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25. 붉은 항아리>
도윤이 서울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거리에 봄기운이 무르익고 있었다. 하지만 따뜻해진 날씨를 즐길 여유는 없었다. 그는 북경 출장으로 쌓인 피로를 채 풀기도 전에 다시금 정신없이 일에 매달려야 했다. 처음 예상과는 달리 무려 열흘 이상을 북경에 머무르는 바람에 박은비 화백의 특별전과 관계된 일들이 산더미처럼 밀려 있었던 것이다.
한대길이 정계은퇴를 선언한 것은 그가 그렇게 새로운 일거리에 푹 빠져 있을 때였다. 그가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했던 날, 조명근이 전화를 했다.
“이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북경에서 한성 옥션의 위작을 감정한 게 너냐?”
잠시 고민하던 그는 사실을 밝히기로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조명근이 그 사실을 외부로 흘리거나 도윤에게 손해가 될 만한 짓을 할 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맞아. 워낙 정교하게 위조한 물건들을 많이 가져와서 적당히 봐줄 수가 없더라고. 그게 그냥 경매에 올라갔으면 결국 언젠가는 나라 망신으로 되돌아왔을 거야.”
“잘했다. 결국 그 작자들이 네 손에 작살이 나는구나. 한대길하고 한성 옥션은 이제 팔다리가 죄다 잘린 거나 다름없어. 권력과 돈을 한꺼번에 잃게 생긴데다 인맥마저 끊어졌어. 아마 한국 땅에서는 얼굴 들고 다니기도 어려울 거다.”
조명근의 말에 의하면 성진아 사장은 자신의 재판을 위해 굉장히 비싼 변호사들을 대거 기용했다. 덕분에 유죄를 인정받더라도 벌금과 집행유예 정도로 끝날 것 같지만 그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돈을 써야 할 거라는 얘기였다.
도윤으로서는 여러 가지 감회가 겹치는 소식이었다. 그와 성진아 사장의 집안은 선대로부터 이어진 악연으로 얽힌 사이였다. 이세준이 크게 한 방을 먹이는 바람에 한성 옥션이라는 배는 이미 크게 기울어진 상태였다. 거기에 도윤이 마지막 어뢰를 적중시킨 셈이었다. 할아버지가 당한 일을 아들이 한 차례 갚고, 손자가 완전히 끝장을 낸 것이다.
“한치호는 이미 호주로 출국했어. 아마 성진아 사장 재판이 끝나면 가족이 몽땅 외국으로 이민을 갈 거라는 소문이 파다해. 그걸 준비하기 위해 한치호가 먼저 튄 거지.”
“아직도 돈이 남아 있는 모양이네?”
“적어도 국내 계좌에 있는 돈은 탈탈 털릴 거야. 하지만 어딘가 미리 빼돌려 놓은 돈이 분명히 있겠지. 그런 사람들은 하는 짓이 늘 그렇잖아.”
도윤은 더 이상 한성 옥션 일가에 대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이미 저항할 힘도 빼앗긴 사람들을 끝까지 쫓아다니면서까지 괴롭히기에는 당장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때, 문득 도윤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는 전화를 끊으려는 조명근을 다급히 불러 세웠다.
“아참, 형. 요즘도 바빠? 내가 저녁을 살 테니까 한 번 인사동으로 나올래?”
“네가 산다고? 그럼 당연히 나가야지. 근데 윤 과장하고 함께 나가도 되니?”
“당연히 되지. 함께 나와. 내가 한우 꽃등심으로 쏠 테니까.”
“한우 꽃등심? 너 분명히 말했다? 나중에 돼지 삼겹살로 바꾸기 없기다?”
사흘 뒤, 석훈까지 포함한 네 사람이 인사동 근처의 한식집에서 모여 앉았다.
“여기 꽃등심 10인분하고 소주 네 병만 주세요.
자리에 앉자마자 조명근이 먼저 손을 들어 고기를 주문했다. 도윤은 기가 찼다.
“형. 우리 네 명밖에 안 돼요. 근데 무슨 10인분을 시켜요?”
“왜? 모자랄까봐? 걱정 마. 먹다가 모자라면 더 시키면 되지. 네가 산다며?”
“네 명이 10분을 먹는데 모자란다고요?”
“그럼 남겠냐? 남자만 세 명에 남자 못지않은 먹성을 지닌 여자도 한 명…, 아야!”
