄끄러운 관계에 있지 않습니까? 관심이 있을 듯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도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공격에 표정 관리에 실패하고 만 것이다. 그는 아니라고 대답하려다가 급히 생각을 바꿨다. 상대는 이미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질문을 던졌다. 이런 상황에서 마냥 부정하는 건 현명한 행동이 아니었다.

“그 분과는 약간의 오해가 있긴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걸 아셨습니까?”

그러자 왕 회장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지난번 건릉 발굴 때 이 박사와 함께 선발대로 들어갔던 딩샤라는 아가씨가 함정에 빠져 사망했었죠? 대외적으로는 발표하지 않았지만 공안국에서 건릉 내부를 조사한 결과 안에서 심한 몸싸움이 있었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딩샤는 사고로 죽었습니다. 그 점은 이미 확인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도윤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지자 왕 회장이 얼른 손을 내저었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딩샤가 죽은 곳은 회랑의 함정인데 반해 몸싸움의 흔적은 묘실 안에 국한되어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부검 결과 그녀의 사인은 돌창에 의한 관통상이었습니다. 함정에 떨어지기 전까지는 살아 있었다는 뜻이죠.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우리는 그녀가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 스스로 함정으로 뛰어들었을 거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정신적인 문제라……. 역시 이들도 팔각금잔이 사람의 정신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러지 않았으면 저런 추측을 할 리가 없을 테니까. 실제로 왕 회장은 원래 묘실 안의 팔각 금잔을 감정해달라며 자신을 불렀었다. 하지만 지금은 저들도 딩샤의 옆에서 부서진 채로 발견된 금잔이 무후의 진짜 팔각금잔이라는 사실을 알아챘을 것이다.

도윤이 머리를 바쁘게 굴리는 동안에도 왕 회장의 말은 계속되었다.

“건릉 발굴이 계속되는 동안 우리 수사관들은 따로 딩샤의 배후를 파헤쳤습니다. 그러자 뜻밖에도 다니엘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이 튀어나오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그 이름이 그렇게 놀랄만한 이름입니까? 대중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미술계에서는 워낙 큰손으로 유명한 수집가가 아닙니까? 왕 회장님 같은 분이라면 익히 아는 이름일 텐데요?”

도윤의 얘기에 왕 회장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잘 아는 이름이지요. 다만 제가 놀란 것은 다니엘 로스차일드 역시 저처럼 오래 전부터 링커를 찾아왔던 인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도윤의 다시 한 번 차분한 표정을 유지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했다. 이 사람은 정말 많은 것을 알고 있구나! 그런 그를 힐끗 쳐다본 왕 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이 박사에게 건릉 안의 팔각금잔이 진작인지 감정해달라고 했었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그게 아까 말씀드린 신비한 능력을 지닌 물건이 아닐까 하는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통해 다니엘 로스차일드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게 분명해졌지요. 그때 문득 궁금해지더군요. 로스차일드는 이 박사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리무진은 북경의 늦은 밤거리를 시원하게 질주하고 있었다. 도윤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가 침묵을 지키는 동안에도 왕 회장의 말은 계속되었다.

“얼마 전에 이 박사께서 괴한들에게 납치를 당하셨다죠? 그 범인들 사진을 어렵게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친구들이더군요. 다니엘 로스차일드의 부하들이었습니다.”

얘기가 거기까지 이르자 도윤도 더 이상 침묵을 고수하기가 어려워졌다.

“생각보다 정보력이 대단하시군요. 그건 저도 미처 모르던 사실이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담당 형사들에게 얘기를 해 주어야겠군요.”

왕 회장은 도윤의 거짓말에 피식 웃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튼 그로 인해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니엘 로스차일드 역시 이 박사가 링커일거라는 의심을 갖고 있다고 말이죠. 비록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그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집요하기로 소문이 난 사람이니까요.”

도윤이 왕 회장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아까 에티오피아의 십자가 얘기를 꺼내신 게 지금까지 하신 말씀들과 연관이 있습니까?”

“글쎄요. 그거야 이 박사께서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이브라힘 왕세제나 다니엘 로스차일드가 에티오피아의 십자가에 관심을 갖는 건 아마 그게 능력을 담고 있는 물건일 거라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거야말로 이 박사께서 링커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글쎄요. 저는 딱히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에티오피아의 십자가가 실존하는 물건이었습니까? 저는 그걸 축제의 상징으로만 알고 있었는데요?”

에티오피아에서는 매년 9월 27일, ‘마스켈(Maskel)’ 축제가 열린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이 축제는 과거 콘스탄티노플의 황후 헬레나가 그리스도가 못 박혀 죽었던 십자가, 즉 ‘마스켈’을 발견했던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녀가 마스켈을 발견한 장소가 바로 현재의 에티오피아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였다.

도윤의 말에 왕 회장이 애매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마스켈이 실존한다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은밀하게 떠돌았습니다. 성물을 보호하기 위해 철저하게 비밀에 붙였을 뿐이지요. 그런데 매년 마스켈 축제가 열릴 때마다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선택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그게 잠시 공개된다더군요. 그런데 이브라힘 왕세제가 올해 축제 때 그 회합이 열리는 장소를 알아낸 모양입니다. 혹시 관심이 있습니까?”

“관심이야 당연히 있지만 그것도 장소를 알아내야 가능한 거 아닙니까? 게다가 설사 장소를 알아낸다고 해도 제가 그런 비밀스러운 모임에 참석할 수 있는 방법도 없고요.”

“글쎄요. 저라면 장소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겁니다. 아까 제가 다니엘 로스차일드가 그 일에 끼어들려 한다고 말씀드렸죠? 그 얘기는 그 사람 역시 어디선가 같은 정보를 입수했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리고 평소 다니엘 로스차일드의 중요한 일을 도맡아서 처리했던 인물이 바로 그리넘 피티였지요.”

도윤은 그제야 왕 회장이 왜 자신에게 이런 말을 아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넘 피티는 자신을 납치했던 일당들의 우두머리였고, 현재 윤다솔 과장에 의해 체포되어 구속 수감되어 있는 상태였다.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차가 도윤이 묵고 있는 호텔 앞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내리는 그의 뒤에 대고 왕 회장이 마지막 몇 마디를 던졌다.

“에티오피아의 십자가 정도라면 분명히 어떤 능력을 담고 있을 겁니다. 무려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된 물건이니까요. 그걸 직접 보면 이 박사가 링커인지 아닌지 확실히 알 수 있겠지요. 그럼 한국까지 안녕히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차는 부드럽게 도로를 미끄러지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도윤은 멀어져가는 리무진을 보며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웃기고 있네, 미친 자식이. 내가 링커인지를 확인해서 뭘 어쩌겠다는 건데?’

하지만 한편으로는 진짜 십자가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강력하게 사로잡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정말 직업병이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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