말을 하던 조명근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옆구리를 쓰다듬었다. 그런 그를 윤다솔이 도끼눈을 뜨고 쳐다봤다.
“평소에 나 먹는데 불만 있었어요?”
“아이고, 그럴 리가 있겠어? 우리 윤 과장은 입 안 가득히 뭔가를 넣고 있을 때가 가장 매력있…, 아야야야. 아니 하필이면 왜 꼬집은 데를 또 꼬집고 그래?”
“조 검사님. 내가 직업상 남들처럼 조신 떨고 그럴 처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말씀은 좀 가려하시죠? 아니면 내일 아침에 옆구리에 반창고 붙이고 출근하게 해드릴까요?”
“아닙니다. 늘 바른 말 고운 말을 생활화 하겠습니다.”
이 커플은 참으로 변함이 없구나. 도윤은 속으로 실소를 삼켰다.
네 사람이 어느 정도 배를 채우는 동안에도 소주는 두 병이나 마개도 따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석훈은 요즘 도윤과 있을 때는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는 편이었고, 조명근과 윤다솔 역시 그가 할 말이 있어서 자신들을 초대했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불판이 거의 빌 때쯤 도윤이 조심스럽게 용건을 꺼냈다.
“저번에 저를 납치했던 사람들 말이에요. 그 사람들 제가 면회 좀 할 수 있을까요?”
그 말에 윤다솔이 조명근을 힐끗 쳐다봤다. 그 사건은 이미 경찰 수사가 완료되어 검찰로 넘어간 상태였다. 따라서 자신보다는 현직 검사인 조명근이 대답하는 게 더 나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조명근은 선뜻 대답하지 않고 이유를 물었다.
“다른 사건도 아니고 납치 사건의 피해자가 범인들을 면회하겠다고? 왜?”
“그 친구들한테 몇 가지 좀 물어볼 게 있어서요.”
“뭘 물어보려고?”
“그건 말씀드리기가 곤란해요. 하지만 형이 힘 좀 써줄 수 있겠어요?”
당연히 에티오피아의 십자가를 놓고 열리는 비밀 집회의 장소를 물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조명근에게 그런 얘기까지 하기는 곤란했다. 조명근은 한참 동안 도윤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입맛을 다셨다.
“면회야 그냥 신청하면 되는데, 굳이 나한테 힘을 써달라고 부탁한다는 걸 보니까 특별 면회를 원하는가 보구나?”
“네. 일반 면회로는 아무래도 시간이 짧을 것 같아서요. 여러모로 불편하기도 하고요.”
수감자 면회는 일반 면회와 특별 면회로 나뉜다. 보통 미결수는 하루에 한 번 일반 면회가 가능한데, 최고 30분으로 되어 있는 규정과는 달리 대개는 10~15분 이내에 끝나기 마련이다. 게다가 유리벽을 사이에 둔 채 얘기해야 하고 대화 내용이 녹음까지 되기 때문에 비밀스러운 말을 주고받기는 곤란했다.
그에 반해 ‘장소변경접견’이라고도 불리는 특별 면회는 소파나 의자가 비치된 비교적 편한 공간에서 진행되고 원칙적으로 시간제한도 없다. 물론 1시간 정도가 지나면 입회한 교도관이 면회 중지를 선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화 내용을 녹음하거나 수감자와 면회자 사이에 칸막이를 치지 않는다.
약간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던 조명근이 다시 물었다.
“누굴 만나고 싶은 건데? 설마 일곱 명 전부를 특별면회하자는 건 아니지?”
본래 여덟 명이었던 그리넘 일당은 납치 사건 당시에 한 명이 죽고 일곱 명이 체포되었다. 그들 모두가 병원 치료를 받고 퇴원해서 현재는 미결수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조명근의 질문에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한 명만 만나면 돼요. 그리넘 피티라고 납치범들 우두머리 있잖아요? 그 사람만 면회시켜 주세요. 대신 혹시 모르니까 두세 번 이상 특별 면회를 해야 할지도 몰라요.”
“너 설마 특별 면회실에서 그 놈을 쥐어 패려는 건 아니겠지?”
“석훈이라면 모를까, 제가 그 놈한테 상대가 되겠어요? 오히려 맞아도 제가 맞겠죠.”
“내 말이 그거다. 물론 상대가 수갑을 차고 있기는 하겠지만 특별 면회실은 서로 적대감을 품고 있는 두 사람이 마주 앉기에는 적당한 장소가 아니야.”
“그래도 저한테는 꼭 필요한 일이에요. 부탁해요, 형.”
“하아, 진짜. 야, 이 박사. 네가 도대체 뭘 물으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자식이 제대로 대답을 해 주겠어? 보자마자 죽이겠다고 달려들지만 않아도 다행이지.”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요. 형은 특별 면회 신청이 받아들여지도록 힘만 써 주시면 돼요.”
조명근이 답답한지 고개를 소주를 가득 따라 한 잔 쭉 들이켰다. 그는 탁 하고 빈 잔을 내려놓더니 도윤을 똑바로 쳐다봤다.
“정말 면회해야 되겠냐?”
“네. 꼭이요.”
“좋아.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뭔가 중요한 이유가 있겠지. 언제쯤 면회하려고?”
“지금 당장은 저도 힘들어요. 박은비 화백 특별전 때문에 지방에 있는 소장자들을 찾아다녀야 하거든요. 6월말 쯤 일이 끝나면 면회할 수 있게 해주세요.”
조명근이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마지못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하지만 잘 생각해서 결정해. 나중에라도 마음이 바뀌면 얘기하고.”
“그럴게요. 고마워요. 형.”
결국 어렵게 허락을 받아내기는 했지만, 조명근은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영 불안해 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검찰에서는 아직 그리넘 일당의 배후가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 체계적으로 훈련된 하나의 팀이라는 것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런 단체를 이끌던 놈을 도윤이 단신으로 면회하겠다고 하자 못내 불안했던 것이다.
* * *
박은비 화백의 전시회는 청파 갤러리와 아리움 갤러리, 그리고 현소 화랑이 공동으로 추진 중이었다. 그런데 청파에서 진행되는 작업을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바로 최서라였다. 조명근과 저녁을 먹은 지 며칠 되지 않아 그녀가 전화를 걸었다.
“부산에 사는 수집가 중에 유기찬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박은비 화백의 그림을 세 점이나 가지고 있는 수집가인데 가지고 있는 작품들이 모두 대작이에요. 일단 그림을 빌려주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는 했는데 그 대신 도윤 씨가 부산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어요.”
“나를 부산으로 내려오라고 했다고? 왜?”
“그 사람이 최근에 구입을 망설이고 있는 미술품이 몇 점 있는가 봐요. 도윤 씨가 그걸 감정해줬으면 좋겠대요.”
“감정을 해달라고? 어떤 작품인데?”
“그림 한 점하고 도자기 두 점이에요. 만약 감정을 무료로 해준다면 그림 대여료는 받지 않겠다고 했어요.”
무료 감정을 해달라고? 소장자들이 전시회에 자기 작품을 대여해 줄 때는 일정한 대여료를 받는다. 도윤으로서는 무료봉사를 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애초부터 박은비 화백의 특별 전시회를 열자고 앞장선 사람이 그였다. 거절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근데 날 콕 집어서 지명한 거야? 그냥 실력 있는 감정가를 보내달라고 한 게 아니고?”
“요즘 도윤 씨 이름이 미술계에서 제일 유명한 거 알아요? 도윤 씨가 아닌 다른 사람을 보낼 거면 그냥 없던 일로 하자고까지 했어요.”
이런 게 바로 유명세라는 거구나. 도윤은 흔쾌히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알았어. 내가 간다고 해. 언제까지 내려가면 돼?”
“시간은 딱히 정하지 않았어요. 도윤 씨가 승낙했으니까 제가 연락해서 날짜 정할게요. 그리고 저도 함께 갈 거예요. 이번 일은 어차피 청파에서 추진하던 거였으니까요.”
적어도 여행이 무료하지는 않겠군. 이런 출장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었다.
이틀 뒤, 도윤은 최서라와 함께 부산행 KTX에 올라탔다. 당연히 석훈은 동행하지 않았다. 말이 출장 감정이지 도윤에게는 모처럼의 오붓한 나들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기차를 타고 나서야 최서라로부터 유기찬이라는 사람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본래 부산에서 호텔을 경영하던 사람이었다고 하더라고요. 해운대 일대에 땅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그곳이 크게 개발되면서 돈방석에 올라앉은 사람이에요. 졸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덕분에 2000년대 이후에 엄청난 부자가 된 건 분명해요.”
갑자기 큰돈을 번 유기찬은 해운대에 호텔과 고급 아파트가 함께 들어선 엄청난 크기의 주상복합 건물을 지었다. 애초에 박은비 화백의 그림 역시 호텔을 꾸미기 위해 구입한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럼 미술품에 대한 안목 자체는 그리 높은 편은 아니라는 거야?”
“아마추어 수준은 면했겠지만 탁월한 수집가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몇 년 전에 사기꾼에게 속아 가짜를 여러 점 구입했다가 큰 손해를 봤다고 들었거든요. 그러니까 이번에 새로 미술품을 구입하면서 도윤 씨를 지목했겠지요.”
결국 개인적인 취향을 위해 투자하는 미술 애호가가 아니라 호텔을 꾸미려는 사업적 목적 때문에 미술품을 구입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미술품을 구입할 때부터 나중에 얼마에 되팔 수 있는지에 대해 큰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진위 감정뿐만이 아니라 정확한 시세 감정을 요구하겠군.’
도윤의 그런 짐작은 곧 사실로 판명되었다.
기차를 내린 도윤과 최서라는 택시를 타고 유기찬이 운영한다는 호텔로 향했다. 두 사람은 호텔 로비에서부터 박은비 화백의 그림 두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미리 들었던 대로 둘 다 200호 이상의 대작이었다.
“진품이 확실하네. 저 정도 크기면 가격이 꽤 비쌌을 텐데 미술품 구입에 돈을 많이 쓰는 모양이네?”
도윤의 얘기에 최서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미술품을 철저하게 투자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미술품 가격이 올라가지 않는 경우는 있어도 웬만해서는 떨어지지도 않잖아요. 대박은 못 쳐도 쪽박을 차는 경우는 없는 비교적 안정적인 투자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일리가 있는 얘기였다. 도윤이 프런트에 자신들이 왔다는 사실을 알리자, 잠시 후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직원 한 명이 나타나서 두 사람을 안내했다.
“회장님께서는 사무실에 계십니다. 같이 올라가시죠.”
직원의 안내를 받아 들어서 도윤은 그곳에서 또 한 점의 박은비 화백 작품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곳이 아니라 회장이라는 사람의 책상 뒷벽에 100호가 조금 넘어 보이는 그림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저 정도 크기의 그림을 책상 맞은편이 아니라 등 뒤에 걸어놨다고? 자신이 감상하려는 게 아니라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걸어놓은 거군. 근본적으로 미술 애호가는 아니란 뜻이네.’
말 한 마디 나눠보기도 전에 상대방에 대한 견적이 대충 나왔다. 도윤은 자신들이 들어오자마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유기찬을 향해 허리를 꾸벅 숙였다.
“현소 화랑에서 온 이도윤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청파 갤러리의 최서라에요. 처음 뵙습니다.”
최서라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책상을 빠져나오던 유기찬의 동작이 훨씬 빨라졌다. 그는 도윤은 본체만체 하고 최서라에게 먼저 허리를 꾸벅 숙였다.
“아이고, 설마 청파에서 최서라 실장님이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부산에서 조그만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유기찬이라고 합니다. 귀한 손님을 만나게 돼서 정말 반가워요.”
자신의 앞을 휙 지나가서 최서라만 반기는 듯한 유기찬의 태도를 보고 도윤은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직함이 실장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최서라는 명색이 재벌 그룹의 손녀딸인데다 장차 청파 갤러리를 물려받을 후계자로 소문이 나 있었다. 나름 커다란 주상복합건물을 운영하는 유기찬이 그런 재계의 소문을 모를 리가 없었다.
“회장님이 이도윤 박사님이 꼭 오셔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셔서 제가 직접 모시고 왔어요. 워낙 일정이 빡빡하신 분이라 간곡하게 부탁해서 어렵게 시간을 뺐어요.”
자신의 공적을 내세우면서 동시에 도윤을 치켜 올리는 화법이었다. 그제야 유기찬이 도윤에게 악수를 청했다.
“유기찬입니다. 내려오시느라 출출하셨을 텐데 먼저 식사라도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우리 호텔 레스토랑이 그래도 부산에서는 맛이 좋기로 제일 유명합니다. 하하하.”
도윤을 대하는 말투가 갑자기 친절해졌다. 최서라가 그에게 깎듯이 대한다는 것을 재빨리 눈치 챈 것이다. 도윤은 입맛이 썼다. 이 양반 초면부터 그다지 마음에 들지가 않네.
(다음 화에서 계속)